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디음악의 짧은 역사 (글쓴이: 이준희)
①언더음악과 인디의 차이점
인디 음악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거대 음반제작사가 아닌 영세하지만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드는 회사, 즉 저예산의 인디펜던트 레이블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음악들이 언더그라운드라고 지칭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인디음악과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다릅니다.
언더그라운드는 ‘음악 하는 정신’을 말하는 데 비해 인디라는 것은 ‘제작 방식’의 문제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상업적인 면과 타협을 거부한 채 TV방송을 거의 타지 않으면서 음반과 콘서트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음악을 언더그라운드 음악이라고 합니다.
이에반해 인디음악은 상업적인 기획이나 대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저예산 독립예술의 제작방식을 음악에 적용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나 연극, 미술 등의 장르에서도 인디는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인디 음악은 개념이 서로 다르지만 우리나라 인디 뮤지션의 대부분이 TV방송이 아닌 라이브클럽에서의 콘서트 등으로 자신의 음악을 알리고 있기 때문에 인디와 언더그라운드의 개념이 차츰 비슷해졌습니다.
②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역사
먼저 언더그라운드 음악사를 살펴보면 80년대 서울 신총의 음악카페와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블루스와 퓨전 재즈, 록 등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 조동진과 이정선 등이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85년도에 발매된 들국화의 데뷔 음반은 한국 언더그라운드 역사에서 거둔 최대의 수확이입니다. ‘행진’이라는 노래로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단번에 젊은들의 감수성을 뒤흔들었죠. 이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항상 맨 먼저 뽑히는 명반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밖에 ‘가시나무’ ‘사랑일기’ 등의 명곡을 부른 시인과 촌장, ‘오후만 있던 일요일’ ‘출발’ 등의 포크음악을 들려준 ‘어떤날’이라는 그룹도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이 내놓은 뛰어난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에서 또 하나 주목할만한 점으로는 헤비 메탈의 유행을 들 수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메탈음악의 열기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도 ‘시나위’나 ‘백두산’‘부활’‘블랙홀’‘블랙신드롬’‘H2O’(에이치투오) 등 헤비메탈 뮤지션들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시나위’같은 그룹은 정통 메탈음악을 들려주면서도 성공을 거둬 메탈 매니아들과 고등학교 메탈 밴드들의 우상으로까지 받아들여졌죠.
③인디음악의 역사
한국 인디음악의 시작점은 90년대 중반 홍익대 인근의 라이브클럽인 드럭(클럽 이름이자 동시에 레이블의 이름)에서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이 'Our Nation'(아워 네이션)이라는 조인트 앨범을 내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음반을 시작으로 댄스음악의 지나친 유행에 불만을 느낀 젊은이들이 기존의 가요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잇따라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델리 스파이스’ ‘노이즈 가든’‘언니네 이발관’‘황신혜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노브레인’ ‘허클베리 핀’ ‘3호선 버터플라이’ ‘은희의 노을’ ‘코스모스’ ‘닥터코어 911’ ‘마이 앤트 메리’ ‘레이지 본’ ‘주석’ ‘볼빨간’ 등은 90년대 중반에서 현재까지의 탄생한 대표적인 인디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던락에서 펑크, 힙합,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성향은 각각 다르지만 저예산 제작방식을 고수하며 음악성을 지키고 있는 인디뮤지션이라는 말로 묶일 수 있는 그룹들이죠.
이중에서도 ‘말 달리자’라는 펑크음악으로 공중파 방송에까지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유명해진 ‘크라잉 넛’, ‘차우차우’라는 아름다운 노래 하나로 인디음악 매니아들을 매혹시킨 ‘델리 스파이스’ 등은 인디 음악씬의 대표적인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④인디음악의 흥망성쇄
인디 음악의 시작은 일단 화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삐삐밴드’ 등 기존의 음악과는 어딘지 다른 음악을 선보이던 그룹들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때라 이들에게도 자연히 시선이 쏠리게 된 것이지요. 당시 언론은 인디 뮤지션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는 현상을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젊은이들만의 색다른 문화’로 인식했던 거죠. 무명 밴드들의 야외 공연에 대그룹이 스폰서로 나섰다거나 신문 등 언론매체가 클럽을 탐방하는 글을 잇따라 내보낸 것에서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성이나 개성이 강한 밴드는 살아남고 나머지는 해체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등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인디 음악은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됐습니다. 급기야는 ‘인디 음악은 없다’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인디 음악이 그들만의 고유한 개성을 갖지 못해서 초래한 당연한 결과’라는 해석이 인디씬이 인기를 이어가지 못한 가장 큰 원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인디음악에 대해 일반대중들은 ‘생소해서 재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음악 매니아들은 ‘너무 뻔해서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대중성면에서도, 작품성 면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해 ‘유통기간이 지난 상품’처럼 취급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부에서는 제작사들이 성공가능성을 불신해 저예산이라는 말까지도 무색할 정도로 적은 돈을 투입함으로써 인디음악 자체를‘싸구려 음악’으로 매도시키고 있다고도 말합니다.
⑤인디음악씬 어떻게 봐야 하나
여기에서는 시간이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인디음악이 이토록 어려워진 모든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인디음악에 대한 평가가 너무 야박하다는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음악잡지들마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지면을 외국밴드들에게만 할애하고 한국의 인디밴드들은 약간의 양념처럼만 다루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음악적인 다양성과 작품성의 측면에서 대부분의 인디음악들이 판에 박은 듯한 댄스와 발라드 음악보다는 훨씬 들을만 하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크라잉 넛’이 매우 출중한 실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만한 음악을 하는 그룹은 인디 그룹 중에서 ‘크라잉 넛’말고도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죠.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듣지도 않고 ‘거기서 거기겠지…’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노 브레인’의 펑크곡인 ‘너 자신을 알라’라는 곡은 댄스음악보다 훨씬 더 흥겹게 들을 수 있는 곡이고, ‘미선이’의 ‘Sam’(샘)이나 ‘코스모스’의 ‘소원’같은 곡은 웬만한 발라드 음악보다 훨씬 더 감미롭고 들을만 합니다.
⑥인디뮤지션들에 대한 당부 및
물론 뮤지션들에게도 상당부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인디뮤지션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음반시장의 불황에서 그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서 고된 음악활동을 하는 그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팬들 역시 음악을 넓게 듣는 귀를 가져야만 인디음악이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디밴드들에게는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개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감히 시도하지 않았을 때 한국적인 펑크락을 들고 나온 게 ‘크라잉 넛’의 성공비결이었습니다. ‘크라잉 넛’이 괜히 뜬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지난해 3집을 15만장이나 팔았는데,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댄스그룹들이 겨우 10만장에서 20만 정도를 팔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죠.
‘크라잉 넛’처럼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들만의 음악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⑦TV방송에 대한 당부
‘오빠부대’에게만 인기를 끄는 음악만 들려주고 있는 TV방송에게도 부탁하고 싶습니다. 록그룹이 보이 밴드에 비해 브라운관에서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무조건적으로 댄스음악과 발라드만 트는 일만은 자제돼야 할 것입니다. TV만큼 대중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주는 매체는 없습니다. 브라운관에 한 번 얼굴을 비치느냐, 안비치느냐에 따라 인기나 판매량이 크게 바뀌기 때문이죠. 정규 음악방송의 10분의 1정도만 인디음악에 할애해도 인디음악씬은 엄청나게 발전할 것입니다.
첫댓글 정말 확 와닿는 설명이군요. 항상 어렴풋이 알고있던, 언더와 인디의 확실한 경계화 구분이 명확해졌읍니다. 좋은 팁 감사합니다
유익한 자료 소중히 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