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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밭/신경숙
지금 나는 내 삶을 잊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미 나의 내부에서 망각이 진행되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오늘, 강의실에 들어가서는 삼십 분도 넘게 진땀을 뺐다. 이미 타계한 시인. 나는 그 시인의 시세계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음에도 오늘 그 시인의 이름이 내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시인의 이름과 함께 나의 뇌리 속에 축적되어 있는 수많은 문장과 일화들. 그 막을 길 없던 연상작용 그리고 상상력들이 갑자기 그의 이름과 함께 기억나지 않았다. 수천 번도 수만 번도 더 되뇌였을 그의 이름이.
유. 너를 처음 발견한 날 네가 책상 밑으로 떨어뜨린 시집의 제목은 무엇이었나?
그마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나의 형체를 뚫고 나의 내부를 응시했다. 그 순간에조차 나의 망각은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이마에 흐르는 땀. 몸이 안 좋으신가 봐요. 오늘은 여기서 그만 끝내시는 게 어떨까요. 휘둥그레지는 망각의 눈…… 나의 눈.
어제 오후, 한 남자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찻물을 끓이려고 게르마늄 약산 샘물을 찻주전자에 막 따르려던 참이었다. 삼월이나 사월 갑자기 이리저리 흩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볼 때나 오래 쓰고 있는 탁자 위에 언젠가 내가 그어놓은 칼자국을 응시하게 될 때 돌연 마음속에 움트는 침묵. 그 남자의 전화는 내게 그런 침묵을 불러들였다. 십이 년 만인가. 그 남자는 그제 호암아트홀에서 있었던 포크송 30주년 기념공연장에서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객석에 앉아 있는 나를 보았다고 했다.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그건 아니었지만 그 남자가 묘사하는 그 여자는 분명 그날 그 공연장에 있던 나였다. 나는 모르는 사이에 그 남자는 나와 십이 년 만에 해후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엉거주춤 한 손에 생수 병을 든 채로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침묵이 지나간 뒤의 공허. 십이 년 만의 통화인데도 전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남자는 내가 숲속의 빈터에 나오지 않은 이후, 면장갑을 끼고 열심히 자동차 기술을 배웠으며, 지금의 그는 세차장을 겸비한 자동차 정비소와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 자신의 삶은 노래와는 상관이 없는 채 진행되고 있으나 박은옥 정태춘 공연장엔 꼭 간다고 하였다. 남자는 어제 내 곁에 있던 여자아이가 딸인가 물었다. “아니오. 나는 혼자 있었습니다.” 내 대답에 그 남자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그 남자는 십이 년 전에 내가 왜 약속장소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았는가를 사 년쯤 생각했다고 했다. 지금, 어렵게 전화번호를 알아내 나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어제 본 지금의 내가 평화로워 보여서, 라고. 그래서 이제 나를 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라고 했다. 어제 본 지금의 당신, 화장이 지워진 것 같은 창백한 피부와 눈가에 내려앉기 시작한 주름살이 스물세 살 그때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서, 라고.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다시 말했다. 어느 날엔가 혹 어느 지하도나 공공 집회, 병원의 복도나 주유소에서 당신이 나를 혼자 보게 되는 때가 있다면, 그때의 나도 당신에게 스물세 살의 그때보다 아름다워 보였으면 합니다. 그런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라고. 나의 삶과 아무런 연관 없이 살아도 자신의 마음은 예전과 똑같다고. 변함이 없고,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날 가수는 말했다. “어떤 사람은 노래는 노래일 뿐이지 듣는 사람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동시대를 살면서 부르는 노래는 그 사회 상황을 담아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어떤 게 옳은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남자의 전화를 받고 하루가 지난 지금 나는 그 남자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아니,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그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현실 속에서 그 남자와 멀어진 후부터 외려 나의 내부에 차오르기 시작한 그 남자의 존재에 대해서, 스물세 살 적의 나의 욕망에 대해서. 그 남자에 대한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줄 누군가를 지금껏 찾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듣고 곧 잊어줄 대상을.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나의 망각이 이제 곧 그 남자의 이야기도 갉아먹을 것 같다. 내 기억의 어느 갈피에 머물러 있는 그 남자의 이야기가 망각으로 훼손되기 바로 전의 순간이 지금 같다.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나의 망각은 내 가슴에 머물고 있는 그에 대한 영상을 흐트러뜨릴 것이다. 내 얼굴의 윤곽을 이렇게 희미하게 흐트러뜨린 것처럼.
가수는 노래했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무엇을 보았……니.
그 남자가 뭐라고 하든 지금의 나는 서서히 늙어가고 있음을 거울 앞에서 목격한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눈 코 입 윤곽이 이미, 혹은 지금 흐트러지고 있음을. 이 덧없음을. 스물세 살의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다 문득 내가 몹시 위태롭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은 평야의 해 저물 녘에 만나게 된 노을. 눈이 부시지만 바로 뒤 서산이 숨기고 있는 소멸의 위태로움. 그때 그 위태로움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선이라는 생각이 선명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는 그것이 내가 지닌 얼굴 윤곽이 흔들려서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단지 거울 속으로 비치는 나의 메마른 눈동자가 혹은 그 옆의 가파른 코가 곧 비명이라도 내지를 듯 위태롭다고만. 아마도 그때로부터 나의 윤곽은 흐트러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서서히. 그리고 지금,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는 지금, 나의 윤곽은 덧없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의 내부의 윤곽은 스물세 살 때의 그 딸기밭에서 이미 이만큼 와 있었다. 그때로부터 이미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흰 고무신을 신고 다닌다. 오랜 부재 끝에 돌아오는 겨울날에도 그 고무신이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어머니는 흰 고무신을 윤이 나도록 닦는다. 토방 위에 두 짝의 흰 고무신이 세워져 있는 것이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표시다. 훗날 아버지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얼굴보다도 흰 고무신이 먼저 떠올랐다. 마지막 부재를 끝으로 아버지가 집을 완전히 떠났을 때 나는 어린 나이였다. 아버지의 얼굴을 먼저 잊고 뒤에 흰 고무신을 잊었다. 아버지와 관련된 기억할 만한 추억이 별로 없었으므로 잊는 일도 상처가 되지 않았다. 그 남자를 만나기 전의 나는 아버지를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머니는 이따금 아버지의 부재가 그의 성품이나 개인적인 결핍 때문이 아니라 전쟁 탓이라고 했다. 병사가 되지 못한 그는 끊임없이 기피생활을 해야 했다고. 잠을 자다가도 어떤 발짝 소리에 집을 나가야 했었다고. 그 불안과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을 반복하는 사이 정착과 안정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으며, 결국에는 어느 곳에도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아버지가 영원히 집을 떠나기 이전에도 아버지는 이따금씩 자취를 감추곤 했다.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어디를 가느냐? 물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송판을 구하려고 골목 끝에 제재소가 있는 줄 알고 갔는데, 제재소가 거기에 있질 않고 길 건너에 있어서 신호등을 건넜는데 신호등 하나를 더 건너야 된다고 해서, 다시 건너다 보니 그리 되었다는 식의 사라짐이었다. 밥상을 물린 뒤, 담배나 한 갑 사오겠다는 듯이 슬리퍼를 끌고 나가서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별일 아니라는 반응이었으므로 아버지의 돌출적인 부재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 되었다. 마지막 부재. 자취를 감춘 지 육 개월 만인지 칠 개월 만에 기진한 몰골로 돌아온 아버지는 마루에서 가장 가까운 방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틀인가 사흘인가 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집 안에서 가장 큰 가방에 소지품을 담았다. 언제나 벽에 걸려 있는 바지, 아버지 소유의 목침, 그런 것들. 이것저것 다 담고도 가방은 헐렁했다. 저런 것을 뭐하러 가져가나 싶게 누추한 것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훗날에야 나는 알았다. 담뱃가게나 다녀온다는 식이 아니라 형식을 갖춘 외출은 아버지가 아주 우리 곁을 떠난다는 작별 인사였다는 것을. 어머니는 그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생에 있어서 아버지의 부재는 내게 어떤 지평선을 연상시킨다. 끝간 데없는 결핍의 지평선. 그 뒤에 뭔가 있을 거라 여기겠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새로움도, 다른 경계선도, 뭔가 중심이 될 만한 이정표도. 햇빛이 비치는 공동 같은 것. 무슨 의미인가가 있을 것 같으나 분석이 불가능한 것.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핍을 안은 채 덧없음, 이라고밖에 달리 표현될 수 없는 것.
이따금 보내오는 우편환, 그러나 그것마저도 끊김으로서 아버지의 존재를 의식하는 일도 드물어졌고 그러다가 차츰 나의 의식 속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지워졌다. 스물세 살 되던 해 신학기의 교정에서 문예지 영인본을 외판하러 나온 그 남자를 보기 전에는.
삼월이 지나 사월, 신입생 환영회의 플래카드가 나붙은 교정의 어느 켠에 그 남자가 서 있다. 응달진 곳에 탁자를 펼쳐놓고 그 위에 전단지를 내려놓고. 몇몇의 학생들이 그 남자가 펼쳐놓은 문예지의 영인본을 들춰본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까? 그 두껍던 문예지 영인본의 검은 표지에 이끌려서? 무심코? 훗날에야 묵묵히 고갤 숙이고 걷고 있던 나의 시선에 포착된 게 흰 고무신이었음을 깨달았다. 흰 고무신을 먼저 발견한 나, 서서히 그 신을 신은 주인을 향해 아래에서 위로 시선을 옮긴다. 거기에 그 남자의 얼굴이 있다. 곱슬머리, 약간 위로 치켜진 채 충혈된 눈,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이라고밖에 표현될 수 없는 피부, 붉은 기가 내려앉은 코 끝, 유난히 오돌도돌한 야윈 뺨, 회색이 감도는 사파리 잠바 속에 껴입은 검은 폴라 티, 낡은 벨트, 물색없는 청바지…… 그리고, 그렇게 간신히 맞춰놓은 균형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던 흰 고무신.
무엇을 잊는다는 것은 대상을 심연에 밀어놓고 문을 닫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끊긴 우편환과 함께 지워진 존재, 나의 아버지. 내 생의 출입구에 부재의 이미지를 각인시켜놓고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의 존재가 그 삼월의 교정, 그 남자가 신고 있는 흰 고무신에 의해 닫힌 문을 열고 이끌려 나오는 것을 가슴 쓰라리게 바라봤을 때는.
욕망이 없는 나의 일상. 이따금 우리, 아니 나에게 있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때가 있다. 하지만 그전처럼 그 초점이 인간의 영역 확장에 맞춰져 있는 것도 아니고 인류애나 희생, 지적 호기심, 심미안의 재발견 등에 맞춰져 있는 것도 아니다.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채로 내게 주어진 이 평범한 현실을 초월하고 싶은 남은 욕구가 야심 없이 운동하고 있을 뿐이라는 쓸쓸한 생각.
그때의 나는 욕망이 있었다. 그 남자가 내미는 서류에 내 주소와 전화번호와 다달이 그 문예지 영인본 값을 지불할 날짜를 약간은 단호한 표정을 짓고 공격적인 필체로 기입했던 그때는.
그때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영상들.
<중략>
……생각해보면 그 남자, 누구도 거들떠볼 것 같지 않았던, 오히려 접근을 금하는 그 남자의 외모는 나에게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내가 사랑했던 건 그 남자가 아니라 바로 그 안도감이진 않았을는지.
귀하.
저는 유가 그의 짧은 생애 동안 맺은 개인적인 정신적인 유대관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제가 그의 존재를 완성시킬 수 있도록 귀하가 도와주시면 그는 어머니인 나의 생각 속에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평소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인간과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 기아 문제와 부의 공평한 분배, 그리고 환경 보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그의 자취를 모으는 일로 알게 된 것은 그가 이론으로만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실천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개울에서 발견되기 전 최근 그의 관심은 월든에 나오는 생활 태도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아주 소박하게 줄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잊고자 함에서 그를 복원시키는 쪽으로 마음을 선회한 뒤 그의 친구들이나 그가 남긴 글들을 통해 알게 된 점들에 저는 만족합니다. 그의 진지함과 철저함은 제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정도를 훨씬 넘어서 있었습니다. 많은 양의 유고를 잘 정리되어 있는 상태로 남긴 점도 새로 발견한 대목입니다. 유고의 범위는 문학 논문으로부터 시, 소설, 에세이, 편지 및 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유의 어머니가 내게 보낸 편지에 씌어진 유의 모습은 낯설었다. 스물세 살. 그때의 유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름다웠던 유. 내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돈 점만을 골고루 지녔던 유. 유는 너의 생속에서 빠져나간 후 다른 생을 살았던가 보았다. 그래, 누구에겐가는 생은 두 겹인 것이다. 상이한 식물과 동물이 동시에 깃들이기도 한 것이다.
겨우내 열어주지 않았던 창문을 열어본다. 뻑뻑한 창틀에 문이 밀리는 소리가 비명처럼 내 귓속에 파고든다. 언짢아진다.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손바닥으로 창틀을 짚으면서 대문 옆의 포도 넝쿨에 시선을 준다. 이제 막 새로 돋은 연푸른 포도나무 잎잎들이 어린 새의 혓바닥들처럼 아침 바람에 간간이 흔들리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겨울 내내 저 앞을 지날 때마다 이 메마른 것이 뭐지 싶어 비틀린 채 꼬여 있는 넝쿨을 쳐다보곤 했다. 앙상함을 떠나 아예 철사처럼 뻣뻣한 채 버려져 있는 꼴이 살아 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으므로 어느 날은 성가셔서 툭툭 분질러버리려 했던 적도 있다. 정말 분질러버리려고 손을 뻗었다가 밑에 세워져 있는 받침대를 보고서야 포도나무라는 걸 기억해내곤 해서 뻗은 손을 거둔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것이 봄바람을 타더니 메마름과 앙상함을 벗고 저리 연하고 부드러운 빛을 띠며 잎을 달기 시작했다.
혹, 이 빛이 망각 위에 다음 생을 축적시킬 수 있을까? 이 간절한 연둣빛이.
숲속의 빈터.
지금 그 레스토랑은 사라졌다. 내 망각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도 나는 그 앞을 지나다닌다. 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고, 내가 유와 딸기밭으로 피크닉을 갔던 그날 그 남자가 혼자 걸어내려간 그 지하철역 계단을 내가 내려가는 일도 빈번하다. 하지만 그런 일로 그 남자를 연상하진 않는다. 다만 숲속의 빈터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웨딩프라자를 무심코 바라보는 때는 있다. 하루는 길을 건너 웨딩프라자 안으로 들어가본 적도 있다. 결혼식만 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뷔페 식으로 회갑연, 돌잔치를 겸하는 곳이었다. 태어난 지 일 년 되는 아기를 둘러싸고 온 가족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나도 하객의 한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홀 가에는 신선하게 다듬어놓은 야채들, 전복이나 호박죽, 빵과 밥, 미트볼이나 소시지 잘라놓은 것, 육회와 탕수육과 냉채류의 중국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열리거나 닫힌 그릇 속에도 따뜻한 음식들이 가득이었다. 이제 한 살 된 아기 앞으로도 지금부터 계속될 인생을 축원하는 음식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연필이나 돈이나 실뭉치들도. 그날 기념 사진을 찍은 후에 아기는 뭘 집었을까.
숲속의 빈터.
이제는 사라진 장소. 그 남자와 처녀는 그곳에서 주로 만난다. 그들이 숲속의 빈터를 발견한 건 그 남자가 처녀를 바래다주던 늦은 밤이다. 이제 갓 서로를 알게 된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그 처녀의 집 대문까지 가면 그 처녀가 그를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준다며 다시 걸어서 사거리로 나오고, 버스 정류장에 오면 이젠 그가 그 처녀를 다시 대문 앞까지 바래다준다고 다시 왔던 길을 되걷곤 한다. 그러기를 몇 번,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던 둘은 똑같이 맞은편을 바라본다. 숲속의 빈터. 그들은 마치 그들이 함께 있을 곳을 찾았다는 듯이 버스 정류장에서 몇 발짝 아래의 신호등 앞으로 걸어간다. 숲속의 빈터는 4층짜리 건물, 당구장과 한의원과 동물병원 간판이 붙어 있는 지하에 있다. 차와 경양식이라는 작은 글씨가 네온 빛에 흔들린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 나무 문을 밀쳤을 때의 안도감.
중앙의 홀, 카운터 맞은편의 음악 박스. 벽면을 향해 나 있는 칸막이, 그 막이를 다시 가려주던 커튼. 안녕하세요, 오늘도 숲속의 빈터를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듣고 싶으신 음악이 있으면 청해주세요. 시간이 닿는 한 정성껏 음악을 배달해드리겠습니다. 디제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칸막이 안으로 안내된 그 남자와 처녀는 좁은 공간에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둘에겐 칸막이도 커튼도 어색하다. 괜한 기침이 나온다. 커피가 배달되고, “좋은 시간 되십시오” 정중하게 인사까지 하고 종업원은 커튼을 살짝 밀어준다. 서로의 무릎이 닿을 만큼 좁은 공간이다. 숨소리조차 들릴 듯하다. 그는 조명을 받을수록 그의 외모가 점점 더 일그러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고개를 들지 않는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처녀를 바라볼 자신이 없는 것이다. 처녀는 일어서서 그의 옆자리로 간다.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듣고 싶은 노래는?이라고 적어서 그 남자의 앞으로 내민다. 그때야 고개를 든 그 남자는 처녀의 손에서 볼펜을 받아들고 북한강에서라고 적는다.
가수는 말했다.
다음 노래는 지금과는 다르지만 그 나름으로 치열했던 시절, 제가 저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었을 때 그 몰두가 충분히 행복했을 때 작곡한 노래입니다. 그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힌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리를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야윈 두 발을 담그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그텅 빈 거리를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그날, 공연장에 울려퍼지던 노래. 기타 소리. 북한강에서가 흘러나오는 같은 공간에서 그 남자와 나는 동시에 서로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남자가 나를 보았다는 그 순간이 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는 순간이었는지도.
숲속의 빈터.
늦은 밤, 더이상 갈 곳이 없는 그 남자와 처녀. 처음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어색스러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러움으로 바뀐다. 처음처럼 마주 앉지 않는다. 그 남자의 곁에 않는다. 그 남자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지 않게 하려고. 함께 북한강에서를 따라 부르는 동안 그 남자와 처녀는 자연스럽게 뺨도 대고 어깨도 댄다. 남자가 지니고 있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그 처녀의 내면에서 대담성을 이끌어낸다. 어느 날 노래를 듣던 처녀는 그 남자의 얼굴을 두 손에 공손히 떠받친다. 외면하려는 그 남자의 눈을 깊이 응시하며 그 남자의 눈자위에 입을 맞춘다. “나를 봐봐요. 사는 동안 누군가 한 사람쯤은 바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봐요.”
그 남자가 처녀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처녀는 그 남자에 의해서 재구성된다. 처녀의 짝짝이 쌍꺼풀은 귀염성으로 표현되고, 처녀를 나태나 게으른 사람으로 인상지운다고 생각했던, 오른쪽 입가에 찍혀 있는 검은 점은 그 남자로 인해 육감적으로 대치되며 영양결핍 상태인 것같이 발육이 안 된 목 아래의 소녀 같은 육체는 그 남자로 하여금 근친애를 불러일으킨다. 그 남자는 아무 데서나 처녀를 업고 내려주질 않는다. 든든했던 그 남자의 등. 처녀는 문득 생각한다. 다른 소녀들은 이렇게 아버지에게 업히며 자랐을까? 모든 존재론적인 불안의식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듯한 이 느낌을 다른 소녀들은 어려서부터 느끼고 성장하는 것일까? 명동을 지날 때다. 명동성당 쪽에서 긴 대열을 이루며 내려오는 데모대 앞에서 그 처녀는 그 남자에게 업어달라고 해본다. 그 남자를 시험하고 있다. 만약 그 남자가 업어주지 않으면 그 남자의 등에 업혔을 때의 충족감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려는 거다. 언제든지 내팽개쳐질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그 남자는 서슴없이 처녀를 업고 데모 대열을 피해 외환은행 쪽으로 빠른 걸음을 옮긴다. 데모 대열을 피해가는 동안 처녀는 그 남자의 목에 팔을 친친 동여매고 일부러 발을 간댕거려본다. 마음에 가득히 번지는 충족감. 얼굴을 처녀 쪽으로 보이고 있지 않을 때의 그 남자는 당당하다. 그러므로 처녀를 업고 있을 때의 그 남자는 완전한 인간이다. 하지만 얼굴을 처녀에게 보이고 있는 상태의 그 남자는 늘 뭔가 미안한 듯하다. 처녀가 다른 이유로 그 남자로부터 시선을 비키면 그 남자는 금세 고개를 숙이고선 풀이 죽는다. 그 남자는 세상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을 바라다봐준 유일한 사람이 처녀라고 한다. 때로 그의 모친한테조차도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왜 저런 인상인지 쯧, 하는 시선을 느낄 때가 있었다고.
아침에 집을 나올 때면 그 남자의 어머니는 그 남자에게 도시락을 싸준다. 돈 이천원과 함께. 그 남자는 어디에 있거나 점심 시간이면 도시락을 들고 처녀의 학교 앞으로 온다. 그들은 만나서 데모 대열을 헤치고 분식 집을 찾아가서 삶은 라면 하나를 시켜 가운데에 놓고 그의 도시락을 나눠먹는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의 잡곡이란 잡곡은 모르는 게 없는 듯하다. 수수와 조 검정콩과 보리. 제각기 다른 맛의 잡곡으로 섞어 지어진 밥은 오래 씹으면 결국 단맛 하나로 결합된다. 밥을 오래 씹는 것은 점심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남자는 일을 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 분, 혹은 십 분, 시간을 연장해보려는 처녀의 수작은 그 남자의 직업과 연관된 약속, 배달, 방문 들에 착오가 생기게 한다. 그것과의 비례로 사람이나 사물에 고정되지 못한 채 흔들리던 그의 불안정한 시선은 안정을 찾고 있다.
방금 어머니는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 같다. 모든 것이 허물어진 자리에서 언제나 새롭게 시작을 했던 여인에게 마지막 남은 건 포도나무가 있는 이층짜리 집이다. 우편환이 끊긴 자리에서 십사 년이 걸려 마련한 집. 내가 성장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늙었다. 샴푸며 린스 치약과 칫솔 비누가 담겨 있을 목욕 바구니를 손에 들고 늙은 어머니가 현관으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오는 걸 이층에서 내려다본다. 뒤꼭지에 억지로 틀어 묶어올린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어머니의 주름진 목덜미. 어머니는 방금 내가 응시하고 있던 포도 넝쿨 옆을 지나다가 생각이나 난 듯이 포도 넝쿨 아래의 개집을 들여다본다. 깊이 엎드리는 통에 손으로 짠 흰색 스웨터가 끌려올라가 빈약한 잔등이 다 드러난다. 들여다보면 뭐하나? 간밤에 해피가 돌아왔을 리도 만무한데. 맥없이 다시 허리를 펴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실루엣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어머니는 목욕 바구니를 추켜세우고 슬리퍼를 끌며 대문 쪽으로 가다가 덩굴손처럼 받침대를 감고 있는 포도 넝쿨 한 줄기를 톡 잘라 들여다본다. 나는 어머니가 두렵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까 봐. 어느 날 어머니가 저렇게 목욕을 갔다가 대문을 찾지 못할까 봐. 내 두려움에 문을 쾅 닫는 소리가 내가 서 있는 이층까지 들린다. 어머니는 골목을 빠져나가며 포도 넝쿨에 괴어 있는 봄물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내년에도 포도나무에 물이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몇 번의 봄이 내게 남았는가. 어제 나도 외출할 때 저 포도 넝쿨의 한 끝을 방금 어머니처럼 톡 잘라 손에 들고 들여다보며 긴 골목을 빠져나갔다.
어느 날, 숲속의 빈터에서 그 남자가 말한다. “이제 밤에는 너를 만날 수 없어, 창고를 지켜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어”라고. “어머니가 또 아프시거든.” 그 남자는 돈을 벌어야 한다. 겨우 스물셋이지만 그 남자는 열일곱 되던 해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 슈퍼마켓 배달원, 보일러 기술자 조수, 신문 배급소 직원이었던 그 남자. 열일곱 되던 해부터 아픈 어머니와 조모를 부양해야 했던 그 남자. 대학 같은 것은 꿈도 꿔본 적이 없는 남자. 꿈조차도 꿔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남자에게 대학이란 열등감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냥 세상에 그런 곳이 있을 뿐이고 그의 애인이 된 나는 그런 곳에 다니고 있을 뿐. 고등학교 일 년 다니고 돈 벌러 나왔다고 그 남자는 대수롭잖게 말한다.
밤의 공중전화. 그 남자가 창고지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후, 처녀는 밤이면 공중전화가 있는 시장통 앞에까지 걸어나가 그 남자에게 전화를 한다. 모든 것이 괜찮았다. 수화기 저편에 그 남자만 있다면.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곧 다시 할게.” 처녀는 다시 끝줄에 가서 선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혼자 쓸 수 있는 공중전화가 있다면 하고 바란 적이 있는 것도 같다. 이슥한 밤, 공중전화 속의 처녀. 자정이 넘도록 공중전화에 매달려 무슨 얘기인가를 끝도 없이 나눈다. 그 남자는 어두운 창고 안에서 처녀는 공중전화 부스 속에서. 유. 그 남자와 통화를 하면서 처녀는 문득 네거리를 지나가는 유를 공중전화 부스 유리문을 통해 바라본다. 향기가 날 것 같은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팔을 자유롭게 흔들며 걸어가고 있는 유를. 욕망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여기는 것도 없다는 듯이 부드러운 밤공기를 유유히 밀어젖히며 앞으로 나아가는 유를. 창고 속의 그 남자와 통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처녀는 한 블록 전의 유의 집, 유의 이층방을 올려다본다. 유가 기거하는 이층방에 막 실내등이 켜지고 있다. 처녀는 붉은 줄장미가 너울거리는 담벼락을 마주 보며 선 채로 창문에 어른거리는 유의 실루엣을 지켜본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유가 옷을 갈아입는다. 순간적으로 창문에 그려지는 옷을 벗은 유의 실루엣.
처녀는 줄장미가 피어 있는 이층집 앞으로 지나가는 빈 택시를 향해 순간적으로 손을 흔든다. 얼굴이 뜨거워져 있다. 손도 발도 귀밑도. “창동요.” 어두운 창고 안에서 막 잠이 들려던 그 남자는 얼마 전 통화를 마친 처녀가 창고 근처에 와 있다는 전화를 받고 숨을 헐떡이며 뛰어나온다. 어두운 창고는 아카시아 나무가 뿌리를 질기게 뻗친 야산의 중턱에 턱 하니 서 있다. 가로등의 불빛이 끊긴 어둠침침한 곳에. 삐걱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용도별로 잘라진 흰 종이가 사방에 빽빽하다. 처녀는 상자에 담겨 높다랗게 쌓여 있기도 한 종이 뭉치들을 들여다본다. 처녀는 처음으로 남자가 걱정이 된다. 이 종이들과 혼자 여기에서 잔단 말인가. 야산에 있는 이 음산한 창고를 열일곱 살 적부터 어머니와 조모를 부양하기 시작한 이 남자가 지킨단 말인가. 누군가 이 종이들을 훔치러 오면 이 남자가 그들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 그 남자의 야전 침대. 처녀는 불균형스런 야전 침대에 엉덩일 대고 앉아본다. 국방색 담요 한 장이 베개를 싸고 흐트러져 있다. 환기용으로 뚫린 창으로 아카시아꽃 냄새가 흘러든다. 그 창고 안에서 그 남자와 처녀 사이에 일어나려고 하고 있는 일. 봄밤, 창가에 비치는 유의 벗은 몸이 지닌 아름다운 선을 본 순간부터 일은 결정되어 있었다. 처녀는 그 남자를 향한 욕망을 더이상 정지시킬 수가 없다. 이미 유의 집 앞에서 빈 택시를 잡아타는 순간부터 진행되었던 일. 처녀는 그 남자의 야전 침대에 앉아 자신의 발끝에 매달려 있는 슬리퍼를 내려다본다. 그럴 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욕망을 감춘 채. 그 남자의 손은 떨고 있다. 그 남자는 처녀에게 무섭지 않느냐고 묻는다. 처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처녀는 기다린다. 어머니는 그 순간에 처녀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미 처녀의 행방을 찾아 어머니가 다녀볼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을지도 모른다. 집 앞 놀이터와 시장통과 몇 시간 전 처녀가 들어가 있던 공중전화 부스. 그 남자는 몹시 떨고 있다. 너무 떨고 있으므로 처녀가 불쑥 “난 무섭지 않아”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야산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그 남자의 떪. 손을 뻗어 처녀의 얼굴을 만져본다. 조심스러운 손길 속에는 여태 무엇도 거절한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만이 지니는 간절함이 배어 있다. “너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한다”고 그 남자는 말한다. 하지만 자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고 오로지 “너뿐이야”라고. 처녀는 그 남자를 쳐다본다. 자신을 안아보라고 한다. 창고 안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는 다정한 말이다. 남자는 떨고만 있다. 처녀는 스스로 자신의 원피스를 낚아채듯 벗어버린다. 손바닥에 걸쳐진 것을 바닥에 던져버린다. 그 남자의 떨고 있는 손을 끌어다가 원피스 안에 입고 있던 흰 면 속치마 끈에 대준다. 차마 못 하겠는지 그 남자의 손이 스르륵 떨어져내린다. 그는 울고 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너는 나를 떠나려는 거야” 그 남자는 슬피 말한다. 처녀는 자신이 그 남자를 갈망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누구나 하는 짓일 뿐이라고. 남자는 눈물을 그치고 나는 아무래도 못 하겠다고 네가 해달라고 한다. 처녀는 야전 침대에 무릎을 꿇고 그 남자의 옷을 벗긴다. 셔츠 속에서 드러나는 부드럽고 연한 속살. 그 남자의 얼굴선이 지나치게 접근 금지의 표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반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 어린아이 같은 속살. 열일곱이란 나이로부터 성장이 멈춰버린 듯한 야윈 몸이 생존본능처럼 지닌 부드러움. 처녀는 그만 울어버린다. 그 남자가 가엾다. 마치 자신이, 내부의 욕망이 그 남자를 겁탈하려는 것 같다. 그제서야 그 남자는 처녀를 끌어안는다. 수줍어서 처녀를 바로 보지 못하던 그 남자는 처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서로의 몸에 가시가 돋은 것처럼 차츰 몸이 따뜻해질수록 아프기까지 하다. 그 아픔이 서로를 더욱 끌어안게 한다. 아파하며 그들은 쾌락에 젖어든다. 몸에 돋은 가시는 서로의 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박힌다. 처녀는 자신이 하혈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제 몸의 가시를 남자의 피부 깊숙이 박고 있다. 피가 묻은 그 남자가 하혈을 닦아주며 처녀를 다시 끌어안는다. 행위 도중 우느라고 그 남자나 처녀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다. 거센 욕망의 물결이 비천하다는 느낌을 동반하고 쓸려간다. 행위를 시작하기 전이나 도중에 서로 아무 말이 없던 두 사람은 좁은 야전 침대에 포개진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 남자가 말한다. 그저께, 조계사 앞을 걷고 있었다고.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문예지 영인본을 사겠다는 회사 사무원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고. 수송동 쪽에서 갑자기 데모대가 쓸려나왔다고. 곧 이어 최루탄이 터졌다고. 지하 다방으로 일단 피하려고 하는 참이었는데 어른 스님들과 동자승들이 앞에서 걸어왔다고. 예닐곱 살쯤 되어보이는 동자승들 머리가 햇빛에 반짝거렸다고. 그 반짝임이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큰스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장난을 치는 동자승, 쭈쭈바를 빨며 앞서 걷는 동자승에게 발걸기를 하고 있는 동자승, 시위대가 몰려나오는 쪽으로 눈길을 주느라 걸음이 뒤처져 큰스님에게 채근을 듣고 있는 동자승. 그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동자승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고 말한다. 간지러워 손길을 살살 피하는 게 귀여워서 자꾸만 만졌다고. 손끝에 감촉이 사라지기도 전에 최루탄이 또 터져서 골목으로 숨었다가 나와 보니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고. 그 남자는 이어 말한다. “아까 너의 몸을 보고 있는데 그저께 그 동자승들의 반짝이던 머리가 떠올랐어”라고. “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그 남자는 묻는다. 사막에 불길이 치솟아 모래가 불타고 있는 느낌이었어, 처녀는 속으로만 생각한다. 말하지 않는다. 욕망의 뒤끝에 물리던 고독을 처녀는 그 남자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 거짓 표현도 싫다. 하지만 그걸로 그 남자에게 상처를 주기는 더 싫다. 표현을 체념한 처녀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일그러진다. 어디선가 밤새가 운다. 벽을 타고 밤바람 소리가 전해오는 것도 같고 아카시아 꽃잎들이 밤공기 속을 떠도는 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대답 대신 창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흰색 면 속치마를 처녀는 이윽히 바라본다. 처녀는 오늘 밤의 일을 잊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아픔을 뚫고 올라오던 쾌락을, 아카시아 냄새와 종이 냄새를, 밤새 울음소리를. 동자승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욕망의 뒤끝에 남겨진 이 비천함을.
그의 존재와는 상관없는 이런 영상들.
시청 앞이나 안국동 거리에 줄서 있던 전경차들. 아랑곳없이 펄럭이던 프라자 호텔의 깃발들, 그리고 뙤약볕. 밝은 빛깔의 뺨을 지니고 있던 나의 여자친구 유. 언제나 물기 맺힌 듯 아래 눈자위에 그늘을 드리우던 그녀의 긴 속눈썹. 그리고 또 뙤약볕. 광화문쯤이었을까. 얼굴이 붉게 그을린 전경 청년들이 군화 속에 냄새나는 발을 가둔 채 식기에 밥을 타서 우적우적 먹고 있다. 그 곁을 왜 유와 함께 지나가게 되었는지. 쉰내를 풍기는 듯한 국 속으로 떨어지던 땀방울을 보는 순간 구토를 참을 길 없어 나무둥치 밑에 엎드렸던 유. 그와는 상관이 없는데도 그를 생각할 때면 연상작용처럼 떠올랐다 가라앉는, 그의 존재와는 연계가 되지 않는 영상들.
이후, 밤마다 처녀는 그 남자가 일하는 창고로 간다. 딸기밭에 갈 때까지. 그들의 행위 속에 이제 아픔은 없다. 남자는 울지 않고도 처녀를 안을 수 있게 되었다. 떨지 않고도. 그 남자는 행위가 끝난 후 수건에 물을 묻혀 처녀의 땀에 반들거리는 가슴이나 이마를 닦아주다가 다시 한번 처녀의 몸 속으로 밀고 들어오기도 한다. 그 남자와 처녀는 침묵 속에서도 서로를 원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곤 한다. 그 남자는 점점 야위어간다. 처녀의 어머니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피로에 지친 얼굴로 대문을 들어서는 딸에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손자국이 남기는 아픔은 처녀의 욕망을 저지하지 못한다. 뺨이 부은 채로 처녀는 다음날 밤 다시 그 남자가 있는 창고로 간다. 그 남자는 처녀의 부은 뺨을 핥아준다. 처녀는 문득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세상으로부터 잊혀져도 좋다고. 어디서나 그 남자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다.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서명지에 서명을 하는 동안에도. 손이 서명을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 남자를 향한 욕망은 처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 남자는 점점 야위어간다. 여전히 잡곡이 들어 있는 도시락을 함께 나눠먹으면서 그 남자는 땀을 흘린다. 처녀가 땀을 닦아준다. 스치는 피부. 두 사람은 동시에 어서 밤이 왔으면 생각한다. 야산에 놓여 있는 밤의 창고가 그리워진다. 지업사나 인쇄소로 배달될 종이들이 쌓여 있는 야산의 그 어두운 창고가 그들에겐 가장 알맞은 장소이다.
처녀의 순수한 욕망에 균열이 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를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처녀는 그 균열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다만 이 점만은 분명하다. 차츰 처녀는 잠을 잘 수가 없다. 그 남자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에 그녀는 무엇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 학교에 나가는 일도 힘이 들었고, 기분이 아주 들떴다간 금세 죽어 있는 듯한 상태가 반복된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다가 서랍장을 열고 팬티와 브래지어를 생각없이 다 꺼내놨다가 들여놓기도 한다.
그때의 처녀의 또래들, 그때의 젊은이들은 일정량의 우울을 누군가에게 배급받은 것 같았다. 연일 계속되는 데모 대열과 곧 이어 터지는 최루탄 가스로부터 수혈받은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앉음새나 걸음걸이나 응시 속에 섞여 있는 일정량의 좌절. 어느 시대나 진실을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때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충격들을 그 좌절은 껴안고 있다. 대학가 앞에서 기르는 새들은 하나 둘씩 죽어나갔으며 수목들 또한 맥없이 시든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우울은 어디서나 모습을 드러낸다. 처녀의 주위 사람들은 누구도 그 냄새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유, 그녀를 제외하고는. 좌절은 냉소를 기르고 여학생들의 피부를 망가뜨리기도 했으며, 증오를 번식시키다가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 남자는 말했다.
십이 년 전에 내가 왜 약속장소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았는가를 사 년쯤 생각했다고. 십이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알고 있을까? 그날의 나의 행위에 대해서. 무엇이 그 행위를 유발시켰는지에 대해서?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오월이었다.
그 남자에게서 전화가 온다. 숲속의 빈터에 와 있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열한시다. 오전 열한시에 지하 레스토랑 칸막이 속에 들어가 앉아 있는 처녀를 기다리는 그 남자. 처녀는 나갈 수 없는데, 라고 얼버무린다. 벌써 여러 날째 학교에도 가지 않았고, 그 남자가 혼자 있는 야산의 창고에도 가지 않았다.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지도 않았다. 전화벨이 울려도 처녀는 받지 않았다. 벨이 너무 길게 울리면 어머니가 받았다. 아마도 그 남자는 그냥 끊었으리라. 일요일에 그 남자는 성당에 나간다. 열한시 미사. 그 남자가 그 시각에 성당에 있으리라 생각해서 무심코 받은 전화다. 처녀는 정오가 되도록 집에 있다.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입고도 그냥 뭉개고 있다. 그 남자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다. 처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다. 처녀는 난 나가기 싫다, 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 남자에게 그런 말은 해본 적이 없다. 그 남자와라면 언제든 무엇이든 가능했다. 가는 것, 오는 것, 기다리는 것. 간혹 그 남자가 약속장소에 늦게 나타나도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다리겠어, 네가 나올 때까지.” 그 남자는 전화를 끊는다. 처녀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그 남자는 처녀에게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녀는 그 남자와 더이상 관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그 남자에게 전할 수가 없다. 그건 그 남자와 처녀 사이의 어법이 아니었다. 처녀는 무료한 기분이 든다. 가방을 들고 긴 골목을 고개 한 번 들지 않은 채 빠져나온다. 그때까지도 처녀는 자신이 유의 집 초인종을 누르게 될 줄을 알지 못한다. 유의 집 담벼락을 수놓고 있는 붉은 넝쿨장미를 바라보는 순간까지도. 수십 송이의 붉은 장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처녀는 그 남자가 숲속의 빈터 칸막이 속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진다. 유의 집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온다. 쇼팽의 녹턴이다. 유가 치는 것일까. 숙련된 솜씨다. 처녀는 붉은 장미를 응시하며 붉은 담을 발로 툭툭 차며 귀로는 격정으로 치닫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다. 흰 건반 검은 건반 사이를 뛰어다니는 유의 흰 손가락들이 눈앞에 영상으로 펼쳐진다. 오월의 햇살이 붉은 장미 사이로 투명히 쏟아진다. 처녀는 순간적으로 우편물을 담아놓는 흰 바구니 옆에 매달려 있는 초인종을 길게 누른다. “누구세요?” 유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처녀라는 걸 확인한 유가 안에서 문의 잠금 장치를 풀어준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정원의 꽃들이 처녀의 눈 속으로 쏟아진다. 금잔화, 팬지, 석죽, 패랭이 들이 군을 이루며 잔잔히 흔들리고 있다. 처녀가 잠시 꽃물결에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을 때 계단 위의 현관문이 열리고 끈 달린 흰 면티 아래로 파란 반바지 차림의 유가 털이 복슬한 개 한 마리를 품에 안고 나온다. 긴 머리를 틀어올려 뒤꼭지에 리본으로 고정시켜놓았다. 유가 치는 피아노는 아니었다. 유가 바깥으로 나왔는데도 녹턴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는 네가 웬일이냐고 묻지 않는다. 처녀는 그 동안 유를 집에 들이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귀가를 함께 하는 길에 유가 “집에 한번 초대해주겠어?” 했지만 처녀는 못 들은 척했다. 처녀 또한 유의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유는 현관문 쪽을 가리키며 “들어갈래?” 묻는다. 처녀는 고개를 젓는다. 유는 너무 밝고 화사하다. 유에게서 불균형이나 결핍을 조금만 느낄 수 있었어도 처녀는 유를 자신의 집으로 들였을 것이다. 처녀 또한 유의 집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자매애가 지워진 자리에 움튼 배제의 욕구. 유는 품에 안고 있던 개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이름이 뭐야?” “해피.” “이름이 너무 흔하다.” “어머니가 지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그래. 아무도 그렇게 개 이름을 안 지을 거라고 하면서 지었단다. 내 생각엔 아마 서울 시내에 개를 풀어놓고 해피 모여라! 하면 그중 절반은 모일 것 같은데.” 유의 말에 처녀는 웃는다. “중국계 시쮸야…… 영리해, 질투가 많아. 그래서 사랑스럽고.” 중국계 시쮸, 처녀는 혼자 웅얼거리듯 발음해본다. 대문 앞에 서서 해피가 잔디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걸 쳐다보던 유가 느닷없이 “딸기밭 가지 않겠니?” 묻는다. “어머니랑 오늘 안양에 있는 딸기밭에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저렇게 피아노만 치고 있다”고. 어머니가 피아노를? 처녀의 가슴속에 남산으로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던 젊었을 적의 어머니가 스쳐 지나간다. 파전, 밀주 앞에 있는 어머니가. “함께 가주지 않겠어?” 순간 처녀는 유의 청유형 말투에 이끌린다. “딸기밭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그럼 매년 가는 곳이 있어. 내가 딸기를 엄청 좋아하거든.” 유는 처녀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다. 유가 현관 쪽으로 팔짝팔짝 뛰어가자 나른하게 잔디밭에 엎드려 있던 중국계 시쮸가 재빨리 뛰어 유의 뒤를 따른다.
집 앞, 사거리 어두운 지하 레스토랑 숲속의 빈터의 칸막이 속에 그 남자를 두고 처녀는 유를 따라나선다. 수원 가는 어디쯤에 있다는 딸기밭에 가기 위해 153번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지하철을 탄다. 유에게 모아지는 시선들. 지하철의 소음까지 잊게 하는 유의 화사함. 서울역에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다. 지하도 안에까지 최루탄 가스의 매캐한 냄새가 자욱하다. 유의 눈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지하도 안에서 유의 밝음은 누구나의 눈에 띈다. 집에서 입고 있던 끈 달린 흰 면티 위에 속이 비치는 하늘빛 재킷을 걸친 유. 흰색 바탕에 하늘색 작은 물방울이 프린트된 에이라인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는 유. 집에서 머리에 꽂고 있던 리본핀을 빼자 땋은 갈색 긴 머리채가 어깨 밑에서 찰랑거린다. 매끈한 종아리 밑에 복사뼈까지 목이 올라오는 흰 운동화를 신고 있는 유. 너무 깨끗해서도 눈에 띄는 유.
유는 아름다웠다. 그 점만은 분명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영화 속의 여자들에게서 갖게 되는 느낌, 유에게서는 그런 분위기가 흘러나온다. 햇볕이 너무 따갑다. 지하철에서 내려 유와 처녀는 노점에서 밀짚모자를 하나씩 사서 쓴다. 똑같은 모자임에도 유가 쓴 모자는 유의 외모로 인해 훨씬 고급스러워 보인다. 노점 앞에 서 있던 어떤 여자가 처녀가 쓰고 있는 밀짚모자를 보고는 그냥 시선을 내리깔다가 유를 바라보고는 유심히 밀짚모자를 살펴본다. 밀짚만이 지니고 있는 결이 돋보였을 것이다. 유가 쓰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모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가 쓰고 있기 때문에 그 여자도 유가 쓰고 있는 것과 같은 밀짚모자를 달라며 값을 치른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유를 찬미하라고 지시를 받은 사람들처럼 유를 바라다보는 시선 속에는 경이가 스며 있다. 정말이지 사람들이 너무나 유를 쳐다보아 그 곁의 처녀조차 으쓱한 기분이다. 그 경이로 인해 처녀는 집 앞의 지하 레스토랑 숲속의 빈터 칸막이 안에서 그 남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가수는 말했다.
정태춘씨가 한번은 강원도 쪽에 강연이 있어서 갔어요. 저 사람이 출신이 그쪽인데 강연을 마치고 후배들과 함께 정동진을 갔다고 해요. 저 사람은 모래시계가 방영될 때 사실 그걸 한 번도 안 봤어요. 사람들이 우리가 모래시계 세대라는 말을 하며 정동진을 곁들이니까 정동진에 가면 지나간 희망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갔었대요. 그런데 그냥 아름다운 바닷가와 함께 기차역 그리고 고현정씨를 배경으로 해서 찍었던 소나무만 한 그루 있더래요. 모르겠어요. 저는 아직도 정동진엘 못 가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지나갔다고 해요. 너무나 갑작스런 소나기라서 기차역으로 몸을 피했다고 해요. 텅 빈 기차역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역 차창 밖 하늘에 아름다운 외무지개가 떴더래요. 너무나 아름다워서 오래 바라봤다고 해요. 그걸 보고 속초 시내로 나왔는데 속초에 굴다리가 있어요. 시장 쪽에요. 저 사람이 칼을 아주 좋아해요. 그래서 재래식 좋은 칼이 있으면 하나 사오려고 굴다리 쪽을 어슬렁거리는데 글쎄 이번에는 굴다리를 배경으로 쌍무지개가 떠오르더래요. 그 쌍무지개를 보고서 저 사람이…… 저 사람은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아무것도 변한 것 없지만 그래도 외무지개 쌍무지개가 번갈아 떠오르는 것 보니 여기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그렇게 두 번씩이나 떠오른 빛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던가 봐요. 그날 밤에 저 사람이 서울에 돌아와서 만든 곡이에요. 정동진 불러드리겠습니다.
텅 빈 대합실 유리창 너머 무지개를 봤지. 끝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 그 바다 위 소나기 지나간 정동진. 철로 위로 화물 열차도 지나가고 파란 하늘에 일곱 빛깔로 워……
딸기밭은 수원 미처 못 가서 있다. 멀리 야산, 산벚꽃이 진 자리에, 초록이 짙다. 황토를 따라, 좁다랗게 이어지는 흙길을 벗어나자 딸기밭이 펼쳐진다. 딸기밭 입구의 목판에 써 있는 붉은 글씨가 시선을 끈다. 신선한 딸기 직접 따가세요. 한 바구니에 오천원. 오월의 그늘 속에, 녹색 잎새 속에, 촉촉한 흙 위에 붉은 딸기들이 납작납작 달려 있다. 바람이 불어 녹색 잎새가 한쪽으로 쓸릴 때마다 아직 솜털이 보송한 붉은 딸기가 수줍게 자태를 드러낸다. 머리에 수건을 쓴 여인이 붉은 딸기를 따서 바구니에 담고 있다가 유를 발견하고는 아가씨 오셨네, 밭두둑에서 일어난다. 손바닥에 가득 딸기물이 배어 있다. “사모님은요?” “점심때 외삼촌네 꼬마에게 피아노를 쳐주기로 했다고 못 온대요.” “뵙고 싶은데.” “안부 전해드리랬어요.” 딸기밭은 그녀 가족의 소유지. 그러므로 딸기밭에서조차 자유로운 유. 원두막 밑에 그만그만한 대바구니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드문드문 딸기를 먹으러 온 사람들이 돗자리 위에 앉아 있다. 금방 따서 물에 씻어온 붉은 딸기를 한 바구니씩 앞에 놓고서. “딸기 따러 가자.” 유가 처녀에게 대바구니를 내민다. 유를 아가씨라 불렀던 여인이 딸기밭으로 들어가려는 유를 불러 흰 면장갑을 내민다. 유는 면장갑을 받아 처녀에게 준다. 무심코 받아들던 처녀가 생각난 듯이 “넌?” 하고 묻는다. “난 장갑 싫어…… 재미없어. 꼭지를 딸 때마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얼마나 좋은데.” 손의 감촉. 처녀는 흰 면장갑을 바구니에 담는다. 어린 딸아이를 안고 딸기밭으로 들어가던 젊은 남자가 엉거주춤 앉아서 녹색 잎새를 젖히고 잘 익은 딸기를 따고 있는 유를 훔쳐본다. 유의 손가락에 가 닿는 딸기를, 에이라인 스커트가 끌려 올라가는 사이에 햇빛과 녹색 잎새와 붉은 딸기 앞에 드러난 유의 하얀 허벅지를. 처녀는 그 남자의 훔쳐보는 눈에 실리는 욕망을 읽는다. 처녀는 저 눈을 본 적이 있다. 밤마다 그 남자가 있는 창고를 찾아가기 전의 자신의 눈이다. 손바닥에 찬물을 받아 눈이며 목을 씻어도 사라지지 않던 거울 속의 눈.
바구니에 붉은 딸기가 가득이다. 바구니 밑바닥에 깔린 흰 면장갑을 끌어내보니 붉은 물이 촉촉이 스며들어 있다. 처녀는 면에 밴 딸기물을 잠시 응시한다. 그리곤 가능한 한 고개를 들지 않고 딸기만 따려 한다. 고갤 들거나 조금 시선을 비끼면 햇빛에 반짝이는, 땋아내린 유의 갈색 머리, 그 사이에 놓여 있는 고운 목덜미, 붉은 딸기와 녹색 잎새 속의 유의 흰 허벅지, 홍조를 띤 유의 뺨이 시선에 들어온다. 유는 딸기 따는 일에 몰두해 딸기밭 속에 놓여 있는 자신의 관능성에 대해서 완전히 방심해 있다. 엎드릴 때마다 아직 누구도 만져보지 못한 자그맣고 봉싯한 가슴이 투명하게 엿보인다는 것도 유는 모르고 있다. 발육부진의 육체를 지닌 처녀는 고통스럽다. 새끼손가락을 갖다 대고 싶은 유의 쇄골, 그 관능적인 움직임 때문에, 유의 말랑한 귓불을 물들이고 있는 발그레한 빛 때문에.
귀하.
유의 자취들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유가 남긴 흔적으로 책이나 기타 다른 형식을 취하려는 건 아닙니다. 저의 필체로 세상에 단 한 권 존재하는 노트를 만들어보려는 것입니다. 그 노트를 그라고 생각하며 지내보려 하는 것입니다. 외람된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그를 추모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어미로서 그의 존재를 간직해보기 위함입니다. 다시 한번 낳아보기 위함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그의 벗들, 그의 숨소리를 느껴보고 싶은 것이 더 큰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원두막으로부터, 유를 보호해줄 수 있는 면장갑을 준 그 여인으로부터, 그들은 너무 멀리 나왔다. 햇빛을 따라 녹색을 따라 붉은 딸기를 따라 너무 멀리.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가물가물할 만큼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처녀가 몰랐다면 좋았을까. 처녀는모르고 있었다. 자신을 고개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유가 지니고 있는 관능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살의였다는 것을. 유가 지닌 것을 훼손시켜 더럽혀놓고 싶은 깊은 살의였다는 것을 처녀는 몰랐다. 붉은 딸기를 따는 데 정신이 팔려 방심해 있는 유의 흰 목덜미에 손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자신의 손길을 무심히 여기는 유의 목덜미를 처녀는 손아귀에 넣는다. 유의 흰 목덜미는 햇볕에 달구어져 있으며 젤리처럼 부드럽다. 목덜미를 감싸안은 두 손아귀에 서서히 힘을 가하자 유가 처녀의 눈을 들여다본다. 아름다운 눈이다. 하늘이 비치도록 시린 눈이다. “아파.” 유가 켁켁거리며 처녀를 바라본다. 아름답고 맑고 순한 눈에 이번엔 간절함이 실린다. 그뿐이다. 유에게 비애란 없다. 고통이란 없다. 결핍도 없다. 불가능도 없다. “많이 아파?” “응.” 처녀는 손목의 힘을 풀고 유를 끌어안는다. 그 통에 유의 바구니에 소복소복 담겨져 있던 붉은 딸기들이 밭에 쏟아지며 으깨어진다. 유의 에이라인 스커트에 딸기의 붉은 물이 스친다. 처녀는 아직 고스란히 바구니에 담겨져 있는, 자신이 딴 딸기를 한줌 집어 유의 깨끗한 치마 위에 놓고 이겨버린다. 유는 저항하지 않고 치마에 번지는 붉은 물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유의 살빛은 투명하다. 발육은 조화롭다. 비틀리지 않았다. 억압받지 않는다. 처녀는 유의 밝은 귓불에 혀를 갖다 댄다. 유의 흰 목덜미에 처녀의 손자국이 빨긋하다. 처녀는 유의 목에 나 있는 자신의 손자국을 따라 유를 애무한다. 유의 천진함. 처녀가 유의 약간 벌어진 입 속에 혀를 밀어넣을 때까지도 유는 저항하지 않는다. 나직하다. 평화롭다. 적의가 없다. 처녀가 유의 목구멍 깊숙이 혀를 집어넣었을 때다. 돌연 유가 가슴을 벌려 처녀를 끌어안는다. “누워!” 돌연 유가 명령한다. 단호하다. 지금까지의 무저항은 “누워!” 그 명령어를 수행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듯. “나를 죽이려 했지!” 유가 돌연 거칠어진다. 처녀를 덮치고 웃옷을 젖히고 처녀의 젖가슴에 딸기를 쏟아붓는다. 유의 손길은 부드럽고 능란하다. 감미롭고 완벽하다. 처녀는 눈을 감아버린다. 뺨에서, 배에서, 허벅지에서 딸기가 으깨어지는 감촉이 유를 거부할 수 없게 한다. 유의 감미로운 손가락이, 입술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어떠한 찌꺼기도. 엎치락뒤치락거리는 욕망 속으로 모든 것이 빠져들어간다. 엷은 땀냄새도 딸기를 키운 흙냄새도 그 남자와의 행위 뒤에 남겨지던 고독까지도.
이미, 신학기의 강의실에서 시위대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책상에 엎드려 있던 그 순간부터, 뒷자리에 앉은 유의 종아리를 무심코 보게 되었던 그 순간부터, 딸기밭에서의 살의는 처녀의 마음속에서 싹이 트고 있었던 것 같다. 묘한 부적응증과 함께 시작된 유의 영상은 때로 어지럽게 흩어질 때도 있었지만, 바로 이 순간, 딸기밭의 이 순간으로 발효되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불현듯 처녀는 알게 된다. 그토록 모호했던 유의 영상이 딸기밭에서 완결되었음을.
딸기밭에서 나왔을 때 면장갑을 건네주었던 여인이 혀를 쯧쯧 찬다. “다 큰 아가씨들이 웬 장난질을.” 딸기밭에 딸린 여인의 집에서 처녀와 유는 서로의 몸을 씻겨준다. 서로 붉은 물이 밴 팔꿈치나 무릎을 닦아준다. 타월로 서로의 몸을 닦아주고 여인이 챙겨놓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처녀는 푸른색 아메바가 그려진 블라우스와 몸뻬 바지를, 유는 차이니스 칼라의 갈색 낡은 원피스를. 헐렁하고 촌스러운 여인의 옷조차도 유의 아름다움을 훼손시키지 못한다. 처녀와 유는 구식 디자인의 여인의 해진 옷 속에 몸을 집어넣고 자매들처럼 껴안고 긴 낮잠에 빠져든다. 처녀가 깨어났을 때 사방에 어둠이 내려 있다. 여기가 어디일까? 괴괴한 방. 손때가 묻은 목침, 문이 반쯤 열린 장롱, 씹다 만 껌이 붙어 있는 벽, 못에 걸려 있는 헐렁한 남자 바지. 옆에서 유는 아직도 잠들어 있다. 처녀는 손을 유의 심장께에 얹어본다. 규칙적인 숨소리. 처녀는 반쯤 몸을 일으켜 유의 심장이 숨어 있는 곳쯤에 얼굴을 묻고 조금 운다. 이제는 그 남자에게 갈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그 남자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여인이 둘의 옷을 빨았어도 붉은 딸기물이 사방에 번져 있어 입을 수가 없다. 둘은 여인의 옷을 입은 채로 여인이 미리 싸놓은 딸기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밀짚모자를 쓰고 다시 지하철을 탄다.
처녀는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면서 고개를 한없이 떨군 그 남자와 마주친다. 그 사이 얼굴이 달라졌을까. 처녀는 계단을 올라가는 중이고 그 남자는 내려오는 중이다. 딸기밭에서 처녀의 얼굴이 바뀐 것일까. 그 남자의 시선이 분명 처녀의 동공에 머물렀는데도 그 남자는 처녀를 못 알아본다. 우울하고 슬픈 체념의 낯빛. 다시 되살아난, 그 남자의 외모에 서린 접근 금지의 팻말. 고개를 떨군 채 그 남자는 지하철을 타러 내려간다. 그 남자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두고 처녀는 시계를 들여다본다. 밤 열한시. 그 남자는 꼬박 열두 시간을 그 지하의 칸막이 안에서 처녀를 기다렸을까. 곧 뒤따라 나왔으나 유는 간 곳이 없다. 처녀는 유의 뒷모습을 찾아 여기저기 휘둘러본다. 유는 없다. 가버렸다. 인사 한마디 없이. 유가 사라진 자리에 지상의 소음과 자동차 클랙슨 소리, 밤의 네온 빛들만이.
이후, 나는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다. 인생에서, 삼십 세가 되기 전의 터널에서, 무슨 까닭으론지 곁엣사람을 한 사람쯤 잃은 경우는 허다하다. 그들이 죽음에 이르기에는 너무 젊기 때문에 그들은 사라지는 것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함께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놓는다. 유, 나는 그녀가 딸기밭에 다녀온 후 어떤 시간을 보냈으며 죽음 앞에서의 그녀는 어땠는지 장례식은 어떻게 치러졌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을 뿐.
귀하.
하지만 그를 추억하는 일을 의무로 여기시지는 마십시오. 언제까지나 자발적인 기고를 바랍니다. 그것만이 그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의미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제가 그를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간직하고 이해하기에 오해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저하면서도 귀하께 도움을 청하는 이유입니다. 그의 흔적을 모으는 데 도와주실 마음이 있으신지요. 귀하가 그와 어떤 관계에 있으셨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마는, 만약 귀하께서 이 일을 도와주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귀하께서 써주실 내용은 그의 인간성, 그와 함께 나누었던 생각, 그가 남긴 말,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내용이라도 좋습니다. 귀하께서 이 일을 도와주는 일이 어떤 이유로도 귀하께 누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점을 서약합니다.
딸기밭에서 돌아온 후 나는 금지된 것들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생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인다. 내가 분석할 수 없는 또다른 세계가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그것이 인간을 변화시키리란 것도. 내 인생에 그 남자와 유를 통과시킴으로써 나의 욕망은 끝에 다다랐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망각의 일만 남아 있었을 뿐. 지금으로서는 그 옛날, 금지된 것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치닫던 그 처녀가 나였는지조차 희미할 뿐.
나는 나를 귀하, 라 칭한 유의 어머니에게 아무런 글도 보내지 않았다.
*유의 어머니 편지는 故 안승준의 유고집 서문의 일부를 변형한 것임
「 문학동네」 199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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