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 진다
<인적사항>
장문학 (1948년생) 의성군 단북면 정안리 용천 출생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40년 근무후 정년퇴임하고
경복대학교 학생처장 겸 복지행정학부 정교수근무
1. 초.중학교 9년 개근상을 받다
단북초등학교 (24회) 안계중학교(13회) 안계고등학교 (16회)
초등학교 6년간은 십리길을 당시에는 산길과 눈두럭 길을 1시간 걸어
다니면서 몸이 아플때는 어머니가 이불에 싸서 등에 업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게하고 끝나면 다시업고 결석을 9년간 한번도 하지 않았다.
2. 어머니의 기도가 우리집안 전체가 하님을 믿는 씨았이 되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어머니가 나의 손을 잡고 한시간 이나 걸리는
안계교회에 다니게 했다. 어머니는 종손의 맏며느리로써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나를 위해 낮과 밤 예배까지 참석하게 했다.
가로등도 없는 공동묘지(지금은 삼성중학교)를 지나올 때는 너무
무서워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뛴 것이 생각이 난다.
어머니의 믿음이 씨앗이 되어 우리집은 물론 일가 친척 100여명이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었고 4촌 형님은 목사님이시다.
3. 농촌에 살면서도 농삿일을 못하게 했다
부모님께서는 너를 도와줄 형제가 없는 독자이니 너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한다 늘 말씀하시면서 조상 대대로 물러준 빈곤을 벘으려면은
농촌을 떠나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한다고 하시고
농삿일은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고등학교까지 농촌에 살면서 지게
한번 모내기한번 풀베기 한번 해보지 못했다. 동네사람들은 외동아들
잘못 키운다고 비판을 많이 했지만 부모님은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심지어는 여름방학 때 과제물로 퇴비를 학교에 내야하는데 그것까지도
어머님이 하셔서 지게를 져서 학교까지 기져다 주셨다.
그때 동네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 애가 사람 되면 손가락에
불을 켠다고 했다고 한다 .
4, 오직 공부만 해서 농촌을 떠나서 성공해라
농촌학교에서는 농번기에 가정실습기간을 준다. 부모님을 도와서 농사일을
도우라는 방학이다. 부모님은 동네사람들의 눈치를 피해 새벽에 나를 깨워
도시락을 3개 싸주시면서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늦게 돌아 오라고 하셨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보통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했
다.
당시는 전기가 없어 호롱불을 사용하게 되어 코 속이 시커먼 꿀뚝 같았다.
그 결과는 나는 언제나 1등 성적표를 받아 상품으로 학용품을 받아서 학
용품 은 들지않았다
5. 대학입학의 꿈은 좌절되고 공무원이 되다
당시에는 대기업이 없을때 라 가장 인기있는 직업이 선생님과 은행원이다.
나도 대구교육대학(2년제)에 합격되었으나 집안형편이 어려워 등록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서울시청 공무원 채용시험과 경상북도 공무원시험에 응시
했다. 다행히 둘 다 합격되어 같은해 10.1자로 동시에 발령이 났다.
서울은 마포구청에 발령났고 경북은 단북면사무소 (출생지)에 발령을 받았
다. 그 당시 나는 무척 고민을 했다. 집안어른과 동네 어른들은 연노하신
(당시 부모님 환갑 넘으심) 부모님을 모시면서 면사무소에 다녀야 한다고
권유하셨으나 부모님은 농촌을 떠나야 빈곤을 면할수 있다고 떠나라고 하
셨다.
당시에는 면서기만 해도 자전거타고 도시락 싸서다니면 일년봉급만 모으
면 매년 땅을 살 수 있을정도로 잘 살 수 있을을 때였다.
고민 끝에 단북면사무소에 발령 포기서를 내고 서울마포구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부모님을 서울로 모셔서 자식 노릇을 했다.
6. 주경야독을 하면서 대학원까지 졸업하다
공무원생활을 하면서도 늘 공부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우선 공직에 충실하자 그리고 그 후에는 공부하자는 결심 하에 공무에 전
념한 결과 5급을류 공무원으로 들어와 46세에 국장으로 승진되었다.
이후 도시국장. 생활복지국장. 재무국장. 행정국장등 주요보직으로 근무하
면서 40대에 야간대학에 입학한 후 대학원까지 졸업하는데 13년동안 주경
야독을 하여 행정학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라이프유니버스티에서 명예행정
학 박사학위도 함께 받았다.
7. 말이 씨앗이되어 행정학박사가 되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창규선생님)이 나의 이름을 따서 문학박사
라는 별명을 지어 주셧고 자주 불러주셨다. 어릴 때는 박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냥 많이 알면 박사인 줄 알았고 학위하는 것은 몰랐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박사가 학위라는 것을 알고 꼭 박사가 되어야겠다고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씨앗이 되어 박사학위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8. 25세에 결혼하여 아버지가 되다.
아버지가 50세에 늦둥이로 외아들로 낳으셨다. 아버지가 75세 되던 해
위독하셔서 유언조로 손주는 못 봐도 며느리는 보아야 저승에 가도 조상님
께 체면이 설 것인데 하신다. .당시에는 아는 여자도 없고 결혼할 형편도
아니었지만 돌아가시면 후회될까 싶어 안계고등학교재학시절에 잠시 알았
던 안계여고 출신 동갑네기 신성기(단밀면위중동)가 생각나서 전화해서 결
혼하자고 했더니 좋다고 하여 목요일에 서울 와서 토요일날 교회에서 결혼
식을 올렸다.예식이 끝난후 남산 한 바퀴 드라이브로 신혼여행을대신했다
이후 2남1녀를 낳아 현재 여섯 명의 손주를 두고 있다.
9. 공무원 정년퇴직 후에 대학교 정교수가 되다.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39년간 재직하고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녹조근정
훈장을 받고 정년퇴임 후 현재 경복대학교 학생처장 겸 복지행정학부 정교
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구교육대학
을 포기하여 초등학교 선생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이제 대학교에서 교
수로 꿈을 이루게 되었다.
10. 20년간 주례 2.000쌍을 하다.
40대 초에 우연히 첫 주례를 선후 현재까지 20년간 2,000쌍의 주례를
서왔다. 서민을 위한 무료주례와 안계중고등학교 동창들의 자녀 26쌍을
주례 해 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첫댓글 단북의 큰![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25.gif)
같습니다...평범해 보이지만 절대 따라할수 없는 그런 행적들이 단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될것같네요..자랑스럽습니다..![박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23.gif)
![박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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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합니다 교수님