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 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산그늘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
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
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
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
국수 공양
동서울터미널 늦은 포장마차에 들어가
이천원을 시주하고 한그릇의 국수 공양(供養)을 받았다
가다꾸리가 풀어진 국숫발이 지렁이처럼 굵었다
그러나 나는 그 힘으로 심야버스에 몸을 앉히고
천릿길 영(嶺)을 넘어 동해까지 갈 것이다
오늘밤에도 어딘가 가야 하는 거리의 도반(道伴)들이
더운 김 속에 얼굴을 묻고 있다
—시집 『뿔을 적시며』
첫댓글 嗚呼라, <국수 공양>을 감상하다가, 예전에 동서울 터미널에 포장마차에서 강소주 공양받고 강릉 행 무정차 버스를 타던 추억이 그립군요. 그게 한 두 번이 아니었지요. 거기 포장마차 집 중 아주 이쁜 아줌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집이 단골이었거든요. 그러나 이젠 건강상 그 포장집에 눈길 발길 끊었답니다.
얼마전 선생님의 시집"집은 아직 따뜻하다" 와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두권의 시집을 구매해 곱씹어 읽었습니다. '우주에서 천연의 원료를 그냥 퍼다 쓴시' 이상국 선생님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