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Lent)이 시작되었다. 성탄절 이전 대강 절이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기간이라면, 사순절 은 예수님의 일생과 고난을 생각하며 부활절을 준 비하는 기간이다. 사순절은 성회 수요일 (Ash Wendesday)로부터 시작되어 부활절 전까지 40일간 계속된다. 사순절은 원래 로마에서 4세기 말경 세 례를 준비하며 금식하고 참회하던 기 간이 7세기경 40일이라는 기간으로 확정된 것이다. 40일이라는 기간은 예수님의 40일간의 금식기간을 생각 하여 정해진 듯하며 성회 수요일은 부활절 (춘분인 3월 20일 이후 첫보름 달이 지난 첫주를 부활절로 지킨다)로 부터 40일 거슬러 올라가 정해진다. 이때 매 주일은 40일이라는 공식날자 에서 제외되며,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사순절은 부활절이전 46일간의 기간 을 말한다.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성회 수 요일 예배에서 때때로 교우들의 이마 나 손에 재로 십자가를 그어 주는 예 식이 거행되기도 한다. 이는 하나님 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상징하며, 참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순절 기간동안 교회제단은 보라색으로 장식되는 데, 이것은 보라가 겸손, 고난, 그리고 참회를 상징 하는 색이기 때문이다. 사순절동안 예수님의 고난, 섬김, 나눔의 삶을 생각하며, 어린이들에게는 우리 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 남을 섬기는 일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는 절제의 생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커피, 고기류, 음식 등―절제하는 생활)을 해보는 것도 예수님의 고난 에 동참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그러나 사순절이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 은 이기간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뿐 아니라 우 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태어나심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남 을 위한 섬기는 삶이었고, 낮아지심의 삶이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삶이었다. 그의 태어나심 이 그러했고, 그의 삶 전체가 가장 낮은 자들의 친 구가 되시는 삶이었으며, 그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실천한 삶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남을 섬기는 삶이기보다는 항상 높아지기를 원하 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용서하는데는 너그러우면서 남을 용서하는 데는 인색하지는 않았는지, 조그만 시련 이 와도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 는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보다 는 내 중심의 삶을 살지는 않았는지 ⋯⋯ 사순절이 세례를 앞두고 우리 의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으로 살기 를 결단하는 금식행위로부터 유래되 었다면,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와 그 의 고난을 생각하며 참회하는 기간 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 고 이웃을 향한 우리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뉘우쳐야 할 것이다.
참회없이 용서는 있을 수 없으며, 고난없이 참 다운 기쁨을 맛볼 수 없듯이 죽음없이 새로운 탄생 은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의 고난을 통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의 미를 준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뒤에 있은 부활과 더불어, 우리가 새사람으로 예수님과 함께 다시 부 활하기 위해서는 이기간 동안 우리에게 참다운 회 개와 죽기까지 깨어짐,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 참하는 삶이 있어야겠다. 비단 사순절만이 아니라 우리의 하루하루가 뉘우침과 섬기는 삶, 기쁨과 고 난을 나누는 삶의 연속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교⼘회⼘일⼘꾼⼘들
성가대
김윤옥 집사
성가대가 생긴 것은 교회음악과 함께 예배의식 을 될 수 있는 대로 아름답게 하려는 것과 교회 발 전에 따라 훈련받지 못한 회중에게 찬송가를 지도 할 필요에서였다. 그러나 성가대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음 악적인 재능이나 효과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성가대의 연습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6일 을 계속 일해야 하는 대원들에게 있어 연습시간을 내기란 참으로 힘이 든다.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없어 늘 안타까운데 짧은 연습으로 그만큼의 은혜 로운 찬양을 드릴 수 있음은 대원들 한사람 한사람 의 신앙의 바탕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안타 까워 하시면서 선곡하시는 지휘자(유인순 사모님)의 재치와 노력의 결과라 하겠다. 대범하면서도 섬세한 지도는 음치라도 책임질 것 같고 잠깐의 틈을 타서 꾀를 부리고 농담을 해도 받아주시며 흐트러지는 대원들의 마음을 금방 모아 놓는 그 은사는 특별한 것이라 하겠다.
이제 유인순 사모님의 은퇴를 앞두고 있는 성 가대는 많은 아쉬움을 담고 있다. 왜 그렇지 않겠 는가! 15년이란 긴세월을 한결같이 지휘를 해 오 시면서 권면도 해주시고, 때로는 댁에서 단합대회를 가지면서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던 그 모습을 우리 는 오래도록 간직하게 되리라. 반주자인 정윤려 권 사님의 말없이 자리를 지키시는 그 모습이 아름답 고 성가대의 살림을 모습 그대로 깔끔하게 도맡아 하는 총무. 말없이 뒤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늘 배 려하고 챙겨주시는 대원. 우스갯말로 가끔 긴장을 풀어주시는 대원. 그냥 있기만 해도 힘이 되는 대 원. 알게 모르게 애쓰시는 대장님. 이러한 갖가지 다른 모습들이 모여서 서로 격려하며 한마음으로 찬양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 가 있다.
새롭게 지휘를 맡으실 김진철 집사님을 기대하 면서 고린도전서 16장 58절의 말씀을 생각해 본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 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을 앎이니라."⼧
속⼘회⼘탐⼘방
배움속! 와∼ 이름좋다!
곽경화 교우
배움속! 와∼ 이름 한번 좋다! 우리 속은 여러 교우들이 아시다시피 작년까지는 캠퍼스 2속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진리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기에 학문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자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새로운 인도자와 속장의 취임에 맞 추어 배움속으로 정식 출항을 하였다. (작년 우리속 수련회에서 나눔, 섬김, 배움의 3가지 이름을 놓고 공명정대한 투표를 거친 결정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속은 신세대 학생과 낀세대 학생들 이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신분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어정쩡한 상태의 우리지만, 쫓아내 지 않고 양념상 끼워주었다.)
우리 속의 또 하나의 특징은 교회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어린 아동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 서 우리 속은 소문없이 모일 수도 없고 우리가 가 는 곳은 항상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고로 우리 속 은 교회가 아니면 속회를 생각할 수가 없다. (이것 이 집없는 자의 설움이다.) 하지만 집안에 글 읽는 소리와 아이들 소리가 넘치면 그 집안이 흥한다는 옛말에 위로와 자부심을 느끼며 우리 어린 새싹들 은 각자의 발성 연습에 열심이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교회의 교인증가에 일 익을 담당하기 위하여 차세대 계획을 생각중인 가 정도 몇 집이 있다.
우리 속은 또한 믿음의 철이 덜든 어린 양(?)들 이 많다는 특징 아닌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의 믿음의 부모님께 (인도자님) 많은 기도의 제목을 선물로 드리고 있다. 이 믿음의 철 이 덜 든, 가지 많은 나무에 친정 아버지와 같으신 마음으로 묵묵히 믿음의 울타리를 쳐 주시는 장로 님과 속원의 상황에 맞는, 또 속 전체를 위해 기도 시간을 따로 마련하시며 기도해 주시는 권사님의 섬세함이 있기에 우리 속원들은 오늘도 편안하게 배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이 드디어 한가지 효도(?)를 했 다. 구정 속회대항 윷놀이에서 우리 배움속이 우승 을 한 것이다! (일동박수!!!)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 하고 하나님의 응원에 의지하고 조금이라도 살림에 보태야 한다는 두 아줌마의 불같은 의지가 합쳐져 서, 작년의 성가 경연대회에서 꼴찌한 설움을 당당 히 극복하고 우승의 컵(세제)을 가슴에 안은 것이 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잠시 우리 가족(속원)들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아내의 고운 목소리로 하나님 찬양하는 일 에 외조하고자 아침 일찍부터 먼길을 달려오고 두 아이를 돌보며 타의 모범이 되는 자상한 두 아빠! 내쉬빌에 산 지 몇 달밖에 안됐으면서 선배보다 내 쉬빌 지리를 더 잘 알며 운동, 영어, 문화강좌 등을 열심히 찾아 다니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낮잠 자고 있는 주위 아줌마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미시 엄 마! 그집을 보노라면 아! 옛날이여!를 절로 외치게 만드는 신혼부부! 곧 결혼할 수 있다기에 청년속 으로의 부서발령도 연기해 줬건만 여전히 우아하게 home alone인 그 누구! 그리고 우리의 큰 오빠 속 장님을 잊어서는 안된다. 갸날픈 몸매와 선한 웃음 에 반하기(?) 쉽지만 우리 속장님은 굉장히 무섭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지금 난 이 원고를 이은영 사 모님의 상냥한 부탁이 아닌 속장님의 전달사항(?)에 순종하는 자세로 쓰고 있다. 또 우리 속원들은 하 나님이 주신 각자의 재능에 맞추어 컴퓨터, 재정부, 편집부 등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여러 빛이 모여 찬란한 승리의 흰빛이 되듯이 여러 개성의 속원이 모인 우리들이지만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과 배움의 의지가 있 기에 우리 배움속의 여정은 밝기만 하다! 소정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을 때, 하나님께도 인정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자녀들로 독립할 수 있게 해 주시며, 타인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따뜻 한 심성과 우리가 배운 진리로 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새⼘교⼘우⼘탐⼘방
지영석⼘김성은 교우 가족
지난 가을 테네시안 신문에는 한 비즈니스맨이 내쉬빌에 새로 부임한다며 그의 사진과 함께 약력 을 소개하는 글이 실렸었다. 그가 바로 여기서 소 개하는 지영석 교우이다. 테네시에서 가장 큰 회사 이며 유일한 재벌회사로 일컫는 잉그램 (Ingram) 사의 그룹 수석 부사장 (Senior Vice President)이 라는 직책으로 부임하는 터이니 그의 직책이 갖는 비중으로 보아 신문에서 그를 소개하는 것은 그리 놀랄 바는 못된다. 그러나 그가 30대 중반의 미국 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점은 세간 사람들의 별다 른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영석 교우는 지금 이 나 이까지 한국에서 살았던 기간 은 아주 어렸을 때 2년, 초등 학교 시절에 잠깐씩 1년 또는 2년 등 자투리 기간을 다 합쳐 도 7년이 안된다고 한다. 외 교관이셨던 부친을 따라 세계 전역을 다니며 살았기 때문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말을 전혀 문제없이 완벽히 구 사한다. 이민자들 누구나가 느끼겠지만 외국에서 살면서 우리말을 배운다는 것 은 여간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에 관한 얘 기가 나와서 내친 김에 물어보았는데 그는 실상, 한 국말보다 영어와 불어가 더 말하기 편할 정도라고 하며 서반아어와 일본어는 의사소통 할 수 있다고 한다. 지 교우는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를 떠나 대 학원 졸업까지 미국에서 혼자 살며 공부를 하였다. 혼자 살게 되면 어려운 점도 많고, 특히 온갖 유혹 이 많았을 터인데 Youth 및 청년 시절에 이를 떨쳐 내며 버텨나가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의 이 러한 경험들과 그가 학창시절을 보내며 느꼈던 이 야기들을 우리교회 중 고등부 학생들에게 들려주면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되었다. 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아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는데 앞으로 특히 Youth 그룹을 위해 여러 가 지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내쉬빌로 이주한 이후 처음에는 미국교회에 다 녔는데,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서기종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몇 개 듣고 마음이 끌려 우리교회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새가 둥지 를 찾듯이 정말 맘에 맞는 교회를 오랫동안 찾아 왔었고, 아마도 오랜 외국생활에서도 잃지 않고 있 는 한국인의 긍지가 매개체가 되어 한인교회에 관 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내쉬빌에 와서 우리교회로 미끄러지듯 안착하게 됨은 이곳에서 계 속 살기를 바라는 그의 희망과 일치하여 잘 된 일 이고 무척 감사한 일이다.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남편과는 달리 부인은 구 수하고 차분한 인상을 준다. 특히 웃는 모습이 예 쁘다. 지 교우가 콜롬비아 대학에 서 경영학 석사 과정에 있을 때, 부인이 마침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둘이 한국학생 모임에서 눈 이 맞아서 냅뜸 결혼했다고 한다. 부인은 학부에서 컴퓨터를 전공하 고 대학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이다. 남편이 일할 때 가정 에 신경 쓰지 않도록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잘 내조해 온 부인에게 요 즈음 새삼스럽게도 고마움을 느낀 다는 남편의 말에 부인은 얼굴을 붉히며 대꾸를 한다. "저이가 이제 나이를 먹어 가 는가 봐요. 안 하던 얘기를 하는 것을 보니까요."
야무지고 예쁜 은정 (2 학년), 수정 (킨더가든) 두 자녀는 말도 잘 듣고 엄마의 시중도 잘 듣는다. 때묻지 않고 고이 자란 천진난만한 아이들로만 보 이는데, 관심을 가질 때까지 발동은 늦게 걸리지만 뭐든지 한번 붙들면 한없이 집중하는 고집도 있는 애들이란다. 자녀 교육의 어려움이 화제로 얘기될 때, 지 교우는 "애 들이 커서 요즈음의 몇몇 시중의 청소년처럼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면 나도 애 들 따라 똑같은 차림을 할거예요. 지네들이 나를 보고 얼마나 흉한지 알고 그러구 다니지 않을 거 아녜요?" 라고 힘차게 외친다. 그가 배꼽을 내놓고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다닌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걱정되지만, 자녀교육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힌트가 됨과 동시에, 이 가족의 자녀교육 철학의 일면을 보여주는 외침 이었다. ⼧
취⼘재⼘노⼘트
속회대항 구정 윷놀이 대회
지난 2월 9일 주일 오후는 뜨거웠다. 구정 윷 놀이 대회가 속회 대항전으로 열려서 참가자가 모 두 뜨겁게 달아 올랐기 때문이다. 예년에는 장소 가 마땅치 않아 교회의 이방저방에 경기가 분산되 었었지만, 올해는 새성전 완공 덕분에 생긴 널찍하 고 카페트가 깔린 친교실이 단일 행사장이 되었다. 모든 선수와 관객이 한자리에 모이니 그 열기는, 가히 "전체는 부분들의 단순합계보다 더 크다"는 말 처럼, 상승작용을 일으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각속의 분위기를 보니, 지 난 연말의 성가 경연대회의 설욕전으로써, 또는 속 회 재편성 이후 처음으로 각 속의 역량을 가늠해 보는, 연합속회의 전초전으로 윷놀이 대회에 출전 하는 듯했다. 속들이 대결하는 행사가 늘 그렇듯 이, 이날도 경기가 진행되면서 탄성, 괴성, 웃음과 신음이 난무하며 윷이 던져진 결과 하나하나에 희 비의 쌍곡선이 교차되었고, 사람들의 표정도 시시 각각으로 변하였다.
경기는 NKUMC식 토너먼트(지홍일 전도사 님이 고안)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는 9개 속에서 A, B 두 팀을 출전시켜, 각속의 A 팀들은 A조에서, B팀들은 B조에서 토너메트로 승 자를 가려, A조와 B조의 승자가 최종결승으로 1, 2 위를 가리고, 3위는 A,B조의 경기 탈락팀만이 C조(패자 부활조)에 속해서 토너멘트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패자부활 토너멘트에는 첫경기 패자만 이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 못한 팀이 많았 는지, 첫경기를 이기고 중간 탈락한 팀들이 주최측 에 항의하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였다.
경기가 진행됨에 따라 대회장는 한층 열기에 휩싸였다. 추첨운이 제일 나빴던 속은 소망속. 평균연령이 제일 높은 속인데, 딴 팀보다 한 경기 를 더 해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 분투했으나, 결국 누적된 피로를 이기지 못하여 초반 탈락하였다. 충성속은 두팀이 모두 첫경기에서 탈락한 유일한 속, 연말의 성가대회 3연패가 저지 당한 후, 다시 부진한 전과에 착찹(?)한 분위기. 화평속은 두팀 이 모두 조결승까지 승승장구. 그러나 지난 성가 대회때 잘 나가다가 막판에 뒤집혀진 것처럼, 이번 에도 뒷심 부족으로 두팀이 조결승에서 모두 패배 했다. 사랑속은 패자부활조에서 분전하여 3위를 차지하여 체면을 세웠다. 연말에 성가대회를 압도 한 젊은 믿음속은 패기를 바탕으로 분전했으나, 역 시 전통의 윷놀
이제 남은 속은 은혜속과 배움속. 둘다 작년 에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했던 속들이지만 A,B조 에서 각기 우승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최종결승에 진출했다. A조 1차전에서 배움속을 일축했었던 은혜속은 자신만만하게 나왔으나, 막상 경기에 돌 입하니 대세는 초반에 3말을 홈인시킨 배움속 쪽으 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은혜속이 배움속의 마 지막말을 연달아 잡으면서 맹추격해와 막판에는 누 가 이길지 모르는 상태로 변하여, 이때부터는 선수 들과 판을 둘러싼 관중 모두 손에 땀을 쥐는 열전 상태로 돌입하였다. 결국 이날의 MVP로 뽑힌 고 경옥 권사님이 간발의 차이로 마지막 말을 홈인시 켜 승부는 끝, 우승의 영광은 배움속에 돌아갔다.
비록 순위가 가려지는 가운데 대회는 끝이 났 지만, 역시 하나님께서는 골고루 나누어 주신다는 것을 이번에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같은 속들 이 두 번 맞대결한 경우가 여러번 있었는데, 그 결 과는 예외없이 1승 1패였다. 이는 모든 속이 우승 할 능력이 있을만큼 전력은 평준화됐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시종일관, 순위보다는, 속원들의 단합과 속회간의 친선에 진정한 가치를 두는 은혜스런 분 위기가 열띤 대회장 근저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날의 승자는 우리 모두인 것이다. 이제 이 승자의 도가 앞으로 각 속회를 운영하는데 또한, 속회간 경쟁행사에 어떻게 투영되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 자신을 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취재: 이민우 집 사) ⼧
중⼘고⼘등⼘부⼘란
나의 미국 체험기
유근일
지난해 7월말, 여느해와 마찬 가지로 우리가족 은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원래 금년 여름에 미국 으로 올 터라 학교와 살 곳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 Nashville에 오게 되었다. 덕분에 난 보충수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95년에는 Canada를 갔었기 때문에 2년만에 친척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우 리가족은 친척과 함께 꿈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 꿈같던 시간들은 나에게 가족과의 헤어짐을 말해 주는 일종의 정표였다. 고모님들과 사촌형들은 나에게 이왕 있을거 온김에 있으라는 제안을 하셨고, 어머니와 난 힘든 결정을 하게 되 었다. 병원일로 인해 먼저 한국으로 떠나신 아버지 에겐 갑작스런 일이기에 굉장히 놀라셨던 것 같다. 우린 급하게 서류를 준비하고 한국에 계신 아버지 께서는 내 성적증명서, 입학에 모든 서류들을 우편 으로, Fax로 보내주셨다. 며칠을 어머니, 큰 고모 님과 뛰어다닌 끝에 학교에 입학신청을 하고 집에 서 쉴 시간이 생겼다. 이틀 후에 학교에 가려니 왜 이리 눈 앞이 캄캄하고, 한국으로 가고 싶었던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나를 안심시키시려고 애를 많 이 쓰셨다. 괴로운 이틀을 보낸 나는 잔뜩 긴장된 얼굴로 어머니와 함께 문 앞을 나섰다. 하지만 스 쿨 버스를 놓친 나는 작은 고모부의 차에 몸을 실 었다.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작은 고모부께서는 나를 학교 Office까지 데려다 주셨고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후 나의 곁을 떠나셨다. 그땐 왜 그렇게 싫고, 밉고 그랬는 지 참 우습다. 내가 학교 다니는 모습을 보신다고 일주일 정도 비행기 표를 연기하신 어머니와 동생 은 곧 한국으로 떠나셨다.
이젠 나 혼자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맴 돌았 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 마음은 안정이
되가고 있었다. 그렇게 6주를 생활하니 미국학교에 선 처음 받아보는 성적표를 볼 수가 있었다. 정확 히 기억은 안나지만 D가 하나 있었고 나머지는 모 두 만족할 만한 점수였다. 슬슬 나에겐 자신감이 생겼고 수학도 Algebra 1을 택하였다. 이것 역시 나에겐 쉬웠다. 나의 성적이 점점 향상되어가고 있 음을 느꼈다. 한국에 있을 때 ―홍정욱, 미국유학에 대하여―등등의 수없이 많은 책을 읽은 나이기에 읽었던 내용의 거의 대부분을 실행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주위에 모든 많은 분들이 나를 도와 주신 것 또한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 나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것은 전화와 교회였다. 유일하 게 한국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교회 를 다녔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역시 교회는 신앙 없이 다니면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모든걸 털어놓고 싶은 친구들을 찾았지만 그들은 이곳에 없었다. 한국에서 일명 '콤비'라 불리던 서로의 마 음을 주고받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굉장히⋯⋯ 그럴수록 가족을 보고픈 나의 마음은 더더욱 그립 고 간절했다. 그러면서 난 많은걸 스스로 깨닫고 알게 되었다. 당연히 자립심도 길러졌고 말이다.
미국에서 생활한 지 겨우 6개월이 갓 지난 나 이지만 굉장히 많이 적응이 되었고, 이제는 생활하 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잘 하지 는 못하지만 영어도 불편하지는 않다. 이제는 새 로이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 갈 것이다. 나를 위해 많이 애쓰시고 고생하신 어 머니, 아버지, 그리고 매일 같이 싸웠지만 착한 동 생 호은이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자랑스런 아들, 믿음직한 오빠, 멋있는 친구, 그리 고 대견한 조카로써 존재하고 싶다.
보고픈 가족을 생각하며⋯⋯
(유근일 군은 Apollo Middle School 8학년에 재 학중입니다.) ⼧
새⼘성⼘전⼘에⼘입⼘당⼘하⼘면⼘서
고경옥 권사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 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 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학개 1:14).
이스라엘 백성의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이 마 쳐질 때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아있던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 시켜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역사를 시작케 하셨던 그 하나님의 감동 시 키심이 1992년 가을 장동찬 목사님 을 모시고 가졌던 부흥성회 동안에 담임목사님과 온 교우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다. 그래서 온 교우가 뜨겁게 한 마음이 되어 성전 건축을 위한 약정헌금을 기록하여 하나님 께 바치고,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성 전 건축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렇 게 시작된 우리교회 성전 건축이 실 로 5년만에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성전으로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 다. 이 짧지 않은 기간 동안에 크고 작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 일을 이 루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이켜 보며 내 나름대로 감사한 일들을 적어본다.
첫째, 함께 모여서나 혼자 기도할 때나 우리는 성전 건축이 성경의 인도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방법으로 진행되고 완성되기를 한 마음으로 기도해 왔는데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 같다.
둘째,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는 성전건축에 동참 할 분들을 많이 보내어 주셨는데, 특히 감사한 것은 장로가 한분밖에 없는 우리교회를 불쌍히 보시고 정 말 좋으신, 박 장로님을 L.A에서 옮겨 오시고, 유 장 로님을 워싱톤에서, 그리고 해마다 싼타 할아버지처 럼 성탄절 무렵이면 한국에서 우리를 찾아 오시는 정 장로님을 보내 주시어 우리들의 힘이 되게 하셨던 하 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셋째, 한때는 기존교회 건물을 구입하느냐? 새로 짓느냐?하는 문제로 정말로 오리무중 가운데 헤매고 있었는데 두세번 교인총회를 통해 온교우들의 마음을 새로 짓는 방향으로 정해 주시면서 적절한 교회설계 자와 건축자를 선정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모든 것 위에 그때 그 상황에서는 정말 불가 능하게 보였던 서 목사님 부부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셔서 이 큰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우리를 신령한 꼴로 먹이시며, 우리를 소생시키시고 힘차게 자라게 하신 하나님과 서 목사님 부부의 그 힘드셨던 결단과 함께 마음 맞아 일하고 있 는 좋은 동역자를 놓아주신 원 목 사님 부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아마도 서 목사님 의 그 힘든 결단을 하나님께서 기 뻐 받으시고 그후부터는 교회건 축을 은혜롭게 진행시켜 주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 사랑하는 남 편 홍 장로님을 성전 건축위원장 으로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끝까 지 붙들어 주시어서 이 일을 마치 게 하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 린다. 1996년 한해는 우리 부부 를 안과 밖으로 호된 훈련속에 넣 으시고 연단하셨는데 그 가운데 서도 그 강한 하나님의 손으로 그를 붙들어 주셨던 것이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 모두는 설레이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 으로 입당예배를 코앞에 놓고 준비 중에 있다.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 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 호와의 말이나라"(학개 2:9).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이 약속을 우리들의 약 속으로 받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으며 교회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 든든히 서 가고 오고 오는 세대에 우리들의 자녀들은 더 큰 영 광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이성훈 집사
나눔과 섬김의 원고 청탁을 받고, 왜 나에게 '새 성전 입당을 맞이하며' 라는 제목의 글을 써달 라고 하였을까 하고 나름대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글을 잘써서도 아니요, 또한 영향력이 있어서는 더 욱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름대로 이런 결론 을 맺었다. 오직 한가지 비교적 오래된 헌신자라는 Title이 붙은 때문인 것 같다. 본 교회의 창립멤버 는 아니지만 1980년부터 지금까지 New York에 서의 2년간의 생활을 빼고는 이 교회에 고정 헌신 자가 된것 때문에 이런 특혜(?)의 기회를 갖게됨 을 기쁘게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이글을 써 본다.
Belmont 교회에 한쪽을 빌려 예배를 드릴때 에 친교시간에는 항상 도넛츠와 커피를 들며 함께 친교를 나누고 어쩌다 한번 밥과 김치를 먹으려면 어찌나 눈치가 보였는지⋯⋯ 그러다 지금의 이곳으 로 교회를 옮기고는 얼마나 마음껏 자유자재로 예 배시간, 성경공부, 기도회, 남녀 선교회, 토요한글 학교 등등 주일부터 주말까지 자유스럽게 이런 공 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을 새삼 감사드린다.
점점 교인수가 늘어남에 따라 친교실의 자리가 부족하게 되자 보다 큰 친교실이 있어야 한다는 취 지를 뒤바꾸고 정말 역사적인 새 성전건축을 계획 한 지 4년만에 완공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에 많 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Architect 결정문제, Builder결정, 예산결정, 조정, 변경⋯⋯ 정말 많은 일들을 오랜 시간동안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봉사한 성전건축 위원회에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는 "힘써 여호와를 알자" 이다. 작년의 표어는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였다. 새 성전건축의 큰 과제를 앞두고 지어졌던 표제인 것 같다. 이제 새 성전의 완공을 지켜본 우리 자신 도 우리의 작은 성전을 우리 가운데에 완공시켜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새 성전이 완공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주위의 조경공사, parking lot 공 사, 성전내 이곳 저곳, 목사실, 사무실, 유아방, 성 경공부방, 등 각 방마다 우리 성도님들의 관심을
가지고 함께 아름답게 이루어 갈 때 우리의 성전인 우리 자신도 아름답고 성숙하게 지어져 갈줄로 믿 는다.
이번 성전건축과 더불어 교회내의 이곳저곳 부 서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성경공부 하는 것을 보니 정말 보기 좋다. 아마도 내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사랑의 마음으로 행하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 리의 가진 것을 주님을 위해 봉사할 때 그것이 크 던지 작던지 간에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뜻 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함께 자기의 선곳 에서 열심히 힘써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받들고 봉사하며 서로를 위해 관심을 가지고 사랑 으로 보살필 때 아름다운 성전을 주신 하나님께서 가득 채우고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성도들을 보내주실 것이다. 새 성전의 완공과 함께 보다 적 극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 자리가 차고 넘치게 되리라 믿는다. 우리 성도 각자가 지체의식 을 가지지 않는다면 교회의 하나됨은 기대할 수 없 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겸손과 사랑 가 운데서 한마음,한뜻이 되어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나가야 한다. 이 일을 위해 또 후 세들을 위해 모두모두 힘써 기도해야 할 것이다.⼧
신⼘앙⼘일⼘지
집사직을 받으며
김은주 집사
"축하해요. 교인총회에서 집사로 추천되었어 요." 여러분들이 전화를 주셨다. 이 소식을 듣는 순 간 몹시 당황스럽고 낯이 뜨거워졌다. 내가 알고 배운 바로는 집사는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 만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거창한 자질요건의 근처 에도 못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정말 하루 하루를 신앙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기본적인 질문에도 자신이 없었다. 지난 날들 을 돌이켜 볼 때, 적어도 결혼한 이후에만 보더라 도, 교회를 나가지 않았을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교회를 잘 나가라는 어른들의 권유도 그냥 흘러 보 내기 일쑤이던 내가 교회를 비교적 정규적으로 나 가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때때로 있는 성찬예식 에 조차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나누는 데 참여해도 좋은가 하는 가책을 받아 오지 않았던 가. 교회 일에도 그렇다. 아직까지도 교회의 여러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적이 많지 않다. 하다 못해 이번 총회에도 참석치 않았다. 나는 아직도 신앙에 있어서 주변만을 맴도는 아웃사이더이다. 이러한 나에게 집사의 직분을 맡기다니, 이건 교인 들이 나를 잘 모르고 잘못 결정한 일이라고 생각했 다. 많은 고민 끝에 담임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교인들의 뜻은 이해하고 또 감사드리지만 이번 집 사임명은 사양해야겠다고. 몇마디 안되는 솔직한 설명에 목사님은 내 마음을 이해해 주셨다. 왜냐고 물어보시면 대답하기 위해 준비한 구차한 이유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애들 아빠는 나의 결정이 경솔했고, 교인들의 신중한 결 정을 무시한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예년 과 달리 교회로서는 교인들의 의견을 십분 반영하 고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직분을 맡기는 새로운 전통 을 수립해 가려고 하는데, 나 때문에 시작부터 그 의의가 흐려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항변했다. 내 마음도 모르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아빠와 약간 다투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시 간이 지나면서 아빠도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 았다. 내 마음도 정리되어 가는 듯 했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이제부 터라도 준비를 잘 하자고 다짐했다.
집사 임명식이 있으리라는 광고가 나가면서 교 인들이 왜 내 이름이 거명되지 않느냐고 의아해 하 는 눈치를 보였다. 몇몇 어른들은 상황을 아시고 와서 재고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한 장로님은 손을 꼭 잡으시면서 하나님의 뜻에 의해 결정된 일이니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르라고 하신다. 오히려 난감 해졌다.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이렇게 격려해 주 시나. 교인총회에서 동시에 집사로 추천된 다른 분 도 내 이유가 그렇다면 그 분도 집사임명을 사양하 겠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들린다. 괜히 문제만 일으 키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냥 받아드릴걸 그랬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 중 담임 목사님께서 하 나님는 결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쓰시지 않으신 다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고하신다. 뜻밖이었다. 한번 결정하면 계속 밀고 나가시는 목사님이 재고 해 보라는 데는 목사님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하셨 을 거다. 목사님의 재고요청에도 계속 버티는 것은 은혜가 안되고, 아울러 자기 같은 사람도 집사인데 나는 적어도 자기와 비교해서는 집사자격이 있다는 애들 아빠의 격려는 더 이상 항변할 말을 잊게 했 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더 좋아하신다는 성 경말씀이 계속 맴돌았다.
집사임명을 수락하고, 그리고 임명식을 과분하 게 치렀다. 그리고 난 후, 지금도 내 마음 속에서 는 여전히 부끄럽고, 집사로 불리우는게 쑥스럽다. 부족하기 한량없는 내가 순종을 이유 삼아 얼렁뚱 땅 넘어간 것이 아닌가 하고 가책을 느끼기도 한 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말 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뭐라고 괜스레 혼자서만 준비가 안되었느니 하며 가시처럼 돋아 나왔던 것 이 아닌가 송구스럽기도 하다. 우리 인간은 불완전 한 존재이고 늘 준비가 안되어 있지만 어떠한 계기 를 통해 선택하고 결단하고 행해 나감으로써 변화 되어 가는 피조물이라는 아빠의 격려는 적지 않은 힘이 되었다. 오늘의 집사임명이 이러한 계기를 제 공했다고 믿고 지금부터라도 하루하루를 참된 신앙 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련다. '신앙인의 삶은 계 속 변화해가야 한다'고 원달준 목사님이 성경공부 시간에 주제가처럼 강조하시던 말씀을 되새겨 신망 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집사가 되기 위해 변화해 가고자 한다. ⼧
특집: 우⼘리⼘교⼘회⼘인⼘터⼘넷
테네시주 최초의 한인교회
인터넷 홈페이지
이준수 집사
얼마전 한국의 중앙일보와 조선일보가 인터넷 을 놓고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일종의 신경전인 셈인데, 서로 자기네가 한국의 신문사로서는 최초 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다고 우기는 것이었 다. 누가 먼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는가가 뭐 대단한 문제냐고 넘겨버릴 수도 있겠는데 양 신 문사는 미국의 인터넷 등록협회로부터의 영수증을 들이대며까지 각 사의 지면을 통해 설전을 벌였다.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이러한 신경전 뒤에는 양 신 문사의 얽키고 설킨 감정과 라이벌 의식이 섞여 있 기도 하겠지만, 이 문제가 기술혁신으로 인해 급격 히 변해 가는 시대적 조류에 누가 먼저 빨리 적응 해 가며 선도해 가느냐를 가늠하는 반증으로 인식 되었기 때문에 서로의 자존심을 건 한판 싸움으로 비약되었었다. 어느 마케팅 분석 기관의 예측에 의하면, 미국에서 2000년에는 10 가정 중 9 가정 이 인터넷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이 러한 추세에서 누가 먼저 고지를 점령하느냐라는 문제의 중요성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금번에 우리교회에서는 제2남선교회 주관하에 인터넷팀을 구성하여, 시대적 조류에 발맞추어 테 네시주 최초로 한인교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 였다. 이곳 저곳을 알아본 바에 의해 테네시주 최 초의 한인교회라고 얘기하는 것이니 만큼 중앙일보 와 조선일보의 논쟁 같은 것에 휘말릴 염려는 없 다. 현재 미국 전역에 있어서 아직도 인터넷 홈페 이지를 개설한 한인교회가 없는 주가 약 20개 주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테네시주는 이번에 우리교회 덕분에 촌뜨기 주에서 벗어난 셈이다. 미국교회나 한국에 있는 교회들과 비교해 볼 때 미 국내 한인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은 매우 더 딘 편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2월 첫 주에만 해도 내쉬빌에서 세 교회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 설하여 내쉬빌 소재 교회 홈페이지 목록에 등록하 였다. 물론 우리교회가 그 중 하나이며 다른 두
교회는 미국교회이다. 작업에 참여한 한 인터넷 팀 멤버는 이번 홈페이지 개설은 우리교회의 성전 건축과 더불어 인터넷에 새로운 "거미망 교회"를 건 축하는 의의가 있다고 지론을 핀다. 또 홈페이지 품평회에 참석했던 한 교인은 인터넷을 통한 전도 야말로 앞으로 교회가 개척해 나갈 분야라고 갈파 하며 이번 홈페이지 개설은 그 첫걸음이라고 감격 (?)해 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홈페이지 개설의 의 의는 아직 초보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 단계와는 약 간의 거리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향해야 할 비 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아무튼 우리에게 제시된 비전을 우리가 앞으로 얼마만큼 구현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겠지만 이번 인터넷 홈 페이지 개설은 그 자체로도 의의가 크다고 본다. 내쉬빌 최초의 한인교회, 내쉬빌에서 최초로 자체 성전을 건축한 교회, 뛰어난 회계시스템을 가진 한 인교회가 새로운 것을 하나 더 추가하는 리딩히터 의 역할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면을 통해 우리교회 인터넷 홈페이지 가 어떠한 개념을 가지고 어떠한 과정을 통해 만들 어 졌나를 간략히 소개하여 교인들의 이해를 돕고 자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교회 인터넷 홈 페이지는 타교회들의 그것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인터넷팀이 처음부터 생각했던 방향은 인터넷 홈페이지가 생활의 일부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었다. 우리는 홈페이지를 만드는 작업 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어떠한 개념을 가지고 설계 할 것인가를 놓고 토의를 하였다. 이를 위해 세계 각처에 있는 많은 교회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살 펴 보았는데, 어떤 교회는 단순히 전화번호만 수록 하였고 더 공을 많이 들인 교회는 목사님 설교를 매주 수록하거나 설교 테이프를 아예 Real Audio 를 통해 들을 수 있도록까지 하였으 나, 대부분은 교회안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판 단되었다. 물론 교회 홈페이지는 교회안내와 소개 를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교회생활과 우 리 교인의 일상생활까지를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하 고 신앙이 깊어지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보다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에 따라 인터넷팀 멤버들의 의기는 쉽게 취합되어 약 한달에 걸쳐 주말에 만나 밤도 새워가며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수록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첫째, 우선 홈페이지의 기본으로서 환영의 글, 교회 소개, 교회 모임안내, 교회 약도 등을 수록하 였다. 이 점에서는 다른 교회의 홈페이지와 큰 차 이가 없으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내쉬 빌 한인교회를 거쳐간 한국 및 전세계의 교인들과 의 긴밀한 교류를 목표로 하여 주보에 나오는 "교 회소식", 교인의 주소록을 추가로 포함하고, 또한 "글 모음"란을 설정하여 나눔과 섬김을 전세계에서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 "교인소개"란을 설정하 여 교회에 속한 온 가정이 고유의 가정 홈페이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이라도 언제든지 희 망하는 가정은 가족사진 1매와 가족원 영문/ 한글 이름, (생년월일), 집/직장의 주소 및 전화번호, 간 략한 가정소개의 글 등을 작성하여 인터넷 팀에게 전해주면 전세계에 가정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가 질 수 있다.
둘째, 기독교에 관련한 인터넷상의 정보를 연 결하는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터넷상에는 성경뿐 아니라, 기독교 역사, 초대 교인 생활, 고대 문헌, 기독교 문화, 위대한 신앙 인, 교단, 참고 문헌 등 기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 에게까지 필요한 수많은 자료가 널려 있다. 우리 는 "Christian Links"를 통해 이들 자료를 소개하 고 연결시키는 가교를 제공하도록 하였다. 이 부 분은 아직 보완 발전할 여지가 많다.
셋째, 내쉬빌에 거주하는 교인들을 위해 우리 의 일상생활에 절실한 일기, 뉴스 (한국 및 미국내 신문, 방송), 쇼핑, 오락, 여행, 스포츠, 상업 등 각종 "생활정보"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교인의 편익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물론 "생활정 보"란은 우리 교인뿐 아니라 내쉬빌에 거주하는 모 든 한인, 이주해 오는 교민, 내쉬빌을 방문하는 여 행객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교회 홈페이지에 이러 한 정보까지 포함해야 하느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생활정보" 제공이 홈 페이지에서 오히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서, 요즘의 광고기법을 보면 사 람을 끌기 위해 인공위성까지 띄우며 돈 들여 자세 한 날씨정보를 공짜로 제공하면서 그 밑에 작은 글 씨로 타이어를 선전한다. 아무리 타이어를 잘 선 전하여도 그 자체만으로는 시선을 끌 수 없다. 이 러한 광고기법은 전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내쉬빌에 거주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일 잘 전해주는 인터넷 메신저를 우리가 만들자 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록된 내용의 몇 가지 구 체적인 예를 들자면 미국내 1,000 miles 이내에서 출발지와 도착지 주소만 주면 단계별로 상세한 약 도를 만들 수 있고, 타주의 Yellow Book없이 LA 에 사는 홍길동 가게의 전화번호를 찾을 수도 있 고, Bellevue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몇 시에 상영 하는가를 바로 알 수 있고, 15분 간격으로 전해주 는 외환 및 주식 시세, 새차 인보이스 및 중고차 가격 등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내쉬빌 병원, 내 쉬빌 소재 학교, 대학 진학 정보, 공립학교 학교별 수준 비교, 관공소, 이민, 비자 관련 상담, 골프장, 공원, Smoky mountain, 내쉬빌 관광, Nite Life 등을 망라한 각종 생활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특기할 사항은 교인이 운영하는 한국 음식 점, 한국 식품점, 슈퍼, 세탁소, 주유소, 태권도장, 복덕방 등 교인들의 Business를 소개하여 광고 효 과까지를 겸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광고에 참여하고자 하는 교인은 상호, 업주, 광고사항, 영 업시간, 주소, 전화, Fax, 약도 및 희망 시 업소사 진 등을 작성하여 인터넷팀에게 전해주면 전세계에 교인의 Business를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가질 수 있다.
넷째, 내쉬빌로 이주하는 전입자를 위한 "생활 정착 안내"를 도모하였다. 교민들이 내쉬빌로 이주 하여 정착에 필요한 정보들, 즉, 자녀 학교 입학, 식품 및 일용품 구입, 자동차 구입 및 운전 면허, 은행, 우체국, Social Security, 병원, 의료보험 등 정보들을 제공하고, 학생을 위해서 학교 소개, 밴더빌트 대학 한인학생회 소개, 기숙사 생활, 영 어 학습의 기회 등을 소개하였다. 이제 타지에 방 문하거나 이주할 때, 그 곳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 을 통해 찾아보는 일이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교회에 다니고 있는 교인 몇 명은 한국 에서 이주해 올 때 이미 내쉬빌에 대한 정보를 인 터넷에서 찾아 보았다고 하며, 어떤 교우는 300페 이지 가량의 정보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불행히 도 이 중에 우리교회나 한인사회에 대한 정보가 전 무했음은 물론이다. 그 교우는 아파트 관계, 한인 식품점, 아이들 학교등록 문제 등 내쉬빌에 거주하 는 우리들에게 문의할 사항이 많았음에도 불구하 고 문의할 사람조차 찾을 수 없어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제 적어도 이 교우처럼 구하는 자에게는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터 넷을 통한 "생활 정착 안내"의 가장 큰 장점의 하나 는 적시에 즉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지 난날 우리교회에서는 좋은 "생활 정착 안내" 시스템 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겠지만 우리 는 지난 수년간 (작년 제외) 이미 생활 정착이 된 교우들에게 생활 정착 안내하는 일을 반복해 오지 않았던가? 이제 나름대로 대상별로 분류하여 놓은 연락 문의처에 인터넷 전자 메일을 통해, 또는 전 화 등을 통해 문의사항을 즉각 대답해 줄 수도 있 고, 또 이주해 오는 교민, 학생 스스로가 직접 정 보를 미리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들 이 내쉬빌로 이주할 때, 교통수단 (Ride) 등이 필 요하면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보망까지를 구축하고 자 하였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다른 아이디어가 강구될 수 있겠지만 위의 내용만으로도 충실히 하자면 한 이 없을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한 교인의 뜻을 받들어 우리가 당장 인터넷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 하는 전도를 목표 잡기까지는 어렵지만 점차 발전 시키면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정말로 이러한 인터 넷을 통한 전도의 비전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는 인 터넷 전도사가 있다. 얼굴도 모르는 그 분과 전자 메일을 통해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은 평신도인 듯한데, 인터넷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 을 하고 있고 이를 위해 성경을 인터넷에 올려놓아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성경과 기독교 에 관한 자료를 쉽게 찾도록 하고, 전 세계에 있는 한인교회의 홈페이지를 대신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시대를 앞서 나가는 선구자 전도사라고 생각되었 다. 처음에는 우리도 어렵게 우리가 홈페이지를 만들지 말고 그 분께 부탁해 볼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막상 작업을 끝내고 그 분이 관리하는 전 세계 한인교회 홈페이지 목록에 우리의 홈페이지를 넣어달라고 부탁하였을 때 그 분이 우리 홈페이지 에 와 보고 나서는 매우 잘 되었다는 소감과 함께 자기의 인터넷을 통한 전도사업에 참여해 달라고 까지 하였다.
이렇게 훌륭한 홈페이지를 만들기까지는 우리 인터넷 팀의 노고와 재능이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처음에 다운타운에 있는 인터넷 디자인 전문업체를 찾아보았을 때 그들은 용역료로 기본 $5,000을 요구하였다. 아마 우리교회 홈페이지 수준의 홈페이지를 만드려면 훨씬 많이 소요될 것 이다. 마침 우리교회에는 그러한 전문업체에서 일 하는 요원보다도 뛰어난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우리 힘으로 해 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 이라 믿는다. 주지하다시피 김진 교우는 컴퓨터의 귀재로 전문가를 빰치는 솜씨와 재능을 가지고 있 어서 매우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해 주었고, 떠오르 는 샛별 김종갑 교우는 공부하면서 야위어 가는 몰 골에도 불구하고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어 어려운 그래픽 처리를 멋지게 해 주었고, 새로운 다크호스 송시영 교수님께서는 의대 강의록 만들던 솜씨로 그래픽과 한글 처리를 날렵하게 해 주었다. 성가 대하면서 바쁘게 뛰어다나는 이광호(B) 교우는 전 공이 컴퓨터인지라 좋은 인터넷 Server를 선정하 는데 전문지식을 동원해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이 밖에도 이정규 교우, 김필선 교우는 자료정리로 도움을 주었고, 회장 정민덕 집사님을 비롯한 제2 남선교회 회원들은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특히 홈페이지 관리 및 회계처리를 위한 새로운 컴 퓨터가 필요하였는데 현재로서는 가장 빠른 Pentium 200 MHz MMX 컴퓨터의 구입을 위해 개인적으로 특별 헌금을 해 주신 제2남선교회 회원 들과 교회 어른들, 또 광고를 빌미로(?) 요청 받아 특별헌금을 해 주신 여러 교인들께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무쪼록 시대적 조류에 발 맞추어 남들보다 앞서 나가 개설한 우리교회 인터넷 홈페이지가, 이 를 통해 교인들이 일상생활에 절실한 각종 정보들 을 손쉽게 구하여 편익을 도모하고, 우리의 충실하 고 다양한 믿음생활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 어, 교인 모두에게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지기를 기 대한다. 아울러, 이 홈페이지가 내쉬빌 한인교회 를 거쳐간 한국 및 전 세계에 있는 교인들과의 좀 더 긴밀한 교류를 기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써 십분 이용되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전도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어지기를 바란다. 이제 인터넷 팀은 새로 구성되는 이민우 교수의 데이터 베이스 팀과 합해 인터넷 데이터 베이스 팀 (IDT, Internet & Database Team) 으로 확대 개편되려 한다. 앞 서 나가는 우리교회가 계속 Hit and Run을 구사 하며 더 앞서 나가려 한다. 우리 교회 인터넷 홈페 이지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많은 소재들 중에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선택하 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일종의 총 론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인의 특징적인 소화기질환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불행히도 우리 몸 구석구석 에 병이 안 생기는 곳은 없으며, 이들 수만 가지 질병 중 아직까지 원인을 모르는 경우 또한 많다. 흔히들 병의 원인을 포괄적인 개념으로 인종, 유전적 요인, 음식, 생활환경, 정신적인 측면 등 다양한 요인과 관 련짓고 있다. 비록 몸은 미국에 있으나 우리는 분명 단일민족인 한국인이므로 우리의 질병 양상이 서양인 들과 차이가 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인종에 따른 질병양상의 차이를 독립된 하 나의 요인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인종간에는 지리적 인, 환경적인 여건이 다르고, 즐겨먹는 음식도 다르 며, 유전적인 차이도 있기 때문에 위의 여러 요인들 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일례롤 일본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서는 대장암 또는 궤양 성대장염(Ulcerative colitis)과 같은 병이 드므나 하와이로 이민 온 일본인 2세의 경우에는 미국인과 동일한 빈도로 증가함은 인종만의 문제가 아니라 살 고 있는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은 차이를 안다는 것은 환자나 의사 모두 에게 중요하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서울 서 근무하던 병원에서는 단기간의 임상실습을 위해 방문한 미국, 독일, 호주 등에 살고 있는 교포 2-3세 의과대학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한 번은 심한 체중감소와 혈변을 주증상으로 병원을 찾 아온 25세 여자 환자를 진찰하게 하고, 내시경, CT scan검사 소견을 보여준 후 생각할 수 있는 진단명을 물어보았다. 모두 궤양성대장염, 크론씨병과 같은 한국에서는 거의 보기 드문 질환을 생각하거나 대장 암을 의심했지 누구도 이 정도 연령의 한국인에서 비 교적 흔한 장결핵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본인이 소화기내과 특히 소화기 암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에서는 소화기질환이 매우 흔하고 또 소화기 암의 빈도도 높다. 일례로 한국에 서 각 대학병원 전체 환자수 중 소화기질환(내과, 외 과 포함) 환자수가 15-20% 정도를 차지하는 현실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소화기관이란 우리가 음식 을 먹고 배설하기까지 관련되는 모든 장기를 일컫는 데, 식도, 위, 소장, 대장, 직장과 같은 음식물의 경 로인 소화관과 아울러, 간, 췌장 (취장), 담낭 (쓸 개), 담도와 같은 소화에 연관된 중요 장기들이 포함 된다. 여기에 생기는 질병에는 가벼운 기능적 장애 부터 이질, 간염과 같은 세균 또는 바이러스 감염, 담 석증과 같은 결석(돌)증, 일단 걸리면 항상 인간의 생명을 십중팔구 앗아가는 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 하다. 이중 한국인에 매우 흔하거나 미국인과는 뚜 렷한 차이를 보이는 몇몇 질환들을 간략히 소개해 보 기로 한다.
서양인에도 위염이 드물지 않으나 한국인보다 흔 하다. 실제 가벼운 소화기 증상 때문에 내시경검사 를 받은 환자 중 70-80% 정도는 위염을 갖고 있다. 다양한 원인 중 최근 5-6년 전부터는 위벽에 붙어서 간염을 일으키는 Helicobacter pylori라는 세균이 중요한 원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인에서는 위염 환자의 70-80% 정도 이상이 이 세균에 감염되어 있 는 반면에 미국인에서는 20-30%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좋은 항생제가 있어서 치료가 잘되나 한국인에 서는 치료 후에도 잦은 재발이 문제다. 소화성궤양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역시 동서양 모두 흔한 병이 기는 하나 한국인은 서양인에 비해 위궤양의 빈도가 훨씬 높으며, Helocobacter 감염과 연관된 환자가 많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이때 세균을 박멸하는 궤 양(특히 십이지장 궤양)의 재발율이 현저히 줄어든 다. 최근에는 이 세균과 위암의 연관성에 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한편 위궤양 중에는 내시경검사를 하더라도 한국인에게서 가장 흔한 암인 위암과 육안적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단순한 위궤양 환자를 보더 라도 항상 위암을 배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도 한국인에서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또 다른 큰 문제는 바이러스성 간염을 들 수 있다.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최근들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한국인에서 바이 러스성 간염 환자의 80%는 B형 간염이며, 나머지가 C형 또는 B형도 C형도 아닌 간염이다. 반면에 일본 에서는 70% 정도가 C형 간염이고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또 같은 B형 간염이라 하더 라도 서양에서는 90% 정도가 청소년기 이후에 감염 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인에서는 90% 정도가 유아기 때 감염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환자의 유전자 속에 합쳐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치료가 더욱 어렵고 만성 간염, 간경변증, 간암으로 이행하는 경우가 많다.
암 정복을 위한 무한한 투자와 노력에도 불구하 고 아직까지도 몇몇 악성종양을 제외하고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1994년 경제기획원 자료에 의하면 한 국인의 3대 사망원인으로 1위가 순환기질환(고혈압, 뇌혈관질환, 심장 질환), 2위가 암(위암, 간암 등), 3위가 사고사(교통사고, 약물, 추락사)로 발표되었 다. 사망원인이 확실하지 않은 많은 경우에서 심장 마비라는 진단명을 붙이는 경우를 감안한 순환기질환 의 증가 측면도 고려해야 할 것 같고, 3위가 교통사 고를 포함한 사고사라니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선진국에서도 순환기질환 다음으로 암이 2위의 사망 원인을 차지하고 있으나, 그 종류는 우리와 많은 차 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대장암, 폐암, 유방암 등이 흔한 암인 반면에 한국인에서는 위암, 간암, 자궁경 부암 등이 흔하다. 일례로 제가 서울서 근무하던 병 원에서는 1년에 위암 환자가 900-1000명 정도 입원 하나 Vanderbilt 대학병원에서는 1년에 10명 남짓 입원한다고 하니 그 차이점을 쉽게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인 남자에서는 위암, 폐암, 간암의 순서로, 여자 에서는 자궁경부암, 위암, 유방암의 순서로 1, 2, 3 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녀를 합쳐서 생각할 때에는 위암이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또한 남자에서는 10대 암중 위, 간, 대장, 식도, 담낭, 췌장의 6종류 가, 여자에서는 위, 대장, 간, 담낭의 4종류가 소화기 암이 차지하고 있음은 한국인에서의 소화기 암의 중 요성을 인식하게 한다.
불행히도 소화기 암은 다른 장기의 암에 비해서 항암제나 방사선치료 등과 같은 치료에도 그 효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어느 암에서나 공통된 개념이지 만 현재로서 암을 완치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초기에 발견하여 치료를 하거나 전암병소(앞으로 암 으로 될 가능성이 높은 질환)를 미리미리 발견하여 없애는 방법만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일례로 위암 중 조기 위암(암이 깊이 진행되지 않고 위벽의 2번째 층까지만 침범한 경우)의 경우에는 완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95% 이상이나 되니 거의 완치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에서 위암환자 중 조기위암 환자가 차 지하는 비율은 약 25-30% 정도에 불과하나 일본에 서는 높게는 60% 정도 된다. 이는 일본인 위암 환 자중 60% 정도는 완치가 가능하나 한국인에서는 그 렇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암의 조기발견의 중요 성을 충분히 인식케 한다. 간암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한국인 간암환자 중 70-80%는 B형, 10%는 C형 간 염바이러스 보균자인데,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환자 는 간경변증 또는 간암으로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정 기적인 혈액검사 및 초음파 검사를 통한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최근 한국에서는 적어도 일년에 2번 정도 의 검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40세 이상의 만성활동성간염 또는 간경변증 환자에서 매 3개월마 다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같이 우리의 질병양상은 서양인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도 점차 그 양상이 변화해 가고 있는데, 일례로 서양에서 많은 대장암, 췌장암, 유방암 등의 빈도가 점차 증가하고, 세균 또 는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성 질환의 빈도가 감소하는 등 서양과 유사한 양상으로 서서히 변화해 가고 있 다. 이와 같은 변화는 결국 식생활을 포함한 생활양 식의 서구화와 병행하여 나타나는 변화로 보이며, 미 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의 질병양상을 미루 어 짐작케 한다.
끝으로 아픈 사람을 진단하고 치료한다는 의사로 서 인간의 힘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항상 실감 하고 주님의 무한한 능력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임을 고백하면서⋯⋯
(필자 송시영 교우는 한국 신촌 세브란스 병원내과에 서 근무하시다가, 내쉬빌에 오셔서 현재는 밴더빌트 의과 대학병원 research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