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와 연일 비 예보로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 헷갈리지만, 아침저녁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기분 좋은 걸 보니 가을이 온 게 분명하다. 결실의 계절 가을, 올봄 나는 어떤 씨앗을 뿌렸나.
씨앗을 생각하니 우리 집에서 떠나보낸 많은 나무가 먼저 생각난다. 씨를 틔워 뿌리까지 내린 나무들, 내가 직접 들인 건 별로 없었다고 핑계 대보지만, 결국 잘 돌보지 못해 말라간 것들이다. 잊지 않고 물주고 햇볕 쬐어준들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와 내 품 안에 안기는 것과 달리 그저 전날보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길어진 줄기 정도로 나를 반겨주는 나무라 그리 아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올해 내가 주력해온 일은 비교적 단순하다. 내 몸 마음 챙기며 소소한 도전하기, 아이들 잘 돌보며 함께 제주 누비기이다. 나를 돌보고 돌아다니는 건 그럭저럭한 듯하다. 그러나 도전과제 중 하나인 기자단 글쓰기도 늘 투입한 노력과 시간 대비 만족스럽지 못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내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낮버밤반 (낮에 버럭, 밤에 반성)을 반복하고 있다. 나무 자라는 속도를 욕할 처지가 못 된다.
‘실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의 발견이 필요한 것이며, 실패가 값진 것이 아니라 실패의 교훈이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패와 그 실패의 발견, 그것은 산에 나무가 있고 땅속에 바위가 있듯이 우리의 삶에 튼튼한 뼈대를 주는 것이라 믿습니다.(p.402)’
‘목표가 원대한 것일수록 최후보다는 그 과정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먼 곳 없이 어찌 넓을 수 있으며 기다림 없이 풀 한 포긴들 제 형상을 키울 수 있으랴 싶습니다. (p406)’
신영복 선생의 옥중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의 이 대목을 보며 나의 반복되는 실패와 기다림도 언젠가 결실을 가져다주려나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젊은 학자 신영복 선생이 어느 날 알 수 없는 일에 연루되어 하루아침 무기징역수가 되어, 20년 20일이라는 긴 세월 옥고를 치르는 동안 가족과 나눈 서신을 정리한 책이다. 억울하게,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른 채 감옥에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십수 번의 계절을 보내는 이가 쓴 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풀, 바람, 햇볕과 같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따듯한 시선이,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질 뿐이다. 무엇보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절망에 빠져있기보다는 희망의 씨앗을 가슴 한편에 품고서, 감옥에 앉아 냉철하게 스스로 성찰하는 모습은 마치 옛 학자가 서당에서 글월을 읽으며 끝없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모습처럼 그려졌다. ‘신독(愼獨)’이라는 말도 어쩌면 신영복 선생을 두고서 한 말은 아닐까.
20년이란, 한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배우고 익혀 성인이 될 수 있는 참으로 긴 세월이다. 근데 시간순으로 정리된 이 책을 읽다 보면 고작 몇 페이지 만에 몇 해가 훌쩍 지나버린다. 3자인 나도 그 세월이 이렇게나 아쉽고 허무한데, 자성과 축적의 시간으로 삼는다. 누구도 아닌 내 아이로 인한 것이면서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찰나를 아깝게 느끼고, 아이들의 소란이 내 마음의 평화를 앗아간단 생각한 나는 신영복 선생의 그런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도 부끄럽다.
올 가을의 문턱에 읽은 이 책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읽어보리라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게 내가 누리고,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할 때 깨끗한 마음의 거울이 되어 줄 것이다. 글을 쓰며 나를 돌보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어찌 하루아침에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일이랴. 올해 뿌린 씨앗이니 올해 거두자는 조바심일랑 얼른 내려놓자 생각한다. 유치원에서 받아온 청경채가 스무 잎이 넘게 자라도록 매일 물을 준 막내가 나보다 낫다.
‘곡식은 비료나 지력으로 자라는 게 아니라 일꾼 발자국소리 듣고 자란다.(p.374)’는 말처럼, 우리 아이들도 부족한 엄마의 매일 밤 반복되는 자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쑥쑥 자라길 바란다.
겨우 기한 내 미션 완료입니다. ^^;
늦더라도 글 올리고 오늘 저녁 모임에도 참석하려 했는데, 배가 자꾸 아파 안되겠네요.
목요일에 뵈어요~
첫댓글 찬찬하게 삶을 살피는 글쓴이의 겸손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만들어요.하루하루 씨앗을 뿌리는데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어쩌다 나온 싹은 자라지 않는다고 수시로 한숨 짓는 나를요.
'누구도 아닌 내 아이로 인한 것이면서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찰나를 아깝게 느끼고,'
-> 질문 하나, 이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첨 읽었을 때 이해가 안돼요. 좀더 분명하게 정리해주면 좋겠어요.
저는 선생님이 기존의 것들을 대부분 내려놓고 제주도 생활을 하신 것 부터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거라 생각해요. 늘 바쁜 엄마였는데 지금은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계시잖아요. 아마 몰라도 전/후의 선생님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글쓰기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그렇지 분명 변화가 있을거라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