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옷을 입고 삽니다. 잘 사는 사람은 좋은 옷을 입고 가난한 사람은 좋지 못한 옷을 입고 삽니다. 그래서 옷 입은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옷을 입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봐 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입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잘 입으려고 한다. 최초로 옷을 만들어 입은 자가 우리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들이 옷을 만들어 입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음을 깨달은 뒤부터였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 말씀이 아닌 하나님의 원수 마귀의 말을 들어 순종하므로 마귀의 종이 되었으니 이것이 부끄러워서 이를 숨기려고 무화과 나뭇잎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만들어 입은 옷은 시간이 지나면 말라서 부서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아무리 사람이 좋은 옷을 만들어 입는다고 해도 그것은 임시방편입니다. 자기를 온전히 가릴 수는 없습니다. 우선은 가려지는 것 같은데 시간이 좀 지나서 바람이 불면 서서히 마르기 시작하고 문제를 만나고 사건을 만나면 부서지게 되고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수사 하는 자들은 말하기를 “완전범죄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가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가리고 또 가려도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입어도 입은 것이 아닌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는다고 숨었지만 숨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마귀 말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그것도 모자라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아시고 아담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때 아담은 창세기 3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멘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자기가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자기 몸을 가렸지만 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숨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낡아지고 헤어져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한가지 옷이 있습니다. 그 옷은 낡아지지 아니하고 쇠하지 않는 옷입니다. 한번 입으면 영원한 옷입니다. 그 옷이 무엇입니까? 그 옷을 알게 해 주시려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하나님이 두려워서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과 하와를 불러내어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습니다. 그것을 창세기 3장 2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멘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가죽옷은 무화과 나뭇잎보다는 오래갑니다. 바람이 불어도 마르지 않고 부딪쳐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이 옷을 신학자들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사는 사람 되게 해 주겠다는 예표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세상 임금인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 나라에서 마귀가 주는 것으로 살다 보니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3장 10절에서 12절까지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아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의 죄를 옷을 만들어 입고 숨길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해도 다 드러나게 됩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 백 보좌 앞에 나아가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이때도 드러나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지어주신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 옷을 사도바울은 로마서 13장 14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아멘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어야 합니다.
이 옷을 입지 아니하면 마지막 심판 때를 통과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를 죄짓게 한 그 옛 주인과 함께 영원한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옷 입어야 하는데 그 옷은 나 스스로는 입을 수 없습니다. 그 옷은 하나님께서 입혀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옷 입고 살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려고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할례는 마음을 바꾸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겔 36장 2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아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마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할례입니다. 우리는 내 굳은 마음을 제거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야 예수님 마음으로 살 수 있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야 예수님을 나타내는 사람 되고 에수님을 나타내며 사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옷 입고 사는 것이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마음의 할례를 받고 하나님 주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 예수님을 나타내며 사는 사람 되어 마지막 심판 때를 통과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다 받아 누리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