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페어웰(farewell)>
1. 영화 <페어웰>은 중국인 가정을 배경으로 미국에서 만든 작품이다. 당연히 영화의 초점은 서양과 동양의 사고방식의 차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적 다름에 맞혀진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중국에서 어릴 때 이민 와서 미국에 살고 있는 30세 릴리이다. 미국과 일본에 살고 있는 릴리와 사촌 가족들은 할머니의 폐암 4기 판정에 놀라 중국으로 일시 귀환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할머니에게는 폐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할머니의 죽음을 준비한다.
2. 가족들이 할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방식은 사촌의 이른 결혼식을 여는 것이었다. 사귄지 3개월도 채 안됐지만 할머니와 친지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릴리는 할머니에게 병을 알리지 않는 가족들의 결정에 불만스러워 한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중국에서는 병을 숨기는 것이 오히려 ‘착한 거짓말’이며 할머니 또한 할아버지의 죽음 때 똑같이 행동했다고 거짓을 정당화한다.
3. 영화는 결혼식을 진행하고 할머니의 병을 숨기는 과정 속에서 동양적인 가족관계와 동양적 도덕의 가치를 변호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독립적인 존재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의 일원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때론 개인적인 선호와 관계없이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병을 숨기고 할머니의 마음을 위로하는 가족들의 계획은 완성되어 간다. 할머니는 손자의 결혼식을 주도한다는 마음에서 생의 활기를 찾았으며 몇 십 년만에 다시 합해진 가족들의 귀환에 너무나도 만족한다. 가족들의 거짓말은 절대적으로 할머니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인 것이다.
4. 영화의 주제는 동서양의 가치관 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중국의 변화를 다룬다. 릴리의 가족이 미국과 일본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것처럼, 중국의 젊은이들 또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중국을 떠나려 한다. 중국의 전통적인 풍경은 전 세계의 도시처럼 아파트의 건축물로 변모하고 있다. 물질적인 요구, 실용적인 이유로 달라지고 있는 현대적 전환 속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이 젊은 세대에게 더 나은 삶이 될 것인가를 고민한다. 모두가 갖는 현실적 고민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젊은이들이 떠난 공간에는 할머니와 같이 이동할 수 없는 존재들만이 남아 사라져간다.
5. 영화는 가족들 사이에 오해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그 속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경험하게 한다. 영화는 감독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 에필로그에 진단 후 5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실제의 할머니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사람은 “암이 아니라, 공포 때문에 죽는다.”라는 영화 속 대사를 증명한 것인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건강은 가족들의 거짓말과 그 속에 담긴 진심이 통한 결과일 수도 있다.
6.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영화를 보면 따뜻함과 감동에 직면하기 보다는 불편함이 먼저 나타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삶의 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고, 그 과정에서 집단적 거짓을 감행함으로써 자연스럽고 평범한 삶의 과정을 왜곡하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갈등과 다툼 그리고 너무도 진부하고 익숙한 화해의 과정은 우리의 실제적 모습일지라도 그것이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모습은 감동보다는 인간의 더 큰 진실에 눈을 닫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족들은 어떤 경우에도 사랑하고 화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점을 계몽하는 것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포용할 수밖에 없고 희생할 수밖에 없음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7. 결국 따뜻한 ‘가족 드라마’은 진한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것은 때론 ‘가족’이라는 경계 속에 머물러 외부로의 시선을 닫은 폐쇄적인 감동일 수도 있다.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내부로만 웅축시켜 단단해진 이기적 사회의 완성인 것이다. 최근 표현을 중시하고 사랑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영화 속 내용은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서로를 신뢰하고 응원하면서도 담담함과 가벼움을 지닌 관계로 가족도 진화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 떠들썩하고 요란스러운 가족들의 애정과 소란은 당연하게 미소만 짓게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족들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태도이며, 오히려 그것은 표현되지 않는 담담함 속에서 키워나갈 수 있다. 가족들에 대한 과장되지 않은 신뢰와 냉정함을 지닌 사람만이 가족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선을 외부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비극과 실패가 ‘가족’이라는 공간 속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해피엔딩의 가족드라마를 행복하게만 보기 어려운 내면의 까칠함이 꾸물거린다.
첫댓글 가족이기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