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 북한강길(강촌역 - 춘천역)
1. ‘북한강길’ 답사의 끝에 이르렀다. 강촌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강촌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던 곳, 과거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구) 경춘선 철도는 레일바이크를 설치하고 거리에는 산악오토바이 대여점이 성업 중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옛 강촌역의 흔적은 강촌이 지녔던 낭만과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강촌교를 지나며 ‘북한강길’의 코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 ‘북한강길’ 코스는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의 여유에 흠뻑 젖으면서 시선은 깊고 아늑한 산을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대상이 지닌 깊이와 넓이의 끝으로 향할수록 우리는 그 속에서 거대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표면의 화려함은 누군가를 유혹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감동은 내면 깊숙이 들어가서 직접적으로 대면했을 때만이 얻을 수 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반복의 고통과 만남의 두려움을 동반할지라도 극복한 자만이 획득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3. 양수역 바로 옆 옛 북한강 철도에서 시작되는 ‘북한강길’은 코스가 평탄하고 방향이 분명한 ‘자전거길’이다. 자전거로 하루 걸리는 코스를 걸어서 천천히 4일간에 나눠서 걷고 있다. 비슷하지만 익숙하고, 오래되었지만 새롭게 만나는 강물과 산과 들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걷는다. 그 속에서 강을 걷는 즐거움을 확인한다. 자연과 하나 된다는 인식을 자연에 대한 약간의 교정을 거쳐 얻게 되는 것이다.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사람과 공존하기 위해서 손질된 자연의 모습이다. 특히 이날 걸은 ‘강촌역’에서 ‘춘천역’ 까지의 길은 북한강 길 중에서 가장 다양하면서도 아름다운 코스였다.
4. 강촌역에서 약 1시간 정도 걸으면 의암댐 바로 옆에 두 개의 길이 갈라진다. 두 길 모두 춘천역을 향하지만 한 쪽은 ‘신매대교’ 쪽으로 가는 약간 먼 길이며, 다른 쪽은 공지천을 통해 가는 길이다. 오늘은 ‘공지천’ 쪽 방향을 선택하였다. 의암호의 풍요로운 모습을 확인하면서 1시간 조금 더 걷자 익숙한 ‘공지천’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의 청춘에 절대적인 추억을 선사했던 ‘공지천’, 지금도 많은 오릿배들이 물가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지천’의 추억은 수많은 에피소드들의 집합이다. 그 중에는 다른 누군가의 소소한 기억들도 있지만, S와 함께 공지천을 걷던 기억은 그 날 마시고 취했던 술과 함께 또렷하게 떠오른다. 장소는 추억과 연결될 때 더욱 애잔한 느낌을 선사한다. 아직도 공지천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디오피아’ 식당은 ‘공지천’을 상징하는 또 다른 랜드마크이다. 그 곳에서 해물볶음밥과 생맥주를 마시며 오래된 기억을 담고 버티고 있는 ‘이디오피아’ 에 대한 감사를 사장에게 전달했다.
5. 북한강길 답사를 마무리하면서 과거에 걸었던 ‘의암호’ 둘레길과 함께 전체적인 코스가 이제 하나로 연결되었다. 우리나라 어떤 길보다 여유롭고 아름답고 편안한 길이다. 다음 번에는 강촌역에서 출발하여 ‘신매대교’ 쪽으로 이동하여 ‘공지천’ ‘이디오피아’에서 조금 취하게 술을 마시고 싶다. 그리고 느긋하게 공지천의 밤하늘과 그 속을 떠도는 사람들의 흔적을 바라보려 한다. 술에 취해 운전할 수 없다면 그대로 춘천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된다. 시간의 구속도 계획의 까다로움도 없이 북한강과 의암호길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혼자서, 혹은 다른 사람과, 그것은 상관없다. 어떤 형태도 이 길이 주는 매력을 손상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길은 그저 걷는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것이며,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제 춘천도 점점 익숙해져가는 느낌이다.
6. 이 날은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동안 더 걸은 후, 춘천역에서 기차로 강촌역으로 돌아왔다. ‘강촌역’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떤 역보다 깊고 풍부하다. 넓은 역 광장의 여유와 함께 간혹 지나는 사람들만 보이는 고적함이 좋다.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마신다. 커피와 풍경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최근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길을 고르고 있는데, ‘강촌역’은 역이 아닌 역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곳으로 선정하고 싶다. 밤은 천천히 내려오며 어둠이 공간을 지배한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그저 견뎌내는 것인지, 아니면 의미를 찾는 것인지, 대답하지 않는다. 오늘의 ‘걷기’도 그것을 찾는 과정임을, 쉽게 대답을 주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오늘은 다만 ‘강촌역’ 밤 풍경을 즐기고 싶다.
첫댓글 이름도 산뜻한 '강촌'과
가까운듯 친숙한 '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