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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 자전거 종주기
백산 탁영준 2014-04-19
세월호의 참사로 나라가 온통 슬픔과 통곡이 어우러져 있는 시국이다.
불신은 불신을 낳고 슬픔은 또 다른 슬픔을 낳았다.
하루종일 텔레비젼은 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보면 볼수록 가슴이 아파오는터라 찰떡 두개,간식조금등의 행동식을 가지고 달자랑 현관문을 나섰다.07:40분
국토 종주는 인천 서해갑문에서 출발하여 남한강을 지나 이화령에 넘어 문경새재길을 더듬고,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을 상주에서 마주하게 되는데,낙동강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강정 고령보에이른다.강정 고령보를 지나 합천보를 거쳐 양산을 지나면 낙동강 하구둑에 이르는 633km의 자전거 길이다.
국토종주3일차에 몸은 지치고 마음도 지치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것 같은 시점에 강정고령보에 도착했었다. 에너지 고갈로 입은 마르고 오랫동안 견뎌온 허기로 인하여 허리가 휘청거릴 즈음에 반바지,흰 런닝셔츠의 아저씨가 건네준 손바닥만한 수박한조각은 행복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실감하게 해주었었다.
오후 햇살이 쏟아지는 고령보에의 대구 동촌으로 이어지는 금호강길은 동촌,하양,영천등 낯익은 고향의 이름들이 노곤한 나그네에게 그만하고 집으로 가지 라며 유혹했던 곳이었다..
머리속 흰색천사와 검은악마가 공존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자 무던히도 애쓴것은 더 큰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든,언제든 목표가 있으면 작은 유혹을 뿌리칠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희망이 없고 절망이 목을 조를 때 유혹은 쉽사리 손을 뻗쳐오고,그것을 거절하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닐것이다.그것이 범죄로 이끄는 길이기도하고 자기를 포기하는 길 일수도 있다.
절망보다는 희망의 파이가 커야 살아감이 건전해지고 밝아지는것이다.
지금은 추억이라고 불리울 이런,저런 기억들이 조각 조각 남아있는 강정 고령보는 언제든 한번은 포항에서 출발해서 가보고 싶었다.어떤 일이든 급작스럽게 일어나고 그것이 역사의 한조각이 되는 사례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날이 이렇게 불쑥 올줄은 몰랐다.
전체적인 코스는 포항-->기계-->이리재-->임고/자양천-->영천-->금호-->하양-->동촌-->강정고령보로 편도127km정도 되는 거리인데 다시 동촌으로와서 대구동부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하니160km가 조금 넘을 거리가 될것 같다.
하늘엔 구름이 짙게 깔리고 기온은 예상보다 차갑다.
다행히 뒷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줘서 옷깃을 파고드는 냉기를 줄여 주었다.
바람
백산 탁영준
두 바퀴에 몸을 맡겨
나선 봄 나들이
우중충 하늘이
길을 가로 막고 서는데
봄바람 살랑 불어
망설이지 말라 하네
지치고 힘들어
어깨 쳐져 있을 적에
혼자 난 이 세상이
견디기 힘들 적에
그때도 이 바람
내 뒤에서 불어 줄려나
시원하게 뻗은 대구 포항고속도로 아래를 지나자 마자 좌회전하면 이리재의 시작이다. 3km 정도 되는 업힐 구간으로 오늘 일정중에 가장 난코스이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가파지고, 자전거 속도가 줄어들면 고개는 자연히 숙여진다.
아무리 힘든 구간도 아무리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단순한 논리는 가쁜 숨을 참으며 나로하여금 페달질을 하게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이 진리임을 힘든시기를 지나본 사람만이 알수 있다. 세상 어떤 고통도, 힘든시기도, 즐거운시간도, 끝이 있음을 나는 일찍이 체득한셈이다.
헉헉거리며 오르는 아스팔트 위로 가을에 떨어졌을법한 잎새하나가 바람에 등떠밀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에게로 다가온다. 마치 게가 옆걸음으로 다니는듯하다.
낙엽
백산 탁영준
어라 고 녀석
봄 바람에 등 맡기고
아장아장 게걸음 으로 어딜 가나
가을에 바람따라 떠난
어미목을 찾아 서둘러 가는 건가
아스팔트 디디고 선 모양이
제법 의젓하다
엄동바람에 날려 갈까
겨우내 덤풀 속에서
웅크리고 지키더니
봄바람 유혹에
마실 다니러 왔나 보네
낙엽이 옆걸음으로 다가와서 나에게 무슨말을 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하다 어느새 이리재(09:11) 정상에 올라섰다.
이리재, 국토의 대동맥으로 일컬어지는 고속도로가 유유히 돌아 내 발밑으로 사라지고 멀리 봄산그리메가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가파르게 올라온 언덕은 임고면 소재지까지 완만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자전거를 탈 때 가장 신나는 구간인데, 급격한 경사보다 완만한 내리막 경사는 경쾌한 속도감과 귓전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 두바퀴의 마찰음을 가장 잘 느끼며 달릴수 있다.
때로는 대구포항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고속도로 하부를 지그재그로 들락날락거리기도 하면서 봄날 차들이 드문 국도의 한가로움을 즐겼다.
길가 구석구석 봄은 와있었고, 봄은 꽃이 아니어도 보여줄것이 많다는듯이 뽐내고 있었다.
나란한 길
백산 탁영준
어이~~
구불 구불 해서 언제가나
똑바로 빨리 가고말지
허 참~~
빠르고 잘 났다고 자랑 마소
복사꽃, 살구꽃 날리고
소 달구지 경운기 다니는
요런게 더 사람냄새 나 잖소
요즘 같이 바쁜세상
볼것 보고 쉴것 쉬고 대체 언제 가려고
바삐 가나 쉬며 가나
뭐가 그리 차이 나오
장강이 일만번을 굽이쳐도
바다로 간다 하잖소
하늘 보고 꽃 보고
쉼표 하나 만들며 가면 되지
봄 날씨가 며칠 계속 되더니 심술이 났는지 바람막이를 입어도 허벅지에 닿는 바람이 아직 날을 세워 있었다. 10:20 임고서원에 도착했다. 지금부터는 자양천이다.
영천댐은 자양댐이라고도 불렸었는데 포항제철공업단지와 금호강 중류·하류 유역의 농업지대에 용수를 공급하는 다목적 댐인데 1974년 10월에 착공하여1980년 12월에 준공했다. 영천댐은 항상 하류로 일정량의 물을 흘려보내게 되어있는데 그런 관계로 자양천은 메마르지 않고 습지와 갈대, 강물이 조화롭게 그림처럼 흐르고 있었다.
영천시내를 관통하는 금호강도 항상 물이 깨끗하여 여름이면 멱감고 천렵하는 광경을 쉽게볼수있다.
10:55 영동교 11:20 영천출발
간식과 행동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행동식은 운동을 하면 간에 저장되어 있는 글리코겐을 에너지로 사용하는데 글리코겐의 주성분은 포도당이다. 포도당은 탄수화물을 섭취해서 생성된다.
그래서 탄수화물 섭취대신 포도당이나 당분이 든 음식을 먹으면 에너지로 변환 시키기 용이해서 행동식을 먹는다. 등산이나, 자전거나, 달리기나 에너지가 고갈되기 전에 보충을 해야한다. 일단 에너지가 고갈되면 보충해도 에너지로 바꾸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에너지 보충시간을 놓치면 피로가 빨리오고 그로 인해서 저체온이 되기 쉽다.
당뇨와 무관한 정상인도 계속적인 산행이나 운동으로 글리코겐이 고갈되고 저혈당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면 어지럼을 느끼고 탈진할수 있기 때문에행동식은 30분 간격으로 뭐가 되었던 약간은 섭취를 해야 한다.
강변을 따라가다 황정교를 횡단했다.
왼쪽은 채약산이 길게 장엄하게 늘어져 나를 맞고 있었고 오른쪽 팔공산은 정말 아득히 있는듯 없는듯 가물가물 하게 보였다. 팔공산을 지나 보이지 않는곳에 오늘의 목적지가 있었다.
금호강은 포항시 죽장면 상옥리의 가사령(佳士嶺)과 기북면 성법령(省法嶺)에서 발원하는 자양천(紫陽川)을 비롯한 고촌천(古村川) 등 여러 하천이 영천시에서 합류하여 서류하면서 경산시를 관류하고 대구시역에 들어와 북쪽으로 만곡(彎曲)하여 서류하다가 달성군에 들어가서 남류하면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강이다.
경산시 하양에서 청도천(淸道川), 대구 북쪽에서 문암천(門岩川)을 합류하는 외에 수많은 작은 지류들을 합는데 주위에 동서로 긴 띠 모양의 금호평야가 펼쳐져 있다.
금호강의 '금(琴)'은 금호강 주변의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가 마치 가야금을 뜯을 때 나는 소리와 같다는 의미이다. '호(湖)'는 금호강의 지세가 낮고 평평하여 이곳을 흐르는 금호강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의미이다그래서 금호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11:47 고향으로 가는 금호 금창교를 아래로 통과하고 길은 계속 이어져 있었다.
금호에서 하양은 차로도 10분 정도의 아주 짧은 거리다.
11:59 하양에서 경산/진량으로 가는 하양교를 횡단해야 하는데 다리 아래로 직진을 해버렸다. 한참을 묻고 물어서 하양교 횡단을 했다.
“금박산 우뚝솟아 정기어리고, 금호강 굽이돌아 유유히 가네~~”
중학교 시절 끊임없이 불렀던 교가가 한동안 머리를 맴돌았다. 다른생각을 하려해도 너무크게 차지하고 있어 그 오래고 오랜 리듬을 밀어내지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중학교 교가가 맴도는 속에
대구시 동구 반야월(안심교 12:47)에 접어 들었다. 반야월은 대구의 초입이다.
후백제에게 크게 패한 왕건이 신숭겸의 도움으로 도망갈 때 길을 비추었다는 반야월은 중고등학교 시절 버스로 수시로 다녔었다. 졸업후에는 반야월에서 방직공장에 아르바이트한 경험도 있고해서 고향처럼 편안한 곳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시시한 말이 아니라도 30년도 훌쩍 지난 일이라 눈에 익은곳은 아무곳도 없었다.
단지 얼마 지나지 않으면 망우공원(동촌유원지)이라는것밖에는 짐작할수 밖에 없었다.
망우당공원은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키고 경상도 방어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의 공을 기리기 위해 조성하였는데 공원의 이름은 그의 호인 망우당(忘憂堂)에서 따왔다.
동촌유원지를 지나자 아양교가 나타난다.
자전거 도로는 옛 구름다리를 철거하고 해맞이다리로 거듭난 다리위를 횡단한다.
해맞이 다리는 다리위에서 아래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내릴수 있게 나선형으로 만들어 라이더들을 배려함이 느껴졌다. 고령보 30km 라는 간판이 반짝이고 있었다.
잔여거리가 곶감빼먹듯 하나씩 하나씩 줄어서15:00에 고령강정보에 도착했다.
07:40분에 출발해서 127km를 7시간20분 동안 달려온셈이다. 엉덩이는 목표지점을 아는지 아직 달릴만하다라는 신호를 보낸다.
많은 사람들이 4대강 사업에 의문을 품고 잘한것인지 잘못한것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나 또한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라는 생각을 오래토록 하고 있었다.
결론은 잘못한 것이 맞다 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국토종주를 하는 라이더 들이 고령보를 횡단하고 있었다. 잠시 지난해 수박 한 조각이 가져다 준 행복이 얼마나 클수 있는지 깨닫게 해준 그 아저씨가 생각났다. 오후가 되자 햇살의 따스함보다 바람의 차가움이 더 커진다.
자전거를 돌려 왔던길을 되짚어 갔다.
예상했던대로 돌아가는 길은 맞바람이다. 아무리 밟아도 16km/h 를 넘지 못한다. 체력마저 고갈이니 왔던30km 를 가는 길은 내가 견딜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 같았다.
금호강의 검푸른 강물은 그 와중에 어깨동무하고 춤추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끝없을 것 같은 길이 눈앞에서 벌떡 일어나는 환상을 몇번 겪었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될 일이었다. 가야할길이 남아 있지 않은가
길위에서
백산泊山 탁영준
두 바퀴에 의지 하여 섰다
백만번 굽이쳐 바다로 향하는
먹빛 물이 바위를 비켜돌아
어깨를 떼지어 나아가고
지평선 까만점에 걸려
보이지 않는 길
어디로가는지
등 돌려 물어보는이도 없다
마주달려오는 바람은
가슴에 부딪혀
기어이 나를 기죽이고나서야
내뒤로 사라진다
밟고 밟고 또 밟고
숙이고 숙이고 또 숙이고
쓰러지지 않으려면 끝없이
밟고 또 밟아야 하지
달려온길 보지않고 달리고 또 달려도
뫼비우스의 저주인가
길에서 길로 이어지네
등 떠밀려 나아가는
강물은 나를 불러 오라는데
스스로 걸어야 한다는
아비가 등토닥이며 이마에 부친 부적이
패달을 밟고 또 밟게 한다
이 길을 다가면
저 강물 또한 멈출수 있을까
오늘도 길위에서
멈추고 쉬는 꿈을꾼다
싸우고 싸우고 맞서고 맞서고 드뎌 바람처럼 건넜던 아양교 해맞이 다리가 나타났다.
누적거리는 162km 를 나타내고 있었다.
천천히 가야만 보이는것들이 있을텐데 나는 오늘 그러지 못했다.
동촌을 지나면서 마음이 바빠졌고, 고령보를 돌아 올때는 조금의 여유도 갖지 못했다.
그 이야기들은 동촌 한 커피숖에서 꿈꾸면서 마신듯한 한잔의 커피에 녹아들었다.
2014-04-19
영천 임고 서원 도착전 봄이 오는 호수
민들레와 초록풀들이 배경이 되고 그 위에 복사꽃이 한폭의 그림이다.
강정고령보는 낙동강 종주길과 금호강 종주길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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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휴대폰보다는 나는 이쪽이 마음에 드네, 크고 잘 보이고,
나의 친구들, 모두들 열시미, 달려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