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나무의 키가 자랄 수 있는 한계
글·사진 _ 이경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동물은 평생 자랄 수 있는 크기가 제한되어 있다. 인류 중에서 중앙아프리카에는 피그미(pygmy)족이 살고 있다. 평균 키가 150cm 이하로 인류 중에서 가장 키가 작은 부족이다. 열대우림에서 살면서 자외선에 너무 적게 노출되어 피부에서 비타민 D의 합성이 저조하고 음식에서 칼슘 흡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동부 아프리카의 마사이(Maasai)족은 초원지대의 유목민족으로 많이 걸어 이동하는 생활습성 때문에 다리가 길고 평균 키가 183cm에 이른다.
식물은 동물과는 달리 자유롭게 몸이 커진다. 나무는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생물이다.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하게 솟아 있는 거목을 보면 자연스럽게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 국내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는 원추형으로 자라는 은행나무다. 경기도 용문사에서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는 현재 키가 39.2m에 달한다. 나이가 1,1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무의 키는 1919년 일본 사람들이 조사했을 때 63.6m였다. 이를 근거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은행나무로 인정받았으며, 지금도 외국 문헌에는 이 나무가 가장 키가 큰 은행나무로 인용되고 있다. 아쉽게도 그동안 키가 많이 줄어들었다.
국내에서 나무끼리의 키 경쟁에서 아직 용문사 은행나무를 이길 만한 나무가 없다. 키가 위로 크기 위해서는 나무가 곧추서서 자라야 하는데, 국내에는 이런 종류의 나무가 금강소나무를 제외하면 별로 없는 편이다. 은행나무도 본래 중국에서 신라시대에 처음 도입되어 심은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가 이에 도전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와 가로수로 심어 놓은 나무들의 키가 30m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메타세쿼이아는 중국 원산으로 후베이성(湖北省)과 쓰촨성(四川省) 사이 양자강 상류에 있는 마타오치 계곡에서 1941년 12월 처음으로 발견되어 공룡시대의 나무가 나타났다고 세계적으로 대서특필되었던 나무이다. 우리나라에는 1950년대 후반 처음으로 도입되어 지금 많이 심고 있다. 빨리 자라는 대표적인 속성수인데, 원추형으로 곧추서서 자라기 때문에 다른 나무와 금방 구별된다. 전남 담양에 심겨진 메타세쿼이아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다.
나무의 세포는 딱딱한 섬유소(cellulose)로 되어 있는데, 섬유소는 압축강도, 전단강도, 인장강도가 매우 커서 무게를 잘 견디고 바람에 잘 부러지지 않는다.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면 평생 자라는 성질을 가지고 태어난 나무는 상당히 크게 자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한계는 얼마나 될까?
16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나무의 키가 자랄 수 있는 한계는 110m라고 적어 놓았다. 그는 당시 미국 서부지역의 나무들을 본 적이 없었으니, 어떤 근거로 그런 계산을 했는지 매우 궁금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북서쪽에 레드우드(redwood) 국립공원이 있다. 이곳의 북쪽에 훔볼트 레드우드 주립공원(Humboldt Redwoods State Park)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들이 깊은 계곡에 모여서 자라고 있다. 세쿼이아(Sequoia)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많이 심고 있는 메타세쿼이아의 사촌쯤 되는 나무이긴 하지만 대신 상록성 잎을 가지고 있다.
학명은 Sequoia sempervirens이고 일반명은 coast redwood이다. 캘리포니아 주에는 현재 키가 107m(350ft) 이상 되는 세쿼이아가 116그루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키가 가장 큰 세쿼이아는 2006년 발견되었는데, 키가 115m로 기록되어 있어 현재 세계의 챔피언에 올라 있다. 이런 나무들의 나이는 2,000년 전후라고 한다.
이 나무보다 더 큰 나무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902년 캐나다 서부 지역의 노스밴쿠버(North Vancouver)에서 키가 126m 되는 미송(Douglas-fir)을 벌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열대지방 중에서 태풍이 없는 곳에서는 나무들이 크게 자라므로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들이 이곳에 있지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열대지방에서 키가 가장 크게 자라는 나무는 유칼리(Eucalyptus regnans)인데, 호주 타스마니아 섬에서 98m의 나무가 기록된 적이 있다.
지금까지의 기록과 관찰 결과를 종합하면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한계가 120m 정도 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과연 나무는 이보다 더 크게 자랄 수 없는 것일까? 수목생리학을 전공한 필자와 같은 과학자들의 궁금증이 아닐 수 없다.
2004년 4월 유명한 과학 잡지 『네이처(Nature)』에 한 논문이 게재되었다. 미국 노스애리조나(North Arizona) 대학교의 코크(Koch) 교수팀이 그 한계가 122~130m라고 발표했다. 그들은 매우 독특한 자료에 근거하여 이를 계산한 것이다.
코크 교수팀은 훔볼트(Humboldt) 주립공원 내에서 키가 110m 이상 되는 다섯 그루의 세쿼이아를 선정했다. 끈이 달린 강력한 화살을 쏘아 올려 나무에 걸고 나무 꼭대기에 직접 올라가서 잎을 대상으로 하여 여러 가지 생리적인 자료를 수집했다.
가지의 생장량, 잎의 모양, 증산작용과 광합성작용을 관찰했다. 꼭대기에서 나뭇가지는 연간 25cm까지도 자라고 있었지만, 잎의 모양은 매우 달랐다. 세쿼이아의 잎은 상록성으로서 깃털 모양을 하고 있는데, 나무 높이에 비례하여 잎이 점진적으로 작아졌다. 꼭대기에서는 수분 부족으로 인해 잎이 제대로 펴지거나 자라지 못해서 잎이 매우 단단했다. 즉 세포가 너무 두껍고 간극이 없고, 기공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 이산화탄소의 흡수가 어려워 광합성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은 관찰은 나무 꼭대기에는 수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말한다.
나무는 지표면 가까이에서는 온화한 기후, 적절한 토양 수분 덕분에 잘 자라지만, 100m 이상 되는 나무 꼭대기에서는 여러 가지 제한 요소들이 있다. 강한 바람은 수관으로부터 튀어 나온 가지를 말라 죽게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분이다. 세쿼이아는 여름날 수백(혹은 천) 리터 이상의 물을 증산작용으로 잃어버리는데, 나무 꼭대기에서는 이 물을 얻기가 쉽지 않다.
물이 뿌리로부터 나무 꼭대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중력에 역행하여 줄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지구에는 1기압의 대기의 압력이 있다. 1기압에서 진공 상태의 작은 유리관을 타고 수은주가 76cm, 그리고 물기둥은 10m까지 올라갈 수 있다. 즉 나무의 키가 10m 미만일 경우에는 나무는 대기의 압력에 의해 물을 빨아올릴 수 있다. 그러나 10m 이상 나무가 더 커지면 물을 다른 힘으로 빨아올리지 않으면 물은 줄기를 타고 올라갈 수 없다.
뿌리에서 흡수한 물은 목부조직의 물관부를 통해 나무 위로 올라간다. 나무의 물관부는 직경이 아주 작은 가도관과 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도관(假導管, tracheid)의 직경은 평균 0.03mm 정도로 극히 가늘며, 도관(導管, vessel)은 0.1~0.5mm 정도로 더 굵지만 그래도 가느다란 파이프이다.
나무가 잎에서 증산작용을 하면 잃어버린 물을 보충하기 위해 밑으로부터 물을 끌어 잡아당긴다. 이때 장력이 생기며, 이 장력은 마치 고무줄을 잡아당기는 것과 흡사한 현상이다. 물이 장력에 의해 가느다란 파이프를 타고 올라갈 때, 물은 물분자 간의 응집력(凝集力, cohesion)에 의해서 끊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러나 100m 이상까지 물이 끌려 올라가면, 중력과 물의 이동 통로(가도관과 도관)의 저항이 더 커지며, 장력이 너무 커져 물기둥이 끊어지게 된다. 마치 늘어난 고무줄이 더 이상의 장력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는 것과 같다. 이때 물분자 간의 응집력은 도관보다 직경이 더 작은 가도관에서 더 크게 나타나서 물기둥이 끊어지지 않고 버틴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가 가도관을 가진 침엽수라는 사실이 우연이 아님을 여기서 알 수 있다.
코크 교수팀은 나무의 물관부가 견딜 수 있는 장력의 한계가 122~130m라고 회귀곡선을 이용해서 계산했다. 즉 갈릴레이가 500년 전에 제시한 110m라는 숫자, 그리고 세쿼이아가 자랄 수 있는 한계와 거의 비슷한 수치에 해당한다. 매우 과학적인 설명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여기에서 또 흥미 있는 것을 제안했다. 나무의 건강 상태에 따라서 키가 더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기후가 건조해지면 수분 부족으로 가지 끝이 말라 죽기 때문에 키가 전반적으로 작아지고, 기후가 다습해지면 다시 새싹이 나오는 것을 반복하면서 키가 조금 더 커진다는 것이다. 즉 지구온난화 현상이 이 지역의 강우량에 영향을 주면서 수분 관계를 좌우하여 세쿼이아가 자랄 수 있는 한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수분 관계가 좋아지면 나무의 건강 상태도 좋아져서 나무가 조금 더 크게 자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세쿼이아의 잎은 깃털처럼 생겼으며, 국내 메타세쿼이아와 흡사하지만 더두껍고 상록성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북서부에 있는 훔볼트(Humboldt) 주립공원으로 가는 도로변의 세쿼이아 거목들이다. 이 지역에는 이런 천연림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직경이 5m 이상 되는 세쿼이아 밑동에 구멍을 뚫어 자동차가 지나간다. 통행료를 받는 개인 소유의 ‘Tour Thru Tree’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레깃(Leggett) 시에 있는‘Chandelier Tree’라는 이름을 가진 세쿼이아로서, 키가 96m, 직경 6.4m, 나이 약 2,400년이다. 밑동에 구멍을 뚫었지만 건강하게 살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리크(Orick) 시에 있는 훔볼트(Humboldt) 주립공원 내 ‘Tall Tree Grove(거목 숲)’에서 자라고 있는 세쿼이아 숲이다. 이곳에 키가 100m 전후 되는 나무들이 수십 그루 모여 있다.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키가 컸던 세쿼이아의 모습으로서 키가 112.6m이다. 2006년 다른 곳에서 115m 되는 나무가 발견되어 챔피언의 자리를 내주었다.
세쿼이아는 밑에 가지가 없이 수십 m까지 자라 올라가며, 껍질의 두께가 보통 40cm (최고 70cm)로서 잦은 산불에 타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나무의 높이에 비례하여 잎의 크기가 작아지는 현상에 근거하여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한계를 122~130m로 발표한 코크 교수 논문에서 발췌한 사진이다. 숫자는 나무의 높이(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