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메길관광안내소~삼길산~화곡1리~대산버스터미널 12.2k, 4h
서산시의 연혁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면 대죽리에 있는 무역항.
석남동·일람리 등지에서 구석기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여 지금의 지곡면 일대에 치리국국(致利鞠國)이라는 부족국가가 형성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여 기군(基郡)이 설치되었고, 성대혜현(省大兮縣, 지금의 태안군)과 지육현(知六縣, 지금의 지곡면)이 예속되었다.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과 교류하는 관문 역할을 하였으며,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84)과 보원사지(普願寺址) 등을 통하여 불교문화가 융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이 9주(州)로 정비되면서 757년(경덕왕 16) 서산 지역은 웅천주(熊川州)에 속한 부성군(富城郡)으로 편제되었고, 성대혜현과 지육현은 각각 소태현(蘇泰縣)과 지육현(地育縣)으로 개칭되어 부성군에 속하였다. 또한 지금의 운산면 지역인 여읍현(餘邑縣)은 인접한 혜성군(槥城郡, 지금의 당진시)의 관할에 속하였다. 894년(진성여왕 7)에는 최치원(崔致遠)이 태수로 부임하였다.
고려가 개국한 뒤에도 부성군이 유지되다가 1143년(인종 21) 부성현으로 고쳐 현령을 두었다. 이후 1182년(명종 12) 현민들이 민란을 일으켜 폐현되었다가 1284년(충렬왕 10) 이 지역 출신인 대호군(大護軍) 정인경(鄭仁卿)이 몽골군과의 전투에서 전과를 올린 공으로 서산군(瑞山郡)으로 승격되었다. 1308년(충렬왕 34) 다시 서주목(瑞州牧)으로 승격되었으며, 1310년(충선왕 2) 모든 목(牧)을 폐지함에 따라 서령부(瑞寧府)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지서주사(知瑞州事)로 격하되었다. 고려 때에는 조세로 거둔 현물을 보관·수송하던 조창(漕倉)의 한 곳인 영풍창(永豊倉)이 지금의 팔봉면 어송리에 설치되었으며, 삼남 지방의 세곡을 해상으로 운송하기 위해서는 서산을 거쳐야 하였으므로 이를 약탈하려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조선이 개국한 뒤, 1407년(태종 7)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이 해미현(海美縣)으로 병합되었고, 1413년(태종 13) 전국이 8도(道)로 개편되면서 충청도에 속한 서산군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조선 전기에 걸쳐 군내면·대사동면·두치면·오산면·화변면·마산면·노지면·영풍면·대산면·율곶면·인정면·문지현면·지곡면·성연면·동암면의 15개 면 또는 여기에 안면면과 동음암면을 추가한 17개 면을 관할하였다.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되면서 해미군·태안군과 함께 홍주부에 속하였으며, 안면면이 태안군으로 분리되고 영풍면과 문지현면이 각각 영풍창면과 문현면으로 개칭되었다. 이듬해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충청남도에 속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해미군과 태안군이 서산군으로 통합되었다. 이때 서산군의 군내면·대사동면·율곶면·오산면이 서령면으로, 일도면·이도면의 대부분과 지곡면의 웅도리가 대산면으로, 해미군의 고북면과 동면 및 홍주군 고남면·상도면이 고북면으로, 마산면과 화변면이 부석면으로, 상성연면·하성연면과 동음암면 문기리 일부가 성연면으로, 해미군의 운천면·부산면·이도면과 서산군의 동음암면 및 면천군의 마산면 일부가 운산면으로, 동음암면·두치면·동암면·운천면의 일부가 음암면으로, 인정면·노지면·서산면의 일부가 인지면으로, 지곡면과 문산면·대산면의 일부가 지곡면으로, 영풍창면과 문현면 및 태안군의 동이면·북일면 일부가 팔봉면으로, 해미군의 동면과 서면·동암면이 지성면으로 각각 병합되었다. 이로써 서산 지역은 16개 면에서 서령면·음암면·인지면·부석면·팔봉면·지곡면·대산면·성연면의 8개 면으로 재편되었고, 태안 지역은 14개 면에서 7개면으로, 해미 지역은 10개 면에서 5개 면으로 재편되었다. 1916년 지성면이 해미면으로, 1917년에는 서령면이 서산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42년 서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8·15광복 후, 1957년 대호지면과 정미면이 당진시에 이속되었고, 1973년 태안면이 읍으로 승격된 데 이어 1980년에는 안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서산읍이 서산시로 승격되어 분리되면서 부춘동·동문1동·동문2동·수석동·석남동의 5개 동이 설치되었고, 태안읍·안면읍·고남면·근흥면·남면·소원면·원북면·이원면이 태안군으로 분리되었으며, 대산면·고북면·부석면·성연면·운산면·음암면·인지면·지곡면·팔봉면·해미면은 서산군으로 재편되었다. 1991년 대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서산시와 서산군이 통합되어 도농복합형의 서산시로 새로이 출범하였다. 2019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읍(대산읍) 9면(인지면·부석면·팔봉면·지곡면·성연면·음암면·운산면·해미면·고북면) 5동(부춘동·동문1동·동문2동·수석동·석남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행정동인 부춘동은 법정동 2개 동(읍내동·갈산동)을, 동문1동은 법정동 3개 동(동문동 일부와 온석동·잠홍동)을, 동문2동은 법정동 1개 동(동문동 일부)을, 수석동은 법정동 2개 동(수석동·석림동)을, 석남동은 법정동 7개 동(석남동·양대동·죽성동·예천동·오남동·장동·덕지천동)을 각각 관할한다.
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아라메길
충청남도 서산시에 조성 중인 도보 여행 길.
개설
아라메길은 충청남도 서산시 전역에 걸쳐 총 17개 구간이 조성될 계획이며 현재 제1구간에서 다섯 개의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제1구간은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에 걸쳐 있으며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상과 충청남도 4대 사찰 중 하나인 개심사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제1구간 1코스의 주요 테마는 역사, 불교, 숲, 민속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데 총 6시간이 걸린다. 또한 제1구간에서는 3개의 지선과 1-1코스가 추가로 정비·조성되었으며 중장기 계획 속에서 지속적인 코스 개발과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명칭 유래
‘아라메’는 바다의 순우리말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쳐서 만들어진 말로 청정한 바다와 수려한 숲길을 골고루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건립 경위
2010년 2월 서산 아라메길 종합 추진 계획을 확정하고 3월 서산 아라메길 제1구간 1차 조성 사업을 완료하였다. 2010년 4월 아라메길 중장기 개발을 충남발전연구원과 용역 체결하였다. 2010년 5월 유래 및 전설 안내판, 조형물 등의 설치를 완료하였다. 2010년 7월 10일 제1구간 개통식 및 걷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2010년 7월부터 12월까지 제1구간 지선 코스[유기방 가옥~서산 보원사지~개심사 입구~개심사~오학리 입구~해미향교~서산 해미읍성] 정비를 완료하였다. 2011년 1월부터 4월까지 제1구간[유기방 가옥~서산 보원사지~개심사 입구~개심사~오학리 입구~밤나무단지 입구~오학리 굴다리~해미읍성 북문~서산 해미읍성] 지선 코스 정비를 완료하였다.
현황
전체 코스는 유기방 가옥에서 해미읍성까지 총 길이 20.2㎞로 2시간 30분, 3시간 30분, 3시간 50분 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2시간 30분 코스는 총 길이 8㎞로 보원사 절터를 돌아보는 길이며, 3시간 30분 코스는 총 길이 12.1㎞로 강댕이 미륵불을 돌아보는 길이다. 마지막 3시간 50분 코스는 총 길이 13㎞로 서산 마애삼존불상 입구에서 해미읍성 동헌 앞까지 돌아보는 길이다.
참고문헌
서산시청(http://www.seosan.go.kr/)
서산아라메길(http://www.aramegil.kr/index.html)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삼길산[三吉山, Samgilsan]
충청남도 서산시의 대산면 화곡리에 있는 산이다. 조선조에는 산 앞에 평신진(平薪鎭)이 위치하여 있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평신읍지』에 삼길산이 기록되어 있고, 『1872년지방지도』에도 삼길산, 평신진, 삼길포가 나와 있다. 또한, 『서산군지』(1926)에는 "삼길산을 오르면 당진, 면천의 여러 산들은 바둑판에 붙은 바둑돌 같고 삼길(三吉)의 바다 빛은 한 폭의 흰 명주가 매달린 듯하다. 풍경이 매우 뛰어나서 봄바람 불고 가을 달이 밝을 때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들 사료를 통하여 산 이름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엿볼 수 있으나 그 유래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 또한, 삼길산과 삼길포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도 분명치 않다.
전성기 때의 삼길포에는 50여 척의 뱅어 잡이 정치망 어선이 앞바다에서 초봄부터 가을까지 파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1984년 대호방조제가 조성되면서 기능이 많이 쇠하여졌으며, 지금은 인천과 왕래하는 연락선이 기항하고 있다. 관련 지명으로 '밧생길'이 있는데 삼길포 마을 밖에 있는 삼길포 마을이라는 뜻이다. 또 '작은생길'이라고도 하는데, 삼길포 마을에 포함된 작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출처:(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
삼길사[三吉寺]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백제 때 창건되었으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절의 역사는 알 수 없다. 원통전에 ‘삼길산 해월암(海月庵) 중수기’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조선 후기까지는 해월암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근래에 이르러 산 이름에 맞추어 절 이름을 삼길사로 고쳤다. 건물로는 원통전과 산신각·요사채가 있으며, 특별한 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대산산업단지 [大山産業團地]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대죽리에 있는 산업단지.내용
공공기관에서 조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공업단지로서, 공업단지 구분상 계획입지형 단지가 아니고 자유입지형 단지에 해당한다. 울산광역시와 전라남도 여수에 이어 조성된 우리 나라 제3의 석유화학 전문단지이며, 제1공단, 제2공단, 제3공단으로 구분된다. 제1공단은 삼성종합화학이 1988년 10월부터 1990년 7월까지 매립 면적 64만 7000평을 포함한 총 94만 평의 부지를 조성하고, 1989년 9월부터 89만 1000평의 공장 용지에 공장 건설을 시작하여 1991년 6월에 나프타분해공장을 가동하였다. 이후 1994년에 유기화합물 제조를 위한 정밀화학제품 공장을 준공하는 등 지속적으로 공장 확장이 이루어져 현재 는 14개의 단위 공장이 수평 계열화 및 수평 다각화를 이루고 있다.
주요 생산 제품은 에틸렌·프로필렌 등의 기초 유분을 비롯하여 중간 제품인 PTA, SM, EO/EG, PX, 합성수지 제품인 LDPE, EVA, LLDPE, HDPE, P.P 등 석유화학 기초제품이다. 생산 규모는 연간 230만t이며, 원료는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인디아, 싱가포르 등에서 공급받고 있다. 생산 제품의 70%는 중국·홍콩·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미국·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 등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제2공단은 현대석유화학이 1985년 6월부터 1990년 3월까지 매립 면적 100만 4000평을 포함한 총 117만 5000평의 부지를 조성하고, 1990년 6월부터 95만 4000평의 공장 용지에 공장 건설을 시작하여 1991년 6월에 가동에 들어갔으며, 같은 해 10월에 제1컴플렉스를 완공하였다. 이후 1994년부터 합성고무공장 건설을 비롯하여 공장 확정 계획을 추진하였으며, 1998년 5월에 제2컴플렉스가 완공
되었다.주요 생산품은 에틸렌, 프로필렌, 혼합C4유분, 벤젠 등의 기초 유분을 비롯하여 중간 제 SM, BD, EQ/EG, MTBE, VCM, 합성수지 제품인 LDPE, EVA, LLDPE, HDPE, P.P, PVC, 합성수지 제품인 SMR, BR, NBR, VP·LATEX 등이다. 생산 규모는 에틸렌 기준 연간 100만t, 계열 제품 연간 330만t으로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원료는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등에서 공급받으며, 생산 제품의 50%이상을 중국·홍콩·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미국·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 등 60여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제3공단은 극동정유(1993년 8월에 현대정유로 상호를 변경)가 1983년 11월부터 1991년 6월까지 매립 면적 483만 평을 포함한 52만 9000평의 부지를 조성하고, 이 중 455만 평의 공장 용지에 1985년 11월부터 공장 건설을 시작하여 1988년 12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이후 공장 확장 계획에 의한 공장 증설을 계속하여 1996년 5월에는 1일 20만 배럴 생산 규모의 원유 정제 시설을 완공함으로써 1일 31만 배럴 생산 규모의 원유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연간 40만t 생산 규모의 BTX 공장이 1997년 12월에 완공되었다. 주요 생산 제품은 휘발유, 등유, 경유(저유황), LPG, 나프타, 솔벤트, 중유, 방카C유, 아스팔트, 유황 등이다. 원료는 카타르·오만·사우디아라비아·이란 등에서 공급받고 있으며, 생산 제품의 약 40%는 중국·대만·홍콩·필리핀·태국·미국·싱가포르 등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1997년 현재 990만 배럴을 생산하였으며, 매출액은 3조원을 넘어섰고 수출액은 2억 2천만 달러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산항(大山港)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면 대죽리에 있는 무역항.
건립 경위
대산항은 서해안 중부권의 거점 항만 기능을 위해 종합 항만으로 개발하였으며, 석유 화학 산업과 지방 산업 단지의 항만 지원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1년 10월 14일에 개항하였다.
변천
1991년 2월 항만 시설 지정 이후, 1991년 10월 무역항으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4월 무역항 기본 계획이 고시되었고, 1998년 11월에는 한국동서발전 당진화력본부 항만 시설로 지정되었다. 1999년 4월 항계가 확장되었으며, 1999년 12월 기본 설계 용역이 실시되었고, 2002년 10월 대산항 건설 1단계 1차 사업을 착공하여 2006년 12월 준공하였다. 2006년 12월 대산항 건설 1단계 2차 사업을 착공하였다. 2007년 3월에 대산~상하이[上海]~인천 컨테이너선 정기 항로가 개설되었고, 2008년 3월 해안 경찰 및 관리 부두 부잔교 2기가 준공되었다.
2009년에는 대산~닝보[寧波]~상하이[上海], 대산~홍콩[香港]~샨토우[汕頭]~샤먼[厦門]~취안저우[泉州]~푸칭[福清], 대산~광양~부산~울산~지룽[基隆]~홍콩~항푸[杭浦]~셔코우[蛇口]~홍콩[香港]~지룽[基隆] 컨테이너 정기 항로가 개설되었으며, 2011년 6월에 대산~상하이[上海]~홍콩[香港]~베트남 하이퐁~샤먼[厦門]~인천~평택으로 연결되는 동남아 컨테이너 정기 항로가 개설되면서 명실상부한 서해안의 무역항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2010년 11월에는 대산항~중국 룽앤[龍眼]항 국제 여객선 정기 항로 개설이 확정되었고, 2011년 현재 대산항 건설 1단계 2차 사업은 공정률 85%를 기록하고 있다.
구성
잔교 5기, 물양장이 867m, 접안 능력은 모두 21선석이다. 2011년 현재 총 23개 부두를 운영 중이며 21개 부두가 개발 중이다. 삼성석유화학, 현대오일뱅크, 삼성토탈, 씨텍, 한국석유공사 등 민간에서 운영하는 부두가 22개이며, 국가에서 운영하는 부두는 대산항 1부두뿐이다. 또한 개발 중인 부두 21선석 중 정부 재정에 의한 국가 부두는 5선석이며 S-OIL, 한화토탈 등 민간에서 투자한 부두는 16개이다.
현황
대산항은 중국과 최단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에는 석유 화학, 자동차·전자 부품 단지 등 산업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 2010년 항만별 전체 화물 처리량은 대산항이 6612만 톤으로 전국 29개 무역항 중 6위에 해당하며, 위험 화물은 4만 5344TEU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현재 전체 입출항 선박은 1만 1462척이며, 입출항 화물 물동량 처리 실적은 모두 6612만 2000톤이다. 물동량 가운데 컨테이너는 4만 5233TEU이며 품목별로는 원유 2280만 톤, 석유 정제품 2266만 톤, 유연탄 1370만 톤, 화학 공업 생산품 486만 톤 등으로 원유와 석유 정제품이 68.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1년 7월 25일 확정 고시된 제3차 전국 항만 기본 계획에는 대산항과 중국 룽앤항을 잇는 국제 쾌속선 취항을 위한 국제 여객 터미널 건립이 계획되어 있으며, 2020년까지 2,000TEU급 다목적 부두 1선석과 3만 톤급 자동차 부두 1선석, 그리고 12만 톤급과 1만 톤급 액체 화물 부두 2선석이 국가 부두로 개발되며 2020년 이후에는 2,000TEU급 다목적 부두 1선석이 추가로 들어설 계획에 있어 대산항은 석유 화학 산업 거점 항만, 환황해권 시대 동북아시아 물류 허브 및 대중국 전진 기지로 육성될 전망이다.
참고문헌
『제3차 전국 항만 기본 계획(2011~2020)』(국토해양부, 2011
대산지방해양항만청(http://daesan.mltm.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