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하느님을 아는 길
에제 24,15-24; 마태 19,16-22 /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2024.8.19
오늘 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동족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그분을 알아 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죄임을 깨우쳐 주게 하신 것입니다. 무엇이 생명이고 또 무엇이 죽음인지를 알려주게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옮아감이므로 에제키엘은 자기 아내가 죽었어도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하느님을 모르는 죄를 짓고 사는 이들이 아무리 힘이 세고 눈으로 즐거운 것을 보며 성전에서 제사를 올릴지라도 그 죄 때문에 스러져가면서 한탄하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에서는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는지를 여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는 계명을 잘 지키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서 당신을 따르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이 없었으며 안락한 인생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뜻도 없었으므로,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어제 연중 제20주일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요한 6,51)이시라고 당신 자신의 신원을 밝히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는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계시하신 말씀이고, 또 우리가 참된 생명의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그 자리에서 듣던 유다인들 가운데에서도 이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해서 떠나간 이들도 많았거니와, 그리스도교화된 유럽에서도 근세와 현대에 여러 가지 이유와 배경으로 무신론에 빠진 이들도 수두룩했었습니다. 과학만능주의에 물들거나, 이성만능주의에 휩쓸리거나, 공산주의 또는 본능만능주의 등에 빠진 이들이 지금까지도 하느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고 있습니다. 루터를 추종하는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믿기는 하지만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요한 6,56)이라고 하신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여쭈었던 질문, 즉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란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올바로 믿는 길에 다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사는 것과 가난한 이들과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사상은 근세 이후 유럽에서 발생하여 오늘날까지 만연되고 있는 서구의 무신론 사조들인데,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18세기 말 조선에서도 천주교인들을 ‘사학(邪學)쟁이’라며 박해한 세력은 성리학을 신봉하던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정학(正學)이라고 주장하던 성리학은 중국 송대(宋代)의 유학자 주희(朱熹. 1130~1200)가 공자와 맹자의 옛 문헌을 새롭게 체계화시켜 놓은 ≪사서집주(四書集註)≫에 따라서, 자연의 이치와 이를 본받는 인간의 본성을 수양하고자 하는 학문이었습니다. 나름 고매한 인품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군자를 이상형으로 삼고자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 성리학을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정하고 이에 어긋나는 모든 해석이나 주장, 또 새로운 학문을 모조리 사문난적(斯文亂賊), 즉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으로 몰아 사상적 탄압을 자행했고, 천주교 박해도 그 일환으로 행해졌던 것입니다.
학문을 독단적으로 해석해 놓고 비판을 금지한 것도 문제였으려니와 엄연히 유학의 일파에 불과한 주자의 학문을 종교적으로 숭상하면서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은 더욱 우매한 처사였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이상적 인간이 될 수 있는 신분은 오직 한문과 유학을 배운 선비들뿐이라는 신념 하에서, 나머지 백성을 신분으로 차별한 처사는 더더욱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모두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훈민정음, 즉 한글을 제정한 세종대왕의 뜻과 업적이 오늘날에 와서 더욱 더 돋보이고 빛이 나는 것입니다.
18세기 이후의 조선 사회에서 뜻있는 선비들과, 특히 중인 신분 이하의 백성들과 여성들이 천주교를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야말로 ‘복음’으로 받아들이고, 요원의 불길처럼 민중 속으로 퍼져 나갔던 배경에는 이런 사회적 모순 현상이 있었습니다. 천주교인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서로를 ‘교우’ 즉 믿음의 벗이라고 부르면서 평등 공동체를 이룩했고, 교우촌에 구걸을 하러 오는 외교인이라 하더라도 풍족치 못한 살림일망정 먹을 것을 나누었던 전통을 세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르신 말씀대로 살았던 것이지요. 이러한 이치를 한문과 유학을 배우지 못한 일반 백성도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유학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가 순한글로 ‘주교요지’를 써서 박해시대 내내 교우촌의 신자들이 암송하며 전교할 수 있었던 일도 돋보이고 빛나는 업적이요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런 교우촌의 전통이 하느님을 제대로 믿고 예수님을 올바로 따랐던 믿음의 길입니다.
첫댓글 난세일때 진정한 의인은 드러나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