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의 일곱개의 종
제79회 본부간부회·제6회 도호쿠(東北) 총회
1994년 8월
♧ 희망을 알려라 여명을 알려라
(학회는 7년마다 불가사의한 리듬으로 역사를 새겨 왔다. 이것을 일곱 개의 종이라고 부른다.
도다 회장 서거(1958년 4월 2일) 직후의 5월 3일, 이케다(池田) 참모실장이 일곱 개의 종의 전망을 발표. 장래에 불안을 안고 있던 전 학회원은 눈앞이 밝고 양양하게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제1의 종 1930년 학회창립으로부터 1937년까지의 7년.
제2의 종 마키구치(牧口) 회장의 옥중 서거까지의 7년.
제3의 종 도다 회장 취임까지의 7년.
제4의 종 도다 회장 서거까지의 7년.
제5의 종 이케다(池田) 회장의 지휘 아래 모든 면에서 대발전한 7년.
제6의 종 정본당 건립까지의 7년. 그 동안 750만 세대를 달성.
제7의 종 광포 제2장이 개막. 이케다(池田) 회장의 명예회장취임까지의 7년.
이에 대해 신세기부터 시작되는 제2의 일곱 개의 종(신 일곱개의 종) 은 1966년 5월 3일, 이케다(池田) 회장이 지침으로서 발표. 또한 21세기까지의 전진은 5년마다 구분되어 1978년에 발표되었다.
5자 7자의 묘법 - 묘법유포의 불칙(佛勅)의 교단은 5년·7년의 리듬으로 전진한다.
이러한 구상은 1984년의 시마네 현 기념간부회 에서도 확인되었다>
<화광신문 자료>
♧ 제1의 종 (1930 ~ 1937)
1930.11.18 창가교육학회 창립. <창가교육학체계> 제 1권 발간.
1936.08.13 제1회 하계강습회.(총본사 다이세키사)
♧ 제2의 종 (1937 ~ 1944)
1937.12. 창가교육학회 발족.
1941.07.2 <가치창조> 제1호 발행
1943.07.06 마키구치 회장 ·도다 이사장 체포.
1944.11.18 마키구치 회장 옥사.
♧ 제3의 종 (1944 ~ 1951)
1945.07.03 도다조세이, 도요타마 형무소 출옥.
1946.03. 창가학회로 개칭.
1947.08.24 이케다 다이사쿠 입신
1951.04.20 기관지 <세이쿄신문> 창간.
1951.05.03 도다 제2대회장 취임식.
♧ 제 4의 종 (1951 ~ 1958)
1952.08.27 창가학회로 정식 발족
1955.03.11 오타루 문답 , 미노부 파절.
1957.09.08 원수폭 금지선언
1958.04.02 도다 회장 서거.
♧ 제 5의 종 (1958 ~ 1965)
1958.05.03 제7의 종 구상 발표.
1960.05.03 이케다 다이사쿠, 제3대 회장 취임식.
1960.10.02 이케다 회장 일행, 첫 방미(訪美)
1962.03.03 이케다 회장, 법화강 대강두 임명.
♧ 제 6의 종 (1965 ~ 1972)
1965.01.01 소설 <인간혁명> 연재 개시.
1968.04.08 소카중학 ·고교 제1회 입학식.
1970.01.05 부회장제 실시. 3인의 부회장 탄생.
1971.04.02 소카대학 개학식.
♧ 제7의 종 (1972 ~ 1979)
1972.10.11 정본당 낙성경찬대법요.
1974.05.29 이케다 회장 일행, 첫 방중(訪中)
1975.01.26 제1회 세계평화회의. 이케다 회장, SGI(국제창가학회) 회장으로 취임.
1979.04.24 이케다 회장 용퇴
1979.05.03 이케다 명예회장으로.
@@ 제 2의 일곱개의 종
2001년 5월 3일은 제2의 7개의 종(신 일곱개의 종)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참고로 월드컵의 해 2002년 5월 3일은 선생님. 사모님의 금혼식이 있는 해이기도 합니다.
5·3 기념근행회 1993년 5월...
‘5월 3일’은 창가학회의 ''원점(原點)의 날''이다. 매년 이 날에 모일 수 있는 것은 그 자체가 ‘영원한 동지’의 증명이다. 진열(陳列)에서 떠난 사람은 모일 자격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사람이다.
◇ 영원한 원점 - 은사의 제2대회장 취임의 결의(1951.5.3)
‘나는 몸 전체를 학회 속에 내던져 세상의 고뇌하는 민중 속에 묻겠다’
◇ 그 날부터 50주년의 ‘승리의 산’
자, 2001년 5월 3일로!!
도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몸 전체를 학회 속에 내던져, 세상의 고뇌하는 민중 속에 묻을 것을 결의했던 것이다. 이 결의의 날이 1951년 5월 3일이었던 것이다”라고.
이 결의의 날 - 1951년 5월 3일은 말할 나위도 없이 도다 선생님이 제2대회장에 취임하신 날이다. 이 도다(戶田) 선생님이 출발에서 꼭 50주년을 맞는 것이 서력 2001년 5월 3일이다.
우리들은 전원 그 날을 목표로 하여 나아가고자 한다. 전원이 건강하게 그 날을 맞이하고 싶다.
모두 살아있는 인간이다. 아무쪼록 지칠 때에는 빨리 쉬는 등 총명하게 건강에 유의하여 아주 건강하게 장수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영광의 2001년 5월 3일을 향해 전원이 위풍당당하게 스크럼을 짜고, 명랑하게 전진합시다. 오늘은 감사합니다!(대박수)
불법과 인생과 역사를 말한다(제26회) 1994년 1월
유미타니: 얼마 전 2001년 5월 3일부터 ‘제2의 7개의 종’을, 이란 희망 넘치는 지침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의 미래가 양양하게 열려가는 듯합니다.
SGI회장: 그날까지 흔들림 없는 기초를 나는 확고하게 해 두고 싶습니다. 지금 모든 동지가 ‘확대’와 ‘충실’의 총마무리를 위해 전력을 다해 주시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는 모두 여러분의 시대입니다. ‘제2의 7개의 종’을 다 울리는 것은 2050년 -. 마침 여러분의 인생의 발자취와 거의 일치하게 됩니다.
도다 선생님은 만년에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후사(後事)를 청년에게 부탁할 뿐’. 그 선생님의 심정을 지금 나는 아프리만큼 알 수 있습니다. 나도 또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청년이여, 21세기 여명의 종을 난타(亂打)하라!’라고.
제79회 본부간부회·제6회 도호쿠(東北) 총회
1994년 8월...
우리들도 역시 2001년 5월 3일, 광선유포의 동지를 배반한 자의 대죄를 엄연히 천하에 공표 하고자 한다.
학회본부에 장년부·부인부·청년부의 대표가 엄숙하게 모여, 그 때의 회장을 중심으로 종문의 악려, 학회의 반역자를 써서 그 죄과를 혈루(血淚)로 후세에 남기고자 한다. 영구추방의 증거로 하고자 한다. 이것을 나는 오늘 선언해 두겠다.(대박수)
*** 위의 자료는 김동성님이 11월 4일, 18일 한국SGI홈페이지에 올려 주신 자료입니다. 참고하시라고 퍼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