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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자유로운 곳" 연평도 여행
하성인 기자 (국제뉴스 기사 입력일 : 2016.01.30.)
한국관광협동조합과 인천관광공사, 연평도 관광 막 올려
(서울=국제뉴스) 하성인 기자 = 27일 한국관광협동조합(이사장 이정환)은 인천관광공사(사장 황준기)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인천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관광 상품개발을 위한 연평도 안보관광 팸투어를 실시했다.
이날 팸투어에는 전국의 관광협동조합 소속 관광회원사의 대표와 언론인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박 2일간 실시되었다.
한때 조기의 섬으로 유명한 연평도는 이제 더 이상 조기가 잡히지 않아도 이 섬에 오게 되면 조기를 떠 올리게 되지만 요즈음은 조기보다 꽃게로 더 유명한 곳이지만, 꽃게보다도 더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아마도 '연평해전'이 아닐까 싶다.
1996년 6월 7일 제1연평해전과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을 겪은 격전지로서 많은 국민들은 북쪽으로부터 날아온 포탄에 면사무소 앞 CCTV가 녹화된 영상을 통해서 또는 포탄으로 화염에 쌓여 있던 연평도를 기억하리라 본다.
연평도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아픔의 상처는 그대로 지만 시간이 흘러 주민들과 이곳을 지키는 해병대원들은 밝고 활기차다.
그리고 연평도는 이날의 상처는 아물더라도 아픔은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민간인 지역의 폭파 현장을 그대로 보존, 현재는 안보교육장으로 활동되고 있다.
총 1,337세대, 2,000여명이 사방으로 둘러 싸인 청정해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고 있는 곳, 연평도.
기차가 달릴 것 같은 그리움의 진하게 묻어 나오는 섬, 구리동 해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북녘땅 옹진반도가 바로 코 앞이다.
그곳을 향해 바다위로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섬은 평평하게 펼쳐져 있다. 한때는 조기로 유명한 파시가 열려 많은 인기를 누리던 곳이지만, 육지에서 먼 만큼 자연은 때가 묻지를 않아 이곳에 오면 "자연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 같다.
구리동 해변, 가래칠기 해변과 연평도에서의 일출과 구지도 3개의 섬과 개펄 사이로 지는 노을은 탄성을 자아 내기에 목이 잠겨 올 뿐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안고 도는 바위, 일명 빠삐용 절벽이라는 곳에서의 아찔 함과 여객선을 타고 들어 가다 보면 처음으로 만나는 기이한 얼굴 바위와 거북바위, 그리고 아이스크림 바위가 천연 자연 연평도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북녘땅이 지척이라 가는 곳곳마다 믿음직스런 귀신 잡는 해병대원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으며, 언덕에 오르면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조국을 위해 산화한 영령들의 추모 공원이 북녘하늘과 맞닿은 언덕에 평화를 갈망하듯이 솟아 있다.
또한, 일몰 전에 부지런히 평화의 공원 아래로 내려가면 폭 2미터 길이 150미터의 군 터널에 가면 북을 향한 포진지를 관람할 수 있으며, 긴 터널이 심심할까봐 터널 벽에는 옹진군 7개면의 과거와 오늘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명이 어두워 사진 관람하기엔 많이 불편하다.
어디 이뿐이랴? 망향비와 연평도의 과거를 보여 주는 조기 박물관을 둘러 보면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조선 중기의 명장 임경업 장군을 모시고 있는 충민사와 해송정, 그리고 안보교육장, 때에 따라서는 볼 수 있는 백로 서식지까지 볼 것 많은 곳이기도 하다.
끝으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였거늘 여행에 먹거리를 빼면 많이 아쉬워 '꽃게'로 요리한 다양한 음식과 바지락, 바다의 우유 자연살 '굴'과 전복, 해삼, 청정해역의 김, 그리고 해양성의 '포도'까지...
인천연안부도에서 배를 타면 2시간 남짓,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곳이 연평도다.
보다 자세한 관광안내는 연평면 사무소(032-899-3450)이나, 인천관광공사, 옹진군 관광문화과(032-899-8810) 또는 보다 자세한 현장의 목소리는 연평도 '둘리 그룹(?)'의 회장님께 전화(010-2752-8901)하면 밤과 낮이 따로 없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참조기 황금물결 꿈 어린 ‘대연평도’
투어코리아 기사 승인일 : 2020.08.21.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기획연재] ‘섬’ 어디까지 알고 있니? 이야기가 있는 섬...인적 드문 ‘인천의 언택트 힐링 섬’④
연평도는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나누어진다. 대연평도 남쪽으로 약 5.2㎞ 지점에 소연평도가 있다. 이 섬은 조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고장이다. 1960년대 말까지 5~6월에 조기가 산란을 위해 오기에 어선에 샛노란 참조기 떼가 황금물결을 이뤘다.
어선들은 대규모 조기떼를 따라서 신안에서부터 대동강까지 올라갔고 그 이동에 따라 흑산도, 위도, 덕적도, 연평도 순으로 올라가면서 파시가 열렸다. 연평도 조기파시가 타 지역보다 번성한 이유는 이곳에 도착한 조기가 산란을 할 때 크기는 물론 알도 꽉 차서 최고의 상품으로 쳐 주었기 때문이다. 또 가장 큰 소비시장인 서울과 가까워 제값을 받을 수 있었다.
파시 때가 되면 당시 일본, 대만과 전국 각지에서 연평도로 들어온 배가 3천여 척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조기를 쫓는 어부, 어부를 쫓는 색시’라는 말도 바로 이 때 나온 것이다. 1960년대에 가설극장에서 백남봉, 양석천 같은 코미디언과 만담가인 장소팔과 고춘자, 배뱅이굿의 일인자인 이용관도 와서 공연을 했다. 공연이 끝나면 가설극장 터에서 돈을 줍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술 취한 선원들이 구경을 왔다가 떨어뜨리고 간 것이다.
영원히 만선을 이룰 줄만 알았던 이 섬의 조기파시는 1960년대 말에 끝이 났다. 이 무렵 조기 수확량이 급격히 줄어든 데다 1969년 황해에 한랭전선이 형성되어 연평 어장의 수온이 낮았다. 회유하는 조기떼는 북상을 멈추고 남해상에 머물렀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유자망 어선들이 흑산도 근해에서 그물을 내리고 조기를 잡아 올렸다. 연평어장으로 올라갈 조기떼의 길이 영영 막혀버린 것이다.
조기풍어의 역사를 드러내듯 연평도에는 ‘조기 역사관’이 들어서 있다.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며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2001년에 건립된 곳이다. 이곳은 또 북녘 하늘로 지는 석양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실향민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빠삐용이 탈출한 절벽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빠삐용 절벽은 연평도의 자랑거리이다. 낙조 사진촬영대회가 열릴 만큼 여기서 보는 일몰 광경은 그야말로 여행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편, 꽃게는 1990년부터 주력 산업이 되었다. 이제 연평도 하면 조기에서 꽃게로 변경될 정도로 꽃게 어획량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남북한이 대치하여 접근하지 못한 지역에서 중국 어민들이 어부지리를 하고 있다.
포격 도발 3년…안보 관광지로 거듭 나는 연평도
연합뉴스 기사 입력일 : 2013.11.18.
배상희 기자
안보교육장 건립 이후 방문객 증가
옹진군 안보 관광 인프라 확충 주력
(인천=연합뉴스) 배상희 기자 = 인천 연평도가 북한 포격도발의 상처를 딛고 안보와 평화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2012년11월 문을 연 안보교육장에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 평화안보 둘레길, 안보수련원 등 새로운 안보관광지도 속속 조성될 예정이다.
인천시 옹진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모두 1만3천235명이 안보교육장을 방문했다.
안보교육장은 연평면 연평리 172 인근 1천282㎡ 부지에 안보교육관과 피폭건물 보존구역으로 나눠 조성됐다.
1월 방문객은 504명에 불과했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6월부터는 1천∼2천명에 이르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평도 단체 방문객 중에는 안보 관련 단체가 압도적으로 많다.
통일교육위원회가 안보워크숍을 위해 올 상반기 연평도를 방문했고 각 지역 재향군인회, 해병전우회, 방위협의회, 공군사랑회, 6·25 참전용사모임 등도 섬을 찾았다.
안보교육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608㎡ 규모로 총 4개의 전시실과 방공호체험실, 시청각실, 수장고 등을 갖췄다.
4개 전시실은 ▲풍요와 번영을 노래하는 섬 ▲공포의 그날 - 연평도 포격사건 ▲아직도 전쟁 중인 섬 ▲그래도 연평도의 '삶'은 계속된다 등 서로 다른 4개의 주제로 꾸며진다.
특히 포격 당시 남과 북의 상황을 두 개의 스크린으로 각각 보여 주는 3D 영상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안보교육관 옆 피폭건물 보존구역에는 포격을 당한 개인주택 3채가 파손된 채 그대로 보존돼 '그날'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옹진군은 방문객에게 더 많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연평도 안보관광 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이다.
옹진군은 안보관광지 조성 2단계 사업으로 내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도에 평화 안보 둘레길, 안보수련원, 평화기원 등대를 조성할 예정이다.
평화 안보 둘레길은 연평도 해안가를 따라 설치된 철책선 안쪽으로 조성된다. 둘레길 일부 구간에서는 방문객이 직접 벙커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군부대와 협의도 진행되고 있다.
안보수련원은 연평초·중·고교 건물 통합으로 비워지는 연평중·고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된다. 숙박시설이 부족한 연평도에 안보수련원이 들어서면 단체 방문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평화기원 등대는 연평도 앞바다와 북녘땅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설계된다.
연평도 주민 이정숙(58·여)씨는 18일 "옹진군에서 연평도를 안보관광지로 알리기 시작한 이후 확실히 방문객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며 "섬에 활기가 돌게 돼 주민들도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23일 연평도 평화추모공원에서는 정부와 군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포격 3주기 추모식이 열릴 계획이다.
추모식에서는 순국 용사에 대한 묵념, 관련 동영상 상영, 헌시 낭독 등 행사가 진행된다.
이후 포격으로 희생된 민간인 고(故) 김치백씨와 배복철씨의 추모비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할 예정이다.
[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연평도 등대 북한과 3.4km 거리에서 ‘평화의 불’ 밝히는 연평도 등대 스포츠한국 기사 승인일 : 2019.09.17. |
글, 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옹진군 연평도는 인천항에서 122㎞ 떨어진 해상에 있다. 여객선으로 2시간 소요된다. 본래 해주군에 속했던 연평도는 8.15 해방 후 38선 이남지역으로 옹진군에 편입됐다. 6.25전쟁 때는 수 만 명의 피난민이 연평도를 거쳐 남하했다. 휴전 후 연평도는 계속 대한민국에 소속되었다. 주민의 70% 가량은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다. 연평도는 평평하게 뻗친 섬이라는 뜻이다. 면 소재지 섬인 본섬 대연평도와 부속 섬 소연평도로 이뤄졌다. 전체 섬 면적은 7.4㎢이고 경기만 북서쪽 대연평도는 6.14㎢이다. 북방한계선과 불과 3.4㎞ 떨어져 있다. 흔히 ‘연평도’라 하면 대연평도를 말한다. 대부분 주민이 이 섬에 거주하는데 2019년 9월 현재 1,350세대에 2,102명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꽃게잡이와 굴, 바지락 등을 채취하며 산다. 연평도는 우리나라 꽃게 어획량의 약 8%를 차지한다. 연간 조업일수는 180일로 4~6월과 9~11월에 조업을 한다. 나머지 기간은 산란기로 조업이 금지돼 있다. 연평도는 뭍에서 머나먼 거리의 섬이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3대 황금어장으로 통했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섬에서 다수의 토기가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추정한 것이다. 조선 인조대왕 14년(1636년) 임경업 장군이 이 섬에 들어와 조기를 발견한 후 섬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조기잡이를 하며 살기 시작했다. 조기의 섬 연평도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토산으로 조기가 주의 남쪽 연평평(延平坪)에서 나고, 봄과 여름에 여러 곳의 고깃배가 모두 이곳에 모이어 그물로 잡는데, 관에서 그 세금을 거두어 나라 비용에 쓴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기와 임경업 장군 그리고 연평도의 역사와 삶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다. ‘강화도 배치기소리’에서도 거기와 임 장군이 등장한다. “어기차 닻차 닻감아 싣고/연평바다로 조기 잡으러 간다/삼국충신 임장군이/김선주 불러서 도장원 주었다/명을 받았소 명을 받았소/임장군 전에서 명을 받았소” 임경업 장군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안긴 청나라를 치기 위해 명나라로 가던 중에 군사들이 군량미가 바닥났다고 하자, 안목바다 당섬에서 가시나무를 꺾어 바다에 꽂게 한 후 조수에 밀려오는 조기떼를 잡았다. 이 방식을 ‘어살법’이라고 부르고 임 장군은 연평도 사람들에게 이 방식을 가르쳐줘 조기잡이 시초가 되었다. 그렇게 조기를 잡던 안목어장은 연평도 면소재지 앞 바다를 말하는데, 당섬, 책섬, 작은지리 등의 작은 섬들에 둘러싸여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다. 바다가 깊지 않아서 썰물 무렵에는 조개, 게, 낙지 등 가족단위 갯벌체험이 가능하다. 안목어장 북동쪽 바닷가에 우뚝 솟은 언덕에 망향전망대가 있다. 북한 땅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실향민들이 북녘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는 곳이다. 전망대를 내려와서 왼쪽 해안선을 타고 돌아가면 철책선 너머로 손가락 모양의 아이스크림바위가 보인다. 그리고 개목아지낭이라는 섬 끝자락에는 점점이 하얗게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백로이다. 이곳이 백로서식지이다. 그리고 연평도 포격 당시 전사자 위령탑이 있는 평화공원, 이곳에서 잠시 분단과 그 때의 아픔을 달래고 털어낸 후 오른쪽 숲길을 더 걸어가면 연평도 등대를 중심으로 꾸민 등대공원과 등대 옆쪽에 조기 역사관이 있다. 연평도는 안보관광지로 부각되곤 했지만 천혜의 해안경관이 아름다운 섬이다. 연평도는 해방 전후부터 1968년 전까지 황금의 조기파시 어장이었다. 멀리 평안도, 함경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 팔도에서 수 천척의 어선이 조기 떼를 쫒아 앞바다를 메웠다. 이런 풍경은 마을 골목길 벽화와 사진, 조기 역사관을 통해 생생하게 감상 할 수 있다. 파시가 성행하던 시절에 어부들은 돈이 하도 많아서 지폐를 화장지 대용으로 썼고, 길을 가다가 졸리면 돈주머니를 배게 삼아 잤다는 스토리를 소개한다. 그리고 청정바다 진면목까지 보여준다. 등대와 조기 역사관은 연평도 최고 전망 포인트이다. 연평도 대표적 해안절경을 이곳에서 조망할 수 있다. 호젓한 산길을 타고 내려가면서 삼림욕을 즐기고 야생화를 구경하면서 해안선 여행이 이어진다. 병풍바위, 기암괴석, 갈매기가 절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닮은 가래칠기 해변이 펼쳐진다. 이 일대는 군부대 경비철책 구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다가 일부 개방된 구간이다. 해안 을 따라 푸른바다를 직접 걸어보고 백사장과 해산물을 캐보는 해양체험도 할 수 있다. 특히 북쪽 해안의 구리동해수욕장은 물 맑고 고요한 숨어 있는 비경의 백사장이다. 백령도 사곶해변과 함께 군용기 이착륙이 가능한 밑바닥이 탄탄한 모래톱이다. 최근 해병대의 시설물 중 한 곳을 리모델링하여 여행객에게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있는데 등대 아래서 긴 터널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포격장비가 전시되고 전방은 바로 북한 방향의 NLL 부근임을 실감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분단조국임을 전율하며 체감한다. 이 모든 연평도 역사와 어부들 삶의 여정 속에서 묵묵히 동행하며 바다의 길잡이 역할을 했던 것이 연평도 등대이다. 등대는 1960년 3월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찬란한 황금어장을 굽어 비추어주던 등대는 1970년대 이후 남북 간 군사적 대치가 심화되면서 1974년 더 이상 불빛을 켜지 못했다. 그렇게 1987년 4월 등대의 역할마저 멈췄고 시설물도 폐쇄됐다. 그렇게 답답하게 어둠이 오고 안개가 자욱해도 빛도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침묵한 연평도 등대는 45년 만인 2019년 5월 17일 19시 20분 다시 불을 켜게 됐다. 조기파시 어장의 황금시대를 밝혔던 연평도 등대의 명성을 되찾았다. 이 역사적인 재점등 기념일에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비롯해 인천시, 옹진군 관계자, 어업인 등 60여 명이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등대 마지막 근무자였던 김용정 전 등대소장에게는 감사패가 수여됐다. 그는 1973년부터 2년간 연평도 등대에서 근무하며 연평어장의 조업 안전을 위해 노력했던 주인공이다. 연평도 등대는 해발 105m 지점에 위치한다. 9.5m 높이 등탑으로 일몰 시각부터 다음날 일출 시각까지 15초에 1회 주기로 연평도 해역에 불빛을 비춘다. 남북 간 갈등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연평어장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9.19 군사합의 등으로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다시 ‘평화의 바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남북 긴장 완화를 반영한 실질적 조치로 서해5도 어업인의 숙원이었던 어장 확대 및 야간 조업시간 연장이 결정되었다. 연평도 등대는 불빛이 발사되는 각도를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하고 불빛이 도달하는 거리37Km 연평어장까지로 정했다. 유사시 군(軍)이 원격으로 소등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연평도가 안보관광지로 부상하면서 등대를 군부대로 안으로 이전하려는 작업도 있었지만 이념을 초월한 등대정신에 걸맞게 연평도 등대는 본래 그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게 됐다. 이제 등대의 고유 역할인 연평어장과 서해 북단 해역에서 조업하는 선박의 안전을 지키며 해양번영의 길을 여는 ‘희망의 불빛’으로, ‘희망의 등대’ 역할을 다할 것이다. 그렇게 한결같은 등대의 정신을 실천할 것이다. 그 섬, 연평도로 가는 길은 거리가 멀고 배편이 많지 않다. 섬에 머무는 시간 또한 촉박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연평도 여행은 기본적으로 1박 2일 일정을 짜야 한다. 옹진군에서는 이런 여행자의 고충을 고려해 대연평도를 포함 서해 5도를 여행할 경우 하루 이상 머무는 여행자에 게는 예매 때 여객 운임을 50% 할인해준다. 물론 섬 안에는 민박, 펜션, 식당, 매점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이제 우리 어촌의 역사와 어민의 삶이 생동하는 그 섬, 그 등대로 한번 떠나보자. 문의: 연평면사무소(032-899-3450) 연평도에는 연평해전을 기억하는 함상공원이 있다 인천in 기사 승인일 : 2021.06.29. 문경숙 시민기자 29일, 오늘은 연평해전 19주년 "기억하는 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 오늘은 제2연평해전 1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2002년 6월 29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한·일 월드컵 신화에 감동의 물결을 이루는 그 순간 대한민국 해군은 국가의 최전방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2연평해전은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으로 발생한 전투로, '서해교전'으로 불리다가 2008년 4월 '제1연평해전'에 이은 '제2연평해전'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나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신 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오늘의 역사를 지키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 현장이었던 연평도 동부리 마을 앞에 연평도 함상공원이 있습니다. 연평도 가시는 길엔 꼭 방문하셔서 그날의 역사를 꼭! 기억해주시길... |
연평도 관광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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