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사 돌부처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소개
여서완
담쟁이가 감고 있는 것은 바위만이 아니다. 그를 향하는 마음이 온몸을 다해 손을 뻗고 있다. 수백 년의 세월에도 한결같은 그를 향해 합장을 하고 앞에 앉았다. 무수한 풀벌레의 연주에 잠시 나를 놓는다. 나라고 인식되었던 끈을 풀어 놓았다. 바람이 구름과 하나로 엉키고 태양빛의 은은한 미소가 그의 입술에서 빛난다. 깍 깍 북한산 까마귀가 맞장구를 치니 등 뒤에 석등이 댕그랑 소리를 낸다. 까마귀는 까치와 달리 음성에 위엄이 깃들어 있다. 삼족오와 태양의 새 등의 수식어가 붙는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북한산에 같이 가겠다던 청솔도 계획이 변경되고 혼자 잠시 탕춘대길 어씽하러 가겠다고 나선 길인데 추석 전 날 승가사에 훌쩍 올라 승가사 돌부처님 앞에 앉아 있다. 그가 불렀음이 틀림없다. 그의 얼굴에 태양이 비친다.
승가사 돌부처
누가 승가사 돌부처님 입술에
루즈를 칠했을까?
문득 꿈속에라도 나타나
내 입술 덮친다면
돌이라서 무겁다 할까?
입술 붉은 돌부처 앞에 앉아
적막 속 기척에 화들짝 놀라 보니
가을이 뚝 떨어지며 옷 벗는 소리
고요 속 눈 돌아가는 돌부처와 나
그만 눈이 맞고 말았다
여서완 사진시집[태양의 알]에서
불상 소개는 108계단 아래에 서 있다. (사진 참조)
북한산 구기동 마애 여래좌상
Rock-carved Buddha in Gugi-dong Bukhansan (Mt.) Seoul
보물 : 215호
시대 : 고려시대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산 2-1번지
이 불상은 북한산 기슭의 바위에 새겨진 장대한 규모의 고려시대 마애불상이다. 이 불상은 대체로 고려 초기인 10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큰 규모와 위엄 있는 모습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이나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광주 철불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상 얼굴 부분의 이목구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몸에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가사를 입고 있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렸는데, 이와 같은 손의 표현을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나타내는 항마촉지인이라고 부른다. 대좌에 새겨진 연꽃잎은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하여 불상 제작 기술의 우수성을 잘 보여준다. 불상의 좌우에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목조기구가 이곳에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현재 불상 머리 위에 있는 천개석은 나중에 만들어 얹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불상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마애불상 가운데 제작기법이나 규모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가사는 당의 신승 승가의 성적을 얻은 수대가 756년(경덕왕 15)에 삼각산 남쪽에 굴을 만들어 창건하였다고 전해 온다. 1024년에 지광과 성언에 의해 중창된 이후 1090년과 1099년에 각각 한 차례씩 중수되면서 절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 4길 213 (구기동) 승가사이며, 북한산 능선에 자리 잡은 고려의 천년 사찰이자 비구니 사찰이다.
석조승가대사 상이 있는 약사전의 바위에는 신령스런 샘물이란 뜻의 영천이 새겨져 있다. 그곳 바위에서 나오는 샘물 한 국자를 마셨다. 돌로 새겨진 승가대사가 입고 있는 가사의 색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붉은 빛을 띠고 있어 신비롭다.
나무계단 아래에 있는 승가사 호국보탑은 화강암으로 세운 9층 석탑으로 높이 25m이다. 아래 기단부의 조각상들이 아름답고 정교하다. 사천왕상을 비롯하여 코끼리 사자 등의 동물들 조각도 특이하다. 휴식년재로 아직 올라본 적이 없는 보현봉을 배경으로 사철의 사진을 찍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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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등의 자료를 참조하여 좀 더 자세하게 살며 보았다.
승가사 대웅전 뒤편으로 108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고려시대의 마애불좌상을 만날 수 있다. 북한산 중턱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윗면에 조각되어 있는 마애불 좌상이다.
전체적으로 풍만하고 당당한 체구에 장중하고 단정하면서도 자비가 넘쳐흐르는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상들보다는 다소 둔화되고 형식화된 감이 있다. 하지만 신체 표현은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있으며, 얼굴 표정 또한 부드러움과 자비로움이 잘 간직되어 있는 10세기의 고려시대 불상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강한 느낌의 얼굴, 평면적인 신체 등의 전통적인 양식에 다소 추상성을 가미하면서 웅대하게 변모시킨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마애불좌상으로 높이 평가된다.
머리 위에는 8각의 머릿돌을 끼워 넣어 얼굴을 보호하고 있는데 개석 아랫면에 연꽃잎과 자방이 아름답게 조각된 팔각형의 다른 돌을 바위에 붙여서 보개로 삼고 있다. 머리 위쪽 좌우와 양어깨 옆으로 파여 있는 네모꼴의 구멍은 목조전실의 가구 흔적으로서 마애석굴을 모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거대한 바윗면에 홈을 약간 판 다음 불상을 도드라지게 새겼으며 대좌로부터 시작되는 광배는 굵은 선으로 아무런 장식 없이 조각된 키 모양의 거신광이다. 전신의 윤곽을 따라 바윗면을 쪼아내고 낮은 부조로 항마촉지인의 불좌상을 조각하고 두광과 신광이 합쳐진 거신광이 개석과 불상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다소 딱딱해 보이지만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얼굴에는 단정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몸은 건장하고 당당하지만 각이 지고 평판적인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어서 경직된 모습이 나타난다.
높고 큼직한 살상투를 갖춘 머리는 민머리이며 얼굴은 넓고 살찐 형이다. 백호공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네모꼴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하게 처리된 얼굴에는 오뚝하게 솟은 콧날과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근엄한 표정이 강조되었고 가늘게 내려 뜬 눈과 눈썹 등이 이목구비의 표현이 분명하며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가는 선으로 조각된 삼도가 희미하게 나타나 있으며 두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졌다. 몸은 얼굴에 비해 부조가 얕고 입체감이 없는 형식적인 조각수법으로 처리되었다. 허리는 매우 짧지만 무릎 폭이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 걸쳐 입은 우견편단으로 입은 법의는 넓은 옷깃이 왼쪽 어깨로부터 오른쪽 겨드랑이로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거의 음각선 으로 묘사되어 있는 옷주름 선은 유려하고 활달하다. 팔을 약간 벌려서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는 손은 당당한 불격을 나타내 준다. 뿐만 아니라 오른쪽 손목을 안쪽으로 꺾이게 함으로써 율동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데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손목이 휘어 있어 마치 무릎을 힘주어 짚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 모습이다.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무릎 가운데에 손바닥을 위로 하여 올려놓았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에는 화사한 연꽃무늬가 겹쳐서 새져져 있다. 대좌는 겹꽃 연판이 아래위로 연접된 형식인데 꽃잎은 비교적 사실적이고 입체감 있게 돋을 새김 되어 있다. 화사한 중판연화문대좌 위에서 가부좌한 양 무릎은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항마촉지인,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나타내는 그와 같은 모양으로 나도 그 앞에 앉았다. 바람은 주위의 것들로 자신의 소리를 만든다. 떡갈나무 잎과 소나무 잎의 소리는 차이가 크다. 석등의 틈 사이 유리와 돌이 부딪치며 종소리를 낸다. 바람이 나를 흔든다. 나로 소리를 만들어 보자는 심상이다. 내려오는 길에 그 앞에 모자를 벗어두고 온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108계단을 올랐다. 그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