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바쁜 주일을 보냈습니다.
오늘 서울 갑니다.
언제나 주님께 드리는 그 간절한 기도를 오늘도 올려드리오니
주님께서 이루어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저의 부정성과 상처 입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그리고 아버지 품속의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42. 우리의 범죄함과 우리의 반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43. 진노로 자신을 가리시고 우리를 추격하시며 죽이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44. 주께서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사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고
45. 우리를 뭇 나라 가운데에서 쓰레기와 폐물로 삼으셨으므로
46. 우리의 모든 원수들이 우리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
47.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48.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50.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
51.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들을 내 눈으로 보니 내 심령이 상하는도다
52. 나의 원수들이 이유없이 나를 새처럼 사냥하는도다
53. 그들이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54. 물이 내 머리 위로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본문 주해)
40~48절 : ‘나’에서 ‘우리’로 주어가 변화되는 부분이다.
선지자는 ‘우리’가 살 길은 지나온 삶을 돌이켜 살펴보고, 모두 주님께로 돌아가는 길뿐임을 말한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손을 들어서 기도하자고 한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50절) 쉬지 말고 돌아오고 간구하기를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각 가운데서도 현실의 상황은 고난의 연속(42~48절)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하나님께서 용서하시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선지자는 우리가 뭇나라 가운데서 쓰레기와 배설물이 되었다고 탄식한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어 눈물을 흘릴지라도 참아내야 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적들의 공격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음을 계속 아뢴다(46~48).
사나운 맹수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대적들이 달려들고, 원수들의 조롱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고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49~54절 :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쉬지 않고 쏟아집니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립니다. 도성에 사는 모든 여자가 겪은 일을 보니, 내 마음은 슬픔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까닭없이 내 대적이 된 자들이 새를 사냥하듯 나를 쫓습니다. 그들이 나를 산 채로 구덩이에 처넣고, 돌로 막아서 못 나오게 하였습니다. 물이 내 머리 위로 넘쳤으므로,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새번역)
다시 주어가 ‘우리’에서 ‘나’(48절부터)로 바뀐다.
선지자는 자신의 상황을 여러 가지 비유로 이야기한다.
원수들이 이유 없이 자신을 새처럼 사냥하고, 생명을 끊으려고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진다고 한다. 넘치는 물에 잠기듯이 임박한 죽음의 공포를 맛볼 수밖에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묵상)
수년 전에 ‘여호와께 돌아가자’라는 CCM을 처음 듣고 감격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CCM의 가사 일부는 호세아서를 인용한 것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가 똑같이 ‘여호와께 돌아가자’라고 외친다.
이 아픈 현실은 우리들의 범죄함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의 진노가 본심이 아니라는 것(33절)도 알고, 하나님께서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분이라는 것(22절)도 깨달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것을 깨달아졌다고 해서 현실이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은 여전히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이 본문에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50절) 우리의 마음과 손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 부르짖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 해답은 호세아서에서도 이어진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나는 날마다 죄를 짓는 자이니 날마다 주님께로 돌이키길 원한다.
그것은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말씀의 빛에 나를 비추어 보고, 더러워진 내 영혼을 주님의 보혈에 의탁한다.
그리고 주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한다. 그래서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길 기도한다.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세상의 기쁨을 찾아 헤매는 자가 아니라,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의 그 기쁨에 참여하는 자, 주님의 영광을 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앞에서 표현했듯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실제로 주님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그 깨달음은 소용이 없다. 또 주님의 진노가 본심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주님께서 인자와 긍휼이 풍부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주님께로 돌이키는 액션이 없다면 그 깨달음은 진실한 것이 될 수 없다.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호세아 선지자는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외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그 영을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셨다. 그 성령이 임한 자는 날마다 자기 죄를 깨닫고 주께로 돌이키는 자가 된다.
그 성령이 내게도 임하여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을 알아가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께로 돌이키게 하신다.
때때로 죄의 세력의 위협과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 더러움이 내게 더덕이가 되어 굳어지지 않도록 말씀의 빛으로 비추어 주시고, 주님의 보혈로 덮어주시니 날마다 정결하고 새로워지는 것이다.
유일한 살 길은 매일 말씀이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유일한 생명의 길,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제게 활짝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숱한 이론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넘실대는 세상 정신들을 물리치고
순결한 주님의 말씀에 눈을 크게 뜨고 목을 길게 빼길 원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힘써 알아감으로
매일 주님께로 돌이키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