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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신춘 무등문예 소설 당선작-고속도로 소나타 /김정호 작가
2015. 01.01. 00:00:00
오전 9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트렁크를 덮고 있는 차체는 이미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 5층부터 낑낑대며 들고 내려온 대형 아이스박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허리 숙여 끌어안았다. 있는 힘껏 들어 올려 트렁크 안에 올린 후, 두 손바닥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미 젖어버린 셔츠와 이마에서 흐른 땀줄기가 턱 끝에서 떨어져 쥐색 섬유 재질 바닥에 타들어가듯 스며들었다. 곧 이어 두 아이가 샌들을 신고 뛰어 내려왔다. 각자의 가방을 받아 트렁크에 실었다. 첫째, 일곱 살 난 아들 녀석이 들고 있던 가방은 물놀이에 필요한 튜브와 물안경 따위가 든 것이었고, 둘째 다섯 살 딸아이가 든 가방은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장난감이었다. 팔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잠시 하늘을 보았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리고 나는 두 아이를 가진 가장이었다.
5층을 세 번 왔다 갔다 했다. 트렁크 안은 바캉스를 위한 4인 가족의 짐들로 가득 찼다. 트렁크를 내려 닫자 10년 된 진주색 소나타 승용차의 로고가 보였다. SONATA. 결혼을 시작할 무렵 샀던 차였다. 그 당시 이 차는 ‘뉴 EF’ 소나타라는 명칭으로 팔렸고, 2000cc 중형차였으니 어디가도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월을 거스를 수 없듯 소나타는 여기저기 상흔을 입었다. 나는 안전운전주의자였기 때문에 큰 사고를 내본 적은 없었다. 아내가 종종 주차 실수로 차를 긁어먹은 적이 있었을 뿐이지만, 알파벳 S자 어디론가 사라져있었고, 곳곳에 칠이 벗겨졌으며, 세차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세차 안 했어! 어제 뭐 한 거야, 도대체!”
아내가 계단을 내려와 소리쳤다. 아내와 나는 대화가 거의 없었지만 아내는 잔소리를 할 땐 거리낌 없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어제 무얼 했을까. 반성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어제 일을 떠올리면 직장의 박상무 얼굴 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치켜 올라간 눈을 가진 박상무가 검지로 안경을 올리면서 나에게 했던 모욕적인 말들……. 회사를 그만 두라고 강요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나는 어제 회사를 그만 둘 것을 결심했다. 물론 아내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이번 여름휴가 중간 눈치를 봐서 말해볼 생각이었다.
“아이스박스에 생수랑 커피 꺼냈어?”
아……. 나는 말없이 트렁크를 다시 열었다. 깊숙이 박혀있는 아이스박스를 꺼내기 위해 짐을 다시 내렸다. 아내가 그런 나를 노려보더니, 도울 생각은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 에어컨이라도 미리 좀 틀어두지! 빨리 와! 시동 걸어! 라는 말이 귀에 박혔다. 아이스박스의 빨간 뚜껑을 열었다. 갖가지 양념과 식재료들이 일회용 비닐 팩과 사각 통에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빈틈하나 없었다. 그 많은 식재료들이 다 들어가 있는데도 그 안은 균형이 똑바로 서 있었다. 땀이 다시 트렁크 바닥을 적셨다.
내비게이션을 강릉 해수욕장에 맞춰 놓고 나의 소나타를 움직였다. 차가 덜덜 거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엄마, 언제 도착해? 가자마자 수영해도 돼?”
“엄마, 모래놀이 먼저 해도 돼?”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아내는 일정을 차분히 설명했다. 도착하면 숙소에 먼저 갈 것이고, 식사를 한 후 바닷가에 갈 거라고. 나에게 말하는 투와는 달리 다정하면서도 정성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얼굴에 썬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는 붉은 립스틱을 칠했다. 첫째가 뒤에서 덥다고 투덜대자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에어컨을 강하게 틀었다. 강한 바람이 흘러나왔지만 쾌쾌한 냄새도 같이 공기 중에 퍼졌다.
“장거리 뛰는데 정비도 안했지? 내가 한 달 전부터 얘기 했어, 안했어?”
한 달 내내 야근한 거 너도 알잖아. 출발하자마자 말다툼을 하기 싫어 입을 닫았다.
“애들 태우고 다니는데,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정말 왜 이렇게 무심해?”
아내는 실내를 둘러보며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부턴가 아내는 나의 소나타를 싫어한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건만, 차 한 대 바꿀 능력이 없다는 거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차를 팔아버릴 생각으로 중고차 시세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 나의 소나타는 고작 15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차가 문제만은 아니었을 거다. 아이가 둘이 되어, 우리 집의 평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아내가 생각했던 결혼 생활, 아내가 그렸던 플랜이 자꾸 어긋나 그 균형에 금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본보기가 되는 것이 이 차였고 아내는 나의 소나타를 미워했다.
“왜 한 차선만 가, 옆에 비었잖아. 끼어들어!”
내 운전스타일도 싫어했다.
“지금 외곽 막히니까 시내로 가.”
“엄마! 나, 게임 해도 돼?”
시내 길로 간다는 게 딴 생각을 하다 외곽순환도로 입구로 들어가 버렸다.
“뭐해, 왜 빠졌어?”
“깜박했네.”
“막힌다니까!”
아내 말대로 외곽순환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한창 피크인 8월 첫째 주였으니까 막힐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러기에 나는 강원도까지 가지는 말자고 했었다. 하지만 아내는 서해는 싫다고 했다. 그리고 휴가 날짜를 이렇게 밖에 잡을 수 없는 나를 원망했다. 직장 생활한지 몇 년짼데 여름휴가 날짜 하나 마음대로 못하냐며 몇 년 전부터 그렇게 짜증을 부렸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차들이 병합 구간에 멈춰있는 걸 보자마자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어휴 정말. 아내는 나에 대한 화를 억누르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는 듯 했다. 아마도 막힐 경우, 어느 경로로 우회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국도 경로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명절이나 여름 휴가철이면 지옥을 맛보게 하는 한국의 고속도로 상황. 막힐 걸 알면서도 나오는 사람들. 우리도 다를 것 없었다. 뭘 위해 여기 멈춰있는 것일까. 바다 풍경? 모래사장? 해수욕? 아내는 선탠도 하고, 모래찜질도 하고 싶다고 했었다. 나는 결국 아내의 모래찜질을 위해 여기 멈춰 있는 것이었다.
영동고속도로. 통행권을 뽑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머릿속은 온통 회사 문제로 가득했다. 박상무가 했던 살벌한 말들이 계속 뇌를 찌르는 듯 했다. 게다가 도로 상황은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었다. 고속도로 진입한 후로 시속 30키로 이상 달리지 못했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던 아이들도 슬슬 지루해 졌는지, 아무렇게나 기대어 누웠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더워! 그냥 에어컨 틀어!”
아내의 짜증스런 말투에 더 이상 못 참겠다 싶었지만 말없이 창문을 닫았다.
“아빠 근데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액션가면 언제 사 줄 거야?”
녀석은 뭐 사달라고 할 때만 말을 건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바다 갔다 오면 바로 사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거짓말…….”
딸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아빠한테 돈이 없고 엄마한테 돈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라디오를 켜고 교통방송을 틀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이나 흘렀지만, 정체는 계속 되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어떻게 여기 있는지 모를 장사꾼들이 모습을 보였다. 예전에 많았던 뻥튀기 장사는 보이지 않았지만, 얼음물과 얼린 캔 커피를 파는 사람들이 보였다. 챙이 넓은 모자에 마스크를 쓴 장사꾼들이 햇볕 아래 보이자 뭔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졌다.
“내년에 이사 가기 힘들겠지?”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아내가 불쑥 말을 건네 왔다.
“힘들겠지.”
“대출이라도 받아 볼까?”
“서울 전세가 얼만데……. 이자 갚을 능력도 없는데.”
“내가 몰라서 그래?”
내년이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아내는 그것 때문에 요즘 혈안이 되어있다. 지금 사는 동네가 마치 위험한 곳인 양 마음에 들지 않아했고, 아이를 조금이라도 좋은 학군에서 학교를 보내기를 원했다.
“어떻게 해 볼 생각은 안하고 맨날 저 딴 소리나 하고 있어. 아휴, 답답해. 길은 왜 이렇게 안 뚫려.”
이 더운 날 열기 가득한 고속도로 시멘트 위에 서 있는 저들이나, 차 안에 갇혀 있는 나나 똑같게 느껴졌다. 숨이 턱 막혔다. 창에 반사되는 빛들이 출렁였고, 속까지 울렁거렸다. 창문을 열고 손짓으로 장사꾼을 불렀다. 얼은 생수를 하나 사서 뚜껑을 열었다.
“물 있는데, 또 뭐 하러 사! 돈도 많아!”
먹던 물은 열기에 이미 다 녹아있었다. 한 번만 더 잔소리를 했다가는, 이 꽝꽝 얼은 생수병으로 머리를 내리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아직 얼어있어 잘 나오지 않는 생수병을 입에 가져다 대고 혀를 날름거렸다.
“답답해! 사람이 어째 저렇게 무심해.”
오른 손에 생수병을 쥐었다가 잠시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보기 싫다는 듯 조수석 창에 눈을 내리 깔았다.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지만, 가만히 생수병을 내려놓았다. 교통방송에서는 정체가 지속될 거라고 지껄였다.
차가 막힐수록 30도가 넘는 기온이 지속될수록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 언제부턴가 자살 충동이 일었었다. 그와 더불어 공황장애 증상도 있었다. 정신과에 갈 용기와 비용이 없어, 비록 인터넷으로 자가진단을 해본 것이 전부였지만 중증 우울증 단계였다. 우울감이 낮밤 할 것 없이 2주 이상 지속될 때는 정말 죽게 될 것 같았다. 고속도로 차 안에 갇힌 나는 두 아이의 아빠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회사에서 무능하다……. 온몸에서 땀이 배출됐다. 집에서도 나는 무능했다. 손, 발, 온몸이 떨려왔다. 그랬다. 무능에도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내 주의를 둘러싼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날 비난하는 느낌이 들었다. 질식할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대로 미쳐버리거나 자제력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 상태로 라면 차가 폭발할 것만 같아, 도피하듯 엑셀을 힘껏 밟았다. 다행히 길은 뚫리기 시작했다.
진짜 고속도로……. 시속 100키로까지 달릴 수 있었다. 소나타의 가쁜 호흡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몰라도 정체는 사라졌다. 아내의 표정도 조금은 편해보였다. 룸미러로 뒷좌석 아이들을 보니 속력의 일정한 흐름에 적응한 듯 곤히 잠들어있었다. 심장의 두근거림도 안정을 취해가고 있었다. 잠시나마 찾아온 평화였다. 배가 고파졌으나 아내에게 뭘 달라고 하진 않았다. 이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문득 계기판을 보니 올해 초부터 계속 말썽이던 제네레이터에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있었다. 불길했지만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를 되뇌며 달렸다. 10분 정도 달렸을까……. 이젠 배터리 쪽에서도 문제가 있다며 신호를 보내왔다. 내가 계속 계기판을 들여다보자 아내가 눈치를 챘다.
“왜 자꾸 계기판에 불이 들어와?”
평소 같았으면 장거리 운행 전에 카센터에 들르곤 했는데, 이번 여행은 가기 싫었고 돈도 없고 해서 수리를 미루고 있었다. 덜커덩. 나의 소나타가 덜커덩 거리는 게 발끝에서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가 핸들 잡은 손이 금세 젖었다.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 여러 번 나누어 밟으며, 차를 갓길 쪽으로 몰았다.
“뭐야! 이 차 왜 이래! 고장이야? 어?”
차를 멈췄다.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시동을 꺼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아내는 혀를 찼다.
“이제 좀 가나 싶었더니, 뭐야 이게!”
엔진룸을 열어보려면 꺼야 할 거 같아서 시동을 끄고 엔진룸 오픈 레버를 당겼다. 투덜거리는 아내를 두고 차에서 내려 엔진룸 쪽으로 갔다. 열어봤지만 솔직히 뭐가 뭔지 알리가 없었다. 배터리 쪽을 살펴봤지만 눈에 띄는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뭐라도 발견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처박고 엔진룸 내부를 꼼꼼히 살폈다. 아내가 뭐라고 소리쳤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도로를 봤더니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쳐갔다. 문득 혹시 모를 2차 사고가 걱정되어 섬뜩해졌다.
트렁크를 열고 아이스박스를 다시 꺼내 안았다. 차 뒤로 30여 미터 걸어가 박스를 놓고 붉은 색 뚜껑을 안전 삼각대 대신해 세워 놓았다. 아내가 창으로 고개를 빼고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그냥, 보험회사에 연락하라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느릿느릿 다시 차로 걸어가 엔진룸을 살폈다. 바닥으로 흐르는 것이 없는지 몸을 눕혀 차 밑을 살폈다. 이상은 없었다. 일어서자 태양이 나에게 초점을 맞춰 내리 꽂는 것 같았다. 덜컹. 갑자기 타들어가 듯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뭐해! 답답하게! 보험회사 연락하라고!!!”
아내는 보험 회사에 연락하고 다시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무시하고 다시 차를 돌며 진지하게 살폈다. 아내의 닦달이 지속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공황장애 증상이 더해갔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죽음이 엄습하듯 숨이 턱 막혀 다시 차에 올라탔다. 안정을 찾기 위해 숨을 모았다 내쉬는 나를 노려보며 아내의 비난조 말들은 계속됐다. 들리지 않았다. 숨을 계속 내쉬며 다시 시동을 걸어봐야 할 것 같아서 떨리는 손으로 차키를 돌렸다. 불길하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돌렸다. 크악. 헛도는 소리가 반복되었다.
“잘한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있으라고! 언제 니가 건든다고 제대로 된 적 있어?”
에어컨은 멈춰 있었고 셔츠가 비 오듯 젖기 시작했다. 한기가 몰려왔다가 사라지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다시 시동을 걸어보았다.
“안 들려? 어? 안 들려! 좀 있으라고 좀 가만히! 전화하라고 몇 번을 얘기했어?”
숨이 막혀 핸들에 시선을 내리깔고 있다가, 아내의 얼굴을 서서히 올려다봤다.
“뭐 다시 얘기해줘, 안 들려 이제 귀까지 먹었니!”
땀에 녹아내린 선크림으로 아내의 얼굴은 흉하게 번들거렸다.
“뭘 봐!”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오른 손을 뻗어 아내의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손 치워!”
순간, 확! 아내의 목을 움켜쥐었다. 양손으로 내 손을 치우려고 하는 아내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아내가 뭐라고 소리쳤으나, 제대로 발음되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 물고 아내를 바라봤다. 힘에 부치자 아내는 발버둥 치며 온몸으로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살기가 올라 왼손까지 동원되었다. 내 숨소리와 아내의 숨소리가 히터를 틀어 논 것처럼 소리를 냈고, 우리는 몸싸움을 벌였다. 난 양손으로 아내의 목을 다시 차지하려 했고, 이를 악물고 겨우 다시 차지하였다. 손가락마디마디까지 힘은 이전보다 더 세게 들어갔다. 아내가 조수석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 저항하려 했지만, 나는 몸을 일으키면서까지 그녀의 목을 누르고 말았다. 아내의 몸이 뒤틀렸다. 창에 얼굴이 처참하게 눌려 일그러졌고, 붉은색 립스틱이 미끄러지면서 자국을 만들었다. 아내가 힘을 빼는 듯싶어 손을 떼자, 머리가 창으로 떨어졌다. 내 심장이 쿵. 소나타 바닥에 떨어진 듯 했다. 여보! 머리를 들어 창에 기대 놓고, 숨을 쉬는지 손을 입과 코에 가져다 대어 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순간 뒷좌석의 아이들을 보았다. 아들이 눈꺼풀을 움직였다. 아들은 눈을 감고는 있었지만 감은 눈을 다시 깜박였다. 식은땀이 흘렀다.
믿기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여보, 일어나……! 아들아, 넌 이 광경을 봤니……?
아내의 한 손은 밖으로 도망가려는 듯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아내를 흔들어 깨워 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른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에서 알림 음이 들렸다. 핸드폰을 살며시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긴급 출동 서비스……. 아내는 답답한 나머지 이미 전화를 한 것이었다. 잠시 후, 사이드미러로 보험회사 차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견인까지 할 수 있는 차가 소나타 앞에 섰다. 차에서 풍채 좋은 남자가 내려, 내 차로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남자는 온몸이 땀으로 젖은 나를 이상하게 보는 듯하더니,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많이 놀라셨죠?”
“네…….”
자동차 배터리는 엔진에 달려 있는 제네레이터에서 전기가 만들어지면 그 전기는 레귤레이터라는 것을 거처 배터리를 충전하게 된다는, 알고 싶지 않은 설명을 들었다. 아내는 창에 머리를 기댄 채 정지 상태였다. 견인을 하겠냐는 말에 뜸을 들였다.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 견인을 하게 되면……. 모르겠다. 머릿속은 그저 텅 비어있었다. 남자는 점프를 대 시동은 걸어주겠지만, 제네레이터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며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가 시선을 빨리 거두기를 애태우면서, 서둘러 가야한다며 시동만 걸어달라고 했다. 남자는 배터리 단자를 열고 점프 선을 연결하며 다시 아내를 쳐다보았다.
“사모님이 많이 피곤 하셨나보네요.”
남자가 시동을 걸고 사라진 것은 채 5분이 되지 않았으나, 몸에 체액이 반쯤 빠져 나간 것 같았다. 에어컨을 다시 틀었다. 자던 아이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이 일어나면 엄마를 찾을 것이다. 그러면 금세 발각 되겠지…….
나는 조수석에서 아내를 끌어내 번쩍 들어 안아, 트렁크에 실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아내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아내를 밀어 넣고 그 앞을 아이스박스로 가렸다. 가려지지 않은 몸은 여행 짐으로 막 덮었다. 차에 다시 올랐고, 내비게이션으로 근처 병원을 검색했다.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딸아이가 깼다.
“엄마, 물…….”
아들도 어느 새 눈을 뜨고 있었다.
“아빠가 줄 게.”
물을 건네 줬다.
“엄마는……?”
아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데려다 주고 왔다는 말도 안 되는 말로 둘러댔다. 룸미러로 아들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아들은 시선을 창밖으로 고정했다. 딸아이는 엄마가 많이 아프냐고 물었다. 많이 아픈 건 아니라고, 좀 쉬면 될 거라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어디가 아픈데? 아들이 물었고, 머리가 아프다고 대답했다. 그럼 언제 와? 아들이 다시 물었고, 내일 데리고 올 거라고 대답했다. 어느 병원에 있는데? 아들이 다시 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손에 땀을 주체할 수 없어 에어컨에 가져다 댔다.
“얘들아, 배고프지? 아빠가 휴게소 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 먹고 싶은 거 다 얘기해.”
“아이스크림!”
딸아이가 대답했다. 아들 녀석은 말이 없었다. 병원으로 맞춰 놓은 내비게이션 설정은 취소해버렸다. 나는 아내를 죽였다. 아들은 날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휴게소에 주차하고 시동을 끄지 않고 내렸다. 누군가 내 차안에 들어올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다시 걸리지 않을까봐 끌 수 가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남자 화장실로 먼저 들어갔다. 딸아이가 좌변기에서 소변을 볼 수 있게 도와주고 나서 아들 옆에서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았다. 아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에게 각각 케첩이 뿌려진 핫바를 하나씩 물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을 더 사기 시작했다. 오징어구이, 호두과자, 통감자구이, 떡볶이, 치킨팝콘……. 아이들은 좋아하면서도 너무 많은 음식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끝이 아니었다. 편의점으로 아이들을 데려가 아이스크림과 과자와 음료수를 고르게 했고, 나도 마구잡이로 주워 담았다. 한 쪽에 기념품과 완구 류가 보이 길래 장난감도 몇 개 주워 담았다. 이상하리만치 걷잡을 수 없는 소비 욕이 일었다. 계산을 하며 눈에 보이는 담배와 라이터를 더 했다.
덜덜. 시동이 걸린 소나타 앞에서 2년 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한 모금에 머리가 핑 돌았다. 병원에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리가 무겁고 담배의 성분이 분해되어, 뇌의 신호가 피부에 그대로 느껴지는 듯 했다.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아이들은 뒤에서 휴게소 음식을 먹으며, 새로 산 새로울 것도 없는 장난감을 뜯어보며 정신이 빠져있었다. 아들 녀석은 유치한 장난감에 관심은 없어 보여도, 오징어를 물어뜯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안심은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던 길을 운전했다.
아내가 죽었다. 엑셀을 더 밟았다. 저 아이들의 아버지는 살인자였다. 속도계가 120까지 올라갔다. 죄책감이 일었고, 핸들을 잡은 손끝에서 아내의 목의 떨림이 다시 느껴졌다. 아내의 목을 잡고 있는 순간, 아내의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과 신음.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쾌감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핸들을 놓고 한 손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바람이 닿았다. 아내와 난 섹스리스 부부였다. 둘째를 가진 이후론 관계를 가진 적이 없었다. 그게 없어도 결혼 생활이 유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부부는 몸소 증명해 보였다.
“아빠, 나 오줌마려.”
아들 녀석이 드디어 말을 걸어왔다. 휴게소에서 출발한지 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아들은 분명 내 옆에서 소변을 봤었다. 계속 사온 음식을 먹고는 있었지만, 오는 내내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뭔가 이상했다.
“급해?”
“어. 쌀 거 같아.”
하는 수 없이 차를 다시 갓길에 세웠다. 역시나 시동은 끄지 않았다. 아들은 서둘러 차에서 내려 차 뒤쪽으로 갔다. 따라서 내려 아들을 살폈다. 아들은 고속도로 방호벽을 보고서서 지퍼를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 피웠다. 아들에게 시선을 거두고 고속도로를 바라봤다.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지나갔고, 눈앞에서 담배연기는 빠르게 사라져 갔다. 이대로 앞으로 걸어간다면, 차에 치어 내 몸은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 죽으나 살인자로 형을 살다 죽으나 똑같을 것이다. 아내가 트렁크에서 걸어 나와 아무 일 없단 듯이 이 여행을 지속했으면 좋겠다. 아니다. 담배를 발로 밟으며 고개를 돌려 아들이 있던 곳을 봤다. 축축한 소변 자국이 벽에 그려져 있을 뿐,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운전석 안을 내려다보니, 어느새 들어온 아들이 뭔가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야, 임마! 뭐하는 거야! 내 목소리가 들리자 아들 녀석은 재빨리 뒷좌석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순간, 덜컥! 하고 트렁크가 입을 살짝 벌렸다. 아들은 뒷좌석 문으로 뛰쳐나가 트렁크로 달려갔고, 나 또한 필사적으로 트렁크 쪽으로 달려갔다. 짧은 거리였지만, 당황한 나머지 미끄러졌다 일어섰다. 아들이 트렁크를 위로 재끼려는 그 순간, 내가 먼저 트렁크를 내리쳤다. 쾅! 하고 닫혔고, 아들은 손이 꺾였는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니?”
숨이 턱 막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들의 손을 살폈다. 상처는 없었다. 트렁크에 찍히거나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아들은 나의 소나타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운전을 해보고 싶어 하기도 했고, 운전석에 앉혀 놓고 이것저것 알려주기도 했었다. 트렁크 여는 방법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아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내 장난감 꺼내면 안 돼?”
어디서 어디까지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가, 아빠가 꺼내 줄게.”
아들은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너 사고 싶다던 게 뭐였지? 액션 가면?”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액션가면.”
아들을 최대한 따스하게 바라보려 애쓰고 있는 나를 느꼈다.
“지금 사러 갈까?”
아들은 한참을 대답하지 않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게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을 뒷좌석에 태웠다. 긴장을 한 탓 인지 다시 소변을 보고 싶었다. 아들이 본 자리에다 그대로 오줌을 분출했다. 물줄기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여전히 등이 뜨거웠다.
내비게이션에 대형마트를 검색하고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잠시 빠져나와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액션가면 세트와 딸아이가 좋아하는 키티 인형을 사 나왔다. 아이들은 출발할 때처럼 들떠있었다.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한 나는 주파수를 돌려, 지루한 교통방송을 음악이 나오는 채널로 바꿨다. 마침 여름과 어울리는 신나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아들은 가면을 쓰고 칼과 총을 들고 포즈를 잡았고 딸아이는 인형 놀이를 시작했다.
해맑은 저 아이들의 아버지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살인자였다. 소나타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듯 있는 힘껏 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엄마를 죽였다는 충격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살인자란 사실을 알리면 안 되는 것일까. 진실을 숨길 순 없겠지……. 과속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140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속력을 줄이지 못했다. 평생 주차위반 딱지 한 장 떼지 않았던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문득 룸미러로 다시 아이들을 보았다. 엄마가 없는 뒷좌석은 음식물이 시트와 바닥이고 너부러져 있었고, 장난감 포장지들로 어지러웠다. 저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면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은 잠시 보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땀이 아닌 물이 눈에서 떨어졌다. 아내가 나를 보며 웃는 얼굴이 스쳐갔다. 결혼 시작부터 삐걱거렸지만, 안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나를 위해 많은 걸 포기했고, 나만 바라보며 살아왔으며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나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죄책감이 섞여 있었다. 살아야 할까…….
나도 모르게 다른 차들을 추월하며 달렸다. 고속도로이라는 것만 인식했을 뿐, 소나타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았고 시간 개념조차 사라져 있었다. 그저 앞만 보고 한참을 달리다가, 문득 내비게이션의 잔여 시간을 봤다. 우리 가족이 출발한지 다섯 시간이 지났고, 앞으로 차가 막히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세 시간을 더 가야한다. 속도를 100까지 줄이면서 현실로 돌아왔다. 꼬르륵 하는 소리가 뱃가죽을 울렸다. 정작 나는 휴게소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호두과자 봉투에 손을 집어넣었다. 식은 호두과자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입 안에 집어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하나가 식도로 내려가기도 전에 다시 두어 개를 집어넣었다. 달콤하면서도 텁텁한 탓에 목이 막혀왔다. 물을 마심으로 위장으로 음식물을 쓸어내리고 나니 계속된 극도의 불안이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았다. 아내가 트렁크에 있을 뿐, 우린 여전히 넷이다. 호두과자를 비우자마자 오징어 다리를 입에 물고, 어금니로 꽉 물어 끊었다. 그래, 살아야 한다.
사체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도무지 답은 나오지도, 나올 리도 없었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을 달렸다. 아이들은 다시 잠에 들었고, 어느새 삶에 대한 의지는 또다시 사라져갔다.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 내가 증발해버린다면, 살인자의 자식이란 오명을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아이들만 남겨두는 것, 그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다시 혼란과 불안감이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이대로 나는 고속도로를 벗어 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앞으로만 달려야했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오늘 아침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치켜 올라간 눈으로 세차를 하지 않았다고 잔소리 하던 아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정비를 하지 않았다고, 차가 고장 났다고, 보험회사에 전화하지 않았다고 날 비난했던 아내. 뭘 보냐며 쏘아붙일 때 그 흉물스런 얼굴…….
아내는 나의 소나타를 싫어했다. 그러더니 결국 트렁크 안에 갇혀버린 것이다. 뭔가 원인과 결과가 들어맞는 것 같았다. 잘못을 한 건 아내였다. 이건 애초에 아내의 잘못이었다. 미안함과 죄책감은 사라지고 억울함만이 남았다. 왜 죽었어. 왜. 저년은 내가 야근하는 사이 아이들을 재워두고 몰래 바람도 피웠을 것이다.
그때 저만치 눈앞에서는 터널이 보였다. 소나타가 아니 내가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조명이 일정한 패턴으로 나를 비췄고,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잠이 들 것만 같았다. 깊고도 슬픈 어둠 속에서…….
“아! 빠! 근데 나 아까 밖에서 아빠가 잠든 엄마를 들고 있는 거 봤는데…….”
느닷없이 딸아이의 목소리였다.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나도 아빠랑 엄마랑 싸우는 거 봤어.”
이번엔 아들. 눈앞이 캄캄했다. 룸미러를 봐도 어두워서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엄마 목을 졸랐어.
섬뜩해져 다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트렁크에 실었지.”
뒤를 돌아 아이들을 보려 애태웠지만, 잘 되지 않았다. 으아악!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고, 발버둥을 쳤다. 때맞춰 소나타는 터널을 빠져나왔고, 나는 8월의 빛을 다시 마주했다. 숨을 고르며, 룸미러를 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곤히 자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
목적지인 강릉 표지판이 보였다. 강원도 억양의 요금소 직원에게 통행료를 지불하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오후 다섯 시 사십 오 분이었다. 아직 밝았다. 해안도로로 접어들었고 아이들은 바다를 보며 신기해했다.
소나타의 바퀴가 무사히 바다가 보이는 펜션의 자갈을 밟았다. 짐은 풀지도 않고 체크인을 한 후 바로 근처 식당으로 가 아이들 밥을 먹였다. 그 사이 나는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아이들을 잠시 바닷가에서 놀게 해주었고, 어두워지자마자 재웠다. 자기 전에 아들은 파워레인저 티라노 킹이란 합체되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고, 나는 당연히 그러리라고 대답했다. 피곤했던지 아이들은 쉽게 잠들어버렸다.
트렁크를 열었다.
아내를 안아 들고 모래사장으로 낑낑대며 걸어갔다. 동트기 전, 칠흑 같은 새벽 무렵이라 사람은 없었다. 깊숙이 땅을 파내고, 아내를 가지런히 눕혔다. 그 위에 모래를 촘촘히 덮었다. 아내의 눈감은 얼굴만 보였다. 아내 옆에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도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바다에 오고 싶다고 했지. 모래찜질 하고 싶다고 했잖아…….
아내는 함께였다. 덜덜. 나의 소나타는 계속 시동이 걸린 채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