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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가운데) 전 국무총리가 지난 3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패를 척결하겠다며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얼마 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부정하게 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연합뉴스 |
- 생선 좋아한 재상에 상납하자
- "나를 낮추고 법령 어겨" 단호 거절
- 부패척결 국민담화 발표한 총리
- 한달보름여만에 부끄러운 하차
- 공무원필독서 '목민심서' 외면 풍조
- 한국 OECD 34개국 중 청렴도 27위
- 아무도 아는 이 없어 받은 금품
- 세상사람이 다 아는 부정한 일
- 환관·관리 부패로 멸망한 漢제국
- 오늘의 한국 '반면교사' 삼아야
공의휴(公儀休)는 노나라 재상으로 생선을 좋아했다. 온 나라 사람이 서로 다투어 생선을 사서 그에게 바쳤다. 공의휴는 받지 않았다. 그 아우가 충고했다.
"형님은 생선을 좋아하시면서 받지 않으시는데, 무슨 까닭입니까?"
공의휴가 대답했다.
"참으로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는 것이다. 내가 생선을 받게 되면, 반드시 남에게 나를 낮추는 기색을 하게 될 것이다. 남에게 나를 낮추는 기색을 하게 되면 법령을 어기게 될 것이다. 법령을 어기면 재상 자리에서 쫓겨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록 생선을 좋아할지라도 아무도 나에게 생선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나 또한 스스로 생선을 사 먹지 못할 것이다. 만약 생선을 받지 않으면 재상 자리에서 쫓겨날 일이 없을 것이고, 그러면 좋아하는 생선을 나 스스로 오래도록 사 먹을 수 있다." ― '한비자'의 '외저설 우하'
■ 누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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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 |
지난 3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갑작스럽게 대국민담화가 있었다. "당면한 경제 살리기와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패를 척결하고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 이 자리에 섰다"면서 "국정 운영의 큰 걸림돌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잔존한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흐트러진 국가기강"이므로 "정부는 모든 역량과 권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구조적 부패의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한 이는 이완구 국무총리였다. 총리 인준 과정부터 논란이 일더니 간신히 인준을 받아 총리가 되어서는 뜬금없이 부정부패 척결을 외쳤다. 그런 그가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담화문을 발표한 지 불과 한 달 보름여 만에 옷을 벗었다. 희극도 이런 희극이 없다!
우리 사회가 부정부패로 말미암아 결코 투명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도 공인된 일이다. 지난해 12월 3일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공공부문 청렴도에서 한국이 세계 175개국 가운데서 43위,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27위를 한 것에서도 드러난 일이다. 그래서 새로 들어서는 정부마다 부정부패 척결을 마치 지상과제인 양 떠들어댔는데, 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걸까? 이번 뇌물 사태를 보면 그 이유가 좀 분명해진다. 바로 부패의 주범이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고 나서고 국가기강을 무너뜨린 자가 국가기강을 세우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한 번 물어보자. 관리는 청렴해야 정상인가, 부패해야 정상인가? 어떤 관리도 어떤 국민도 "부패해야 정상이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나 이제나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상앙과 한비의 주장대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익을 좋아하는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역사를 들여다보거나 작금의 실상을 보더라도 청렴한 인물보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인물이 훨씬 많으니까. 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맹자의 주장이 선뜻 수용되지 않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지혜가 있고 양심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도 부정과 부패를 당연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물론, 부정과 부패를 일삼으며 사사로운 잇속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된 자는 당연하다고 여기겠지만.
"현명한 선비는 몸을 닦아 청렴하고 간사한 신하와 함께 군주를 속이는 짓을 부끄러워하므로 결코 권세를 휘두르는 중인(重人)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요직에 있는 무리는 어리석어서 앞날의 우환을 미리 알지 못하는 자들이 아니면 반드시 마음이 더러워서 간사한 짓을 피하지 않는 자들이다." ― '고분'
■아무도 모르는 듯 다 아는 뇌물수수
한국의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아마 공무원일 것이다. 그런 공무원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인데, 정작 공무원 지망생이나 공무원은 거의 읽지 않는다. 베트남의 혁명가 호찌민도 늘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 하는데 말이다. 고작 밥벌이를 위해 공무원이 되려 하기 때문이리라. 밥벌이로라도 오래 하려면 공의휴처럼 뇌물을 조심해야 한다.
"아전들은 매우 경박하여 들어와서는 말하기를, '이 일은 비밀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퍼뜨리면 제게 해로운데, 누가 감히 퍼뜨리려 하겠습니까?' 한다. 그러면 수령은 그 말을 깊이 믿고 기꺼이 뇌물을 받지만, 아전은 문밖에 나가자마자 말을 퍼뜨리는 것을 꺼리지 않고 자신의 경쟁자를 억누르려 한다.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지건만, 수령은 깊이 들어앉아 홀로 있으면서 막연히 듣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양진(楊震)이 말한, 넷이 알고 있다[四知]는 것 외에 '남이 안다'는 것도 막아낼 수가 없다." ― '목민심서' 중 '청심(淸心)'
왜 뇌물을 받아먹을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리라 여겨서다. 그러나 어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겠는가? 다산은 넷이 알고 있다고 했고, 이에 덧붙여 '남도 안다'고도 했다. 넷이 알고 있다는 말은 후한(後漢) 때 인물인 양진이 했다. '후한서(後漢書) 양진열전'에 나온다.
양진이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있다가 동래태수(東萊太守)가 되어 부임지로 가다가 창읍(昌邑)을 지나는 길이었다. 그가 형주에서 인재로 천거했던 왕밀(王密)이 마침 창읍의 수령으로 있었다. 그가 양진을 만나러 와서는 밤이 되자 품에서 금 열 근을 꺼내 양진에게 건넸다. 그러자 양진이 말했다.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나를 모르는군. 이게 무엇인가?"
왕밀이 말했다.
"깊은 밤인지라 아는 자가 없습니다."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네.(天知, 神知, 我知, 子知.) 어찌 아는 자가 없다고 말하는가!"
왕밀은 부끄러워하며 밖으로 나갔다.
왕밀은 아는 자가 없다 했지만, 양진이 볼 때는 아는 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성완종 리스트'처럼 뇌물을 준 자 본인이 또 세상에 다 까발리지 않는가. 그런데 양진은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 뇌물을 받지 않았던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뇌물은 관리를, 관리의 삶을 더럽히는 물건임을 알았고 재물보다 더 보배로운 것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송나라의 촌사람이 옥돌을 얻자 이것을 자한(子罕)에게 바치려 했는데, 자한이 받지 않았다. 촌사람이 말했다.
"이건 보배입니다. 마땅히 군자가 지녀야 할 물건이지 저 같은 소인이 쓰기에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자한이 말했다.
"그대는 옥을 보배로 여기지만, 나는 그대의 옥을 받지 않는 것을 보배로 여긴다네."
촌사람은 옥을 바랐지만, 자한은 옥을 바라지 않았다. ― '유로(喩老)'
■ 부정부패는 제국의 꿈을 깨뜨린다
뇌물은 공명정대하게 처리해야 할 일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면서 주고받는 물건으로, 법질서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국가를 위태롭게 만드는 부정부패의 근원이다. 무엇보다도 사적으로 맺어진 연줄을 중시하게 되므로 현명한 자가 밀려나고 간사한 자가 행세하는 빌미가 된다.
"이렇게 되면, 뭇 신하들은 법을 젖혀두고 사사로이 권세를 부리면서 공공의 법은 경시한다. 권세가의 집은 자주 드나들면서 군주(국민)의 조정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으며, 세도가 집안의 편익을 위해서는 온갖 궁리를 다하면서 군주(국민)의 나랏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관속의 수가 비록 많아도 군주(국민)가 존귀해지지 않고 백관이 다 갖추어져도 나라를 책임질 사람이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유도(有度)'
진(秦) 제국의 법령이 가혹하다고 비판했던 한(漢) 제국은 전한과 후한 모두 환관과 관리가 전횡을 일삼으며 부패했기 때문에 쇠퇴하고 멸망했다. 지금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하는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부정부패다. 이 부정부패를 그대로 두고서 제국을 꿈꾼다면, 그건 한낱 백일몽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