炳燭之明(병촉지명)
부처라 할지라도 나이를 먹는다.
허물며 보통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어차피 나이를 먹는 것이라면,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아름답게 늙고 싶다.
봄날의 벚꽃도 아름답지만, 가을의 낙엽도 맛이 있다.
나이는 먹지만 늙지 않고, 하루하루 앞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
그런 삶의 방식을 한문에서는
“炳燭之明(병촉지명)”이라 한다.
부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몇 살쯤일까?
晋平公問於師曠(진평공문어사광), 曰(왈), 吾年七十(오십칠십).
欲學(욕학), 恐已暮矣(공이모의).
師曠曰(사광왈), 何不炳燭乎(하불병촉호).
平公曰(평공왈), 安有爲人臣而戱基君乎(안유위인신이희기군호).
師曠曰(사광왈), 盲信安敢戱基君乎(맹신안감희기군호).
臣聞之(신문지), 少而好學(소이호학), 如日出之陽(여일출지양).
壯而好學(장이호학), 如日中之光(여일중지광).
老而好學(노이호학), 如炳燭之明(여병촉지명).
炳燭之明(병촉지명), 孰與昧行乎(숙여매행호).
平公曰(평공왈), 善哉(선재).
- “說苑(설원)” 建本(건본) -
진(晋)나라 평공(平公)(재위 : 기원전 558 - 기원전 532)이
사광(師曠)(맹인 악사였음)에게 말했다.
“내 나이 일흔이니 공부를 하려 해도 이미 저문 듯하구나.”
사광이 말했다.
“왜 촛불을 켜지 않으시옵니까?”
평공이 말했다.
“신하인 주제에 감히 임금을 놀리려는 것이냐?”
사광이 말했다.
“저 같은 맹인이 감히 임금님을 놀릴 리 있사옵니까?
신이 듣기로, ‘젊어서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막 떠오르는 해와 같고,
장년에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중천에 뜬 해와 같으며,
늙어서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저녁에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다’고 했사옵니다.
촛불을 밝히고 가는 것이 어찌 캄캄한 길을 가는 것과 같겠사옵니까?”
평공이 듣고서는 “참으로 좋은 말이다”고 하였다.
일본인의 평균수명이 아직 30세에 달하지 않았던 에도시대에
이노 다다타카(伊能忠敬(1745~1818))는 자식에게 가장의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한 뒤,
50세의 나이에 자신보다 훨씬 어린 다카하시 요시토키(高橋至時)(당시 31세)의 제자가 되어
지도 제작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 후 그는 일본 각지를 걸어 다니며 정밀한 일본지도를 만들어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인생의 미묘한 그림자는 아침이나 대낮의 눈부신 빛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저녁 무렵 등불로 비추어야 비로소 보인다.
실제로 인생론에 관한 명저의 대부분은 저자들이 만년에 쓴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병촉지명”은 아침 해보다 밝다 할 것이다.
인간의 심신은 소년, 장년, 노년으로 크게 변화하지만,
욕망은 죽는 그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한문에는 “君子有三戒(군자유삼계)”라는 말이 있다.
- 자료출처 한문의 생활력<수희재> -
孔子曰(공자왈), 君子有三戒(군자유삼계), 少之時(소지시),
血氣未定(혈기미정), 戒之在色(계지재색).
及基壯也(급기장야), 血氣方剛(혈기방강), 戒之在鬪(계지재투).
及基老也(급기로야), 血氣기衰(혈기기쇠), 戒之在得(계지재득).
- “논어” 季子(계자) 제16 -
공자는 말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젊을 때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색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그야말로 왕성하니
투쟁심을 경계하며,
노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쇠하였으니
소유욕을 경계하라.”
이를 뒤집어 보면,
젊을 때는 성욕,
장년에는 경쟁심,
노년에는 권력욕,
하는 식으로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경계한다는 것은 눌러 없앤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다른 힘으로 전화시켜 활력 넘치는
人生을 사는 것도 戒(계)이다.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다면,
늙음도 의외로 즐거운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