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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나 차, 콜라를 마시지 않는 현대인들이 있을까? 카페인은 지적 노동자, 아티스트, 심지어 산타클로스에 마음을 뺏겨버린 아이들까지 선택한 가장 뛰어난 흥분제이자, 가장 효과적인 신경안정제이다. 카페인은 이미 현대인들의 삶에 필수적인 약물이 되었다. 오리지널 코카콜라는 19세기 후반에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와 카페인이 풍부한 콜라 열매에 알코올을 섞어서 만든 혼합음료였다. 코카콜라는 소다와 카페인을 첨가한 슈가 워터인데 카페인 양은 커피 한 잔에 들어있는 것보다 적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슈가 워터에서 콜라를 떠올리진 못할 것이다. 콜라가 현대인들의 생활에 침입해 들어오기까진 시간이 아주 한참 흘러야 했다. 1930년대, 상업 아티스트 헤이던 선드블럼은 직장을 그만 둔 뚱뚱한 친구한테 산타클로스의 빨간색 옷을 입히고 손에는 콜라를 들게 하고 사진을 찍어서 그 사진으로 미국 전역의 광고판을 도배해야겠다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아이디어는 성공했고 콜라는 신기하게도 어린이들을 위한 카페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물론 커피처럼 성인용의 무거운 카페인은 들어 있지 않았다. 콜라는 산타클로스가 콜라를 들고 있는 선드블럼의 광고에서처럼 활기를 주는 음료였다. 콜라는 생활 속으로 들어왔고 전 세계에 코카콜라 노래를 가르칠 수가 있었다. 약물을 아주 강력한 것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약물의 문화적 적응성이다. 그러니까 약리학적 기능을 뛰어넘어 의미를 획득하는 방식 말이다. 가령 누구라도 마리화나를 보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약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 콜롬비아 농부들에게 마리화나는 피로를 없애주고, 힘과 정신력을 강화해주는 찬양받아 마땅한 무엇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선 담배가 갑자기 코카인만큼의 중독성이 있는 사악한 물건으로 둔갑했다. 당시 독일의 흡연자 중 상당수가 음식은 먹지도 않고 심지어 영양 상태가 극도로 악화된 채로도 담배를 피워댔다. 당시 많은 주부들이 지방과 설탕을 담배하고 바꾸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기도 했다.
악마의 음료 같은 아편조차 좀더 관대하게 여겨졌던 시기도 있다. 1830년대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의 할아버지인 워렌 델라노 2세는 중국에 아편을 수출해 루즈벨트 일가의 부를 쌓았다. 자신의 사업을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능력이 발군이었으므로 나중에 손자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가 마약 왕의 혈통이라고 비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카페인은 다른 화학적 흥분제들하고는 달리 아주 쉽게 어떤 형태로든 적응할 수 있는 약물이다. 18세기 후반에 스웨덴을 통치했던 구스타브 3세는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 중 특히 커피가 아주 위험하다고 확신, 사실을 확인하는 실험을 했었다. 살인죄로 사형을 언도 받은 남자 중 하나는 죽을 때까지 계속 커피를 마시게 했고, 다른 한 명은 평생 차를 마시게 했다 (그러나 그 실험을 주관하던 의사 둘은 살인자들보다 먼저 죽었고, 구스타브 3세도 살해당했다. 차를 마시던 남자는 83세에 죽었는데 커피를 마시는 벌을 받은 남자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셔댔는데도 끝까지 살아남았다. 물론 커피가 독성이 있다는 가설엔 의혹을 남겼지만). 후에 다양한 형태의 카페인이 사회 계층에 따라 분리되기 시작했다. 볼프강 시벨부치는 그의 저서<천국의 맛>에서 18세기엔 커피가 당시 부상하고 있던 중산층의 상징이었다고 적었다. 당시에는 초콜릿이라 불린 코코아가 귀족의 음료였는데, 커피와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괴테는 중산층에서 벗어나 귀족사회로 편입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했다. 고상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는 중산층의 거대한 생산성을 발휘하면서도 평온함이라는 귀족적인 감각을 유지했는데, 커피는 마시지 않고 초콜릿 숭배자가 되었다. 반면 발자크는 군주제에 대한 충절에도 불구하고 문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역사상 커피를 가장 많이 마신 사람의 하나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커피와 차를 나누는 문화적 구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커피는 남성적이며, 거칠고, 방자하며, 고집 세며, 지세학적인 뉘앙스에 베토벤 같은 이미지가 있는가 하면 차는 여성적이고, 품위 있으며, 절제를 보여주고, 로맨틱하며, 기하학적이고, 모차르트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커피와 차의 문화적 구별은 보스턴 차(tea) 사건이 도화선이 된 미국 독립 전쟁을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혁명론자들은 자연산 커피를 아주 좋아했다. 반면 1백 년 후 캐나다의 자유 투사들은 차를 좋아했다. 그렇다면 캐나다가 승리해서 자치권을 쟁취한 건 과연 어디에서? 렉싱턴(미국)이나 콩코드(프랑스)처럼 수많은 피를 흘린 전투지가 아니라, 웨스트민스터(영국)의 점잖은 살롱에서였다. 오이를 작게 썰어 넣은 샌드위치를 곁들인 고급 다질링 차를 마시면서….
카페인이 들어있는 건 똑같다. 커피 한 잔에는 카페인이 1백~2백50밀리그램, 4분 간 끓인 블랙 티에는 40~1백밀리그램. 하지만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대개 한 잔만 마시는 게 아니라 티 포트에서 몇 잔이고 계속 따라 마신다는 걸 생각하면 그 차이는 사라진다. 역설적인 사실이지만 카페인 문화의 이원성은 사라진다. 커피와 차는 모두 식물성의 아로마향 혼합 음료이며 서빙되는 양도 비슷하고 뜨겁게도, 차게도 마신다. 둘 다 크림이나 설탕을 넣어서 마시며, 문명 사회라면 어느 레스토랑이건 어느 식품점에서건 볼 수 있는 전 세계적인 음료다. 또한 각성 작용이 있는 알칼로이드 자극성분 즉 카페인이 들어있다. 카페인이 서빙되는 방식보다는 신진대사 방식에 따라서 커피와 차의 차이를 논하는 게 좀 더 합당하다. 카페인은 커피에 들어가건 차에 들어가건 소프트 드링크에 들어가건 위와 장을 거쳐 혈류로, 혈류에서 인체조직으로 쉽게 이동해서 짧은 시간 내에 인체의 거의 모든 세포에 침투한다. 이것은 카페인이 뛰어난 흥분제인 이유를 말해준다. 대부분의 물질은 혈액과 뇌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데 이는 바이러스나 독소가 중추신경 시스템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인체의 방어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카페인은 장벽을 쉽게 뚫고 들어간다. 카페인은 1시간 이내에 두뇌에 최대치로 농축되며 많은 일을 한다. 무엇보다도 잠이 오게 하고 혈압을 내리며 심장박동을 떨어뜨리는 신경 조절물질 아데노신의 활동을 막는다. 그러나 카페인은 두뇌와 신경조직에 침투해서 잠깐 할 일을 하고는 곧바로 사라질 따름이다. 카페인이 아주 안전한 이유다(카페인을 매일 마신다 해도 보통 이상으로 많이 마시지 않는 한 절대 심각한 병으로 발전하진 않는다).
하지만 카페인이 얼마나 빨리 체내에서 사라지느냐는 사람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다르다. 90킬로그램 나가는 남자가 카페인이 1백밀리그램 든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몸무게 1킬로그램당 1밀리그램의 카페인이 농축된다. 45킬로그램의 여자가 같은 양의 커피를 마시면 몸무게 1킬로그램당 2밀리그램이 농축된다.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자는 인체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비율이 크게 떨어진다(피임약을 먹는 여자들이 경험하는 부작용 중에는 예전처럼 많은 양의 커피를 몸이 감당할 수 없어서 과다 카페인으로 인해 신경이 예민해진 데도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임신 역시 카페인을 처리할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현저하게 감소시킨다. 성인의 몸에서 카페인이 살아있는 기간은 3시간 30분이다. 임신 여성의 경우는 18시간이다(생후 4개월 된 아이가 카페인을 더 빨리 처리한다). 보통의 남자와 여자가 같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약물학적인 효과가 다르다. 여성이 더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차이가 있으므로 차와 커피의 카페인 문화를 비교하는 대신, 남자와 여자의 카페인 문화를 비교하는 데 관심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러지 않겠다. 아주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카페인을 성별에 따라서 파악하는 건 우리 삶의 모든 면에 파고드는 카페인의 능력을,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데 머무는 게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보다는 다소 부수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커피가 사고하는 사람들의 음료라는 명성을 얻은 것부터 살펴보자. 발단은 18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커피 하우스들은 유럽 대륙에서 태동하고 있던 평등주의 정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커피 하우스가 처음 활기를 띤 건 런던이었는데 찰스 2세는 그 열기에 놀라 1676년에는 커피 하우스 문을 닫을 방안을 강구하기까지 했다. 물론 뜻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1700년이 되면 런던에선 커피 하우스가 수백 개나 됐다. 커피 하우스의 반사회적인 정신은 당시 인기 희곡의 대사 2줄에 정확하게 표현돼 있다. 커피 하우스에서 어중이떠중이들 사이에서 난 생각했다, 반역을 꾀하는 테이블이라고. 커피 하우스의 열기는 파리로 파급되었고, 18세기 말이 되면 파리에도 수백 개가 넘게 생기는데 가장 유명한 커피 하우스는 팔레 르와얄 부근에 있던 카페 드라 레장스였다.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 볼테르, 빅토르 위고, 테오필 고티에, 루소, 리슐리외 공 등이 단골이었다. 전에는 남자들이 공공 장소에 모여 얘기를 나누려면 바(bar)를 주로 이용했었다. 알코올을 서빙했으므로 사회경제학적으로 특수한 시장을 형성했으며 특별한 종류의 얘기를 만들어냈었다. 반면 커피 하우스들은 다양한 계층을 끌어들였으며 스트레스 해소제가 아니라 흥분제를 서빙했다. 와인버그와 빌러의 견해에 따르면, 모임의 장소에 카페인이 들어오자 대화술이 새로운 문학 스타일의 기본이 되면서 일반인들을 위한 문학 교육의 새로운 이상이 태동했다. 오리지널 커피 하우스에서는 거의 모두 담배를 피웠는데, 니코틴 역시 특수한 생리적 효과가 있다. 니코틴은 기분을 억제하며 주의력을 높이고, 더 중요한 것은 카페인의 신진대사율을 두 배로 높인다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면 평상시보다 카페인을 2배 더 마실 수 있다는 얘기다. 오리지널 커피 하우스들은 모든 유형의 남자들이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장소였고, 그들이 피워대는 담배는 커피를 하루종일 마셔댈 수 있게 했다. 그들이 마시는 커피는 하루종일 떠들어댈 수 있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그리하여 계몽주의가 나왔다!
이 시점에서 카페인은 카페에서 가정으로 이동했다. 미국에선 커피가 승리를 거두었는데 카리브해와 라틴 아메리카의 커피 농장이 가까이 있다는 지역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코트라이트의 책을 인용하면, 1820년대 초에 브라질은 노예들이 생산한 커피를 외부로 엄청나게 공급했다. 1년에 미국인 한 명이 소비하는 커피는 1830년에는 1.5킬로그램, 1859년에는 4킬로그램으로 뛰었다. 카페인이 범람하게 된 상황은 산업화 과정을 부추겼다. 많은 사람들에게 카페인은 작업 스케줄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일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가능한 오래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니까. 18세기까지는 많은 서구인들이 맥주를 거의 입에 달고 살았는데 비어 수프라는 것을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었다(빌러와 와인버그는 18세기 당시 독일인들의 요리법을 알려주고 있다. 소스 냄비에 맥주를 넣고 데우고, 작은 냄비에 계란 2개를 거품이 일게 젓는다. 그리고는 뜨거워진 맥주에 버터를 약간 넣는다. 차가운 맥주를 조금 넣어 맥주를 식힌 다음 달걀 위에 붓는다. 소금을 약간 치고 잘 섞어서 마신다). 그런데 이제 서구인들은 진한 커피로 하루를 열었다. 산업 혁명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카페인을 더 좋아하게 된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근대 사회의 속도를 따라가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에디슨은 천재는 99퍼센트가 땀이고 1퍼센트가 영감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고는 천재도 별 수가 없을 만큼 사회는 빨리 굴러가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건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다(산업사회 이전에 천재의 원형은 아르키메데스였는데 그는 목욕을 하다가 중요한 발견을 했다). 하지만 에디슨은 산업 사회에선 천재의 일도 성격이 변했음을 말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직업이 변했다. 제임스 글레익은 물리학자 리처드 페이먼의 자서전 <천재>에서 페이먼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컴퓨터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페이먼의 하루는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되어 15시간 후에야 끝이 났다. 컴퓨터 센터를 떠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31시간을 꼬박 일하고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보니까 그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컴퓨터 에러가 나서 팀 전체가 매달려야 했다. 하루 중 쉴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적었다. 페이먼의 업적은 그가 선배 물리학자들보다 천부적인 재능이 더 뛰어나서였을까? 아니면 더 많은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폴 호프만은 <숫자만 사랑한 남자>에서 20세기의 전설적인 수학자 폴 에르도스에 대해 묘사한다. 그는 하루에 19시간씩 수학에 매달렸다. 진한 에스프레스와 카페인 알약을 계속 먹어댔고 각성제를 10~20밀리그램 먹기도 했다. 그는 수학자는 커피를 수학공식으로 바꾸는 기계라고 즐겨 얘기했었다. 에르도스의 친구는 5백 달러를 걸고 그에게 내기를 하자고 했었다. 그가 한 달 동안 암페타민(중추신경을 자극하는 각성제)을 입에 대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거라며. 에르도스는 내기를 받아들였고 이겼는데, 암페타민을 복용하지 않은 한 달 동안 중요한 일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친구한테 넌 수학을 한 달 뒤로 후퇴시켰어~라고 하고는 다시 암페타민으로 돌아갔다.
만약 우리가 카페인을 끊어야 한다면 가능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변호사들은 수입이 떨어질 것이고 젊은 의사들은 레지던트 과정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뉴멕시코 사막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우린 세계를 한 달 뒤로 후퇴시킬지도 모른다. 현대 개인을 합성인간으로 규정하는 개념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우리가 합성인간을 말할 때 혹은 화학적 수단으로 새로운 노예를 만든다고 생각할 때, 우린 카페인이 아니라 강한 약물을 생각한다. 티모시 리어리는 LSD(각성제)를 주장했는데, 그의 혁신적인 생각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성제에 의해 기계처럼 정신이 켜졌다가 다시 잠이 든다는 컨셉에 소름이 끼치기 때문이다. 그는 공상가, 주술사였지만 문제는 그가 정말 의식이 뛰어난 존재라면 왜 그토록 각성제의 힘을 빌어서라도 더 높은 존재가 되려고 한 것인가? 물론 힌트는 있다. 사이키델릭 컬러와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을 나는 루시를 읽는 것.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
카페인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최상의 가장 유용한 약물이다. 카페인은 아데노신의 활동을 막는 흥분제이다. 코카콜라 캔에 카페인이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차 주전자에 섞여서 끓으면 로맨틱하고 품위가 생긴다. 갈색 커피열매에서 뽑아내면 신비하게도 힘이 솟는다. 빌러와 와인버그의 책에는 카페에 대한 흥미 있는 글이 많은데 하나 뽑아보겠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비엔나의 카페 센트럴에서 저녁마다 체스를 두는 러시아 이민자가 하나 있었다. 그가 트로츠키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는 말이 많지만 전혀 해롭진 않아 보이는 비엔나 사람들의 눈에는 애처롭게만 보이던 전형적인 러시아 이민자였다. 1917년 어느 날 오스트리아 외무부의 직원 하나가 외무 장관의 집무실에 다급히 뛰어들어와서 보고를 했다. “장관님, 장관님, 러시아에서 혁명이 터졌습니다.” 그런 엄청난 보고를 듣고도 장관의 표정은 담담했고, 목소리까지도 차분했다. “나가보게. 러시아는 혁명이 일어날 땅이 아니네. 도대체 누가 러시아에서 혁명을 할 수 있겠나? 카페 센트럴의 트로츠키 씨 같은 사람이?” 그 장관은 좀 더 제대로 알아야 했으리라. 남자한테 커피를 충분히 주어보시라. 그는 무엇이건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토마스 맥과이어(푸드 칼럼니스트) 사진_ justin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