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맞댄 나라치고 앙숙이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한일입니다. 물론 현 정권이 역대급 친일적이어서 그에 편승한 세력들이 이런 주장에 토를 달 가능성은 있지만 말입니다. 하여튼 국제사회에서는 이웃 특히 국경선이 붙은 이웃은 항상 갈등과 전쟁의 연속선상에 놓인 것이 지구상의 세계사입니다.
최극 북한과 중국 사이가 이런 관계로 진전되지 않을까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북중관계는 이른바 혈맹이라고 합니다. 한국과 미국이 혈맹이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한국전쟁을 놓고 한국과 미국이 한편이었고 북한과 중국이 한편이었습니다. 사실 유엔군이 압록강을 넘어 북진할 때 중공군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한반도는 그때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중공군은 남한에 있어서는 원수같은 존재이지만 북한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혈맹입니다. 자신들을 구해준 세력이라는 말입니다. 그 이후 북중관계는 친분관계를 더해갔고 특히 북한이 핵개발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제재를 받을 때 북한을 뒤에서 여러측면에서 도움을 준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그러니 북한이 중국을 그냥 대수롭게 바라볼 수는 없는 사이입니다. 북한을 중국의 경제적 예속국가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들어 북중간의 마찰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이는 파열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북한의 김정은이 중국을 가리켜 숙적이라고 규정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숙적이라는 용어는 그야말로 함부러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북한에게 숙적은 한국과 미국 일본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혈맹이라던 중국에게 숙적이란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사항이 아닙니다. 중국 국방부가 지난 7월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건군 97주년 리셉션을 열었는데 주중 북한 무관들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는데서도 그런 분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요즘 중국과 아주 껄끄러운 한국의 주중 대사관 무관들이 참석을 했는데 말입니다. 북한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 본토뿐 아니라 해외의 여러 중국 대사관에서 개최된 중국 건군 기념일 행사에도 일절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중국도 맞받아 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정권수립기념일 이른바 9.9절행사에 중국측은 대사를 대신해 대사대리를 보냈습니다. 외교관례상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동안 북중이 혈맹라고 떠들어 온 것에 비하면 너무도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연속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물론 김정은이 중국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은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김정은은 지난 2015년 연초에 미일은 100년 숙적이지만 중국은 5000년 숙적이며 중국 없이도 살아갈 수 있으니 중국에 사소한 양보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적도 있습니다.
북중의 마찰음은 이미 몇달전부터 들려 왔습니다. 지난 4월에 중국 공산당 서열 3위인 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주석인 시진핑과 총리인 리창에 이은 권력 3위 인물입니다. 자오러지는 김정은과 만났지만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어떤 선물 보따리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의 속셈이 무엇인지 탐색하느라 바빴습니다. 이보다 앞서 중국은 2018년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설치한 양국 정상의 기념물을 올들어 없애버렸습니다. 기념 사진 전시실도 문을 닫았습니다. 매우 상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올들어 북러는 대단한 접근을 이뤘습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평양을 방문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양국관계를 그야말로 수직 상승시켰습니다. 양국 정상은 북러관계를 법률적 기초 위에 세우고 전방위적인 협력을 전개하기 위해 정치 군사 경제적 협력에 합의했습니다. 삐걱거리는 북중관계에 비해 급속한 관계 개선입니다.
사실 북한은 예로부터 국경을 마주한 중국과 숱한 전쟁을 치뤘습니다. 옛 고조선부터 고구려 그리고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는 중국과 전쟁이 없는 시대가 없었습니다. 중국과 전쟁의 한복판에는 한반도의 남한보다 북한쪽이 중심에 섰습니다.국경을 오가며 중국과 사생결단의 전쟁을 수도 없이 벌였습니다. 사실 북한에 거주하는 한반도인들의 DNA에는 중국에 대한 처절한 복수의 마음이 깃들여 있을 것입니다. 중국에 끌려간 수많은 여인들 그리고 종으로 잡혀간 한반도인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너무도 강성해진 중국에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는 북한의 처지지만 그래도 중국에게 굽신거리기는 싫은 것이지요. 그런 심적 울분이 김정은을 대표로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당장 중국을 손절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러시아와 관계 복원을 했다고 하지만 중국의 영향을 북한이 무시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인적 교류도 그렇고 물자 교류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요즘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올라가던 중국의 영향력이 상당히 꺾인 모습이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경제와 외교 면에서 중국의 하향곡선이 눈에 보이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러우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해 가는 상황입니다. 러시아도 유럽쪽보다는 아시아쪽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방어를 빌미로 무력으로 러시아를 노리는 서유럽과 그들을 중심으로 한 나토보다는 중국 북한 한국 일본쪽을 더 선호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중국과 일본과는 동상이몽과 오월동주격의 상황이지만 그래도 한반도 즉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과 유대강화를 통해 동북아시아를 이용한 세계 패권을 노리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대선의 향방도 동북아 정세를 흔들 수 있는 요소입니다. 해리스 후보가 당선될 경우 별다른 변동상황이 없겠지만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상당한 기류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북한의 김정은도 내심 트럼프의 당선을 기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푸틴과 시진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추세에서 한국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현 정권에서는 기대도 하지 않지만 동북아시아의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국제정치와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벗도 없는 법이니까요. 아무리 철천지 원수 사이라도 결정적인 계기와 자국의 이득과 연관되면 새로운 동맹이 될 수 있지만 아무리 혈맹이라고 해도 도움의 될 것이 없거나 불편하게 여겨지는 순간 파열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 바로 국제외교와 국제정치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국에게 이득이 안되면 아무리 혈맹이라도 한순간 헤어짐의 경로를 밟습니다. 북한과 중국이 지금 헤어질 결심을 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남녀사이의 헤어질 결심은 서로의 마음의 상처로만 남겠지만 국가간의 헤어질 결심은 중대한 군사적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을 제공할 지도 모릅니다. 북중이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이 한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보다 면밀한 추적 관찰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4년 9월 2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