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늘을 담고 있는 세상에 속한 성소 첫언약이 있고 새언약이 있다. 그러면 첫언약부터 살펴보자. 세상에 속한 성소는 첫언약이다. 그런데 이 성소는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신성한 법도를 가지고 있다. 성소에는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며 둘째 휘장 뒤에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곳이라 불리는 지성소가 있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이땅에 있지만 신성한 법도를 가지고 가장 거룩한 곳을 담고 있는 성소를 세우셨다. 그곳이 세상에 속한, 첫언약에 속한 성소이다(히9:1-3).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히9:1-3)
2 지성소를 지키기 위해 천사들을 파송하신 하나님 우리에게는 첫언약이 있고 새언약이 있다. 땅에 속한 성소가 있고 하늘에 속한 성소가 있다. 첫 언약으로 땅에 속한 성소일지라도 신성한 즉 하늘에 속한 법도가 있다. 지성소에 들어가고 싶어 난리였던 이집트 왕 프톨레미는 유대인들을 모함하고 민족을 전멸시키기 위해 코끼리 부대를 준비했지만, 오히려 여호와께서 보내신 두 천사와 전쟁해야 했고 코끼리에게 역으로 공격당하여 완전히 폐배한 이야기가 마카비서에 나온다. 이처럼 땅에 속한 지성소일지라도 그곳을 마음대로 들어가고자 한 왕을 벌하기 위해 천사까지 보내신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성소일지라도 여호와께서 존귀하게 여기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카비3서1:9 그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감사제를 드리며 성소에 합당한 일을 행하였다. 그런 다음 그곳에 들어가 그 탁월함과 아름다움에 감명을 받았다. 10 그는 성전의 탁월한 질서를 놀랍게 여기며 지성소에 들어가고자 마음을 먹었다. 11 그러자 “이곳은 본국 사람과 모든 제사장도 출입하지 못하며 오직 모든 것 위에 뛰어난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일 년에 한 번뿐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왕은 전혀 설득되지 않았다. 12 율법을 낭독한 후에도 그는 마땅히 들어가리라는 마음을 그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이 존귀를 박탈당할지 몰라도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 13 오히려 그는 “왜 모든 이방 신전들은 들어갈 때 나를 막는 자가 없었느냐?”라고 되물었다.마카비3서5:19 두 천사는 군대를 대적하여 그들을 혼란과 공포로 가득하게 하였고 움직이지 못하게 족쇄로 결박했다. 20 심지어 왕도 몸을 떨기 시작했고 자신의 음산한 오만함을 잊었다. 21 짐승들이 갑자기 따라오는 군대를 향해 뒤로 돌아 짓밟고 멸하기 시작했다.
3 땅에 있으나 하늘에 속한 성물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곳에 있는 것은 금향로와 하늘의 법도를 담는 언약궤와 하늘의 음식인 만나와 영원한 제사장의 언약인 싹난 지팡이와 하늘의 법도인 돌판들 그리고 속죄소와 그곳을 덮는 천사들이다. 이 성물들만이 지극히 거룩한 곳에 있을 수 있으며 땅에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들이다. 이처럼 언약궤에 들어있는 계명과 법도와 율례는 이 땅에 속했지만 동시에 하늘에 속한 영원한 언약이다. 두돌판은 큰 계명으로서 모든 율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의 언약도 이 땅에 속했으나 동시에 하늘에 속한 언약이며 속죄도 이 땅에 속했으나 동시에 하늘에 속한 것임을 알 수 있다(히9:4,5).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히9:4,5)
4 첫 장막이 있는 한, 길이 드러나지 않았다 첫장막의 성소는 제사장들이 항상 들어가 예식을 행하는 곳이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둘째 장막인 지성소는 피없이는 결코 들어갈 수 없으며 오직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다. 일반 성도들도 들어갈 수 없고 제사장들도 들어갈 수 없으며 왕조차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한사람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다. 또한 대제사장은 예슈아의 그림자이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은 이 땅에 있는한 결코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히9:6-8).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히9:6-8)
그렇다면 대제사장을 제외한 아무도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법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첫장막이 있는 한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히브리서가 쓰여질 때는 예슈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이다. 예슈아께서 죽으시면서 휘장이 찟어졌으므로 많은 사람이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그말은 맞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왜냐하면 땅의 성소인 첫장막이 아직 서있기 때문이다. 땅의 성소가 서 있는 한 하늘 성소를 통해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예슈아께서 찟으신 휘장은 우리가 부활하여 하늘 성소에 속할때, 새하늘과 새땅이 되었을 때 마침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더이상 땅의 성소인 첫장막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첫장막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법도이다.
성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계21:22,23)
5 첫장막은 현재를 나타낸다 첫장막은 현재를 나타낸다. 율법에 따라 예물을 드리고 희생제물을 드리지만 예배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고 또한 양심도 완벽하게 만들수 없다. 첫장막에 속한 언약은 그저 먹고 마시는 법도이며 여러 정결 예법으로서 육체가 있을 때 행하는 예법이고 세상이 개혁될 때까지 잠시 존재하는 것이다. 즉 육체가 있을 때, 현 세상에서만 행하는 예법이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가 육체를 벗을 때, 하늘과 땅이 새로워질 때 더이상 첫 장막과 육체의 예법은 필요없어진다(히9:9,1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9:9,10)
6 육체의 예법이 필요한 이유 왜 온전하지도 않은 육체의 예법을 주신 것일까? 우리가 지금 육체를 입고 있지만 그날에는 육체를 벗고 영화로운 부활체를 입을 것이다. 그리고 의를 입은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입지 못한 불의한 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마25:46). 다시 말해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마귀의 일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부활은 달라질 것이다(요일3:10). 예슈아께서 주신 온전한 속죄는 육체의 예법을 통해 순종과 거룩함을 이룬 자들에게 온전히 이루어져 영생을 기업으로 받게 할 것이다. 물론 예슈아를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을 때 양심을 씻는 거듭남을 경험한다. 그러나 진정한 거듭남(다시 태어남)은 우리가 죽고 부활할 때 이루어질 것이고 더이상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존재가 될 것이다. 즉 땅의 예법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주어진 훈련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창1:27,28).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요일3:10,11)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25:46)
7 개혁할 때는 언제인가? 어떤 사람은 개혁의 때를 예슈아의 초림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새하늘과 새땅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언제가 진짜 개혁의 때라고 할 수 있을까? 히브리서는 이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즉 육체의 예법이 더이상 필요 없을 때가 개혁의 때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죽고 부활한 새하늘과 새땅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개혁의 때에는 우리가 더이상 땅의 성소에 속해있지 않고 육체의 예법이 필요 없는 하늘 성소에 속해 부활체로 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개혁의 때가 초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거듭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즉 물과 성령을 통해 거듭남이라는 부활을 경험한다(요3:5). 그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눅17:20,21). 그러므로 예슈아의 초림에 성령을 통해 개혁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온전한 구원과 거듭남의 성취는 우리가 죽고 부활할 때 이루어진다. 그땐 거룩한 부활체를 입고 다시 태어나 하늘 성소에 계신 대제사장 예슈아를 통해 영원한 속죄를 입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죄가 생각나지 않고 영원히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존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개혁의 때는 우리가 육체를 벗고 부활하여 새하늘과 새땅에 사는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육체의 예법은 부활체를 입는 개혁의 때까지 주어진 예법임을 알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