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부터 26일까지 새움풍물학교 졸업여행을 갑니다. 이번에는 제주도를 택하였습니다. 애초에는 이 때가 비수기여서 적은 경비로 다녀올 수 있겠다 생각하였는데 막상 추진을 하고 보니 제주도 여행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몇몇 항공사들이 항공료 할인 행사를 하여 더 혼잡스러웠습니다.(제주도가 혼잡스러워졌다는 말이 아니고 비행기표를 구하는 것이 혼잡스러웠다는 얘기)
게다가 할인 항공료는 쓸 수 없는 시간대에 있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시간에는 그리 많이 할인이 되지 않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볼까라고도 생각하였으나 이왕 계획을 한 것 그대로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외로 많은 분들이 호응을 하여 모두 24명이 함께 가기로 되었습니다.
미리 우리들이 갈 곳을 사진으로나마 소개를 합니다. 이 사진은 2013년 1월 10일부터 2월 6일까지 제주도 도보여행을 할 때 찍은 것입니다. 그 동안 제주가 많이 변하였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청청지역이므로 거의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첫날은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 그리고 비자나무숲을 둘러 보고 시간이 있으면 숙소로 가는 도중에 김영갑두모악갤러리에 들립니다.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은 오름을 올라본 사람들은 누구가 추천하는 곳이며 비자나무숲은 제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숲입니다.
↑ 올라가는 길에서 본 용눈이오름. 오름이란 제주도 말로 산이란 뜻이다. 말그대로 오르는 곳을 일컫는다. 제주에는 오름이 모두 368개 있다고 한다.
↑오르는 길 옆의 무덤. 검은 현무암으로 둘레를 둘렀다. 제주에는 말이나 소를 방목하므로 이들이 무덤을 상하게 하지 못하도록 돌로 담을 둘렀다.
↑길 옆에는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골짜기는 삼나무 숲이 조성되어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제주도의 삼나무는 1920년대 일본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감귤농장의 방풍림으로 조성되었으나 1970년대에 대대적인 삼나무 녹화사업이 있은 후로 제주도 곳곳에 삼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지금은 친환경 목재와 경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능선에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 거친 바람에도 꿋꿋하게 서 있다.
↑저기 움푹 들어간 곳이 분화구이다. 제주말로는 굼부리이다. 굼부리가 여러 개인 것으로 보아 화산 폭발이 한 번만 일어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월 중순인데도 벌써 저 굼부리에는 푸릇푸릇 봄기운이 돈다. (위 사진과 비슷한 것 같은데 왜 올렸지?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무엇이? 정답을 다는 분들에게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다.)
↑용눈이오름 능선은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저렇게 사람이나 짐승이 다니면 아연 생명력이 드러난다. 하늘과 산이 맞닿은 선에 사람이 조그맣게 서 있는 듯 움직이면 그렇게 평온하게 보일 수가 없다. 아마도 도시 생활을 하면서 과속에 지친 모양이다.
↑움직임이 없이 움직이는 것이 저 길 위 사람들의 자취이다. 여기를 둘러보면 저절로 노자의 도덕경이 떠오르른다. 저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 바로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서있는 듯 가는 듯 길 위에 있는 사람이 바로 도인(道人)이 아닌가?
↑용눈이오름에서 본 다랑쉬오름. 다랑쉬오름은 제주에서는 '오름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왼쪽 위엄이 있지만 단아한 모습의 오름이 다랑쉬오름이고 오른쪽에 엎드린 듯 응석을 부리듯 낮게 자리한 오름이 아끈다랑쉬오름이다. '아끈'은 제주말로 '작은'이라는 뜻이다. 저런 오름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의 삶은 아주 평온하였을 것이다.
↑방향이 바뀌어 이제는 능선의 변곡점 뒤로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두 사람이 오르는 능선이 용눈이오름 초입이다. 여기서 보면 세 개의 굼부리가 또렷히 드러나 있다. 세 번의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 작은 오름도 길이 여러 갈래가 있다. 그런데 저 길위에 깔린 고무 매트는 영 눈에 거슬린다. 폐타이어로 만든 고무 매트는 여러 가지 유독 성분과 발암물질로 말썽이 많다. 요즈음 레미콘 회사들이 저 폐타이어로 콘크리트를 만들어 건물을 짓는데 여기서 발암물질이 다수 검출되었다.
↑능선이 너무 부드러워 오르는데 전혀 힘이 들 것 같지 않다.
↑앞뒤에서 걷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란히 걷고 있다.
↑맞은편 능선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에는 바람이 많다고 하는데 여기는 특히 바람이 세다고 한다.
↑다랑쉬오름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돝오름이다. 돝은 돼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산의 형상이 돼지가 웅크린 모습과 같다하여 얻은 이름이다. 저 아래로 비자림숲이 펼쳐져 있다. 이곳 용눈이오름을 내려가 다랑쉬오름을 돌아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들르는 곳이 바로 비자림숲이다.
↑사람의 등과 같은 능선 뒤로 아끈다랑쉬오름이 보인다. 용눈이오름은 한자로 용와악(龍臥岳)으로 쓴다. 용이 누운 모양의 산이라는 뜻이다. 혹은 용안악(龍眼岳)이라고도 하는데 분화구의 모습이 용의 눈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보면 개구리 등 모습 같기도 하고 사람이 엎드려 있는 모양 같기도 하다.
↑이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 사이의 들판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사람들이 살았을 터이다. 저기 다랑쉬오름 앞에 다랑쉬마을이 있었지만 제주 4·3 항쟁 때 무참하게 사라졌다.
↑저 아래 굼부리 안의 무덤이 이장을 하였는지 파헤쳐져 있다. 그 뒤로 잘 조성된 삼나무 가로수들이 보인다. 제주에는 유독 삼나무 가로수들이 많다. 오늘 가는 비자림숲 앞 도로도 제주에서 손꼽히는 삼나무 가로수 길이다.
↑능선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면서도 자꾸 눈이 간다.
↑내려가는 길도 아주 완만하다. 바람만 없다면 여기는 모든 것이 여유있게 느리게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
↑내려오면서 돌아다 본 저 위 능선에는 이제 사람의 자취가 끊어지고 표지판만 남아 있다.
↑ 옅은 구름인지 안개인지 능선으로 몰려 든다. 무리를 짓고 있는 삼나무들이 아주 강인하게 보인다.
↑능선을 뒤로 한 무덤들조차 평온하게 보인다. 제주도 사람들은 죽어서 모두 오름에 묻힌다.
↑사진작가가 찍은 저물녘의 용눈이오름. 능선을 오르는 소떼가 인상적이다.
↑또 다른 작가가 찍은 용눈이오름. 옅은 안개가 피어 오르고 있다.(사진 출처-우리의 산하)
↑용눈이오름을 내려와 다랑쉬오름으로 가는 길에 채소밭이 많이 보인다. 제주도 중산간지역에서는 밭작물이 주를 이룬다.
↑용눈이오름 동남쪽으로 보이는 풍력발전기 풍차. 이곳의 바람이 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랑쉬오름으로 가는 길에 다랑쉬마을 유허비에 도착하기 직전 오른쪽으로 삼 백 미터쯤 가면 다랑쉬굴이 나온다. 이 굴에서 제주 4·3항쟁 때 희생된 마을 사람들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1992년에 비로소 발견된 11구 유해 가운데 어린아이 1명과 부녀자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 다랑쉬굴 입구. 당시 이곳에는 제주 하도리와 종달리 주민 11명이 대피하여 있었는데 군경토벌대가 이 입구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나올 것을 종용하여도 겁에 질린 주민들이 나오지 않자 그 입구에 불을 피웠다고 한다. 이 안에 대피하여 있던 사람들은 연기에 질식하여 희생되었다.
↑입구를 헤치고 다랑쉬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이 좁은 곳에 어떻게 11명의 주민들이 대피하여 있었는지......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굴의 길이는 10여 미터가 된다고 한다. 굴 안에는 솥과 그릇 등이 유해와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희생자들은 모두 엎드린 채 얼굴을 땅에 박은 자세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연기에 질식되어 고통스럽게 죽어간 듯하다.
↑다랑쉬굴 입구에서 용눈이오름을 바라다 본다. 좀전의 평화로운 느낌과 이곳의 황량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너무 대조적이다.
↑다랑쉬굴에서 돌아나오는 길 옆의 무우밭. 다시금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당시 주민들에게 이데올로기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기댈 곳은 이승만 정권도 남로당 정권도 아닌 바로 삶의 터전인 이 밭이 아니었을까? 밭 고랑 너머로 아끈다랑쉬오름이 보인다.
↑큰 길로 나와 다랑쉬오름 쪽으로 조금만 오면 다랑쉬마을의 흔적을 짐작게하는 비석이 나온다. 비문에는 '잃어버린 마을-다랑쉬'라고 씌여 있다. 이곳에 있던 마을 주민들이 4·3 항쟁 때 해안으로 소개되면서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지금까지 복원되지 않았다.
↑이곳이 당시 마을이 있던 자리다. 지금은 집은 간 곳이 없고 밭으로 변했다.
↑그런가 하면 그 옆에는 개발 중에 부도가 났는지 건물들이 흉하게 방치되어 있다. 지금은 제주 전체가 개발 몸살을 앓고 있다. 2000년 이후로 제주에는 골프장 개발 붐이 불어 지금은 골프장이 40여개로 늘어났다. 통계에 의하면 제주도 전체 면적의 2%가 넘는 넓이라고 한다. 골프장은 주로 중산간 곶자왈 지역에 건설되기 때문에 제주 환경에 치명적이라는 것이 이곳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다랑쉬오름에서 본 아끈다랑쉬오름. 분화구가 선명하니 둥글고 아름답다.
↑다랑쉬오름에서 본 용눈이오름. 여기서 보면 용이 누워 있는 듯하다. 능선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다. 그 뒤로 풍차와 다른 오름들이 보인다. 다랑쉬오름은 오름 자체도 아름답지만 정상에서 보는 제주도 조망이 정말 아름답다.
↑날씨가 흐려서 전망이 좋지가 않다. 중앙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성산일출봉이다. 일출봉 왼쪽으로 길게 늘어선 섬이 우도이고 그 사이 삼각형 모양의 작은 오름이 지미봉이다. 맑은 날에는 오름 뿐만이 아니고 바다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바로 앞 왼쪽에 보이는 봉우리는 은월봉 혹은 은다리오름이라고 불린다.
↑다랑쉬오름의 분화구. 깊이가 115 미터에 이른다. 한라산 백록담 깊이와 맞먹는다. 이 오름의 둘레는 1.5km로 주위를 도는 데도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 주위를 돌면서 제주도 동부 지역을 내려다보는 맛이 아주 상쾌하다. 날씨가 맑으면 한라산 정상도 선명하게 바라볼 수가 있다.
↑주위를 돌면 돝오름, 높은오름, 아부오름 등 수많은 오름들이 숨가쁘게 눈앞에 펼쳐진다. 날씨가 청명하지 못하여 경관들이 흐리다. 최근 연구조사에 의하면 이 다랑쉬오름이 형성된 것은 1만 6천년 전후라고 한다. 제주도 송악산이 3천년전, 비양도가 고려시대 만들어졌다고 하니 제주의 오름이나 섬들은 비교적 젊은 편이다.
↑다랑쉬를 내려서서 아끈다랑쉬에 오르면서 들판 너머로 보이는 용눈이오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름에 풍성하던 억새가 앙상한 뼈대만으로 겨울을 난다.
↑억새밭 너머로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아끈다랑쉬오름은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오름 둘레를 억새로 둘렀다.
↑아끈다랑쉬오름도 막상 오름에 올라서면 다랑쉬오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과는 판이하다. 작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긴다.
↑ 분화구가 보이는 능선에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제주의 오름과 섬사람들의 죽음과는 끊을 수 없는 관계다.
↑소나무의 모습을 보면 이곳 바람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다랑쉬오름이 바람을 막아주어서 이 정도인데 그렇지 않았으면 이 나무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랑쉬 주위에 억새가 무성한 이유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