홍수기억주의보 / 최진화
그 새벽 물이 들어온 마을은 깊이 가라앉거나 어디론가 떠밀려갔다
소들은 오산 부처님 곁으로 올라가 물에 잠긴 자기 집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소는 바다로 떠내려가고 어떤 소는 지붕 위에서 울고 있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여름이 끝날 때까지 진흙과 함께 뒹굴었다
범람했던 그 강물은 어디로 갔나
유난히도 잘 자란 서시천 코스모스 물결 따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가을을 찍고 있다
꽃들은 물이 들어온 그 새벽을 기억하는지
잠겼던 마을이 아직도 퉁퉁 불어 꽃잎마다 흔들리고 있다
* 구례 홍수 : 2020. 8. 8.
- 『미네르바』 2024년 가을 -------------------------------
* 최진화 시인 경기 동두천 출생, 서울교육대 졸업 2005년『문학나무』 등단, 시집 『푸른 사과의 시절』
***************************************************************************** ▶ 5편의 시로 쓴 귀향일기 마을 전체가 가라앉았고 소들이 불어난 강을 따라 떠내려갈 지경이었으니 보통 크게 난 물난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시는 수해 현장의 모습은 짧게 줄이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여름이 끝날 때까지 진흙과 함께 뒹굴었다"고 한다. 즉, 복구작업에 비지땀을 흘리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가을이 되었을 때는 "유난히도 잘 자란 서시천 코스모스 물결 따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가을을 찍고 있다"고 그리고 있으니 수해의 참상은 보이지도 않는다.
꽃들만이 물이 범람해 들어왔던 그 새벽을 기억하는지 "잠겼던 마을이 아직도 퉁퉁 불어 꽃잎마다 흔들리고 있다" 즉 인간은 자연의 재해를 이겨낸 뒤에 언제적 일인 양 잊어버렸는데 자연은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인간이 일일이 과거의 불행을 되씹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는 시편이기도 하다.
- 이승하 (시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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