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과 혼 생명과 자아에 대하여(4-4)/ † 죄와 자아
<죄와 자아>
여기서 우리는 마땅히 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영 단번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날마다”(눅9:23)라는 말이 “제 십자가를 지고”라는 말 앞에 추가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십자가는 계속적으로 끊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죄에 대해 죽는 십자가는 이미 이루어진 사실로서 다만 시인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혼 생명을 잃는 것에 관한 십자가는 구원의 또 다른 방면이다. 이것은 완성된 일이 아니라 날마다 이루고 체험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혼을 영원히 잃지 않는다거나 점진적으로 잃어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십자가의 혼 생명에 관한 방면과 죄에 대한 방면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죄에 대해 죽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것이고, 그분이 죽으실 때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지만, 혼 생명을 잃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기로 작정함으로 그것을 상실되게 한다는 것이다.
혼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은 영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롬6:6)의 위치에 서 있기만 하면 즉시 구원받을 수 있고 더 이상 그 능력에 의해 억압을 당하거나 종노릇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한 순간에 뿌리 뽑는 온전한 승리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타고난 생명인 혼 생명을 잃는 것은 한단계식 승리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깊이 찌르면 찌를수록 십자가는 더욱 깊이 역사하고, 성령께서도 영의 생명을 더 자라게 하며, 주 예수님과 더욱 연합하게 한다. 특히 믿는 이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혼 생명은 부인할 수 없고, 오직 자기가 아는 자아 생명의 그 부분만을 부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자기의 혼 생명의 모든 부분을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계시가 많으면 많을수록 십자가의 역사는 더욱 깊어진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날마다”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기 자신을 아는 길은 바로 십자가의 더 많은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16:24)."
(1) 많은 믿는 이들이 죄와 자아(자신)를 혼돈한다. 로마서 6장 11절을 체험한 자들은 당신이 죄를 이겼을지라도 아직 자아를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생명 안에서 성숙한 자들의 죄에 대한 승리는 쉬운 반면에 자아에 대한 승리는 매우 어렵다. 마태복음 16장 22-27절 사이에 세 용어가 서로 관련되고 있다. 곧 '생각' '자신' '목숨'이다.
우리 생각은 우리 자신(자아)의 표현이고, 우리의 자아(자신)는 혼 생명(목숨)의 체현이다. 우리의 혼 생명(목숨)은 자아(자신) 안에서 체현되고 자아(자신)를 통하여 살아 나타난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의 생각과 사고와 관념과 의견을 통하여 표현된다. 우리가 생각을 하나님의 일에 두지 않고 사람의 일을 둘 때(마16:23), 우리의 생각은 활동하고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붙잡는다.
자아는 우리 자신(ego)이며, 옛사람의 인격이며 혼 생명이다. 왜 우리는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말하는가? 이는 우리의 영적 생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자아가 죽었다는 말은 자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은 이제부터 자아가 하나님께 복종할 것이고, 자아의 좋아함과 싫어함을 허락치 않고, 그 대신에 자아의 사상과 활동과 함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고 끝내기 위해 십자가를 허락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아는 혼 생명의 체현이며 생각, 감정, 의지를 포함한다. 또 다른 말로 자아는 혼 생명의 엑기스이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는 것은 더 이상 자아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며,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주의 영, 곧 성령으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허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가 죽지 않는 한, 우리는 성령께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분명히 말한다(갈2:20). 그러므로 자아의 십자가의 못박힘은 자아의 근절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자아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주님으로 하여금 주인이 되시도록 허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십자가의 목표는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사람의(옛사람의) 종결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은 이미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끝났다(갈2:20; 롬6:6).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과 함께 유기적으로 연합된 후, 그들은 자신의 옛사람을 십자가의 끝냄 안에 계속 둔 채 십자가 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롬6:3: 골2:20).
이것이 그들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믿는 이들은 그들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린다.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우리가 십자가 위에 머물러 우리 옛사람을 십자가의 종결안에 계속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이미 그분과 함께 유기적으로 연합되었다(고전1:30). 할렐루야!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연합됨으로 인하여, 우리는 확실히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에 참여할 수 있다. 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 곧 이 종결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릴 수 있다.
(3)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16:25)." 그러므로 자기 목숨을 구한다는 말은(즉 혼 생명을 구원한다는 의미) 기꺼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는 것이고, 목숨을 잃어버린다는 의미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구원과 멸망과는 관련이 없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접촉하는 것은 우리의 몸이지만, 그 가운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혼 생명이다. 혼의 요구가 가장 바라는 것은 인간적인 만족이다. 이미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이 만약 자기의 목숨(혼)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면(세상적인 즐거움과 만족에 머문다면), 천국에서의 그의 혼은 반드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