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범과 종범 : 조선의 명판결
조선시대 살인사건 판결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주범과 종범을 구별하여 처벌한 사실이다. 살인은 목숨으로 보상한다는 원칙에 근거하여 살인범은 반드시 사형에 처해졌는데, 여러 사람이 구타하거나 혹은 두 사람 이상이 계획 살인한 경우 이들 중 한 사람만 주범으로 지목해 처벌했다. 따라서 사건 조사과정에서 주범과 종범을 잘못 판단할 경우 죽어야 할 범인이 살아나고 살아야 할 자가 죽을 수도 있었다.
1783년 10월 황해도 해주의 옥졸 최악재는 새로 들어온 죄수 박해득이 옥지기에게 의례히 지불하는 돈을 내지 않자 갇혀 있던 죄수 이종봉을 시켜 결박하고 때리게 하여 20여일 만에 죽게 하였다. 이종봉은 살인을 저지르고 잡혀온 자로 당시 죄인장무를 맡고 있었다. 죄인장무란 죄수들 가운데 일종의 반장 역할을 하는 자로, 실상은 감옥의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옥졸 최악재가 사사로이 한 사람을 지목하여 다른 죄수들의 돈을 갈취하여 바치도록 한데 불과했다.
황해도의 죄수 박해득이 사망하다
황해도 감사는 해당 사건을 조사한 사또들의 검안(살인사건 보고서)을 정리하여 중앙에 올려 보냈다. 조선시대에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관할 군현의 사또가 1차 조사를 담당하고(초검), 이후 인근 지역의 사또가 2차 조사(복검)를 시행하였다. 각각의 검안은 도 관찰사에게 보고되었고, 관찰사는 이를 수합하여 자신의 의견을 첨부한 후 중앙의 형조에 보고하였다.
“처음부터 최악재는 이종봉으로 하여금 박해득을 차꼬에 묶고 새끼줄로 온 몸을 함께 묶도록 시킨 자였다. 곱사등이처럼 몸이 구부러진 박해득은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마침내 담벼락으로 넘어지면서 형틀에 왼쪽 턱을 부딪쳐 살이 터지고 피가 나는 상처를 입었다.
후유증으로 마침내 20여일 만에 사망하였다. 최악재는 밖에서 지시하고, 이종봉은 안에서 시키는 대로 했으니, 새끼로 온 몸을 묶은 자는 비록 이종봉이나 처음부터 지휘한 자는 최악재였다. 이종봉은 죄수의 몸으로 목숨이 옥졸에게 달려있었으므로 옥졸의 뜻을 따르고 감히 어기지 못했을 것이다. 최악재는 억세고 흉악한 놈으로서 앞뒤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오직 돈을 우려낼 일을 능사로 삼았다. 법에 의하면 위협하고 사주하여 사람을 때려 죽거나 다치게 한 경우, 사주한 자를 주범으로 삼고 범행한 자를 종범으로 삼는다고 하였으니, 최악재를 주범으로 기록하고, 이종봉을 종범으로 보고한다.”
형조의 반박과 정조의 판단
황해도의 보고서를 받아 본 형조의 관리들은 왕에게 보고하기 전에 일단 본 사건을 어떻게 판단할지 논의하였다. 그리고 황해도 감사의 판단은 악행의 원인을 깊이 따지는데서 나온 의논인 듯하지만, 법의 의미를 잘 헤아려보면, 정범(주범)은 곧 범죄를 저지른 자에 해당하므로 주모자가 비록 최악재일지라도 박해득이 목숨을 잃게 된 것은 결국 이종봉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형조는 이종봉을 주범으로 최악재를 종범으로 결정하여 왕에게 보고하였다.
조선시대 모든 살인사건은 왕의 최종 결재를 받았다. 왕은 범인을 사형에 처할지 혹은 감형할지 또는 재조사를 시행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판단자였다. 당시 사건의 경위를 보고받은 정조는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황해도의 장계는 최악재를 주범으로 삼았고, 형조는 이종봉을 주범이라 했다. 황해도는 위협한 자를 고려하였고, 형조는 범행한 사실을 중시하였다. 모두 예리한 관찰과 법조문을 세밀하게 조사하여 결정하였으나, 양자를 비교해 보았을 때 형조의 판단이 조금 나은 듯하다.
그러나 본 옥사를 보고받고 특히 만번 놀랍고 가슴 아픈 일이 있으니, 주범이니 종범이니 중죄니 가벼운 죄니를 논할 겨를이 없다. 최악재는 옥졸이고 이종봉은 죄수이다. 어찌 감옥의 죄수 신분으로 감히 장무라 일컫고, 옥졸로서 멋대로 지휘권을 행사하여 새로 들어오는 죄수에게 수십 냥의 재물을 뜯어내며, 혹은 감옥의 창살 너머로 공갈하고 혹은 머리에 형틀을 씌우고 결박하여 잡아 묶는 등 오만 가지의 고초와 아픔을 모두 겪게 하는가? 두 죄수 모두에게 사형 죄를 내릴 만하다.”
궁궐에서 사정을 모른다고 생각마라
정조는 당시 옥졸들이 죄수들을 협박하고 돈을 갈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판단하여 이후 혹시라도 옥졸이 죄수들을 괴롭히거나 돈을 뜯어내다가 발각되면 당사자를 엄중 처벌함은 물론 사또와 관찰사 등 관리들도 모두 다스리겠다고 경고하였다.
“해주 지방이 이 정도라면 서울이나 지방의 죄수들이 폭행과 돈 요구에 시달리고 있음을 익히 알만하다. 단지 죽거나 다치는 일이 없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니, 이러한 일을 심상히 지나친다면 훗날의 폐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뒤로 혹시라도 옛 버릇을 다시 되풀이하는 자가 있으면 옥졸은 물론 해당 관원을 중벌로 다스릴 것이며, 조심시키지 않은 관찰사 역시 별도로 논죄하여 벌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뜻으로 공문서를 작성하여 전국에 알리도록 하라. 내가 구중궁궐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고 말하지 말라. 나에게는 암행어사가 있어 다 살필 수가 있다.”
가볍게 혹은 무겁게 벌하기
후일 다산은 본 사건의 원인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주범과 종범을 구별하였다. “박해득이 몸을 부딪친 것은 차꼬이고, 차꼬에 부딪치게 된 것은 넘어졌기 때문이다. 또 넘어지게 된 것은 차꼬를 몸에 묶었기 때문이며, 차꼬를 몸에 묶은 자는 이종봉이다.
그런데 이종봉이란 자는 최악재의 사주를 받은 경우이므로 그 근본을 따져 심문하고 조사하다 보면 결국 최악재가 주범이고 이종봉이 종범임이 법례로 보아 분명하다.
따라서 이종봉보다는 최악재를 주범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종봉의 죄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어찌 높은 지위에 있는 관리나 임금이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사건들을 모두 알 수 있겠는가? 감옥 안의 오래된 죄수는 악독한 짓이 옥졸보다 심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종봉을 그저 따르기만 한 죄로 판결할 수 없다. 최악재는 문 밖에서 명령했고, 이종봉은 위협을 핑계 삼아 혹독한 짓을 했으니 그 본심의 흉악함을 헤아려 보면 최악재가 더 깊고 이종봉은 얕다고 할 수 없다.”
일찍이 다산은 법을 도덕 교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했다. 죄인을 무겁게 처벌할 수 있다면 가능한 무겁게 처벌하고, 가볍게 처벌할 수 있다면 가능한 가볍게 처벌해야 도덕의 근본이 선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정상참작으로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경우라면 가능한 가볍게 처벌하지만, 이와 반대로 엄하게 처벌하여 죄 값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면 최대한 무겁게 처벌해야 법의 기강이 바로 서고 도덕 교화가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에 다산은 최악재를 주범으로 엄하게 처벌하고, 이종봉은 가능한 무겁게 처벌함으로써 질서를 다 잡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법의 집행은 정확함을 생명으로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중요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