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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문집보유 제1권 / 비지류(碑誌類)
좌의정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시호 양절(襄節) 한공(韓公) 묘지명(墓誌銘) 병서
공의 성(姓)은 한(韓)이고, 휘(諱)는 확(確)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증조 휘 방신(方信)은 수문전 태학사(修文殿太學士)를 지냈고, 조 휘 녕(寧)은 병조 판서에 증직되었고, 고(考) 휘 영정(永矴)은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에 증직되었다. 비(妣) 김씨(金氏)는 우리 조선 태종(太宗)의 좌명 공신(佐命功臣)인 승녕부사(承寧府事) 양소공(襄昭公) 김영렬(金英烈)의 딸이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명문 대족(名門大族)이다.
영의정부사의 두 딸이 모두 황조(皇朝)의 간선(揀選)에 응하여 장녀가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의 후궁으로 들어가 여비(麗妃)에 봉해졌다. 공은 여비의 오빠로 처음에 우군 부사직(右軍副司直)에 제수되었다. 영락(永樂) 무술년(1418, 태종 18)에 19세의 나이로 문황제의 부름을 받아 경사(京師)에 가서 각별한 대우를 받고 칙명으로 봉의대부(奉議大夫) 광록시 소경(光祿寺少卿)에 제수되었다.
이때 태종이 세종에게 선위하고 사신을 보내 선위를 진청(陳請)하니, 황제가 책명(冊命)을 내리면서 공을 정사(正使)로 삼고 광록시 승(光祿寺丞) 유천(劉泉)을 부사(副使)로 삼아 보냈는데, 유천은 복명(復命)하고 공은 황제의 유지(有旨)로 그대로 머물렀다.
이후로 다시 부름을 받아 경사에 간 것이 여러 차례였으며, 심지어 인종(仁宗)의 딸과 혼인시키려고까지 하였으나 공이 노모를 이유로 사양하여 마침내 중지되었다. 세종은 공에게 재간이 있어 대사를 맡길 만하다는 것을 알았다. 선덕(宣德) 을묘년(1435, 세종 17)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에 제수되고, 얼마 안 되어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옮겼는데, 번거롭고 복잡한 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결정하는 것이 모두 합당하였다.
외직으로 나가 경기 관찰사가 되고, 소환되어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에 제수되었다. 품계가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오르고 병조 판서에 발탁되니, 세종이 더욱 깊이 신임하였다. 다시 외직으로 나가 함길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대신과 쟁론하여 뜻을 굽히지 않다가 파직되었다.
갑자년(1444)에 병조 판서에 복직되었다가 이조 판서로 옮겨 오랫동안 인사를 담당하였다. 인재를 주의(注擬)하는 것이 진실하고 공정하여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병인년(1446)에 품계가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올라 판중추원사가 되고, 이듬해에 외직으로 나가 평안도안찰사 겸 평양윤(平安道按察使兼平壤尹)을 지냈는데, 문종이 불러들여 판중추원사에 복직되었다.
경태(景泰) 3년(1452)에 좌찬성으로 승진되었다. 상왕(上王)이 보위에 오르니, 나이는 어리고 겸손하였다. 권간(權奸)이 권력을 전횡하여 국사가 날로 잘못되어 갔으나 공이 홀로 안색을 바르게 하고 말을 곧게 하여 우뚝이 서서 흔들리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의지하여 중하게 여겼다.
계유년(1453, 단종1)에 금상(今上 세조)이 잠저(潛邸)의 신분으로 기미를 밝혀 변란을 평정하는 데에 공의 공훈이 많았다. 이에 수충위사협찬정난 공신(輸忠衛社協贊靖難功臣)의 호를 하사받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우의정 영경연사(議政府右議政領經筵事) 서성부원군(西城府院君)으로 발탁되었다. 을해년(1455)에 좌의정으로 승진되었다. 금상이 즉위하여 동덕좌익 공신(同德左翼功臣)의 호를 하사하고, 서원(西原)으로 고쳐 봉하였다.
7년(1456, 세조2) 여름에 황제가 태감(太監) 등을 파견하여 고명(誥命)과 관복을 하사하였다. 공이 사은사(謝恩使)로 경사에 갔다가 사행이 돌아올 때 단주(端州)의 사하역(沙河驛) 여사(旅舍)에 이르러 졸하니, 향년이 57세이다. 병세가 악화되자 속관(屬官)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가정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길에서 병환이 심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은 내의(內醫)를 보내 약을 가지고 가서 구완하도록 하였으나 이미 졸하여 미치지 못하였다. 부음(訃音)이 전해지자 상이 매우 슬퍼하였으며,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였다. 예관(禮官)을 보내 영구(靈柩)를 맞이하고, 부의(賻儀)를 보냈다.
공은 타고난 자품이 엄중하여 정도를 지키고 사사로움이 없었으니, 상부(相府)에 재직할 때에는 정무(政務)를 관대하고 간략하게 처리하여 대신의 체모를 얻었다. 부귀가 이미 극에 달했으나 겸손하고 공손하여 자신을 더욱 낮추었으며,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하는 동안은 온화한 기운이 가득하였으나 일에 임해 과감히 결단하는 것은 칼로 자르듯 분명하여 범할 수 없었다. 집안에서의 생활이 청렴결백하였으니, 뇌물이 이르지 않아 실로 담박하였다.
여러 조정을 두루 섬기며 충성과 근면이 빠짐없이 드러났고 성대한 시절을 만나 두 번이나 훈맹(勳盟)의 앞자리에 들었다. 지위는 백관의 우두머리에 이르렀으며, 또한 사신의 명을 받들어 힘들고 험한 것을 피하지 않고 나랏일을 하다가 죽었으니, 가히 공성과 일생이 옛사람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분이다.
공은 이조 판서 홍여방(洪汝方)의 딸에게 장가들어 3남 6녀를 낳았다. 장남은 치인(致仁)으로 행 사복시 윤(行司僕寺尹)이고, 다음은 치의(致義)로 좌군 사정(左軍司正)이고, 다음은 치례(致禮)이다. 딸 하나는 왕세자빈이니 여섯 번째 딸이다.
장녀는 부지통례문사(副知通禮門事) 이계령(李繼寧)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의 부인이고, 다음은 임피 현령(臨陂縣令) 김자완(金自浣)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감찰(監察) 최정(崔侹)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부사직(副司直) 권집(權緝)에게 시집갔다. 서얼(庶孼)로 6남을 낳으니, 유산(榴山), 유산(柚山), 감산(柑山), 시산(柿山), 이산(梨山), 도산(桃山)이다.
사복시 윤은 중추원사 조서안(趙瑞安)의 딸에게 장가들어 4남 2녀를 낳고, 사정은 군수 이항전(李恒全)의 딸에게 장가들고, 치례는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왕세자빈은 원손(元孫)과 군주(郡主)를 탄생하고, 계양은 2남 1녀를 낳고, 통례는 자식이 없고, 현령은 3남 1녀를 낳고, 감찰은 1남 1녀를 낳고, 사직은 3남 1녀를 낳았다.
경태 8년(1457, 세조3) 모 갑자일에 광주(廣州) 모 마을의 언덕에 예장(禮葬)하였다. 아, 공이 뜻에 맞는 임금을 만난 융성함과 훈업의 성대함으로 보면 길고 길게 복을 누려 성스러운 임금의 오직 새롭게 하는 다스림을 도와 이루어야 마땅한데, 하늘이 수명을 연장해 주지 않아 마침내 이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그러나 공은 복을 쌓고 경사를 쌓아 어질고 고운 딸을 잘 낳았으니, 능히 저군(儲君)의 배필이 되어 〈종사(螽斯)〉의 상서에 이미 들어맞았고, 또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어 장차 대대로 이어 온 아름다움을 이어받아 가문을 빛낼 것이니, 공의 원훈(元勳)과 성덕(盛德)이 오래될수록 사라지지 않아 후손에게 더욱 복을 내려 줄 것이 분명하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유서 깊은 서원이여 / 有濬西原
발원이 깊고도 멀도다 / 發源深長
훌륭한 집안 대대로 이어지고 / 蟬聯赫世
공 또한 더욱 창성하였네 / 公又益昌
이른 나이에 황제 알현하여 / 早覲帝庭
특별한 은혜 크게 입었지 / 大被殊顧
역대 조정에 두루 벼슬하여 / 歷相累朝
뜻 맞는 임금 만나 이름 떨치고 / 蜚英際遇
붙들어 도울 시절 만나 / 遭時扶翊
빛나는 훈업 이루었지 / 有炳勳業
깊고 너른 의정부와 / 潭潭台府
찬란한 공신각에 / 烈烈麟閣
공이 바로 우뚝하여 / 公乃挺特
높기가 태산 같으니 / 屹然喬嶽
성대한 덕이며 / 維德之懋
탁월한 공이로다 / 維功之卓
시행한 일 크건만 / 所施者大
하늘이 앗아감 어찌 그리 빠른가 / 天奪何速
내려줌도 있고 인색함도 있지만 / 有畀有嗇
나이를 주지 않았으니 / 而不與齡
누가 이런 것을 주관하는가 / 孰主張是
조물주의 뜻 아득하구나 / 眞宰冥冥
초방에서 경사 길러 / 椒房毓慶
난초 밭에 상서 쌓았으니 / 蘭畹儲祥
공은 곧 떠나지 않은 것이라 / 公則不亡
지닌 덕 길이 보존되리라 / 所在者長
해진의 물가에 / 駭津之濆
울창한 옛 들이 있으니 / 有欝古坰
나의 명은 아첨이 아니오 / 我銘匪諛
양절공의 무덤이로다 / 襄節之塋
<끝>
[註解]
[주01] 인종(仁宗) : 명나라 태종의 장자로 태종 2년에 황태자에 책봉되고, 태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나 재위 1년 만에 승하하였다.
《明史 卷8 仁宗本紀》
[주02] 상왕(上王) : 단종(端宗)을 말한다. 단종이 문종을 이어 즉위한 지 4년 만에 세조에게 선위하고 물러나자 세조가 높여 상왕으로 삼
았다.
[주03] 기미를 …… 평정 : 안평대군(安平大君),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의 역모를 처단한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말한다. 사실
상 이를 계기로 세조는 왕위에 오를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주04] 고명(誥命)과 관복 : 명나라 황제가 세조의 선위를 인정하는 고명과 왕과 왕비에게 하사하는 관복이다. 《세조실록》 2년 4월 20일
기사에 황제의 제서(制書), 조서(詔書), 칙서(勅書) 및 왕과 왕비에게 내린 관복 일습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주05] 상부(相府) : 한대(漢代)의 승상부(丞相府)에서 나온 말로, 의정부를 지칭한다.
[주06] 왕세자빈 : 추숭된 덕종(德宗)의 비인 인수왕비(仁粹王妃)이다. 처음에 수빈(粹嬪)으로 책봉되고, 후에 덕종이 추숭되면서 인수왕
비가 되었다. 덕종은 세조의 첫째 아들로 즉위하지 못하고 1456년(세조2)에 승하하여 후에 아들 성종이 추숭하였다. 《국역 연려실
기술 1 권5 덕종고사》
[주07] 종사(螽斯)의 상서 : 〈종사〉는 《시경》의 편명으로, 후비의 덕이 훌륭하여 자손이 번성할 것이라는 내용이니, 곧 왕세자빈이 원
손(元孫)과 군주(郡主)를 낳은 것을 말한다.
[주08] 초방(椒房)에서 …… 쌓았으니 : 초방은 후비(后妃)의 궁이고, 대본의 육경(毓慶)은 자식을 많이 두는 것을 말하며, 저상(儲
祥)은 왕위를 이을 자식을 둔 것을 뜻한다. 왕세자빈이 된 딸이 성종을 낳은 것을 말한다.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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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左議政西原府院君諡襄節韓公墓誌銘 幷序
公姓韓。諱確。淸州人。曾祖諱方信。修文殿太學士。祖諱寧。贈兵曹判書。考諱永矴。贈領議政府事。妣金氏。我太宗佐命功臣承寧府事襄昭公英烈之女。內外皆名門大族。議政生二女。俱膺皇朝之選。長入太宗文皇帝後宮。封麗妃。公以妃之兄。初授右軍副司直。永樂戊戌。年十九。文皇帝召。赴京師。顧遇殊深。宣授奉議大夫光祿寺少卿。時太宗。禪位于世宗。遣使陳請。帝降冊命。以公爲正使。光祿寺丞劉泉爲副以遣。泉復命。公 以帝旨仍留。其後復召。赴京師者再四。至以仁宗之女尙之。公辭以母老。乃止。世宗知公有器幹。可任大事。宣德乙卯。授資憲中樞院副使。俄遷判漢城府事。剸治煩劇。裁決悉當。出爲京畿觀察使。召還。拜知中樞院事。轉階正憲。擢兵曹判書。世宗深加倚任。又出爲咸吉道觀察使。與大臣爭論不屈。罷。甲子。復判兵曹。遷吏曹判書。久掌詮選。注擬實公。人無間言。丙寅。進階崇政。判中樞院事。明年。出按平安道。兼尹平壤。文宗召還。復判中樞。景泰三年。陞左贊成。上王嗣位。幼冲謙抑。權奸專權。國事日非。公獨正色直言。屹然不動。人皆倚以爲重。癸酉。今上在潛邸。炳幾靖難。公之勳。與有 多焉。賜輸忠衛社協贊靖難功臣之號。擢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領經筵事,西城府院君。乙亥。陞左議政。今上御極。賜同德佐翼功臣之號。改封西原。七年夏。帝遣太監等。賜誥命冠服。公以謝恩使如京師。使還。回至端州之沙河驛旅舍。卒。年五十七。方病革。屬僚佐以後事。無一言及於家。上聞在道病劇。遣內毉。賫之藥。往救之。已無及矣。訃聞。上慟悼。輟朝三日。遣禮官迎柩。賻贈有加。公天資嚴重。守正無私。其在相府。政務寬簡 。得大臣體。雖富貴已極。而謙恭愈下。待人接物之間。和氣藹然。及臨事果决。截然不可犯。家居廉潔。關節不到。實淡如也 。歷事累朝。忠勤備著。 際會盛時。再列勳盟之首。位冠百僚之長。又奉使命。不避艱險。死於王事。功名終始。可無愧於古人者矣。公娶吏曹判書洪公汝方之女。生三男六女。男長致仁。行司僕寺尹。次致義。左軍司正。次致禮。女一。王世子嬪。於次居第六。長適副知通禮門事李繼寧。次桂陽君璔之夫人。次適臨陂縣令金自浣。次適監察崔侹。次適副司直權緝。庶孽生六男 。曰榴山,柚山,柑山,柹山,梨山,桃山。司僕寺尹娶中樞院事趙瑞安之女。生男四女二。司正娶郡守李恒全之女。致禮娶延昌尉安孟耼之女。嬪誕元孫郡主。桂陽生男二女一。通禮無嗣。縣令生男三女一。監察生男一女一。司直生男三女一。景泰 八年某甲。以禮窆于廣州某村之原。嗚呼。以公遭遇之隆。勳業之盛。宜享遐福。以贊襄聖主維新之治。天不假年。乃至於斯。嗚呼惜哉。然公之積福積慶。篤生賢媛。克配儲宮。已叶螽斯之祥。又有子有孫。將襲世美。光大門戶。公之元勳盛德。愈久不朽。益委祉錫福於後嗣也無疑矣。銘曰。
有濬西原。發源深長。蟬聯赫世。公又益昌。早覲 帝庭。大被殊顧。歷相累朝。蜚英際遇。遭時扶翊。有炳勳業。潭潭台府。烈烈麟閣。公乃挺特。屹然喬嶽。維德之懋。維功之卓。所施者大。天奪何速。有畀有嗇。而不與齡。孰主張是。眞宰冥冥。椒房毓慶。蘭畹儲祥。公則不亡。所在者長。駭津之濆。有欝古坰。 我銘匪諛。襄節之塋。<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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