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전세사기 피해 보증금 93.6% 돌려준 '해결사 조합'
[최현철 논설위원이 간다]
최현철2024. 8. 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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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피해 회복 모델을 제시한 탄탄주택협동조합]
국토부에 따르면 전세 사기피해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1만9621명이 피해자로 공식 인정됐다. 검찰은 사기를 저지른 1600여명을 수사해 재판에 넘겼다. 이미 1심에서 사기죄 최고 형량인 15년형을 받은 사람도 상당수다. 처벌은 속속 이뤄지고 있지만 피해 회복은 지지부진하다. 정치권에선 특별법 개정안을 놓고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피해자들이 주장해온 ‘선구제·후구상’ 방안에 대한 여야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법 통과 때 일부 유예된 경매중단 조치는 속속 풀리고 있는데, LH 중심의 매입 임대 등의 대책은 별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 피해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피해 회복에 성공한 사례가 등장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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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에 떨어진 전세 사기 폭탄
2023년 봄 경기 화성의 동탄 신도시도 전세 사기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박모씨 부부와 지모씨 부부가 갭투자 방식으로 오피스텔을 집중 매입했는데,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지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피해자가 311명, 피해 금액은 250억원에 달했다.
10평짜리 오피스텔에 전세로 살던 30대 직장인 나모씨도 피해자 중 한명이었다. 나씨는 그해 4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으니 오피스텔을 인수하라”는 일방적인 통지를 받았다. 나씨 오피스텔 보증금은 1억6200만원. 그때야 수소문을 해보니 매매가는 그에 한참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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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택협회 도움으로 21명 조합 결성, 소유권 넘겨받아
반전세로 재계약, 조합이 대출받아 보증금 차액 반환
선순위채권 없어 추진 쉬운 사례, 전세보증 거부 위기도
유일 해법 아니지만, 자구 모델도 있다는 인식 공유되길」
쉽게 결정을 못 하던 차에 협동조합 방식으로 전세 사기에 대응한다는 정보가 피해자 모임 게시판에 떴다. 경기도가 지원한다며 동사무소에서 설명회도 개최했다. 나씨는 “그때는 조합이 뭔지도 몰랐고, 솔직히 또 사기당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기억했다. 고심 끝에 21명이 조합 참여를 결심했다. 조합원 H씨(20대 후반 여성 직장인)는 “오피스텔이라 떠안기 싫었는데, 경기도가 지원한다고 하니 한번 믿어보자”는 마음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경기 화성시 동탄1동 주민복지센터에서 동탄신도시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탄탄주택협동조합의 활동 계획을 설명하는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사회주택협회가 제안하고 경기도가 후원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전세사기 구제 방안이 공개됐다. 사기 피해자 21명이 최종적으로 조합에 가입해 함께 해결을 모색하기로 결정했다. 사진 탄탄주택협동조합
그렇게 탄탄주택협동조합(이하 탄탄)이 설립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올 7월, 조합은 모든 조합원과 보증금 4800만원의 반전세 계약을 맺고, 기존 보증금과의 차액을 돌려줬다. 4800만원은 화성시가 보증하는 최우선 변제금(선순위채권과 관계없이 세입자에게 우선 돌려주는 보증금)과 같은 금액이어서 조합이 사라져도 돌려받는 데 문제가 없다. 일부는 이사하며 나머지 보증금도 받았고, 그 자리에 전세 사기와 상관없는 다른 세입자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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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의 작동 방식
조합에 참여한 피해자들의 증언처럼 탄탄 조합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조직은 아니다. 처음 조합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유독 동탄에서 이런 모델이 나왔는지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뒤쪽 사회주택협회 사무실에서 김수동 탄탄 이사장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물어봤다.
-피해회복을 모두 완료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조합을 설립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조합 설립을 처음 구상한 것은 사회주택협회입니다. 주택협동조합, 공유주택 등 구성원이 참여해 공동체적 주거 환경을 만들어가는 단체들의 협의체죠. 지난해 초 전세 사기가 곳곳에서 터지자 협회도 뭔가 해결책을 모색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협동조합 형태였습니다."
-수많은 전세 사기피해지역 중에서 동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협회 차원에서 많은 검토를 했습니다. 외부에서 자금을 지원해 돌려주는 방식이 아니고 피해자들이 직접 참여하려면 어느 정도 조건이 맞아야 했죠. 그런데 마침 동탄은 피해 주택이 모두 오피스텔이고, 대출금이나 세금 등 선순위 채권이 없는 독특한 성격이었습니다. 피해자도 1인이나 2인의 청년층 가구가 대다수였습니다. 무엇보다 경기도에서 이 방식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서줘서 가능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쉽게 참여했나요.
"외부에서 갑자기 찾아와 협동조합을 하자고 하니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겠죠. 이미 한번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라 또 사기 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강했습니다. 그때가 5월 초였는데 피해자들은 6월이 되기 전에 인수 여부를 결정해야 할 처지에 몰려 있었습니다. 종합부동산세 산정 기준일인 6월이 되면 국세청이 1순위로 가져가는 세금 채권이 생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부 지원책은 아직 입법 단계에 머물렀죠. 우리가 제시한 방안이 낯설고 일부 피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경기도에서 지원 약속도 있으니 믿어보자는 흐름이 생긴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경기 화성 동탄에서 2024년도 탄탄주택협동조합 정기총회가 열렸다. 이날 조합원들은 조합의 올해 사업계획을 승인하고 2명의 조합원 이사를 선출했다. 도 일부 오피스텔을 반전세로 전환해 걷힌 월세 수입 중 사업비를 제외한 400여만원을 '치유 출자금'으로 적립하기로 의결했다. 사진 탄탄주택협동조합
-어떤 방안을 제시했나요.
"우선 조합이 보증금 채무를 떠안는 대신 임대인에게서 소유권을 넘겨받습니다. 이후 피해자들과 (주변 전세) 시세의 90%로 재계약을 하는 방식이죠. 나머지 10%는 피해자들이 출자금으로 조합에 납부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굳이 주변 시세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해주는 한도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원래 보증금과 주변 시세에 맞춘 재계약 금액과의 차이만큼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 반환은 확실히 보장되는 구조입니다. 계산해보니 손실액이 원래 보증금의 6.4% 정도였습니다. 보증금 1억이면 640만원꼴이죠."
-피해자 입장에서 소유권을 직접 넘겨받는 것과 큰 차이가 없지 않나요.
"그래서 실제 소유권을 넘겨받기로 결정한 피해자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오피스텔은 잘 팔리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소유권 이전 시 등기와 세금 부담도 만만치 않죠. 조합은 어쨌든 1~2년간 안전하게 살다 보증금을 확실히 돌려받을 수 있고, 이전비용도 조합이 부담해주는 이점이 있습니다."
-조합 설립은 순조롭게 진행됐나요.
"5월 하순에 발기인 7명과 조합원 21명으로 설립등기를 하고 곧바로 집주인에게 통보해 조합원이 사는 오피스텔의 소유권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구상대로 조합원들과 재계약까지 마쳤는데 예상치 않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거절했습니다. 세입자들이 조합원이라 사실상 임대인 지위를 갖고 있다는 이유였죠. 조합원의 지분은 보증금의 10%인 출자금밖에 없고, 전세 사기라는 특별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됐습니다."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면 처음 구상이 다 허물어지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결국 중간에 구조를 바꿨습니다. 화성시가 보장하는 최우선변제금 규모인 4800만원으로 보증금을 줄이고 그 차액을 돌려준 뒤 그만큼을 반전세로 돌리는 겁니다. 예상치 않은 목돈이 필요했는데 화성시, 화성한마음신협 등과 협약을 맺고 연 3%의 금리로 대출을 받아 해결했습니다."
-조합원들은 계속 살고 있나요.
"지금까지 13명이 보증금을 돌려받고 이사를 했고, 8명은 보증금 4800만원의 반전세로 전환했습니다. 조합원이 이사할 때 조합을 탈퇴하면서 출자금도 찾아갈 수 있지만 그대로 두고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나중에 적립금이 쌓이면 돌려받는 출자금도 커지니까요."
-탄탄의 모델은 좀 특수한 경우가 아닌가요.
"우연히 여러 조건이 잘 맞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추진이 쉽지 않았겠죠. 우리도 협동조합 모델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부에 모두 책임지라고 요구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스스로 구제하는 방식도 해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현재 조합은 돌려줄 보증금 10억원과 대출 11억원을 안고 있습니다. 대출이자가 월 282만원인데 매달 677만원의 월세가 들어오니 연간 4600만원 정도 적립이 가능합니다. 오피스텔 일부를 매각하면 10년 후 부채 청산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온전히 조합 소유가 된 오피스텔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임대하는 공유주택 형식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조합원이 살 수도 있고요. 이 과정에서 조합원 커뮤니티 활성화에 신경 쓰려고 합니다. 여러 피해지역에서 문의가 오는데, 성심껏 들어주고 필요한 부분은 지원도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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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분명하지만, 희망을 찾아
탄탄주택협동조합이 지난 2월 사단법인 한국주거복지포럼이 주최한 주거복지활동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김수동 이사장이 포럼에 참석해 탄탄 조합의 활동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탄탄주택협동조합
김 이사장이 강조했듯이 협동조합 모델이 만능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협동조합법에 근거한 조합 운영에 대해 아는 사람이 피해자 가운데 있어야 한다. 탄탄의 경우 주거운동 차원에서 사회주택협회가 발기인으로 동참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선순위채권이나 금융 부채가 많은 경우, 주택 종류가 지나치게 다양할 경우 참여자의 이해가 충돌해 조합을 만들기 어렵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믿음이다. 취재 중 연락이 닿은 조합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저 조합이 정말 약속을 지킬지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이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의 몫이다. 탄탄도 경기도가 적극 지원을 약속한 덕에 조합원들이 안심하고 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반환 보증금을 위한 저리 대출도 이뤄진다면 훨씬 원활하게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선구제·후구상이 무척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지원이 많은데 국회에 책임을 돌린 채 방관하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최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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