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漢陽한양만 가면 된다(?)
온라인상에서 소통을 하다가 책 「조선의 궁술」에서 가장 잘 쏘는 궁체가 “발시후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떨어지는 궁체”라고 했더니, 나온 답변이 다음 글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길은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님께서 공부 하시는 길이 다르더라도 궁극적으로 목적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가지를 色受想行識이라 합니다. 色은 물체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는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識卽是空 空卽是識. 仙射의 길에 옳고 그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내가 가는 길을 남기고 있을뿐...”
“카!” 멋진 말입니다.
글 내용을 보면, 쓰신분이 나이가 지긋하고 공부도 많이 해서 식견이 높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활쏘기 궁체가 엉망인데다가 저리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우리활쏘기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서 별 반응을 안했습니다.
射以觀德사이관덕의 길이 여러 갈래가 있을까요?
우리 활쏘기가 “天道천도에 부합하는 射以觀德”에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로 가도 漢陽에만 가면 된다.” 라는 생각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활을 쏘아 화살을 과녁에 맞추는 방법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쏘아 맞추기야 서양의 활 영국 장궁도 있고, 올림픽활 리커브도 있고, 극단으로 발전한 컴파운드 보우도 있고, 우리활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 전혀 다른 지나의 활도 있고, 또 다른 형식의 일본활 유미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쏘고 숙달되면 쏘아 맞추는 거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만, 리커브를 쏘아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명궁이 된들 그렇게 쏘아 射以觀德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근래 사람의 마음을 혹하게 하는 궁수로서 서양의 Lars Andersen이 있지만 Lars Andersen처럼 쏘아서 射以觀德을 이룰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Lars Andersen의 공력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射以觀德에 기준해서 보면“德者本也요 才也末者라. 덕이 근본이요 재주는 끝자락”이라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활쏘기의 근본 목적이 “天道에 부합하는 射以觀德”에 있기 때문에 射以觀德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射以觀德을 추구한다면 “모로 가도 漢陽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수많은 궁사들이 활을 쏘고 각자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가기는 하는데, 그 방향성이 射以觀德에 있지 않기 때문에 “같은 곳을 가더라도 길은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射以觀德에 이르는 길은 안타깝게도 여러 갈래의 길이 없습니다.
오로지 射以觀德 한길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평생 활을 쏘고도 우리활을 어떻게 쏘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과녁 몇 개 맞추고 마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학자였지만 죽을 때까지 무거운 게 먼저 떨어진다고 알고 죽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죽고 1600년이 지나 갈릴레오가 나와서 무거운 거와 가벼운 게 같이 떨어진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요즘에도 사람들에게 갑자기 물어보면 “무거운거!” 이리 대답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한산이 활판의 ‘갈릴레오’가 될지 모르겠지만, 턱밑살대 게발깍지 일색의 활판에서 우리활쏘기의 본질이 射以觀德에 있음을 밝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칭송받을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책 「조선의 궁술」에서 失傳실전되어 세상에 전해지지 않던 朝鮮鐵箭射法 체계를 복원해 내고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우리 활판에서 긴 가뭄에 단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失傳되었던 朝鮮鐵箭射法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누구나가 다 배우고 익혀서 射以觀德에 이르도록 하는 데는 기나긴 여정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대로 쏘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니, “니만 정답이냐? 내방식도 정답이다.” 이런류의 이야기가 불쑥 불쑥 나옵니다.
왜 射以觀德에 이르는 길이 畏通手외통수냐 하면, 준비 자세부터 발시후 거두기까지 전 과정에 있어서 하나라도 틀어지면 射以觀德이 무너지기 때문에, 삿됨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서 오로지 射以觀德에 이르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발디딤 非正非八비정비팔을 이야기 하는데, 正자도 아니요 八자도 아니게 서면 모조리 非正非八이냐? 하는 물음에 아무도 정답을 이야기 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활쏘기의 근본 목적이 “天道에 부합하는 射以觀德”에 있음을 전제하고 비정비팔을 궁리해 보면, 청교 장언식공의 「正射論」에서 天圓地方천원지방 즉 하늘의 기운이 땅에 이르도록 위에서 아래로 힘쓰기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에, 책 조선의 궁술에서 말하는 궁체중에 높은 거궁으로 시작하여 만작에 이른 후에 발시와 동시에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맹렬히 떨어지게 쏘아야 하며, 이리 쏘아지면 화살이 줌뒤로 떠서 들어와 과녁에 맞게 된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발시후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떨어질 수 있는 발디딤으로 正八자도 아니요 正자도 아닌 발디딤이 非正非八이다.” 이렇게 정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줌손의 흘려잡기 또한 발시후 줌손이 불거름으로 맹렬히 떨어질 수 있게 잡아야 흘려잡기이거늘 막줌을 잡고 비스듬히 잡았다고 흘려잡기라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발디딤을 非正非八로 서지 않고, 줌손을 흘려잡지 않으면, 발시후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떨어질 수가 없는데, 어째서 非正非八로 서지도 않고 줌손을 흘려잡지 않으면서 射以觀德을 이룰 수 있다고, “모로 가도 漢陽만 가면 된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射以觀德을 이루기 위해서, 非正非八로 서서 과녁과 마주한 골반이 돌아가지 않도록 다리에다 힘을 단단히 주고, 불거름을 팽팽히 하고, 가슴은 흉허복실을 유지해야 하며, 줌손은 흘려서 거듯쳐 잡아야 하고, 각지손은 어깨위에 걸머져야 하며, 목덜미를 팽팽히 하여 머리를 하늘로 길게 뽑아서 연직한 자세에서 턱이 죽머리에 바싹 붙고, 앞죽이 둥글고 줌구미가 확실히 엎히게 자세가 갖추어지면, 숨과 기운을 들이마시며 각지손을 턱밑으로 바짝 짜서 맹렬히 발시후에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맹렬히 떨어지게 쏘아져야 제대로 쏜 것이며, 이리 쏘는 것이 쌓이고 쌓여서 내적으로 성숙하면 射以觀德을 이룰 수 있다고 문헌에 밝혀져 있는 것을, “모로 가도 漢陽만가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천도를 어그러뜨리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위에 열거한 궁체 모습에서 처음 비정비팔에서 마지막 발시후, 거두기 동작인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맹렬히 떨어지기까지, 하나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제대로 쏜 활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예기 사의에서 말하길,
“持弓矢審固 然後 可以言中(지궁시심고 연후 가이언중) : 궁시를 제대로(똑바로) 잡은 후에야 맞히는 것을 말할 수 있고
此可以觀德行矣(차가이관덕행의) : 이것으로써 (활쏘는 사람의)덕행을 볼 수 있다(활쏘는 사람의 수행, 수련 정도를 판가름 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저 쏘아서 화살이 과녁에 맞았다고 활쏘기가 완성되었다고, “모로 가도 漢陽만 가면 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틀려도 한참 틀린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