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개빈 헤이먼· 글로벌 위트니스 이사
지난 4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1년간 250만건 이상의 유출된 파일을 조사한 끝에 12만개가 넘는 역외 유령회사와 신탁기관의 명단을 공개했다. 버진아일랜드와 쿡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의 베일 뒤에는 세계 유명 지도자들이 숨어 있었다. 조지아의 억만장자 총리, 브리지트 바르도의 전 남편인 독일 사업가, 프랑스 대통령 대선 캠프의 재무 담당관, 독재자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딸이 포함됐다.
이번 발표는 전 세계에 만연한 비밀 금융 관행과 재무 불투명성을 조명했을 뿐 아니라 페이퍼컴퍼니가 어떻게 탈세, 돈세탁, 부패를 촉진하는지 공개했다. 글로벌 위트니스는 해외 돈 세탁의 두 가지 필수 요소를 밝혀냈다. 즉 검은돈을 받아주는 은행과 부패·부유하며 연줄이 좋은 사람들의 신원을 숨겨주는 기업이다.
세계은행이 조사한 200건의 대규모 부패 행위 사례 중 70%는 페이퍼컴퍼니와 관련돼 있었다. 올해 초 유럽에 말고기 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익명으로 등록된 페이퍼컴퍼니들이었다. 키프로스 소속의 한 페이퍼컴퍼니는 '죽음의 무기상' 빅토르 부트의 자금 관리인 역할을 해왔다.
글로벌 위트니스 조사 결과, 콩고에서는 비밀 거래를 통해 아주 수익성 좋은 광산이 조셉 카빌라 대통령의 친구와 연관돼 있는 페이퍼컴퍼니에 헐값에 팔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사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광산을 매각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챙겼다. 국민은 수억달러에 달하는 국가 자원을 약탈당한 것이다.
개발도상국에 천연자원은 부(富)의 주요한 원천이다.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가 2010년에 수출한 천연 연료·광석의 가치는 같은 기간 이들이 받은 개발 원조 금액의 15배에 달했다. 하지만 사리사욕만 좇는 정치인들은 국민이 천연자원으로부터 받을 혜택의 권리를 부정해 버린다. 불투명한 비밀 거래와 자원을 빼돌리는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돈 세탁과 비밀 금융 관행은 개발도상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영국 등 주요 금융 중심지가 핵심이다. 세계은행 조사에 연루된 페이퍼컴퍼니 대부분은 미국에 등록돼 있었다.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은 범죄 행위로 수익을 챙겨 종종 질책을 받긴 하지만, 절대 기소되는 일은 없다. 바로 지난해 HSBC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미국 금융 시스템을 통해 수억달러를 세탁할 수 있게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재무 투명성이 이번 달 영국에서 열리는 G8 회담의 의제 중 하나로 선정된 것은 옳은 길을 향한 첫 발걸음이다. 쪼들리는 예산과 광범위한 긴축 재정의 시대에 금융 부패를 바로잡음으로써 정부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G8과 국제사회는 페이퍼컴퍼니를 누가 소유하고 있고 그로부터 누가 수혜를 입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올해 G8 회담에서 세계 리더들은 가난의 증상이 아니라 가난의 원인에 대한 실효성 있는 액션 플랜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나쁜 정부의 부패와 약탈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