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 비빔밥 / 주영헌
휴일 아침 아이들의 문제로 아내와 투덕거렸습니다.
집 안에 찬 바람이 부니 속도 같이 횡 합니다.
슬슬 아내의 눈치를 보다가 ‘점심 차릴까’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배꼽시계는 알람처럼 잘도 울린다고. 투덜거리던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엽니다.
열무김치가 맛있게 익었습니다.
큰 그릇에 흰 쌀밥과 열무김치를 넣고 계란 부침과 고추장과 참기름, 오늘 아침 속상한 감정들까지 다 넣어 쓱쓱 비빕니다.
섞여 있지만 섞이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저 모습
비벼지는 열무 비빔밥처럼 내 마음도 빨갛게 익어갑니다.
우리의 삶도 저 열무 비빔밥처럼 맛있게 비벼졌으면 좋겠습니다.
- 『시로여는세상』 2024 가을호 ------------------------------
* 주영헌 시인 1973년 충북 보은 출생, 명지대 영문과 졸업 및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2009년 『시인동네』 등단 시집 『아이의 손톱을 깍아 줄 때가 되었다』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 시 「열무 비빔밥」은 제가 오랜만에 발표한 시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제가 「열무 비빔밥」 이외에 3편의 시를 더 발표했습니다. 4편의 시는 기존에 쓴 시도 있고, 이번에 청탁 일정에 맞춰 새롭게 쓴 시도 있습니다. 시인들이 시를 쓰는 가장 강력한 힘 중의 하나가 ‘마감’이라고 얘기하는데요, 저의 경우를 봐도…, 맞습니다. 확실합니다. 이번 가을호에 소개한 시는 차근차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비빔밥은 밥에 각종 나물을 넣고 고추장 등을 넣어서 비벼 먹는 우리의 음식입니다. 사실 이 비빔밥이라는 것은 특별한 레시피가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집에 있는 재료들을 넣고 비비면 비빔밥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비빔밥의 맛을 한껏 올려주는 몇몇 재료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추장과 참기름입니다. 이 두 가지 재료만 넣고 비벼도 맛이 있으니, 여기에 몇몇 나물만 더해진다면, 누가 비벼도 맛있는 음식이 됩니다.
비빔밥은 은유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이 섞여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섞인다고 해도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섞여 있지만 섞이지 않으면서도 / 조화를 이루는 저 모습’이라는 문장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비빔밥에 있어 가장 중요한 미학이 이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섞이지만, 섞이지 않는 것, 그러나 맛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항상 괜찮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 서로의 개성을 인정해주는 삶, 조금은 삐걱거릴 수 있지만, 조금씩 양보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려고 노력하는 삶이 괜찮은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시에서 얘기한 '섞여 있지만 섞이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렇듯 비빔밥처럼 우리의 삶의 모습도 같이 잘 비벼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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