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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a Universalis
 
 
 
카페 게시글
역사게시판 기타 1차세계대전 일본과 일제시대와 해방이후 우리나라에 대한 질문들입니다.
패러독스. 추천 0 조회 850 11.08.15 17:39 댓글 2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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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8.15 18:27

    첫댓글 1.일단 일본이 당시 독일조차지였던 중국 칭다오를 공격했다는거 말고는....그다지.....

    1-1.중국에있던 독일이권 가져가고,기술수준은 일본이 앞선상태였죠....우리나라 싸그리다 수탈했는데.....

    2.잘은....모르겠군요....

    3.이것도 모릅니다....

    4.이런건 인터넷검색이 더 빠를지도...아무튼,회사령은 회사설립시 총독부허가가 필요해야한다는 것으로,1910년대에 우리나라 산업을 억제하는데 사용됐고요,1920년대 무렵에 폐지됐습니다(일단은 혹시 무식하단소리가 나올지도 모르니,이정도까지만 씁니다.....나머지는 다른분들에게 물어보세요...)

  • 11.08.15 20:30

    8.신탁통치 관련 내용입니다.

  • 11.08.15 22:21

    4. 회사령, 산림령, 교육령 등등 있네요. 회사령은 우리나라의 자본가를 억제한거 뿐만아니라 일본내 자본들도 우리나라 진출 못하게 막았죠. 즉 우리나라 싼 임금으로 인하여 일본내 자본이 우리나라로 진출 시 일본내 산업화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기 때문에요.

  • 11.08.15 22:20

    9. 이승만 대통령 뻘짓 중 가장 큰 것은 정읍발언이 아닐런지. 그걸로 인하여 분단이 기폭제가 되었다고 생각이 드네요

  • 11.08.15 22:54

    1. 중국 지역의 독일 조차지 칭다오 뺏고 끝. 태평양의 독일령 섬들도 뺏었는데, 이게 1차대전 패배로 독일이 포기한건지 일본이 점령한 건지 기억이 안나네요;;
    4. 회사령이 일본 기업들에게도 불만이 많았다네요. 기업 설립 조건이 일본 본토보다 어려워서 -_-;
    7. 아마 중국제 짝퉁-_-이나 러시아제 무기가 아닐까요.
    7-1. 광복군이 수백명이 안 되는데, 그런거 따질 겨를이 없겠죠. 광복군이 듣보잡이라 일본이 밀정까지 침투시킬 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지도(...)
    7-2. 만주군 출신 장교들이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이 얼만데, 그 사람들을 무슨 수로 처벌해요. ex)백선엽

  • 11.08.15 22:58

    8-1. 여운형 평전 있습니다. 저도 읽어본 적은 없긴 한데(..)
    9-1. 단체 회식...은 아니고, 그날 육군 장교클럽 오픈 기념 파티가 있었다네요. 그리고 그 날이 휴가제한이 풀리는 날. 오죽하면 우리 군 상부에 첩자가 있었다는 소리까지 나올까요-_-;
    9-2.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네요. 일본군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도 있겠지만, 군사정권의 억압적인 분위기 하에서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도 적잖이 있지 않을련지.
    11. 가장 잘 된 집안은 아마 김구 가문이 아닐까요. 둘째 아들 김신 장군이 공군참모총장. 손자가 보훈처장인가..; 얼마 전에 증손자가 공군 장교로 임관했다는 뉴스가 나왔죠.

  • 11.08.15 23:17

    3. 조사해보지 않아서 실제로 있을련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논란이 되는 경우는 꽤나 있는 걸로 압니다. 근데 제가 아는 경우는 인촌 김성수밖에 없어서. 근데 이 사람은 친일파라는 의견이 훨씬 많잖아요. 다른 예도 찾아보면 있을법하긴 한데.
    5. 그냥 중국인 쿨리들하고 똑같이 농장노동자죠. 농장노동 하면서 본국에 독립자금 보내준 경우도 많고. 뭐 사연 보니까 하와이에서 사진 한 장 받고 중매결혼해서 조선에서 처녀 데려오고 그런것도 있었다고 하네요. 한국인들 고용한 이유가 몇개 있었는데(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저렴한 노동력, 근면성 빼고) 잘 기억 안나네요. 히스패닉/중국계 비중이 너무 많아지고 지들끼리 뭉쳐살면서 영어

  • 11.08.15 23:29

    도 안하려고 하는데 한국인들은 그런게 덜했다고 하더군요.
    7-2. 이건 역사서 보셔도 되겠고 진보성향 법조인이 쓴 책 보셔도 되겠네요. 미국의 일본 전범 재판이나 우리나라 반민특위 활동하다 버로우탄거 보면 참 답답하죠. 이런저런 사정/변명으로 다 빠져나가고 경감되고 사면되고.
    9-1. 개전 2주 전쯤부터 첩보에 의해 휴가외박 제한하다가 전날에 풀어줘서 한번에 전병력 1/3이 나갔댔나 그랬댔죠. 몇몇 부대는 부대장 재량으로 통제 유지해서 잘 싸워준 부대도 있다지만.
    12. 뭐 배설씨는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우리나라 독립 지지해준 분들 보면 소위 빨갱이(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등)들이 많았습니

  • 11.08.15 23:34

    일본에서 2-30년대가 다이쇼데모크라시라고 해서 민권운동이 활발했던 시기기도 하구요. 일단 이쪽 계열 기본 강령이(약간씩 다르겠지만) 압제로부터 해방, 프롤레타리아 연대 뭐 이런거다보니까 자연스레 조선독립을 지지하게 된 거죠.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가 제국주의이고 자본주의로 인해 식민지 뿐만 아니라 전세계 대중들이 고통받으니 조선인들 도와서 제국주의 자본주의 물리치자 뭐 이런거.

  • 11.08.15 23:39

    그리고 사학과는 좀 자신이 신념 엄청 있지 않으시면 추천 안드립니다. 저도 역사 관심 많고 지금은 철학 전공하고 있는데 처음엔 내 의지만 있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그냥 자기만 힘든게 아니고 부모님께 죄인이 되더군요. 가능하면 뭐 취미로 하시는게 좋을듯. 그리고 우리나라 인문학 지원도 별로 안해주기도 하고 사학과 온다고 많이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적어도 저희학교 사학과는... 전공하시는 분들도 별로 배우는거 없다고 하시던) 차라리 역교과 가시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염. 그리고 혹시 한국사쪽 관심 있으신 거면 서울대나 고려대를 목표로 잡으세요. 한국사학과가 따로 독립되있는 학교가 이 둘뿐이라. 딴데는 사학과에서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1.08.15 23:45

    음?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뭐하는 데였는지 제가 모르겠지만 회사령은 착취 맞는 느낌인데;; 혹시 판단 근거가 뭐였는지도 아시나요. 대강이라도.

  • 11.08.15 23:44

    한국/동/서양 다 하기 때문에 수업 10개 개설되면 그 중에 한국사 관련은 5개 정도? 그것도 매년 열리는 한국사개론 이런 기본수업 빼면 서너개일텐데 그럼 선택의 여지 없이 열리는 거 다 들으셔야 됩니다. 대학교는 자기가 골라서 수업듣는거니까 선택폭 넓은게 꽤나 중요하거든요. 선택폭 넓다는 건 그만큼 관심분야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거기도 하고, 개설되는 수업이 많아야 심층적으로 다루는 수업도 개설됩니다. 아 진로는... 교수/교사/강사/연구소/큐레이터(박물관)/언론/출판 정도겠네요. 일단 앞에서 얘기했듯 진로 보고 갈 과는 정말 아닙니다. 서울대 사학과도 다 그냥 고시나 파지 전공살리는건 비교적 소수.

  • 11.08.16 00:09

    회사령은 조선에서 회사섭립시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함. 총독부는 회사 폐지를 명할수 있음.정도의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착취를 위한 회사령이라고 하기는 힘들어도, 조선인의 산업활동 제약과 반일 회사 방지를 위한 법이라 하겠죠.
    동양척식은 총독부로 부터 받은 땅(기존 국가령+토지조사로 획득한 토지)을 조선인에게 소작을 주거나(소작료는 약 5할), 일본인에게 불하(이 땅은 다시 조선인 소작인에게)하는 역활을 했죠.

  • 11.08.16 00:15

    7-2.가담은 했는데, 해방 이후입니다. 일제 패망하고, 소련군에게 만주군이 무장해제가 되자 탈출해서 도망가다가, 광복군을 만나 입대하죠. 독립운동과는 전혀 상관없음. 일신의 안전을 위해 신분을 위장해 들어온 것입니다. 독립군에 들어가기 위해 사관학교(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갈 이유는 없죠. 반민특위가 설립되었지만, 경찰의 습격으로 무장해제되고 해산됨.. 그 동안 반민특위에서 친일파로 7명을 처벌했지만, 이들도 반민특위가 해산되자마자 모두 석방됨.

  • 11.08.16 00:31

    8. 신탁통치 건이죠. 조선인의 통치(능력이나 성향)를 의심하는 미국이 한반도 신탁통치를 주장하지만, 소련이 이를 반대하고, 미소 협상을 통해, '조선임시정부설립. 이를 4국이 신탁통치를 함. 선거로 조선정식정부 출범. 신탁통치기간은 최대 5년'으로 합의하지만, 동아일보가 '미국이 즉각 조선독립정부 설립, 소련은 조선의 신탁통치를 주장해서 (조선정부설립을 위한) 투표가 좌절되었다'로 보도했죠.
    송진우나 여운형은 빠른 조선정부설립을 위해 신탁통치안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조만식도 일부(조선정부설립) 찬성을 하죠(but 신탁통치는 반대). 상당한 정치세력이 정부설립안에 대해 찬성을 하지만,

  • 11.08.16 00:36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는 찬탁은 일제 식민의 연장이라는 인식으로 반대를 하고, 이에 동아일보가 (미소 입장도 바뀌고, 정부설립과 투표 여부의 사실로 틀린) 철저한 오보를 내자 국민 여론이 철저한 반탁으로 흐르죠. 이승만도 처음에는 미국이 찬탁이므로 찬탁을 주장하다가 여론이 이러하니 반탁으로 돌아섭니다. 송진우나 여운형등도 모두 찬탁세력으로 도매급으로 넘겨져 버리죠. 이 내용에 대해서는 복잡하고 여러 주장이 많으니 직접 찾아보시는게..

  • 11.08.16 00:52

    9. 일제 시절 이승만의 막장짓이라는게 어디를 가든 자기 분파 세력을 만들고 독선적 주장만 해서 독립운동가 사이를 사분오열시키는 거였죠. 뭐 이것도 이승만의 막강 정치력이 있었기에 (주변 사람을 구워삶아 자기 세력화 시키는 것이) 가능한거였죠. 그리고 아무도 임명해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 칭하고 다니고,(이에 임시정부가 대통령 직책을 만들어 줌), 나중에 대통령직에 짤리자 미국 교포에게 임정에 독립자금을 보내지 말고 자기에게 보내라고 합니다. 이에 조선인들이 어렵게 모은 독립운동자금을 차타고 다니면서(이승만의 취미가 레이싱) 자기 마음대로 쓰서 그로 인해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분란이 많았죠

  • 11.08.16 01:05

    왕자라고도도 칭하고 다니지 않았었나요? 그렇게도 들었던 것 같은데.

  • 11.08.16 01:30

    외국인에게 자신을 조선의 프린스 리라고 소개하고 다녔다고 들었기는 합니다. 조상이 양녕대군(세종의 큰형)이기는 한데, 가계가 서자인데다가 직계조상중에 벼슬한 사람도 거의 없는 한미한 양반가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인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었을 거고, 이승만 자신은 철저한 반 왕정주의자이며, 대한민국에 조선 왕족이 발도 못붙이게 했던 사람이죠.

  • 11.08.16 13:34

    원래부터 반 왕정주의자였나요? 자기가 대통령하고 왕정복고 두려워서 그렇게 했던 건가요

  • 11.08.16 17:37

    왕정복고되면 자기가 한 짓도 있거니와 정권획득은 물건너가죠. 권력을 위한 수작질.ㅇㅇ

  • 11.08.16 01:11

    이승만의 개판짓을 보고, 미국정치가가 훗날 이승만의 조선입국을 반대하기까지 했다는.. 우파 암살이야 뭐.. 백의사로 치면 나올테니 참고하시고, 우파테러의 배후에 이승만이 있었을거라는 추정을 많이 하죠.
    국민방위군 사건은 예비군적 성격으로 50만명을 징집하는데, 보급(식량, 군복, 막사)를 전혀 지급하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몇개월지나기도 전에 전체인원의 20%정도가 아사, 동사해버린 사건입니다.
    나중에 야당의 조사 결과 국민방위군 사령관과 그 간부들이 보급으로 갈 자금을 (일부가 아니라) 모조리 착복해 먹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이에 이승만 정부가 즉각적으로 총살시킴으로써 마무리됩니다.

  • 11.08.16 01:17

    그런데 국민 방위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자가 대한청년단 단장이고, 국민방위군 조직은 한청단 조직이 그대로 가서 만들어진 것인데, 한청단을 만든 사람이 이승만이고, 한정단의 총재는 이승만이고, 한청단은 이승만의 친위조직으로 활동하던 조직이었죠.(간부로는 신성모(국민방위군 사건때 국방장관), 김두환 등이 있었음) 뭐.. 당시 정부발표로는 이승만과는 전혀 관련없는 일이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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