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코의 미소]
48p
슬픔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결국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였다.
평생을 함께 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눈물을 풀어낼 수조차 없는 사람,
울고 게워내서 씻어낼 줄을 모르는 사람,
그저 차가운 손과 발, 두통처럼 보이지 않는 증상으로만 아픈 사람이 엄마였다.
[씬짜오, 씬짜오]
85 ~86p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92p
그저, 가끔 말을 들어주는 친구라도 될 일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곁을 줄 일이었다. 그녀가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오래 외로웠던 사람이었기에,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 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한지와 영주]
126p
그는 보복하고 질투하며 분노하는 신은 없다고 생각했고
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라고 믿었다.
129p
두려움은 내게 생긴대로 살아서는 안 되며 보다 나은 인간으로 변모하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었다.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계에서 소거되어버릴 것이었다.
174p
침묵은 나의 헐벗은 나의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 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미카엘라]
238~239p
여자는 노인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241p
딸이 태어난 후로는 그늘진 마음에도 빛이 들었다.
마음속 가장 차가운 구석도 딸애가 발을 디디면 따뜻하게 풀어졌다.
여자가 애써 세워둔 축대며 울타리들, 딸애의 손이 닿기만 했는데도 허물어지고,
그 애의 웃음소리가 비가 되어 말라붙은 시내에 물이 흘렀다.
있는 마음 없는 마음을 다 주면서도 그 마음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까봐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그 마음 안에서, 따뜻했다.
[비밀]
254p
말자는 지민이 서러움을 모르는 아이로 살기 바랐다.
흘릴 필요가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삶에 의해 시시때때로 침해당하고 괴롭힘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지민은 삶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기꺼이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너무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