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그 당시에 죄인으로 취급받는 세리와 같은 자들과 잘 어울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교제하면 그 삶이 바뀌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탐탁하지 못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리처럼 죄인 취급을 받는 이들과 어울리면 비웃고 비난했습니다(1절, 2절). 그러자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비유들을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의 비유, 흔히 탕자(蕩子)의 비유라고 알려진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비유 등을 연달아 말씀하십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는 한 목자가 백 마리의 양을 돌보고 있었는데, 한 마리의 양을 잃게 되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서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고, 찾게 되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벌인다는 비유입니다(3절~6절). 그리고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의 비유는 한 여자가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서 부지런히 찾을 것이고, 찾게 되면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인다는 비유입니다(8절, 9절).
사실 양 한 마리를 찾고, 드라크마 하나를 찾은 후에 잔치를 벌이면 그 양 한 마리나 한 드라크마보다 잔치 비용이 더 나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한 편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양의 주인이나 드라크마의 주인은 양 한 마리와 드라크마 하나를 그저 물질적 가치만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그 양 한 마리가 남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더 귀하다거나,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가 다른 아홉 드라크마보다 더 귀하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오히려 한 마리의 양이나 하나의 드라크마를 그렇게 귀하게 여겼다는 것은 그 주인이 다른 아흔아홉 마리도, 다른 아홉 개의 드라크마도 그렇게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고 있음을 반증(反證)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의 비유는 그 당시의 관습을 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드라크마(Drachma)는 그리스의 화폐 단위로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은전(銀錢)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일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열 개의 드라크마는 그 가치로만 따지면 열흘 정도의 품삯이긴 하지만, 그 당시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열 개의 드라크마를 꿰어 머리에 장식하거나 목걸이로 사용하는 장식물을 만들어 신부에게 선물로 주어 사랑의 증표(證票)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금액의 적고 많음을 떠나 신부에게 있어서는 신랑에게 받은 매우 귀중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열 개의 드라크마 중 하나를 잃어버리면 남은 아홉 개의 드라크마도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잃어버린 그 한 개를 찾아서 열 개가 되어야 온전한 장식물이 되기에 그 하나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 개의 드라크마를 잃었을 때 애타게 찾았던 것이고, 찾은 후에는 그 기쁨을 이웃들과 나눈 것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7절, 10절). 이렇게 한 영혼이 귀하니 주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서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은 엄청나게 귀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고, 주님께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아 나서 는 것처럼,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 하나의 드라크마를 찾아내는 것처럼 죄인인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친히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랑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그렇게 애타게 찾으시는 잃어버려진 영혼들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 복음 전하는 일에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도 잃어버려진 한 영혼을 생각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