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명법품에 열 가지의 바라밀이 나옵니다. 바라밀이란 도피안(到彼岸)이라 번역되고 있는 바와 같이 중생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사바의 세계에서 열반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십바라밀이란 저 열반의 세계에 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열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종교에서는 성불이나 해탈, 또는 천당이나 구원을 입이 아프게 말하고 있지만 막상 그 실천 방법론에 들어가면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명법품에서는 그 실천 방법을 아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나눔의 실천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 가지고 있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용수 보살이나 법장 스님은 세 가지의 나눔(布施)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나눔, 진리의 말을 전해주는 나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무외(無畏)의 나눔입니다.
이 나눔의 보시행이 구경 성불의 길이며 해탈 열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주기보다는 받기를 좋아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기보다는 그 위에 군림함으로써 만족하려 합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만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느끼는 만족이 있고, 욕망을 비움으로써 얻어지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더 갈구하게 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자기 것을,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이웃과 나누면 나눌수록 기쁨은 두 배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요즘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나눔의 보시가 진정한 보시 바라밀이 되려면 세 가지가 청정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 이세간품에서 열 가지의 나눔(十種布施)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 마지막이 삼종원만청정보시(三種圓滿淸淨布施)입니다. 세 가지가 원만하고 깨끗할 때 그것이 진정한 보시가 된다는 뜻입니다.
세 가지란 나누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과 나누어 주는 물건을 말합니다. 원만하고 깨끗하다는 것은 주면서 아까워하지 않고 받으면서 부담스럽지 않음을 뜻합니다. 주면서 조건이 없고 받으면서 달리 목적을 두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나누어 주면서도 조건이 없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고 받으면서도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기에 진정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가지가 원만하고 청정할 때 우리는 작은 나눔에서도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나눔의 실천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