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배 영상 : https://youtu.be/IxhY7Swet3o
제목 : 평강을 누리는 삶
본문 : 빌 4:4-7
날짜 : 2026. 10. 11 주일오전예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낄 때가 어느 때일까요? 그것은 마음의 평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불안 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마음의 평강을 누리는 것이 꼭 가진 것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고 좋은 환경 가운데 살아가지만 늘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그 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그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도 외적인 어려움과 내부의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상황 속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바울은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야 평강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평강을 누리는 삶의 세 가지 모습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의 헬라어에서 “기뻐하라”라는 말은 χαίρετε, ‘카이레테’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기뻐하라는 뜻으로, 잠깐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속적인 태도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주 안에서”입니다. 바울은 그냥 기뻐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대부분 환경과 조건에 달려 있습니다. 일이 잘되면 기쁘고, 건강하면 기쁘고, 원하는 것을 얻으면 기쁩니다. 그러나 환경이 변하면 그 기쁨도 쉽게 사라집니다.
하지만 성도의 기쁨은 다릅니다. 우리의 기쁨은 환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내 형편은 변할 수 있습니다. 건강도 변할 수 있고 사람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 자신이 바로 이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었지만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기쁨의 근거가 감옥 밖의 환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기뻐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이 있다고 해서 기쁨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닙니다. 슬픈데도 슬프지 않은 척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난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골짜기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골짜기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평강이 사라질 때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염려가 커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커집니다.
오늘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합니다. 또한 환경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주님의 사랑을 붙들고 기뻐해야 합니다.
2.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본문 5절을 보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관용”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ἐπιεικές, ‘에피에이케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성격이 부드럽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의 권리를 끝까지 주장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때로는 사랑을 위해 양보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평강을 잃어버리는 이유 가운데 많은 부분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깁니다. 사람의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밤새 그 일을 생각합니다.
“왜 나한테 그렇게 했을까?”, “내가 꼭 따져야겠다” 등등 이런 생각을 계속 품고 있으면 마음에 평강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평강을 말하면서 관용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내가 반드시 이겨야 하고, 내 말이 맞다는 것을 끝까지 증명해야 하며, 내가 받은 상처만큼 상대방도 아파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평강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물론 불의를 무조건 참고 넘어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내가 직접 해결하려 하고 모든 판단을 내가 하려고 할 때 우리의 마음은 더 무거워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도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관용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라고 말을 합니다.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도 그리스도인의 관용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고 말씀 합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내가 당한 일을 아십니다. 내 마음의 상처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을 보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관용할 수 있는 것은 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 판단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아시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양보할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 가운데 마음의 평안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계속 마음속에 붙들고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도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의 평강을 더욱 깊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는 아주 분명한 대조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리고 “모든 일에 기도하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반대로 살아갑니다. 모든 일을 염려하면서 기도는 적게 합니다. 하루 종일 걱정한 뒤에 마지막에 잠깐 기도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염려할 일을 기도할 일로 바꾸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염려하다”라는 말은 헬라어 μεριμνάω, ‘메림나오’라는 말입니다. 염려가 깊어지면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생각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습니다. 잠을 자려고 해도 걱정이 떠오르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불안이 계속 따라옵니다.
그런데 바울은 “생각하지 마라”라고 하지 않고 “기도하라”라고 말을 합니다. 염려를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염려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기도”, “간구”, “구할 것”이라는 표현이 함께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아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큰 문제만 들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작은 일도 들으십니다.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일도 하나님께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을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염려를 붙들고 있으면 짐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면 기도가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한 가지를 더 강조합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왜 감사가 중요할까요? 염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바라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러나 감사는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지켜 주셨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다” 그러므로 감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 놀라운 약속이 이어집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바울은 “그리하면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되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지키시리라”는 말은 헬라어 φρουρήσει, ‘프루레세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군인이 성을 지키고 경비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마치 보초병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준다는 것입니다.
불안이 찾아오고 두려움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줍니다. 환경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는데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답이 보이지 않는데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성도님들 가운데 오늘 마음속에 염려가 있다면 그것을 기도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걱정이 생길 때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나를 지켜 주셨으니 앞으로도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문제가 하나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 데서 오는 평강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문제가 다 해결된 뒤에 쓴 말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는 기뻐했습니다. 관용을 베풀라고 권면했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고 선포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붙들기 원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환경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관용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또한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를 마음속에 쌓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약속하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환경보다 깊고 문제보다 큽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고, 관용을 베풀며, 감사함으로 기도함으로써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