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kqvIxLz5-dc
유대인들의 외식하는 신앙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세가지 경우가 구제와 기도와 금식이었습니다. 이 세가지 가운데 기도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본문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볼 수 있는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의 하루 다섯 번 기도와 한달동안 금식하는 라마단이 있고 불교에도 삼천배, 108배, 오체투지같은 기도가 있고 유교는 제사드리는 가운데 조상신에게 드리는 절 같은 것이 있습니다. 타종교의 기도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기도생활에 대해 너무 특별하게 생각해서 기도는 특별한 분들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기도가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상에 지나지 않는 다른 종교에서도 기도를 정성으로 드리는데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은 더욱 기도생활을 제대로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영이 임하시고 기도의 은혜와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모두 네 번이나 나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르치시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전체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약 800번 나옵니다. 구약에 500번, 신약에 300번, 한데 아버지라는 단어와 하나님을 연결한 곳이 구약은 네군데 밖에 없고 나머지는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단어입니다만 신약성경은 300번 나오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대부분 다 하나님과 연결된 단어라는 것만 봐도 신약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면서 부르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서두에 타종교에도 기도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어떤 종교도 자신이 믿는 신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는 것도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중언부언은 같은 소리를 반복한다는 말인데 말하자면 주문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문에는 인격적인 대화나 인격적인 교통이 전혀 없고 온통 기복적인 의미만 들어있는 신앙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26절부터 나오는 말씀이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오늘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시고 간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운데 채워지는 역사를 경험하는 복된 날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