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나를 죽이는 일이다.
남을 죽이는 일도 정말 끔찍하도록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를 죽이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왜냐면 인간의 가장 강렬한 욕구가 내가 사는 것이고 어떻게든 잘 사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러니 어떡하든 살기를 갈망하는, 죽기를 죽어도 싫어하는 인간이 자기를 죽이는 일을 쉬 할 수 있겠는가. 남을 속이고 짓밟고 두들겨 패고 죽이기까지 하면서도 자신이 잘 살기를 미치도록 갈구하는 인간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자신을 죽일수록 더 살아난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죽이면 그걸로 끝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신을 죽이는 만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순간마다 고백한 것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실 사도 바울처럼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하며 그 죄인의 괴수 됨을 철저히 깨달아 그러한 자신을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그 십자가에 못 박아 자신의 옛사람을 죽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심한 고통을 수반하며 자신의 옛 정욕과 이 세상의 욕심을 다 끊어버려야 하는 극심한 통증을 견뎌내어야 하는 것이다. 천국의 기쁨과 영광은 그러한 후에 주어지는 영광의 면류관인 것이다.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온전히 못 박아버리는 것은, 이 세상 자랑과 욕심을 다 내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고 아쉬움이며 미련이겠는가? 그러나 그 고통 후에 얼마나 큰 천국의 기쁨이겠는가.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태복음 10:39)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10: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