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제 16대 황제다.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이며 스토아 철학자라고 한다. 로마 황제라면 세상의 온갖 권세를 누린 폭군 네로가 언뜻 떠오른다. 네로는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하프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지 않은가.
그러나 마르쿠스는 그런 권세와는 멀리 떨어져 이성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한 황제이기 전에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 삶을 살았다. 그렇다고 그가 황제로 재임하던 시절 로마가 태평성대를 누린 시기도 아니었던 같다. 그는 로마 제국을 지키기 위해 황제 재임시절 모두를 보냈다.
그는 황제가 된 후 20여 년간을 로마를 통치했다. 집권 초기에는 로마 동부 지역에서 전쟁이 있었고, 전쟁이 끝나자 이번에는 전염병이 돌기도 했고, 게르만족의 침공이 있었으며, 이집트와 시라아의 총독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말년까지 전쟁이 이어졌으며, 마침내 180년 마르쿠스는 군대 사령부에서 병사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황제 재임 기간 내내 전쟁터를 누빈 셈이다. 그러함에도 그는 가장 현명한 황제로 모두가 칭송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철학에 깊은 흥미를 느껴 개인 교사를 두고 당시에 유행하던 스토아 철학에 심취했다. 그가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로 꼽히는 것은 이런 그의 남다른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1부는 주로 자기가 지금까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제2부에서부터는 그날그날 명상한 내용들을 간명하게 기록해 놓았다. 명상록은 모두 1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렇게 나누어 놓은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마도 당시의 종이 역할을 했던 파피루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명상록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저술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날그날 명상에 잠겨 생각한 것을 간략히 적어놓은 말하자면 비망록이나 일기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글은 하루치의 일기처럼 토막으로 되어 있지만 그 하나하나의 구절들은 지금 읽어도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기에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년에 두 번은 꼭 읽는다고 한 모양이다. 이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정치 뿐만 아니라 정신 수양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명상록을 읽다보면 요즈음 우리 정치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낀다.
정치인들은 자기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이전투구 판을 벌이는 것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그들은 황당한 논리 앞에 반드시 국민을 대신해서 질문을 한다는 말을 붙인다. 도대체 그때의 국민은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아리송하다.
어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의 황제 재임 시기는 대부분이 전쟁으로 일관된다. 그러므로 명상록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쟁터에서는 황제는 최고 지휘관이다. 전황을 보고 받고 진퇴를 결정하며 군비를 확인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는 일 등 산적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명상록에는 어디 한 줄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오리지널 전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오로지 인간 본성을 깊이 탐구하고 이성에 의해서만 행동할 것을 수도 없이 스스로를 다잡고 있다.
그래선지 그는 황제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한마저 하찮게 여기는 듯하다. 황제와 시민이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인식이 강한 듯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기를 원했고 재물을 탐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으며 스스로도 검소했다. 그가 황제로서 스스로 다잡는 말들은 의미심장하다.
그런데도 그 촌음의 시간을 사는 동안에 인간은 온갖 이기심으로 가득하다. 마르쿠스는 그런 인간의 감정을 끊임없이 경계한다. 전쟁터에서 짐짓 한가해 보이는 것 같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고 정갈히 했다는 것을 실로 놀라운 일이다.
기원전 5세기경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주장했다. 마르쿠스는 모든 사물이 원자의 결합이라면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 생명체인 인간도 마찬가지다. 변화는 곧 사멸한다는 것으로 통한다.
그가 한 스스로에게 한 다짐은 그 혼자만이 아니라 동시대 모든 시민들이 공유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가 매일 조금씩 적어놓은 비망록이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깊은 사유를 통해 얻어진 것들이므로 그 나름의 흐름을 뚜렷이 가지고 있다.
황제가 그러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로마 시민들로서는 매우 행복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리에 맞지 않는 결정을 할 까닭이 없으므로 모든 시민들에게는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혹시라도 재판을 벌일 경우에도 매우 합리적으로 재판이 이루어졌음도 짐작할 수 있다.
최선을 다 해 이성적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정의로운 생각,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행동, 거짓 없는 말, 모든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 자신과 동일한 기원과 원천에서 나오는 필연적이고 우리에게 친숙한 일들이라는 것을 알고서 기꺼이 환영하는 품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귀영화와 건강 ,좋은 옷과 집, 명성 같은 것들을 ‘선한 것들’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르쿠스는 그런 것들은 선악이나 행복과는 무관한 가치중립적인 것들로 취급하고, 그런 것들을 멸시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점에서 분명 초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