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 지 그 자취를 살펴보면
후손인 우리는 거기서 배울 바가 참으로 많습니다.
250년 전 서울을 배경으로 활동한 장혼(張混)이란 선비가 있습니다.
장혼이라는 선비는 그의 ‘평생의 소망’이라는 글에서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인왕산 아래 옥류동 골짜기에 있는 허름한 집 한 채에 마음에 끌려 가지고
언젠가 그 집을 사들여서 꾸미고 싶은 소망에 아주 부풀어 있어요.
이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집값을 물어보니까 엽전 500냥이 간다.
그 당시 500냥은 그렇게 큰 돈은 아닌가 봐요.
이 집을 자기가 사가지고 꿈을 꿔요.
집의 둘레에는 평소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고
채소 밭을 일궈가며 사는 꿈에 늘 부풀어 있습니다.
평생의 소망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주거공간에서
어떻게 살겠다는 생활의 모습이 낱낱히 제시하고 있었요.
내가 누리는 행복, 즐기는 경치, 일상에 쓰는 도구, 늘하는 일,
귀중하게 여기는 책 조심할 것 등을 차례차례 나열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 맑은 복 여덟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태평시대에 태어난 것 .
자신이 태어난 시대가 전쟁이 없고
아주 태평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때가 소위 문예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영 정조 시대입니다.
250년 전 다산 정약용이 살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둘째 , 서울에 사는 것.
요즘의 서울에 비하면 대단한 곳이 아니겠지만,
250년 전 서울은 도성으로서
지금처럼 교통도 복잡하지 않고
여러가지로 살기 좋았던 가봐요.
셌째, 자신이 다행히 선비라는 신분을 가진 것.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넷째, 문자를 대충 이해하는 것.
이는 겸손한 표현입니다.
그는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초서와 예서에도 뛰어났습니다.
다섯째, 산수가 아름다운 곳 하나를 차지한 것.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옥류동 골짜기 집을 사들여서
이런 표현이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여섯째, 꽃과 나무 천여 그루를 가진 것.
대단해요.
직접 심고 가꾸는 꽃과 나무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던 듯합니다.
일곱째, 마음에 맞는 벗을 얻은 것.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겁니다.
마음에 맞는 벗은 매우 든든한 인생의 자산입니다.
여덟째, 좋은 책을 소장한 것.
이와같이 맑은 복 여덟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각자 내 자신이
어떤 맑은 복을 누리고 있는 지 한번 돌이켜 보세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정말 내가 조촐하게 지니고 싶은
맑은 복이 있는 지 있다면 한번씩 들춰 보세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우리가 살았고
맑으니 흐리니 그런 분별도 없이 살았기 때문에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겠지만 이 다음 한가한 시간에
내가 지금 순간 순간 내게 주어진 맑은 복을
어떻게 받아 쓰고 있는가
한번씩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산중에서 혼자 지내면서도
기가 죽지 않고 나날이 새로워지려는 것은
무엇인가 내 뒤에서 나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둘레 무엇이 있는가 돌아보니까
맑은 복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스승과 말 벗이 될 수 있는 몇권의 책이 있습니다.
고마운 존재들이예요.
마음의 양식이 나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둘째, 출출하거나 무료해지려고 할 때 마실 차(茶)가 있어요.
내가 산중에서 살면서 차맛을 모른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이런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돼요.
단지 차만 마시는 것이 아니고
그 차를 통해 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보고 생각하고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죠.
차는 삶의 맑은 여백같은 것입니다.
셋째, 혼자 사는 사람들이 딱딱하고 굳어지잖아요.
걸핏하면 신경질이나 내고요.
내가 굳어지려는 삶에 탄력을 주는 음악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건전지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넷째, 내 일손을 기다려주는 채소밭이 있다는 사실이
아주 새삼스럽게 고맙게 여겨지게 하더라고요.
책과 차와 음악 채소밭이
내 삶을 녹슬지 않게 받춰주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고맙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한가한 시간에
자기 삶을 녹슬지 않게 받춰주는 맑은 복이
몇개나 되는 지 한번씩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2008년 가을 정기법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