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허 이태준과 구인회의 문학 살롱
서울 성북구 성북동은 따스한 동네다. 아직도 오래되어 정감 있는 풍경들이 남아 있다. 예스런 건축이나 유적도 많고 낡은 한옥도 많다. 절로 마음이 훈훈하다. 수연산방은 성북동이 가진 이 같은 정서를 집약시켜놓은 듯하다. 그윽한 한옥의 정취 아래 향긋한 다향이 맑게 퍼져 나간다. 뿐이랴. 그 밑바탕에는 묵향 가득한 문학의 향취 또한 가득하다.
수연산방은 예전에는 이태현 가옥으로 불렸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보존 가치가 있었으되 월북 작가 이태준의 이름은 숨겨두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88년 월북 작가들이 해금 조치되면서 이태준가는 본래의 이름을 찾았다. 상허 이태준은 김기림, 정지용, 이상, 김유정 등이 소속됐던 구인회의 창설 멤버다. 그 면면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근대 문학의 틀을 다진 소설가다. ‘가마귀’ ‘달밤’등의 단편소설을 썼으며, 한국 현대 소설의 기법적인 바탕을 이룬 작가로 평가받는다. 다만 월북으로 인해 그 이름이 낯설 따름이다.
이태준은 구인회를 결성한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수연산방에서 살았다. 산방이라는 이름답게 옛날에는 산 아래 한적한 집이었을 게다. 그는 수연산방을 이루는 세 개의 누각에 죽향루, 문향루, 상심루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집단으로 예술뿐 아니라 개인의 창작 또한 중요시 여겼던 구인회 구성원들에게 수연산방은 서로의 예술적 교감을 주고받는 창작의 공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태준의 문학적 자산은 물론이요 정지용과 이상, 김유정의 숨결 또한 수연산방에 남아 있는 셈이다.
다향 가득한 한옥의 정취
그가 월북한 후에는 후손들이 이곳에서 살았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그 이름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았을 터. 그러다 해금 이후에야 조금씩 그 이름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연산방은 이태준이 살던 집이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한옥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분히 입소문이 날만했다. 때로는 이태준의 문학 자취를 따라, 때로는 한옥이 가진 정취를 찾아 방문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에 후손들은 전통 찻집을 열어 방문객들과 이태준의 문학을 공유하기로 했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제는 성북동은 물론이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는다. 양동근이 주연한 드라마 <닥터 깽>에서는 주인공의 집으로, 이나영과 오다기리 조가 주연한 김기덕 감독의 <비몽> 등에서는 두 주인공이 무속인을 찾아가 운명을 점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태준의 판본 등 그의 문학적 유산도 곳곳에 보관되어 있다. 무엇보다 공간 자체가 그의 서정을 부연한다. 그의 수필집 <무서록>에서 묘사한 풍경과 감성이다. 아담한 정원에는 난초를 사랑했다던 이태준의 손길이 닿아 있는 듯하다. 누각에서 차 한잔을 깃들이며 그 소담한 풍경을 안을 수 있다. 담장 너머에는 성북동의 전경이다. 예전의 풍경은 아닐지라도 서울성곽과 북한산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전통 찻집답게 차맛 또한 일품이다. 국화향과 솔향이 코끝에 진하게 맴돈다. 이태준의 문장을 더듬어가듯 가만히 그 향을 음미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문학의 향, 수연산방만이 줄 수 있는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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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세가(耆英世家)'라는 현판이 수연산방의 가풍을 부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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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산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누마루는 예약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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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 있는 원두막 아래서의 차 한잔도 운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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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대문과 화장담으로 지어진 수연산방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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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가 직접 이름 붙이고 추사의 글자를 집자한 문향루의 현판과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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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와 이어지는 툇마루에서도 차 한잔을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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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의 집터지만 지금은 찻집으로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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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산방에서는 상허 이태준의 '문장강화(文章講話)' 등 그의 유품도 볼 수 있다.
첫댓글 정겨운 인테리어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