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를 보고 평소 느끼던 궁금점을 여기에 올려봅니다.
일단 좀 관련이 없어보이지만,
1. 세계제1차대전 당시 일본이 협상국 측에 속했었는데요, 당시 일본은 1차대전당시 직접적인 참여(전선에 직접 가담) 없이 승전국에 가담한것인가요? 만약 아니라면 일본이 직접적으로 참가했던 전선(전투)는 어디인가요?
1-1. 일본이 1차세계대전 승전 이후 얻은 이득은 어느정도인가요? 그리고 1차세계대전 ~ 2차세계대전까지 일본과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을 알고 싶습니다.
2. 일제강점기 당시 부친 혹은 가족중에 친일파가 있는데, 그 가족이나 후손이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예가 있나요?
3. 아니면 현재 친일파 후손들의 많은 변명이 되는 겉으로 친일, 속으로 몰래 독립운동. 이 예가 실제로 있었나요? 그리고 실존한다면 그 예는 누구인가요?
4.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에 내려진 회사령은 어떤 법률이고, 이게 당시(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회사령 이외에 만든 명령이 무엇인가요? 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한 일들이 무엇인가요?
4-1. 제가 알기론 이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가 파탄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독립군들은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나요? 이회영 형제가 당시 전재산을 처분한 엄청난 거금으로 지원했다고하는데, 독립운동 자체가 무척 길게 이뤄졌고, 제가 유일한 박사에 대해 알아볼때 수표같은 모양의 독립군 후원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있던데 이건 무엇인가요?
4-2. 일제 강점기 당시 국내 혹은 국외에서 자력으로 성공한 경제인이 있나요? 유일한씨가 이에 속할것같은데, 이분 이외에 어떤 사업이든 간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분(일제협력, 부정수단 제외하고..)이 계시다면 그분은 어떤분이신가요?
5. 일제강점기 당시 미국으로 이민갔던 한인들은 대부분 하와이에 살았다는데,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변호사 출신,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께서는 어떤 회사에 취직해 간부직까지 권유받았다고하는데, 당시 미국 이민들의 처지는 어땠나요? 그리고 당시 미국 내에서 우리나라 출신의 기업(회사)가 있었나요?
5-1. 미국 내의 독립운동조직은 어떻게 구성되어있나요? 제가 알기론 노백린이란분께서 비행학교 만드시고 독립운동에도 꽤 열심히 참여했다던데. 미국 내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6. 프랑스 해방이후 드골의 프랑스 숙청(?)과 우리나라의 광복이후 친일파 청산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는 책을 알고싶습니다.
7. 당시 독립군들의 무장(제작국가,총기이름 등)의 상황이 알고싶습니다. 청산리 대첩 당시에는 독립군이 체코군단의 무기들을 사용했다는데, 그 이전이나 이후에는 어떤 무기가 사용되었나요? 그리고 당시 독립군의 규모는 어느정도였나요?
7-1. 지청천 장군, 장준하 선생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군(장교,징집 등)에 있다가 탈영 이후 독립군에 참가했는데, 이런 사람들은 지금은 몰라도 그 당시로 보면 첩자나 밀정으로 오해받을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은 어떻게 독립군에 합류하게 된건가요?
7-2. 박정희 대통령 친일관련으로 유명해진 만주군관학교에서 우리나라 출신이 탈영해 독립군에 가담했었나요? 예를 들어 애시당초 독립군 입대 목적으로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서 탈영해 독립군에 합류같은.. 그리고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 출신의 경찰(순사?) 들은 전부 친일인건가요? 나중에 가면 일본출신보다 우리나라 출신이 더 많아진다던데. 그리고 광복이후 당시 고위직이었던 사람들이 장관이나 헌병사령관 등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던데, 이들은 처벌을 받았나요?
8. 광복 이후 동아일보 오보사건(고의?)이 분단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사건은 어떤 사건인가요?
8-1. 여운형 선생님의 일생을 다룬 책을 찾고있습니다. 이분이 당시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지도자라고 하던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우리나라 내의 국공합작을 주도한게 이분인가요?) 이분이 하신 일들이 궁금합니다.
9. 우리나라 근현대사 최고의 막장대통령 자리를 여러 후보들과 함께 노리고 계신 이승만 대통령의 삽질(뻘짓)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독립운동시절부터 온갖 막장짓은 다 저지르셨다고 하는데, 찾아볼수가 없네요. 이분은 돈을 빼돌렸다. 해방이후 암살해서 미군 사령관이 암살 그만하라고 했다. 이런거 다 사실인건가요? 그리고 6.25 당시 무슨 부대 창설해서 얼어죽이고,굶겨죽였던 사건을 뭐라그러나요? 그리고 이승만하면 빠질 수 없는 이기붕씨는 언제부터 이승만의 추종자(?)가 되었나요?
9-1. 6.25 개전 바로 하루 전 우리나라 군은 단체 회식,휴가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9-2. 6.25 당시 우리나라 군대도 장난 아니게 막장이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 군의 상황이 어땠나요? 그리고 현재까지 우리나라 군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내무반(폭력 문화?)와 정치군인은 일제의 잔재인건가요?
10.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게 요인 암살(?) 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알기로 대표적인게 이토 히로부미 사살, 천황 암살 미수, 조선 총독부나 경찰서 폭탄투척 등인데, 이 대표적인 사례의 구체적 정보를 알고싶습니다. 특히 천황 암살미수에 대해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이게 성공했으면 어떤 파장을 미쳤을지까지도요.
11.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중에 잘되신분 없나요....... 집뺏기고, 가문 파탄나고... 대가 끊어지고.. 참..
추가.
12.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은근히 많은 외국인들(영국인,일본인 등)들이 참가했었는데 이들이 외국인 우리나라 독립에 열정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름이 기억이 안나는데, 영국인 어떤분은 신문사 만들어서 독립운동하고, 일본인 어떤 변호사는 독립운동가 변호하고, 천왕 암살하려고하고 진짜 열정적이라고 해야하나, 적극적이던데 말이죠.
죄송하게도, 질문이 좀 중구난방입니다. 몇 가지는 질문을 올린 저도 제가 뭔 말을 하는건지 모르는 질문도 몇개있습니다.
최근 광복절 특집에 의한 버프 +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해서 역덕 입문과정을 밞고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릴때부터 역사를 좋아해서 드문드문이지만 그래도 또래에 비해 많이 알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좀 깊게 나가니까 이것 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이었으면 그래도 어느정도 되는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대사쪽부터 쭉 문제가 없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게 바로 근현대사네요. 특히 근현대사는 이것저것 말도 많고 어릴적부터 암울한 근현대사쪽을 너무 싫어했고(공부하다보면 기분까지 우울..) 음모론(?) 비슷한 말까지 있어서 뭘 믿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남지 않은 휴식기간. 할일도 모두 끝냈겠다. 이제 제 취미를 불태우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에서 광복 이후까지의 역사를 다룬 모든 책을 추천받고싶습니다. 책을 지를돈 20만원(전 재산)과 동네 도서관, 좀 무리하면 서울의 유명 도서관쪽까지 전부 둘러볼 생각입니다.
추천해주셨으면하는 책은 독립군 관련 서적, 친일파 관련 서적, 일제강점기 당시 서적, 조선총독부 관련 서적, 1,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제상황,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의 독립운동 관련 서적 등. 제가 이 카페에서 유령회원으로 꽤 오래지냈다고 생각합니다. 제 역사관(?) 형성에도 이 카페 역사게시판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진로는 사학과도 아닌데, 왠지 역사쪽이 점점 끌려요.. 제 능력치는 인남캐에 역사관련 자격증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밖에 없네요. 만약 사학과에 가게된다면 한자나 일본어 같은 외국어 능력이 있어야하는데. 그리고 알아본 바에 따르면 사학과 들어가면 돈은 포기한거라고 하던데 이거 진짜일까요? 학교 역사(국사 and 세계사 등)선생님께서는 너 사학과갈꺼냐고 물으시던데,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끌리는것 같아요....
혹시 사학관련 직업이나 현재 사학과에 다니시는 분이 계시다면 사학과 진학 방법(진로)나, 졸업 이후 어떤 곳에 취직하게 되는건지 좀 알려주세요.. 왜 진로상담을 여기서하고있지..
카페내의 엄청나신 지식인분들이 무척 많아 이 카페에 질문만 올리면서 연명하는 중입니다.
죄송하지만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1.일단 일본이 당시 독일조차지였던 중국 칭다오를 공격했다는거 말고는....그다지.....
1-1.중국에있던 독일이권 가져가고,기술수준은 일본이 앞선상태였죠....우리나라 싸그리다 수탈했는데.....
2.잘은....모르겠군요....
3.이것도 모릅니다....
4.이런건 인터넷검색이 더 빠를지도...아무튼,회사령은 회사설립시 총독부허가가 필요해야한다는 것으로,1910년대에 우리나라 산업을 억제하는데 사용됐고요,1920년대 무렵에 폐지됐습니다(일단은 혹시 무식하단소리가 나올지도 모르니,이정도까지만 씁니다.....나머지는 다른분들에게 물어보세요...)
8.신탁통치 관련 내용입니다.
4. 회사령, 산림령, 교육령 등등 있네요. 회사령은 우리나라의 자본가를 억제한거 뿐만아니라 일본내 자본들도 우리나라 진출 못하게 막았죠. 즉 우리나라 싼 임금으로 인하여 일본내 자본이 우리나라로 진출 시 일본내 산업화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기 때문에요.
9. 이승만 대통령 뻘짓 중 가장 큰 것은 정읍발언이 아닐런지. 그걸로 인하여 분단이 기폭제가 되었다고 생각이 드네요
1. 중국 지역의 독일 조차지 칭다오 뺏고 끝. 태평양의 독일령 섬들도 뺏었는데, 이게 1차대전 패배로 독일이 포기한건지 일본이 점령한 건지 기억이 안나네요;;
4. 회사령이 일본 기업들에게도 불만이 많았다네요. 기업 설립 조건이 일본 본토보다 어려워서 -_-;
7. 아마 중국제 짝퉁-_-이나 러시아제 무기가 아닐까요.
7-1. 광복군이 수백명이 안 되는데, 그런거 따질 겨를이 없겠죠. 광복군이 듣보잡이라 일본이 밀정까지 침투시킬 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지도(...)
7-2. 만주군 출신 장교들이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이 얼만데, 그 사람들을 무슨 수로 처벌해요. ex)백선엽
8-1. 여운형 평전 있습니다. 저도 읽어본 적은 없긴 한데(..)
9-1. 단체 회식...은 아니고, 그날 육군 장교클럽 오픈 기념 파티가 있었다네요. 그리고 그 날이 휴가제한이 풀리는 날. 오죽하면 우리 군 상부에 첩자가 있었다는 소리까지 나올까요-_-;
9-2.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네요. 일본군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도 있겠지만, 군사정권의 억압적인 분위기 하에서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도 적잖이 있지 않을련지.
11. 가장 잘 된 집안은 아마 김구 가문이 아닐까요. 둘째 아들 김신 장군이 공군참모총장. 손자가 보훈처장인가..; 얼마 전에 증손자가 공군 장교로 임관했다는 뉴스가 나왔죠.
3. 조사해보지 않아서 실제로 있을련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논란이 되는 경우는 꽤나 있는 걸로 압니다. 근데 제가 아는 경우는 인촌 김성수밖에 없어서. 근데 이 사람은 친일파라는 의견이 훨씬 많잖아요. 다른 예도 찾아보면 있을법하긴 한데.
5. 그냥 중국인 쿨리들하고 똑같이 농장노동자죠. 농장노동 하면서 본국에 독립자금 보내준 경우도 많고. 뭐 사연 보니까 하와이에서 사진 한 장 받고 중매결혼해서 조선에서 처녀 데려오고 그런것도 있었다고 하네요. 한국인들 고용한 이유가 몇개 있었는데(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저렴한 노동력, 근면성 빼고) 잘 기억 안나네요. 히스패닉/중국계 비중이 너무 많아지고 지들끼리 뭉쳐살면서 영어
도 안하려고 하는데 한국인들은 그런게 덜했다고 하더군요.
7-2. 이건 역사서 보셔도 되겠고 진보성향 법조인이 쓴 책 보셔도 되겠네요. 미국의 일본 전범 재판이나 우리나라 반민특위 활동하다 버로우탄거 보면 참 답답하죠. 이런저런 사정/변명으로 다 빠져나가고 경감되고 사면되고.
9-1. 개전 2주 전쯤부터 첩보에 의해 휴가외박 제한하다가 전날에 풀어줘서 한번에 전병력 1/3이 나갔댔나 그랬댔죠. 몇몇 부대는 부대장 재량으로 통제 유지해서 잘 싸워준 부대도 있다지만.
12. 뭐 배설씨는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우리나라 독립 지지해준 분들 보면 소위 빨갱이(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등)들이 많았습니
일본에서 2-30년대가 다이쇼데모크라시라고 해서 민권운동이 활발했던 시기기도 하구요. 일단 이쪽 계열 기본 강령이(약간씩 다르겠지만) 압제로부터 해방, 프롤레타리아 연대 뭐 이런거다보니까 자연스레 조선독립을 지지하게 된 거죠.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가 제국주의이고 자본주의로 인해 식민지 뿐만 아니라 전세계 대중들이 고통받으니 조선인들 도와서 제국주의 자본주의 물리치자 뭐 이런거.
그리고 사학과는 좀 자신이 신념 엄청 있지 않으시면 추천 안드립니다. 저도 역사 관심 많고 지금은 철학 전공하고 있는데 처음엔 내 의지만 있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그냥 자기만 힘든게 아니고 부모님께 죄인이 되더군요. 가능하면 뭐 취미로 하시는게 좋을듯. 그리고 우리나라 인문학 지원도 별로 안해주기도 하고 사학과 온다고 많이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적어도 저희학교 사학과는... 전공하시는 분들도 별로 배우는거 없다고 하시던) 차라리 역교과 가시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염. 그리고 혹시 한국사쪽 관심 있으신 거면 서울대나 고려대를 목표로 잡으세요. 한국사학과가 따로 독립되있는 학교가 이 둘뿐이라. 딴데는 사학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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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뭐하는 데였는지 제가 모르겠지만 회사령은 착취 맞는 느낌인데;; 혹시 판단 근거가 뭐였는지도 아시나요. 대강이라도.
한국/동/서양 다 하기 때문에 수업 10개 개설되면 그 중에 한국사 관련은 5개 정도? 그것도 매년 열리는 한국사개론 이런 기본수업 빼면 서너개일텐데 그럼 선택의 여지 없이 열리는 거 다 들으셔야 됩니다. 대학교는 자기가 골라서 수업듣는거니까 선택폭 넓은게 꽤나 중요하거든요. 선택폭 넓다는 건 그만큼 관심분야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거기도 하고, 개설되는 수업이 많아야 심층적으로 다루는 수업도 개설됩니다. 아 진로는... 교수/교사/강사/연구소/큐레이터(박물관)/언론/출판 정도겠네요. 일단 앞에서 얘기했듯 진로 보고 갈 과는 정말 아닙니다. 서울대 사학과도 다 그냥 고시나 파지 전공살리는건 비교적 소수.
회사령은 조선에서 회사섭립시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함. 총독부는 회사 폐지를 명할수 있음.정도의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착취를 위한 회사령이라고 하기는 힘들어도, 조선인의 산업활동 제약과 반일 회사 방지를 위한 법이라 하겠죠.
동양척식은 총독부로 부터 받은 땅(기존 국가령+토지조사로 획득한 토지)을 조선인에게 소작을 주거나(소작료는 약 5할), 일본인에게 불하(이 땅은 다시 조선인 소작인에게)하는 역활을 했죠.
7-2.가담은 했는데, 해방 이후입니다. 일제 패망하고, 소련군에게 만주군이 무장해제가 되자 탈출해서 도망가다가, 광복군을 만나 입대하죠. 독립운동과는 전혀 상관없음. 일신의 안전을 위해 신분을 위장해 들어온 것입니다. 독립군에 들어가기 위해 사관학교(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갈 이유는 없죠. 반민특위가 설립되었지만, 경찰의 습격으로 무장해제되고 해산됨.. 그 동안 반민특위에서 친일파로 7명을 처벌했지만, 이들도 반민특위가 해산되자마자 모두 석방됨.
8. 신탁통치 건이죠. 조선인의 통치(능력이나 성향)를 의심하는 미국이 한반도 신탁통치를 주장하지만, 소련이 이를 반대하고, 미소 협상을 통해, '조선임시정부설립. 이를 4국이 신탁통치를 함. 선거로 조선정식정부 출범. 신탁통치기간은 최대 5년'으로 합의하지만, 동아일보가 '미국이 즉각 조선독립정부 설립, 소련은 조선의 신탁통치를 주장해서 (조선정부설립을 위한) 투표가 좌절되었다'로 보도했죠.
송진우나 여운형은 빠른 조선정부설립을 위해 신탁통치안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조만식도 일부(조선정부설립) 찬성을 하죠(but 신탁통치는 반대). 상당한 정치세력이 정부설립안에 대해 찬성을 하지만,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는 찬탁은 일제 식민의 연장이라는 인식으로 반대를 하고, 이에 동아일보가 (미소 입장도 바뀌고, 정부설립과 투표 여부의 사실로 틀린) 철저한 오보를 내자 국민 여론이 철저한 반탁으로 흐르죠. 이승만도 처음에는 미국이 찬탁이므로 찬탁을 주장하다가 여론이 이러하니 반탁으로 돌아섭니다. 송진우나 여운형등도 모두 찬탁세력으로 도매급으로 넘겨져 버리죠. 이 내용에 대해서는 복잡하고 여러 주장이 많으니 직접 찾아보시는게..
9. 일제 시절 이승만의 막장짓이라는게 어디를 가든 자기 분파 세력을 만들고 독선적 주장만 해서 독립운동가 사이를 사분오열시키는 거였죠. 뭐 이것도 이승만의 막강 정치력이 있었기에 (주변 사람을 구워삶아 자기 세력화 시키는 것이) 가능한거였죠. 그리고 아무도 임명해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 칭하고 다니고,(이에 임시정부가 대통령 직책을 만들어 줌), 나중에 대통령직에 짤리자 미국 교포에게 임정에 독립자금을 보내지 말고 자기에게 보내라고 합니다. 이에 조선인들이 어렵게 모은 독립운동자금을 차타고 다니면서(이승만의 취미가 레이싱) 자기 마음대로 쓰서 그로 인해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분란이 많았죠
왕자라고도도 칭하고 다니지 않았었나요? 그렇게도 들었던 것 같은데.
외국인에게 자신을 조선의 프린스 리라고 소개하고 다녔다고 들었기는 합니다. 조상이 양녕대군(세종의 큰형)이기는 한데, 가계가 서자인데다가 직계조상중에 벼슬한 사람도 거의 없는 한미한 양반가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인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었을 거고, 이승만 자신은 철저한 반 왕정주의자이며, 대한민국에 조선 왕족이 발도 못붙이게 했던 사람이죠.
원래부터 반 왕정주의자였나요? 자기가 대통령하고 왕정복고 두려워서 그렇게 했던 건가요
왕정복고되면 자기가 한 짓도 있거니와 정권획득은 물건너가죠. 권력을 위한 수작질.ㅇㅇ
이승만의 개판짓을 보고, 미국정치가가 훗날 이승만의 조선입국을 반대하기까지 했다는.. 우파 암살이야 뭐.. 백의사로 치면 나올테니 참고하시고, 우파테러의 배후에 이승만이 있었을거라는 추정을 많이 하죠.
국민방위군 사건은 예비군적 성격으로 50만명을 징집하는데, 보급(식량, 군복, 막사)를 전혀 지급하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몇개월지나기도 전에 전체인원의 20%정도가 아사, 동사해버린 사건입니다.
나중에 야당의 조사 결과 국민방위군 사령관과 그 간부들이 보급으로 갈 자금을 (일부가 아니라) 모조리 착복해 먹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이에 이승만 정부가 즉각적으로 총살시킴으로써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국민 방위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자가 대한청년단 단장이고, 국민방위군 조직은 한청단 조직이 그대로 가서 만들어진 것인데, 한청단을 만든 사람이 이승만이고, 한정단의 총재는 이승만이고, 한청단은 이승만의 친위조직으로 활동하던 조직이었죠.(간부로는 신성모(국민방위군 사건때 국방장관), 김두환 등이 있었음) 뭐.. 당시 정부발표로는 이승만과는 전혀 관련없는 일이라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