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영혼을 향한 가을 여행으로 초대합니다.
J. 아리아스 신부의 책 《내가 믿지 않는 하느님》에 보면 참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한번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렇다. 나는 이러한 하느님을 결코 믿지 않는다...
물질을 죄악시하는 하느님... 마술사와 요술쟁이인 하느님...
특정한 교회, 특정 종목, 특정 문화, 특정 계층이 독점하도록 허용하는 하느님...
손에 쥐고 있는 법조문에 따라 항상 판결을 내리는 심판관 하느님...
단죄하기를 ‘즐기는’ 하느님... 지옥에 ‘보내는’ 하느님...
자기 집 문밖에서는 굶주림과 비참이 심한데 집안에서는 포식하는 부자들로부터 흠숭을 받는 하느님...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 이들의 선심을 흡족하게 여기는 하느님...
인간과 사랑에 빠질 줄 모르는 하느님...
온갖 절망 속에서 내가 희망할 수 없는 하느님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렇다. 나의 하느님은 전혀 다른 하느님이시다.”
아...얼마나 하나님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인지... 위의 목록에 보면, 다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신은 결단코 이런 모습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리아스 신부님처럼 저도 그 분을 믿고, 내 평생을 바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 중 하나만을 주장할 때, “광신도”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들은 바로 하나“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것“만”을 붙잡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 교수님이 제일 가르치기 힘든 학생이 ‘책 한 권만 읽고, 그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학생’이라고 합니다. 신앙에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광신도와 그들의 집단들은 자신의 ‘열등감, 분노, 그리고 적대감’을 표출할 대상을 찾다가, 드디어 종교성과 만나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흔히들 “교회가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데, 세상이 왜 이리 타락했는가?”를 질문합니다.
‘한국종교사회윤리연수소’ 김홍권 소장이 이 문제를 연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각종 형사범들의 종교를 비교한 결과, 비종교인은 15명당 1명이 범죄자이고, 원불교는 30명당 1명, 불교는 31명당 1명, 개신교는 39명당 1명, 천주교는 105명당 1명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한 ‘대검찰청 2009 종교별 범죄율 통계’에 보면 비종교인이 45.2%, 종교인이 21.8%, 종교의 유무를 답하지 않은 사람이 33.0%로 나왔습니다. 즉, 사회범죄와 정의의 책임이 종교인에게 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종교는 사회를 정화하는 힘이 있습니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어떤 문명이든지 도덕이나 종교가 든든히 버티고 있으면, 그 사회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조차 타락하니 사회 전체가 무너진 것입니다.
또한 종교는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합니다. 미국의 의학지 발표에 의하면,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신앙에 따라 일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더 잘 산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교는 질병의 치유를 촉진한다고 합니다. 하버드대학의 “허버트 벤슨” 교수는 최근 의학 연구가 유전자 속에서 영적 차원의 잠재된 치유력을 발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벤슨은 종교인은 아니지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유전자 청사진은 무한한 절대자를 믿는 것을 우리 본성의 일부로 만들어 두었다.”
이처럼 신앙은 세상과 우리 개인을 아름답고 새롭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비록 세상 속에 있는 많은 “광신도”나 “사이비들”이 종교의 참모습을 흐리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 증거들은 우리가 신앙을 가져야 하는 필요성을 제시합니다.
가을입니다. 이 가을에 자기 내면의 절대자를 향한 열망을 새롭게 발견해보시는 것은 어떠실지요? 인간은 종교적 동물입니다. 신만이 채울 수 있는, 신만이 새롭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향한 여행으로 이 가을 당신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