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의 산
영월 순경산 (1,151.7m)
첩첩 산 조망이 일품인 산
구래리~신대골~광산길~전망바위~정상~구래리
우리나라에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3대 두메산골이 있었다. 함경도의 삼수, 갑산, 전라도의 무주구천동, 강원도의 상동 꼴두바우가 그것이다. 자장법사도 부처의 진신사리를 가지고 갈반지를 찾느라고 아홉 번이나 들락거렸다고 한다. 얼마나 심산유곡이었으면 정오에 두세 시간 빤득 햇볕을 볼 수 있었던 두메였다.
그러다 송강 정철이 예언한 대로 1923년 상동중석광산이 생기면서 그래출장소가 상동읍으로 승격했다. 이로 인해 3797가구에 2만여 명이라는 인구가 좁은 골짜구니에서 바글거리며 호황을 누렸으나, 1992년 중석광산 폐광과 석탄합리화 정책 조치 이후 몰락한 도시가 되어 버렸다.
순경산은 금강석 다음으로 강도가 강하다는 중석을 품고 있는 산이다. 순경산 산행은 주민들이 산채를 채취하던 길과 탄광길로 이어진다. 태백여성산악회의 권영희, 이영숙씨, 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전지역 감시원 장태순씨, 태백 상장산악회 길기순씨와 함께 산행한다. 상동시장버스정류소(꼴두바우←시장→내덕) 저자거리 앞 언덕에 상동천주교회가 있는 신대골이 산행들머리이자 날머리다. 원점회귀산행이다. 본말(본마을, 본구래)에 있던 구래리의 중심이 이 골짜기로 옮겨 오면서 새로운 마을이 생겼다 하여 신대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흉물스런 폐가들이 있는 신대골의 오르막 길을 올라서 일본이깔나무 군락 아래 물탱크 옆을 지나 두릅나무와 도라지를 심어놓은 손바닥만한 비탈밭에 묘들이 있는 계곡 왼편 사면을 따라간다. 작살나무, 머루, 산초나무 아래에는 온통 줄딸기 덩굴이 발에 채인다.
계곡가에는 까칠복숭아나무도 있다. 벌레 먹은 물렁한 복숭아 맛도 별미다. 벌써 봄을 준비하느라 생강나무는 꽃눈을 총총이 부풀리고 있다. 눈을 들어 뒤를 돌아보니 장산(1,408.8m)의 침봉들이 비스듬히 누운 것이 곧 이쪽으로 쓰러질 것만 같다.
너덜지대를 지나 신대골을 막은 폐광터다. 복숭아나무와 두릅나무들이 자주 눈에 띈다. 계속 줄딸기 덩굴이 군락을 이룬 사이러 더터 나아간다. 덩굴에 발목이 걸려 몇번씩 넘어질 뻔도 하며...
옛집터는 덩굴식물들이 뒤덮여 어수선하기만 하다. 울타리였던 자리에는 복숭아나무들이 듬성듬성하다. 덩굴과 억새가 뒤엉킨 쑥대밭을 성큼성큼 빠져 나아간다. 신대골 거의 막장에 이르러서는 계곡과 계곡 사이의 억새가 키를 넘는 작은 지릉을 타고 구불구불 올라서자 광산길이 나타난ㄷ아.
북으로는 움푹 파인 턱골 뒤로 강원랜드 스키장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백운산(1,426.2m)의 육중한 덩치가 막아섰다. 들머리에서 신대골을 거쳐 여기에 이르기까지 1시간35분쯤 걸렸다.
잠시 퍼질러 앉아 휴식을 즐기고는 왼편으로 이어진 광산길을 따라간다. 양켠으로는 오미자덩굴이 숲을 덮었다. 오미자를 따느라 아예 나무를 잘라버린 흔적도 있다. 모퉁이를 돌아 오른편으로 한번 크게 휘어 오르니 광산길을 따른지 10분만에 잣나무, 소나무숲인 안부다. 휴식하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따르던 광산길과 이별하고 왼편 능선 숲길로 든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희미하게 있으나 사방으로 흩어져 났다. 신갈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비교적 나무가 적은 틈새를 따라 요리조리 빠져가며 비탈을 35분쯤 걷자 전망대에 걸맞는 암봉이다. 비행기를 탄듯 발치 아래 골골 구석구석 깊숙한 사타구니까지 눈에 잡힌다.
선경을 뒤로하고 암봉을 우회한다. 낙엽에 덮여 바위와 바위 사이에 입을 벌리고 있는 틈이 보이질 않는다. 발이 빠지지 않게 알파인 스틱으로 쿡쿡 찔러가며 조심조심 더터 나가자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왼편의 주능선을 놓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길을 찾는다. 10여분 후에 신대골 입구의 일본이깔나무 군락지대가 있는 하산길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약 30m를 더 오르자 헬기장 왼편 구석에 삼각점(2004 재설, 태백 440)이 있는 순경산 정상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짱'이다. 북쪽은 두위봉(1465.9m ), 백운산(1426.2m), 정암산(1453.4m), 함백산(1572.9m)으로 이어져 가는 1000m가 훨씬 넘는 고봉들이 우람한 날갯죽지를 편 품새를 본다. 동쪽은 세송마을 협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척인다. 함백산 만항재로 줄달음치는 남쪽 어간에는 장엄하게 솟구친 장산이 이름 그대로 둠산을 이뤘다.
상동읍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고 옥동천과 31번 국도가 골골이 휘감고 아스라이 태백산으로 간다. 동쪽으로 고개를 돌려 더듬으니 선바위산, 가메봉, 매봉산들이 중첩하고 옥동천 건너편으론 백두대간 상의 구룡산 줄기와 삼동산, 맏애산, 태화산까지 어림된다.
하산은 정상에 오를 때 눈여겨보아 두었던 북릉으로 약 30m 내려선 삼거리에서 오른쪽 동릉을 타고 간다. 초장에는 바위틈을 바져 돌아 정남쪽 조망바위 아래에 이르게 된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진달래나무가 촘촘하다. 이끼 낀 바위들도 미끄럽고 낙엽 깔린 급사면도 조심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조릿대 군락을 지나며 경사가 잠시 누그러드는 듯하더니 가지 많은 소나무 아래를 지나자 발이 저절로 미끄럼을 탄다.
구르다시피 하며 정상을 떠난 지 45분쯤에 소나무, 신갈나무에 둘러싸인 왼편은 크고 오른편은 작은 돌담 쌓은 묘가 있다. 묘를 지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일본이깔나무들 아래의 생강나무, 머루, 다래덩굴을 헤쳐가며 10분쯤 내려서니 묘 군집지다. 신대골 입구의 천주교 건물도 내려다보인다.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줄딸기덩굴, 오미자덩굴, 일본낙엽송 아래의 여러 묘를 벗어나니 산행을 시작하였던 신대골 입구다. 유명한 꼴두바우를 보러 발길을 옮긴다. 송강 정철이 꼴두바우(고두암)를 보고 '먼 훗날 이 바위 때운에 심산유곡이 여기에 수만 명의 인파들이 모여 이 바위를 우러러 볼 것' 이라고 예언을 하였다 한다.
*산행길잡이
시장버스정류소-(1시간35분)-광산도로-(1시간15분)-순경산 정상-(1시간)-시장버스정류소(천주교 앞)
순경산은 화강암으로 중석으로 품고 있는 산이다. 순경산 산행은 주민들이 산채를 채취하던 길과 탄광길로 이어진다. 상동시장버스정류소(꼴두바우←시장→내덕) 저자거리 앞 언덕에 상동천주교회가 있는 신대골이 산행들머리이자 날머리이다. 원점회귀산행이다.
순경산 정상 조망이 좋다. 두위봉, 백운산, 정암산, 함백산 등 100m 넘는 봉우리들이 우람한 날개죽지를 편 품새를 감상할 수 있다. 하산은 정상에 오를 때 눈여겨 보아 두었던 북릉으로 약 30m 내려선 삼거리에서 오른쪽 동릉을 타고 간다. 총 산행시간은 4시간 안팎이며, 두메의 산답게 길이 험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교통
중앙고속도로 서제천나들목으로 나와 31번 국도를 타고 영월 상당으로 오면 된다. 버스 이용시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월행 버스를 타면 된다. 1일 13회(07:00~22:00) 운행. 2시간 소요. 영월에서는 1일 26회 운행하는 상동행 버스 이용. 영월시외버스터미널 033-374-2451.
태백을 통해 접근할 경우 동서울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06:00~23:00)를 타고 태백까지 간 다음 상동행 버스(10:30, 13:20, 16:50, 19:00)를 타면 된다. 태백시외버스터미널 033-552-3100, 태백합동콜택시 552-1212.
청량리역에서 영월과 태백을 경유하는 강릉행 열차가 1일 8회(08:00, 10:00, 12:00, 14:00, 17:00, 21:50, 22:40, 23:10) 운행한다. 영월까지 3시간, 태백까지 4시간20분 걸린다. 청량리행 열차의 태백역 출발시간은 00:24, 07:22, 09:04, 10:03, 12:16, 16:16, 17:45이며 영월역 출발시간은 01:46, 08:34, 10:10, 11:13, 13:35, 17:30, 19:04(교통편은 월간<산> 2009년 11월호 참조).
*잘 데와 먹을 데
영월과 태백에 숙박업소가 많다. 영월가든장(373-5794), 그린장(373-8361), 동아파크(373-4248), 대흥식당(373-1776), 육육식당(374-6692), 다슬기마을식당(373-5784), 태백의 고원자연휴양림(550-2849), 맛나분식(552-2806), 분비네해물탕(552-1632), 성류각(552-9020), 태평장여관(552-3840), 동경여관(552-6624), 만장여관(552-4675).
*볼거리
꼴두바우 꼴두바우엔 담긴 전설이 있다. 옛날 구래리에 젊은 부부가 주막을 차리고 노모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손님들이 많아 돈은 벌었으나 한가지 걱적은 자식을 갖지 못한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며느리에게 심한 구박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며느리는 도승을 찾아가 결혼한 지 10여 년인데 아직 자식을 얻지 못했다며 제발 아들 하나만 점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도승은 '꼴두바우에 올라가 석달 열흘 동안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으나 주막에 손님이 끊겨 다시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요' 라고 말했다.
며느리는 자식을 얻고자 하루도 쉬지 않고 꼴두바우에 올라 치성을 드렸다. 시어머니는 손자를 얻을 수 있으나 또 다시 가난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느리에게 밥도 주지 않고 온갖 구박과 학대를 했다. 시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치성을 드리던 며느리는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자식에 대한 한을 품은 채 결국 죽고 말았다.
그후 하늘에서는 이 여인을 대신해 꼴두바우로 하여금 중석을 잉태하게 하여 한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며느리를 불쌍히 여겨 돌로 여자 모양의 꼴두각시를 깎아놓고 제사를 지내 주었는데 꼴두각시는 일제 때 일본 사람들에 의해 파손되었다고 한다.
꼴두바우 아래 성황당에는 '태백산 산신각' 이란 편액이 걸렸다. 대한중석에서 정월대보름날 마을 안녕과 광산사고 방지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으나 폐광으로 지금은 노인회에서 오월단오에 제를 지내고 있다.
글쓴이:김부래 태백주재기자
참조:순경산

(월간<사람과산> 2006년 12월호 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