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골짜기의 소쩍새는 밤낮이 없는가 보다.
낮에도 "소쩍! 소쩍!" 밤에는 더 구슬프게 "소~오~쩍!"
무슨 애닯은 사연이 그리 많기에 밤잠조차 잊고 애간장 녹이듯 울어애는고.
엊그제 곡우가 지났다. 곡우날 비가 오면 한 해 곡식이 잘 될 것이라고 했는데
올해는 황사비와 미세먼지가 비를 대신했다. 며칠 째 앞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했다.
낮에는 여름날씨처럼 기온이 올라가고 새벽녁에는 쌀쌀하게 춥고 서리가 내렸다.
이상기온이 한 보름 째 계속되니 싹이 터 오르던 감자순과 강낭콩 새싹이 시커멓게 타 들기를 수차례 번복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밭에 나가 애처롭게 살펴보는 내마음도 덩달아 멍이 들었다.
하지만 생명력이 대단한지 아니면 땅의 여신이 도와준 건지 그래도 모질게 버텨서 이제 앞가림을 할 정도로 성장했다.
농사짓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요, 땅과 하늘을 믿고 동고동락하며 사는 것이다.
정성을 다해 씨를 파종한 후 하늘을 쳐다봐야 되고 일기예보에 민감해져 온 신경을 다 쓴다.
알맞은 온도와 바람이 도와 주기를 기다리며 내몸 같이 작물을 돌봐야 곡식이 잘 자란다.
농심이 곧 천심이란 말은 때(철)를 알고 기다릴 줄아는 인내와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일게다.
애를 먹고 심어놓은 작물이 싹도 피기 전에 타들어 가면 속이 답답한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렇게 화창한 4월에 웬 서리가 내리는가 원망도 해보지만 알고보면 월력(달력)은 4월이다.
윤달이 들어있어 아직은 절기상 늦겨울인 음력 2월인 셈이다.
옛부터 절기는 속일 수 없고 모든 자연현상은 텃수대로 간다고 했던 같다.
그래도 지금은 예상을 뒤엎는 불확실성 시대이고 기온은 들쑥날쑥 지 맘대로다.
순차적으로 피어나던 봄꽃이 개화시기를 잊었는지
아니면 잃어버렸는지 올해는 한 열흘만에 확 피어버린 것 같다.
인간사는 물론 세상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안드는지 하늘도 좀 노하신 게 아닐까.
세상사 누가 뭐라해도 꽃피고 새가 우는 봄은 봄인갑다.
주위엔 온통 꽃대궐이요, 새소리, 물소리에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니런가!
꽃잎 진 앞마당의 민들레는 불꽃놀이 마냥 둥굴게 부풀었다가 홀씨되어 바람에 날리면서
때늦은 봄편지를 전한다고 분주하다.
할미꽃은 흰수염만 무성한 이빠진 꼬부랑 노인네가 되어 허리가 더욱 구부러진 모습이고,
목단은 곧 피어 오를 징조인지 가슴이 팡팡하게 부풀어 보는이로 하여금 마음설레게 한다.
찔레와 장미도 호시탐탐 옆에서 지켜보며 꽃피울 때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 같이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는 혼탁스럽고 각박한 세상에 우리집에 웃을 일이 생겼다.
어제오늘 갑자기 새 식구가 열 세마리 늘어 작은 경사가 났다. 집안 거실에서 병아리가 부화되었다.
작년에는 어미닭이 직접 알을 품어 일곱마리 새끼를 얻었는데,
스무 하루 동안 모이나 물도 먹지 않고 사생결단으로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하는 것을 지켜봤다.
깃털이 거의 다 빠질 정도로 기진맥진해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했었다.
올해는 아예 부화기를 사용하여 유정란 열 다섯개를 넣었는데 열 세마리가 태어났다.
웃을 일이 없는 세상에 갓 태어난 새끼 병아리를 쳐다보노라면 저절로 아빠 미소가 번진다.
태어난 지 이틀 만인데도 "뽕뽕아!" 부르면 쪼르르 날개짓으로 달려외 손바닥에 폴짝 뛰어올라 온갖 재주를 부린다.
앙징맞고 귀엽다. 생명의 신비와 신기함를 느낄수 있는 경외감이라 할까.
열 이레 동안 매일 서너차례 계란의 위치를 바꿔주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주면서 정말 태어날 수 있을까?
조바심과 호기심으로 내가 어미닭이 되어 알을 품듯 지극한 정성을 다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스무 하루날 되는 날, TV를 보다가 무슨 소리가 나기에 혹시나 하고 부화기 안을 들여다보니
한 마리가 껍질을 깨고 태어나 삐약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하루만에 열 세마리가 다 태어났다.
거실에는 때아닌 병아리 판이다. 오늘이 3일 째인데 제법 병아리 티가 난다.
또랑또랑한 눈망울과 다람쥐같은 줄무늬색이 여섯마리,병아리 고유색인 노란놈이 두마리,
오골계 계통의 검고 흰 놈이 다섯마리이다. 아내는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듬뿍 애정을 표하며 더 좋아라 한다.
모이와 물 주는 것을 도맡아 자처하여 혹시나 추울까봐 거실에 보일러 불을 때고,
헌옷을 자리에 깔아주는 등 애기를 키우듯 했다.
알을 깨어 태어나는 순간과 모이찾아 먹는 모습과 작은 부리로 물을 찍어 먹고는
고개를 하늘로 쳐든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손녀손자들과 지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덤이었다.
얼굴엔 순진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 간 느낌이다.
숨죽었던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온 사방엔 푸르름으로 가득찼다.
이맘 때 쯤이면 목월의 시 '4월의 노래'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봄날은 또 이렇게 우리곁을 스쳐가네!
속절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