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기다리는 점분 어르신>
# 들어가기
낮으막한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 오르면 돌담이 보이고 대문 없는 점분 어르신의 집 마당이 보인다. 내 발걸음 소리를 알아듣고 백구가 컹컹거린다. 누가 오나? 백구의 기척에 어르신이 대문간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바라보신다. 어르신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백구도 좋아서 쇠줄을 철렁거리며 뛰어오른다.
올 때마다 정겹게 느껴지는 어르신의 집. 가평군 상면 비룡로 2202-26번지라고 적힌 명패를 키 큰 접시꽃이 가리고 서 있다. 옛날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바깥마당을 들어서면 나무 대문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또 작은 마당이 있고 툇마루가 있어 더 정겹게 느껴지는 ㅁ자 모양의 집이다.
백구는, 혼자 사는 어머니가 적적해 할까 동무삼아 키우라며 아들이 새끼 때 데려왔는데 토실토실한 강아지가 귀엽다며 점순 어르신은 백구를 수시로 등에 업어주며 키웠다. 나도 백구가 귀여워서 이것저것 간식을 챙겨다 줬더니 갈 때마다 먼 길 다녀온 신랑을 맞이하는 새색시처럼 반겨준다. 그럴 때마다 어르신은, 어찌 알고 안 짖는지 모르겠다며 신통하다 하신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은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꽃 좋아한다는 며느리가 가져다 놓은 다육이 화분들이 섬돌 위에 즐비하다. 잎이 마른 화분에 물을 주고 다시 앉는다. 지붕 처마 아래에는 여러 개의 통들이 늘 줄서서 비를 기다리며 앉아 있다. 큰 고무통부터 작은 양은 냄비까지 예닐곱 개나 늘어놓고 빗물을 받는다. 빨래거리가 나오면 그 물로 차례차례 씻어 마지막 물에서 헹구어 빨랫줄에 넌다. 수도 꼭지만 틀면 나오는 물이 있는데도 그러면 전기세 들고 물도 아까워 이렇게 하신단다. 어르신 댁 화분의 꽃들이 유난히 반질거리는데 그 이유가 아마도 빗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화초들에게 빗물은 보약이라고 한다.
김점분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1월이었다. 생활관리사 일을 시작하고 만난 14 명의 어르신들 모두 내 친정어머니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시절을 가난과 고생으로 견디며 지나온 삶이 바로 내 어머니의 삶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올해 83세인 어르신은 아들만 둘 두셨다. 21세에 20세인 남편을 만나 혼인했는데 남편이 28세 되던 해에 밤나무에 밤 따러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뇌를 다쳐 누워서 지내야 하는 남편을 고쳐보려고 논밭을 팔고 집도 팔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59세에 돌아가기까지 30여 년 동안 온갖 병수발을 하며 아들들을 키웠다고 하셨다. 그 고생한 일을 주민들이 다 알아 가평군으로부터 79년에는 표창장을, 81년에는 효부상을 받았다고 했다.
# 마음속에 가득한 분노와 홧병
처음 본 점분 어르신의 인상은 차분하고 조용하며 단정한 모습이었다. 방문할 때나 전화할 때 늘 혼자 사는 나를 이렇게 챙겨주니 고맙다 하셨다. 집도 산밑에 위치해 있고 경로당에도 왕래를 하지 않아 늘 혼자 집에 계셨다. 주로 텃밭에서 하루종일을 소일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마음의 병을 크게 앓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드시는 약을 살펴보니, 고혈압, 관절염, 수면제, 요실금, 우울증과 치매예방약을 드시고 계셨다. 밤에 주무시다가 당신도 모르게 소변을 봐서 깔았던 요도 다 적시고 이불과 옷이 흠뻑 젖었다고 하시며 놀라서 울었다고 하셨다.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 같아서 ‘가평군 치매안심센터’로 연결해 드렸다.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여 상담도 해주고 치매약 보조와 기저귀를 비롯한 필요한 물품을 제공해 주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어르신 댁을 방문하는데 정해진 시간은 30분이다. 어르신은 나를 만나자마자 잠시도 쉬지 않고 말씀을 하신다. 이제는 다 외우고 있을 정도로 자주 하신 얘기, 어르신의 홧병에 관한 얘기다.
- 난 사람들을 안 만나. 경로당에도 안가. 사람들은 노상 거기 가서 밥도 먹고 화투도 치고 놀다 오는데 난 안가. 다 보기 싫어. 나도 예전에는 갔어. 한번은 동네에서 윷놀이를 했는데 내가 이겼는데도 이장이 다른 사람을 이겼다고 하면서 상품을 주더라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내 말은 무시해 버려. 내가 못배우고 혼자 사니까 무시하는 거지 뭐겠어. 그담부터는 일체 사람 모인데 안가. 무시하고 싶으면 맘껏 해라.-
이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콧물, 눈물 훌쩍이며 서러워하신다.
-우리 밑에 집에도 안가. 옛날에는 친하게 지내면서 함께 다니고 했지. 그 사람이 보험회사 다닐 때 하도 들어달라고 해서 보험 하나 들어줬는데 나중에 보니 돈은 나한테 받아가면서 이름을 자기 딸로 해놨더라고. 그래서 우리 애들이 나서서 도로 돈은 찾았지만 십년 넘게 안 보고 살아.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그랬겠어. 배운거 없다고 무시한 거지. 안 그래?-
한번은 밑에 집 어르신과 화해시켜드리려고 그 동네 어르신 세 분과 식사 자리를 마련했었는데 따라나서다가 그 분이 있으니까 도로 집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생각보다 골이 깊구나 싶었다. 자꾸 그 얘기 할 때마다, 이제 털어버리고 화해하셔야 편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런 사람 안 보고 살면 된다 하시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전에는 교회에도 열심히 다녔었어. 지금은 안가. 교회에서 밥을 먹고 나면 음식 찌꺼기가 나오잖아. 내가 그걸 우리 개 끓여주려고 들통에 담아서 가져왔어. 그러면 교회에서도 고맙지. 음식 쓰레기 치워주니까. 그런데 한번은 오는 차 안에서 그 들통을 잠깐 의자에 올려놓았더니 같이 타고 다니던 노인이 막 뭐라 그러는 거여. 사람 앉는 자리에 왜 그 더러운 걸 올리냐고. 내가 그 들통을 얼마나 깨끗이 닦았는데 그게 왜 더러운 거냐고. 교회 사람들도 내가 못 배웠다고 무시하는구나 싶어 그담부터 안 갔어. 그냥 집에서 하느님한테 기도해. 하느님! 나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이 살지만 남한테 죄 안 지었어요. 하느님은 내 마음 아시지요?-
당신한테 잘해준 권사님이 가끔은 보고 싶다고 울면서 말씀하셨다.
어르신, 집이 너무 예뻐요. 문살무늬도 예쁘고 툇마루도 좋고. 한 번도 수리하지 않은 듯 옛집 그대로의 모습인 집이 정말 좋아서 한 말인데 또 눈물샘을 건드린 셈이 되었다.
-우리 애들 아빠가 다치기 전에 이렇게 지었는데 그 치료비 때문에 팔았지. 주인이 서울 사는데 우리 아들이 도지를 보낸대.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30년 동안 병간호하는데 하나도 안 힘들었어. 그런데 집이랑 땅이 다 날라가서 그게 지금도 너무 아깝고 마음 아파. 병도 낫지도 못하고.
며느리가 갖다 놓은 작은 화분의 꽃이 말라 죽어 있었다. 미스김라일락이었다. 방문 갈 때마다 혹시나 살아나려나 싶어 물을 주곤 했지만 더 이상 새잎이 나지 않았다.
-나 처녀 때 공장에 다녔는데 그때 남자들이 맨날 편지 줬다!. 미스 김, 저녁에 밥 사줄게 만나자. 여러 명이 계속 그래서 그만 나와버렸어.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처자식 있는 유뷰남이었거든. 그러면 안 되잖아 그치, 안 그래? 난 손바닥에 땀이 안나. 맨날 일만 해서 손가락도 다 구부러져서 안 펴지고.-
나쁜 사람들. 아직도 어르신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증오의 대상이 되는 그들을 마음속에서 털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미스김 라일락은 다시 살아나지 않지만, 우리 어르신의 마음만은 새로운 평안이 솟아나게 자꾸 물을 뿌려줘야만 했다. 할머니가 받아놓은 빗물 한 바가지 퍼서 화분에 뿌려준다. 처녓적에 떨치고 나왔던 미스김 이름처럼, 미스김 라일락도 언젠가는 새순을 내밀지 않을까, 말라버린 어르신 마음속에 계속 사랑의 물을 뿌려드려야겠다. 굽어서 반듯하게 펴지지 않는, 땀이 나지 않아 거친 손가락이 라일락의 마른 가지처럼 안쓰럽기만 하다.
# 어두운 터널 빠져나오기
마당 한켠에 접시꽃이 예쁘게 피었다. 거름을 많이 주었는지 어르신 키를 훌쩍 넘었다. 어르신, 여기 서보세요. 접시꽃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어드렸다. 못생긴 걸 뭘 찍어? 하시면서 활짝 웃으신다. 어르신이 접시꽃보다 더 예뻐요. 이젠 제발 울지 말고 이렇게 웃으면서 살아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겪게 되는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복지관에서 ‘인지향상을 위한 컬러 북’을 만들어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인지 활동을 만들었다. 만다라 도안의 칸을 예쁜 색연필로 칠하다 보면 온갖 색으로 피어나는 한송이 꽃이 된다. 밝고 환한 색이 좋다는 어르신은 색이 다 예쁘다며 활짝 웃다가도 또 어제 있었던 이웃과의 불화를 얘기하며 또 훌쩍거리신다. 밝은 색을 좋아한다면서도 가끔 검은색을 한 칸씩 칠해 놓기도 한다. 그리곤 이 검은색을 잘못 칠했어. 다시 지울 수도 없고 어쩌나? 정말 밝은색 옆에 칠해진 검은색은 그 도안에서 조화롭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정말 마음에 안드시면 이렇게 해보세요. 진한 노란 색연필로 그 위에 무늬를 그려넣도록 알려드렸다. 동그라미도 그리고 꽃잎도 그려 넣고. 물결무늬도 넣어보고. 근심어린 어르신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더 예뻐졌네 하하.
우울증이 깊어진 것 같아 아드님께 전화하여 상태를 얘기하고 병원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다음에 방문을 갔더니, 아들과 함께 서울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왔다고 웃으며 자랑하셨다. 그 약을 먹으니 밤에 잠도 잘 오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그즈음에 복지관에서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우울증 예방을 위해 ‘콩나물 키우기’ 활동을 만들었다. 콩나물을 키울 수 있는 키트를 제공해 드리고 콩을 드렸다. 어르신과 함께 콩나물을 씻어서 안치고 들며나며 물을 주어 잘 키우시라 말씀드렸다. 옛날에 큰 시루에다 많이 키워 먹었다고 하시며, 그릇이 너무 작아 소꿉놀이 같다며 재미있어하셨다.
며칠 뒤 방문을 했더니, 콩나물을 두터운 수건으로 덮어 마당 가운데 햇볕 아래 놓아두었다. 그렇게 하면 콩나물이 파랗게 되어 안된다 했더니, 콩나물도 따뜻한데 있어야 더 잘 큰다고 우기신다. 백구를 업어 키웠던 것처럼, 콩나물을 또 업어 키우고 계신다. 무슨 일이든 정성을 다해 하시는 어르신. 주는 족족 물이 다 빠져내려 헛일을 하는 듯하지만 그래도 콩나물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천천히 시나브로 어르신의 마음 속 홧병이 치유되는 날까지 주고 또 주는 물뿌리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생각해본다.
아들이 와서 장롱 속을 살펴보고, 떨어진 내의며 안 입는 옷을 버린다고 다 가져갔다고 한다. 예전에 교회 다닐 때 차려입었던 옷들도 차곡차곡 개켜져 있는데 그래봤자 언제나 입을 날이 있을까 싶어 다 꺼내어 빨았다 하신다. 아끼면 뭐하냐며 밭에서 일할 때도 입고 집에서도 입는다고 하신다. 가을볕이 좋은 날, 빨랫줄에 빨래가 가득하다. 비가 안 오는 요즘이라 수돗물을 틀어 빨래를 하는데 그래도 줄줄이 통들을 늘어놓고 차례차례 헹구어 넌다.
오늘도 마른 하늘을 올려다 보며 비를 기다린다. 처마 밑에 빈 그릇을 죽 늘어놓고서. 방문 갈 때마다 물어보신다. 언제 비온다는 얘기 없나? 비는 어르신에게 있어서 달디단 생명수이다.
-나, 마음을 고쳐 먹었어. 이제 다시 열심히 살아보기로 했어. 우리 아들들은 내가 죽으면 갈 데가 없어. 내가 살아있어야 여기로 찾아오지. 안 그래요? 지아버지 병 수발 하느라 아들들을 제대로 못 가르쳤는데 그게 너무 마음 아프고 미안해. 내가 오래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들이 찾아올 데라도 있게 해줘야지-
또 울먹거리며 눈물을 찔끔거리신다. 햇볕에 놔두었다 저녁이면 방안으로 들여놓았던 콩나물이 손가락 길이보다 더 길게 자랐다. 대가리도 파랗지 않고 노랗고 통통하게 잘 자랐다. 저녁에 국 끓이려고 다듬어 놓았다 하신다. 어르신, 이거로 우리 국시기 해 먹을래요? 국시기가 뭔가? 멸치와 다시마 한 조각 넣고 팔팔 끓인 육수에 익은 김치 넣고 콩나물 넣고 끓이다 밥 한 공기 넣고 마늘 듬뿍 넣어 끓여내는 국시기. 어릴 때 많이 먹었던 경상도식 국시기를 난 가끔 끓여 먹는데 이곳 사람들은 해먹는 걸 본적이 없다. 오늘 날씨도 구름이 많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 딱이다 싶었다. 아침 식사를 늘 11시쯤에 하시니 또한 배고플 시간이었다. 어르신과 함께 재료를 다듬고 서둘러 끓였다. 그리 복잡한 요리가 아닌지라 금방 완성되었다. 이런 거 처음 먹어본다 하시며 보기엔 그런데 생각보다 맛있다 하시며 뜨거워 호호 불며 맛있게 드신다. 집에서 키운 콩나물이라 국물이 시원하고 고소하였다. 어르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서로 마주 보며 하하 웃다가 이마의 땀을 슬쩍 훔치어 어르신 손을 잡았다. 어르신 손에 땀이 났네요! 어, 정말이네!
방문하자마자 울먹거리며 시작된 말씀을 잠시도 쉬지 않고 쏟아내는 어르신.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내 뒤를 따르며 아랫집 골목까지 따라와서야 팔을 흔들고 뒤돌아 다시 집으로 들어가시는 점분 어르신. 가끔씩 와서 어르신과 나란히 누워 밤새 마음속 얘기를 들어주는 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연신 손을 흔들어 들어가시라는 손짓을 하며 내려오는 언덕길에서 바라보는 하늘에 군데군데 먹구름이 떠 있다. 비가 오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