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여행을 마치고 다음 코스는 우리의 옛 고구려 수도 집안 (중국식발음:지안) 이었다. 아마 집안 이라고 하면 생소하게 들릴수 있겠으나 고구려 수도 국내성 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 할수 있을것이다. 즉 옛 국내성이 지금의 집안시 이다. 집안시에 들어가서 먼저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을 답사 하였다. 흔히 우리는 "광개토대왕"이라고 호칭하나 정식 명칭은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 이라고 비문에 적혀있고 관람장 입구에도 "호태왕비"로 표기되어 있다. 광개토대왕 비석은 해동과 중국을 통털어 천년의 역사를 지닌 제일 오래된 비석으로 세계 문화유산이며 중국정부에서도 5A급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비석은 별도의 비각 건물안에 보존되고 있는데 관람은 되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바깥 비각건물 사진만 찍을수 있어서 약간 아쉬웠으나 문화재 보호 차원이니 이해가 간다. 광개토대왕 비석에는 일부 훼손된 글자도 있지만 그 당시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여 천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겼으니 대단한 기록물이 아닐수 없다 광개토대왕비에서 조금 떨어진곳에는 광개토대왕릉이 있다 멀리서 보니 동산 같으나 돌계단을 올라가니 정상 부근에 석실묘가 존재하고 있었다. 석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조그만 석곽 2개가 나란히 있을뿐 너무 초라하고 외곽분묘는 보수와 관리를 제대로 하지않아 허물어 진곳도 있고 너무 초라하게 보여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우리나라 왕릉들은 깔끔하게 단장 되어있고 보존을 잘하여서 근엄함을 느끼는데 묘소 올라가는 돌계단도 울퉁불퉁하고 곳곳이 훼손되어 있고 관리가 안되어 기분이 상한다. 아무리 남의 나라 왕릉이라고 하여도 입장료는 받아 먹으면서 관리는 너무 허술하게 하여서 안타까왔다. 중국은 자칭 대국이라고 큰소리 치며 한편으로는 동북공정이라 하여 옛동북3성의 우리나라 고조선과 고구려등 역사를 저의나라 역사로 둔갑 시키고 있으면서 광개토대왕비와 왕릉 입장시 입장료는 꼬박꼬박 받으면서 왕릉관리는 왜그리 부실하게 관리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된다. 밴뎅이 소갈 딱지 같은놈들~ 마음속으로 욕이 나온다 우리집앞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는 병자호란때 청태종이 우리나라를 침범하였을때 조선시대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에 피신했다가 내려와서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꿇고 9번 절하고 항복하며 군신관계를 맺으며 세운 치욕의 역사비 일명 "삼전도비"가 있다. 이 비석의 제목은 "청태종공덕비"라고 새겨져 있다. 청태종이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굴복시킨것을 공덕을 베푼것이란 뜻으로 강제로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은 이곳저곳 떠다니며 수난을 겪다가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고 다시는 이런 수모를 겪지 말자는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비각을 세우고 깨끗하게 주위를 단장하여 보존하고 있다. 이걸 보면 우리나라가 훨씬 대인배 답다. 광개토대왕비와 왕릉 관람을 마치고 그 다음은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고구려 왕중 92세까지 가장 오래 살았다는 장수왕릉을 찾았다.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아드님이다. 지금도 92세 까지 살면 오래 살았다고 하는데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천년전에 92세를 살았다면 요즘으로 치면 200세정도 산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장수왕릉은 석물로 피라밋 형태로 조성되어 일명 "동양의 피라밋" 이라고 부른다는데 그 규모는 별로 크지 않았다. 저는 이집트 여행시 피라밋을 직접보고 피라밋 내부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모양은 비슷할지 몰라도 규모나 정교함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원래 장수왕릉도 파손되어 있던것을 새로 보수하여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하며 이 왕릉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장수왕릉 뒤쪽에는 장수왕이 먹던 우물인 "장수정"도 있으며 왕릉 우측 뒷편에는 부장석축묘가 있는데 장수왕 부인묘로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 집안은 고구려 2대 유리명왕 부터 20대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길때 까지 428년간 고구려 수도여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릉 이외에도 많은 유적이나 유물이 있을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남의 나라 땅이니 발굴은 요원 하겠지요~ㅎ 지금 중국의 동북3성 (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의 3분의2 이상이 옛고구려 영토로 이번 여행중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차창밖 넓은 벌판과 백두산 인근의 울창한 삼림을 보면서 옛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여 북방의 넓은 영토를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보존 했으면 백두산도 국토의 거의 중앙부에 위치 하고 있어 전국민이 관람하기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도 펼쳐 보면서 고구려 유적답사를 마치고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중국간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단동을 향하였다.끝
첫댓글 맨 위의 사진은
꽁아가 찍어드린 것이군요~.^♡
해박한 역사적 부연설명이
훌륭하십니다
송암잠실님~♡
오랜 역사를 돌아보며
참 많은 생각과
안타까움이 오버랩되는..
울 나라의 역사적 보물을
남의 나라 땅에서
볼 수 밖에 없는
더구나~초라한!
덕분에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귀한 시간 가졌습니다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꽁아씨가 다녀
가시면서 댓글
주셨군요~
이번 여행에서
만나서
반가 왔어요~
이제 감기는 뚝~
했겠지요~ㅎ
짧은 역사지식
으로 쓴 보잘것
없는 여행기
호평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여행길에도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