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면 중국의 마지막 황제로 등극한 소년이 휘하에 수천명의 내시를 거느리고 마술 처럼, 호화롭게 살아간다. 한번은 동생이 황제가 잘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소년호아제는 "내가 잘 못하면 딴 사람이 벌을 받지" 라고 말한다. 시범을 보이려고 단지를 깨뜨리자 과연 신하 하나가 매를 맞는다. 예수님은 이 순서를 뒤집으셨다. 종이 잘 못하면 왕이 벌을 받는다. 이것이 기독교신학이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감당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사랑을 받은 당신. 그 사랑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대속의 은혜로서의 복음 (본문 : 벧전3:18)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예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가령 회사의 부채를 갚을 길이 없어 부도 직전에 있을 때, 어느 뜻있는 사람이 그 빚을 대신 청산해 주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소식이 그 회사에는 복음이요, 곧 구원의 소식일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 복음 진리의 의미도 그와 같습니다. 인간 스스로 갚을 수 없는 죄값을 하나님의 독생자가 죽음으로 갚아 주셨다는 것이요,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영생 천국을 그리스도로 인해 얻게 되었다는 것이 복음의 강조점입니다. 속죄와 영생을 인간의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들이 만든 다른 종교의 구원 도리와 비교할 수 없는 기독교 구원 진리입니다. 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약속된 대속의 은혜(고전15:1-3) 1) 율법에 예시됨 복음의 핵심인 대속의 도리는 하루 아침에 등장한 교리가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에 이미 모형적으로 예시된 것입니다. 특히 제사 율법에 대속의 원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양, 염소, 황소 등 가축의 생명을 속전으로 드림으로써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율법을 통해 제시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인류의 죄값이 치러지는 대속 은혜의 뚜렷한 예시요 모형인 것입니다. 그외에 염소의 머리에 제사장이 안수함으로써 사람의 죄를 전가를 시키고 그 염소를 들판에 내보내어 죽게 하는 '아사셀 속죄 염소 행사'나 유월절 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뿌려 심판을 면하는 제사, 그리고 일년에 한번씩 행하는 대속죄일 제사 등 그리스도의 대속 은혜를 대표하는 율법이 풍성하게 있습니다. 2)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됨 또 메시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인간을 그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원리는 선지자의 예언들 속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서 53장 전체는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릴 만큼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생생하게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받은 것"(롬3:21)이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의 대속 진리는 급조된 것이 아니라 먼 옛날 하나님께서 구속 섭리를 시작하실 때부터 예시되고 약속된인류 구속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진리 안에서 확실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 영원한 대속의 은혜(히7:27,28) 1) 제한된 옛 율법의 대속 제사 또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는 복음 진리의 특성은 영원하다는 점입니다. 즉 그 대속의 은혜는 상실되거나 변치 않고 영원히 지속되고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대속 제사는 매번 반복하여 드려야만 죄를 그때마다 용서받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그 효력이 제한적이며 영속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10:3,4)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가축 대속 제사는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히9:10이요, "장차 오는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10:1)고 한 것입니다. 비단 구약의 대속 제사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의 구원의 도리도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늘 반복하여 인간의 노고를 요구하고 대가를 지불해야만 죄가를 용서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2) 영원한 그리스도의 대속 은혜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속 은혜는 영원 무궁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10:12)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독생자의 거룩한 몸과 영혼을 제물로 드려 속죄 제사를 온전히 이루셨으므로 이제 다시 다른 대속 제사는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그 죄를 사함받는 성도의 위치는 영원한 것입니다. 또 다시 죄로 인해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그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 돌아가기만 하면 영생 구원을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우리 성도들은 그 영원한 대속의 은혜를 믿음 안에서 누리면 됩니다. 3. 대속 은혜에 대한 응답(고전15:14,15) 1) 영원히 감사 찬양함 그렇다면 이와 같은 대속의 은혜를 입고 영생 구원을 선물로 받은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그 대가는 없습니다. 만일 속죄와 구원을 위해 인간들에게 조그만 대가라도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속의 은혜로 볼 수 없습니다. 대속의 은혜는 철저히 하나님 편에서 거저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롬11:35)라고 한 것처럼, 그 은혜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도 또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 은혜를 믿고 영원히 감사를 드리는 것이 성도가 행할 응답의 자세입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고 했듯 믿음 안에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이 대속 은혜에 대한 성도의 답례입니다. 2)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 그 다음, 그 은혜에 대한 응답은 현실입니다. 죄와 사망과 심판으로부터 거저 구원받았으니 이제 다시 죄악의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영혼과 몸을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대속의 은혜를 베푸신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구원, 맹목적인 자유를 주시고자 그리스도를 대속 제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고 말합니다. 그 대속의 은혜와 정신을 본받아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은혜받은 성도가 가야 할 유일한 인생의 행로입니다. 결론 대속의 은혜란 결국 하나님께서 자기를 희생시킨 행위입니다. 인생을 심판하실 권리를 양보하고 더나아가 성자 그리스도까지 고난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희생을 바탕으로 주신 대속 은혜에 감사와 충성으로 응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