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문득 한동안 심취했던 영적 편안함보다
의지를 가지고 절절함의 의념 따라 감내하고 당해
내려는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부와 영달과 낭패 그리고 고난과 고뇌에 대하
여 의연함을 유지하려는 강인한 연마가 결국 중요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영적 수련을 위해서도
고행이 필요하다고 한다 절제 자체가 고행이 아닌가
왜 의지의 중요성을 생각했냐하면 절감하는 현실에서
매순간 부딪는 상황에 들어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도
혼란하거나 불안하거나 근심될 것이다 그렇게 편안하기만
한 시간들이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아람의
완성된 인격이란 지난한 것이고 늘 불안전하고 일탈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삶의 상태가 아닌가 이를 너무 초월적으로
벗어나려는 것은 환상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음의 편안을 위해 우리는 공부하기도하고
수련 수도 하기도하고 기도하기도 한다
철학 학문 종교가 다 그런 때문이다
그러나 다소 혹은 지극히 편안하지 못한 것이
일반적 모습이라면 이 자체를 나의 정상상태로
받아들이고 회피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하다
한두마디 명구나 격언으로
혹은 경전의 말씀만으로 그 편안함을 얻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오래 경험해서다
오랜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고 느끼나
피곤함은 여전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다
-하심 쇠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