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 지음, 글항아리, 2021년.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
은행 감시원으로 일하는 강지선씨는 매달 세후 132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은행에서는 경비원 인건비로 매달 240만 원씩 용역업체에 지불했다. 매달 100만 원쯤 되는 돈을 용역업체가 떼어갔다.
고(故) 김용균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중급 숙련 기술자였던 용균씨 몫으로 원청이 하청에 지급한 직접노무비는 522만 원이었다. 직접노무비는 용역업체 운영비 등이 포함돼 있지 않은, 100%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순수 인건비다.
하지만 2018년 11월 그의 마지막 월급명세서에는 211만 7427원뿐이었다. 311만 원이 사라졌다. 용균씨에게 이 돈만 주기로 근로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 착취의 배제)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
이 조항에 의하면 용역업체들은 영리상의 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여 이익을 취득하고 있기 때문에 법을 어기고 있다. 하지만 노동 법률 전문가 권영국 변호사는 불법은 아니라고 한다. “법적으로는 근로계약을 어떻게 체결했는지에 따라 임금이 결정돼요. 용역업체가 최저임금만 위반하지 않았으면 법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없어요.” 용역업체가 노동자에게 얼마를 떼어먹든 최저임금만 지키면 중간착취가 합법적이라는 의미이다.
주로 고령의 경비원들이 종사하는 아파트의 경우 노동력 착취로 용역업체가 남기는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한 용역업체가 1000명, 1500명씩 고용한 용역업체가 많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나이가 많아 언제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다달이 당하는 용역업체의 착취, 주민들의 갑질까지 견뎌야 한다.
“혹시 월급은 얼마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묻는 것도, 대답을 듣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14년 차 철도 역무원 이00씨의 2020년 8월 월급 명세서]
지급총액 : 1,935,460원. 공제총액 : 237,010원. 차감지급액 : 1,698,450원
*공제내역 : 국민연금 : 94,630원. 건강보험 : 78,530원. 고용보험 : 14,680원.
노동조합비 : 31,87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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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공허하고, 오가는 억대의 뇌물이 실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